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414)
공작님, 회개해주세요!-415화(415/1105)
415회
65. 공작님과 주교님 (30)
“그건 그렇고, 저들 중에 위협이 될만한 사람이 있나요?”
에드나가 고개를 정면에 유지한 채로, 아는 사람이 있으면 아무나 대답하라는 식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녀는 언제쯤 발언할 때 손을 들어 올릴까 의문이다.
얘기를 꺼낼까 하다가 그만뒀다. 지금은 말을 타고 있으니, 손을 놓으면 위험하다.
“글쎄요. 제가 보기에는 실력자라 할 만한 사람은 없는 것 같던데···.”
유지스가 말끝을 흐리며 세르펜스의 머리통을 내려다보았다.
세르펜스는 우리 중에서 가장 무력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신성력을 지녀 흑마력 또한 예민하게 감지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녀석에게도 의견을 물어보고 싶지만, 설정상 세르펜스는 막내 신관일 뿐이라서. 대충 흐지부지 말을 끝내버린 걸 테다.
“아마도 저자들은 우리의 발목을 붙잡아 시간을 끌기 위한 미끼일 겁니다.”
유지스의 의도를 파악한 세르펜스가 자신의 설정을 유지하며, ‘저놈들은 모두 잔챙이에 불과하다.’라는 뜻을 전달했다.
그런 세르펜스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저녁 시간대가 되자, 플라가는 또다시 말을 타고 우리 쪽으로 달려왔다.
“오늘은 여기서 이동을 멈추고 야영을 준비할까 하는데, 주교님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플라가의 말에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저녁 먹을 시간이라고는 해도, 여름이라 해가 길어서 아직 날이 밝았다.
“지금 당장은 밝아 보일지 몰라도, 식사하고 다시 채비를 마친 후 길을 떠나려 하면 어두워지는 건 금방입니다. 특히 이런 숲길에서는 밤이 순식간에 찾아오는 법이지요. 결국 얼마 가지도 못하고 멈춰야 하는데, 어둠 속에서 야영을 준비하는 게 얼마나 번거롭고 힘든 일인지···.”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플라가는 미리 준비한 듯한 설명을 줄줄이 쏟아냈다.
쓸데없는 말이 참 많다고 생각하며, 나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해서, 야영 준비는 지금처럼 어두워질락 말락 할 때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더군다나 지금 더 이동한다고 해서 오늘 안에 펠로 왕국에 도착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 멈춘다고 내일 도착하지 못하는 것 또한 아닙니다.”
“그래요?”
“네! 제가 이 길을 왔다 갔다 한 지도 자그마치 10년입니다, 10년! 저희의 속도에 맞춰 주시느라 일정이 늦어져서 마음이 급한 것도 이해합니다. 사실 도적놈들만 아니었더라면, 제가 먼저 멈추자는 얘기를 꺼내지 않았을 겁니다.”
악숭 세력의 끄나풀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걸까?
어쩐지 플라가의 말이 ‘밤이 되면 도적으로 분장한 우리 편이 상단을 습격하는 척할 테니, 도와줘라. 그러면 내가 너희의 뒤통수를 치겠다.’라는 뜻으로 들렸다.
“아~, 그렇죠. 밤에 돌아다니다가 도적 떼와 마주치면 위험하죠. 어두워서 신관복을 못 볼 수도 있고. 그럼 전투가 벌어지고, 일정은 일정대로 늦춰지고. 게다가 다치는 사람도 생길 테니,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고.”
“네? 그, 그렇···, 죠. 저희 직원들은 대부분 가장이니까, 다치면 큰일 나죠.”
“하하하!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가 누굽니까? 룩스메아 교단의 성직자들 아닙니까? 다치면 치료해 드릴 테니, 안심하고 마음껏 다치셔도 됩니다!”
“마음껏 다치라니, 그건 좀···.”
기껏 경계심을 지우고, 호탕하게 웃으며 맞장구를 쳐주었건만. 플라가의 표정은 떨떠름하기 그지없다.
“아하! 치료비 때문에 그러시는구나? 걱정 붙들어 매시죠! 이렇게 동행하게 된 것도 인연이니까, 특별히 저렴하게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감사···, 합니다.”
할인 제안에도 영 내켜 하지 않는 기색이다.
아무래도 공짜로 치료받을 생각이었나 보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환자가 생겼다면서, 우리의 신성력을 축내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던 게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든다.
“더 하실 얘기 있으세요?”
“아! 혹시 야영에 필요한 물품들은 가지고 계십니까? 갑작스레 일정이 바뀌어서 챙길 시간이 없으셨을 줄로 압니다. 저희를 돕다가 생긴 일이니, ‘무상으로’ 저희가 가진 물건을 빌려 드리겠습니다.”
플라가가 공짜라는 말을 묘하게 강조하며 말했다. 내가 돈독이라도 오른 사람인 줄 아는가 보다.
“괜찮습니다, 침낭이라면 혹시 몰라 챙겨 뒀거든요.”
“고작 침낭으로 괜찮으시겠습니까?”
텐트나 천막 등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긴 했다.
하지만 저쪽에서 먼저 빌려주겠다고 제안하자, 괜스레 함정처럼 느껴졌다.
“네. 제가 모닥불 피워놓고, 별이 총총 빛나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자는 것에 로망이 있어서요.”
“분명 후회하실 텐데···.”
“어허! 괜찮대도요? 아침 이슬을 맞으며 일어나는 것도, 젊었을 때 한 번쯤 해볼 만한 추억 아니겠습니까? 그, 뭐냐. 젊었을 때 고생은 사서 한다는 말도 있잖아요? 아닌가? 없나? 아무튼, 나이 들면 힘들어서 못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일행은 제게 감사해야 합니다. 연장자인 제가 이 한 몸을 희생해서 이렇게 추억을 만들어주니, 얼마나 좋아요?”
내 대답을 들은 플라가가 다들 동의하느냐고 묻는 듯한 시선으로 일행을 훑어봤다.
세르펜스는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었고, 유지스와 윈스톤. 베일의 얼굴은 후드와 투구로 가려졌다.
유일하게 에드나만이 숨김없는 본연의 감정을 한껏 드러내고 있었다. 그녀는 부끄럽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아, 진짜 저 꼰대···. 또 시작이야···.”
“신관님, 방금 뭐라고요?”
“합! 아, 아무것도 아니에, 으와, 악!”
에드나는 저도 모르게 흘러나온 한탄에 화들짝 놀랐는지, 서둘러서 양손으로 입을 가리다가 휘청거렸다.
말을 멈춰둔 상태였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낙마 사고가 날 뻔했다.
급하게 말 안장을 붙잡는 데 성공한 에드나가 머쓱한 표정으로 말에서 내렸다.
‘나이스 어시스트!’
에드나가 휘청거리는 바람에 깜짝 놀랐으나, 그것만 아니라면 박수가 절로 나올 상황이다.
아무리 내가 꼰대 설정을 잡고 개소리를 떠들어댄다 한들, 플라가가 보기에는 변명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에드나가 ‘또’라는 말을 함으로써, ‘에인젤 주교’는 원래 이런 사람이 되었다.
나는 속으로 그녀에게 감사하며 말에서 내렸다.
“어쨌거나 없으면 없는 대로 그 또한 추억이 되는 법입니다. 상황 대처 능력도 기르고! 키야~, 좋네 좋아! 말 나온 김에 위급 시 대처 능력 평가 항목이라도 작성해 둬야겠습니다.”
혼잣말하며 주변을 쓱 둘러보는데 앉기 적당한 바위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곳을 향해 걸음을 떼자, 세르펜스가 잽싸게 나를 앞질러 가서 바위 위에 손수건을 펼쳤다. 그리고 다시 말 쪽으로 뛰어가, 고삐를 잡고 근처 나무에 매었다.
“우리 막내 신관님에게 가산점을 드려야겠네! 아주 잘하셨습니다. 자자, 어서 야영과 식사 준비를 시작하죠! 얼마나 잘하시는지, 제가 다 지켜볼 겁니다!”
나는 바위에 걸터앉아 척하니 팔짱을 꼈다.
그러자 플라가가 짧고 굵게 헐, 하는 소리를 내뱉었다.
“아직 안 가셨어요? 직원들이 힘들게 야영 준비며 식사 준비를 하고 있는데, 여기서 이렇게 놀고 있으면 안 되죠! 리더로서 자격이 안 됐네, 자격이!”
“그러는 주교님은···.”
“저는 일행을 평가하잖아요? 이게 얼마나 섬세한 눈썰미가 필요한 작업인지 아십니까? 물론 모르시겠죠, 직원들이 일할 때 이렇게 나돌아다니시니.”
“···이만 가보겠습니다.”
“네, 가서 직원들 좀 독려해주고 그러세요.”
나는 어서 가라는 뜻으로 손을 흔들었고, 플라가는 떫은 감이라도 한 입 베어 문 듯한 표정으로 말 머리를 돌렸다.
그때 말에서 내리던 유지스가 불현듯 떠올랐다는 표정으로 모두에게 질문했다.
“아 참! 누구 부싯돌 챙기신 분 있나요?”
대답한 사람은 없었다.
여차하면 유지스의 불의 정령이나 에드나의 마법으로 불을 피울 수 있는 까닭에, 아무도 챙기지 않은 것이다.
그런 유지스의 말을 들었는지 플라가가 말을 멈춰 세우고 입을 열었다.
“그거라면 제가···.”
“저 나뭇가지 비벼서 불 지피는 거 직접 보고 싶었는데, 마침 잘됐네요! 부싯돌 없이 불 지핀 사람에게 보너스 50점 갑니다!”
나는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플라가의 말을 가로챘고, 세르펜스가 서둘러서 바닥의 나뭇가지를 줍기 시작했다.
그런 나와 세르펜스를 질색하는 눈길로 쳐다본 플라가는 다시 말을 몰아, 상단 행렬에 섞여 들어갔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요. 주교님, 야영 준비하기 싫어서 일부러 그러신 거 아니죠?”
“아닙니다. 그냥 되는대로 말하다 보니 이렇게 된 겁니다. 다들 일하시는데, 저 혼자 손 놓고 있으려니 참 죄송스럽네요.”
에드나가 미심쩍다는 듯이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빤히 바라봤다. 나는 당당했기에 눈동자를 초롱초롱 빛내며 시선을 마주했다.
하지만 우리의 아이 컨택은 오래가지 못했다. 세르펜스가 내 눈앞에다가 손바닥을 휘휘 흔들어댄 탓이다.
“불 지폈습니다.”
세르펜스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자, 정말로 작은 모닥불이 타닥거리며 타오르고 있었다.
급하게 긁어모은 검불에 붙였을 뿐이지만, 제대로 된 장작을 모을 때까지는 버틸 수 있어 보였다.
하지만.
“죄송하지만, 과정을 못 봤으니 실격입니다.”
“······.”
“오늘 저녁에 먹을 도시락이 있으니 요리는 안 해도 되고, 아직 밝으니까 이따가 다시 붙여 주세요.”
세르펜스가 시무룩하게 어깨를 늘어뜨리며, 흙을 덮어 모닥불을 껐다.
나를 제외한 일행은 부지런히 움직여, 길 가장자리에 걸리적거리는 돌과 나뭇가지 등을 치워서 적당한 터를 만들었다.
침낭을 늘어놓고 장작으로 쓸 나뭇가지들을 쌓았다.
윈스톤이 어디에선가 두툼한 통나무를 주워 왔는데, 모닥불 앞에 두고 걸터앉기에 딱 좋아 보였다.
‘진짜 그럴듯한데?’
판타지 소설을 읽다 보면 주인공 일행이 모닥불을 쬐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장면이 간혹 나오는데, 딱 그런 감성이 느껴졌다.
한쪽에 펼쳐진 꽃무늬 피크닉 매트만 빼면.
하지만 이건 이거대로 편하니까 좋다. 나는 바위에서 일어나, 신발을 벗고 피크닉 매트 위로 올라가 앉았다.
우리는 도시락을 까먹고, 후식으로 과일도 챙겨 먹고, 세르펜스가 불붙인 모닥불가에 둘러앉아 마시멜로를 구웠다.
베일이 꼬챙이에 꿰인 마시멜로를 노려보았다.
“그렇게 먹고 싶다는 표정을 지으셔도 아직은···. 아닌가? 마시멜로는 그냥 녹으니까 괜찮으려나? 하나 드실래요?”
“먹고 싶어서 쳐다본 게 아닙니다.”
다 구워진 마시멜로를 내밀었으나, 베일은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하는 수 없이 마시멜로 꼬치를 옆으로 넘겼다. 세르펜스가 그것을 받아들고 조심스럽게 한입 베어 물었다.
흰 마시멜로가 주욱 늘어났다.
푹신 말캉하면서도 진득한 식감. 그리고 입안 가득 퍼지는 달콤함이 만족스러웠는지, 세르펜스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까지 군침이 돌아서 새 꼬챙이를 집어 들어 마시멜로를 뀄다.
“저렇게나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서도, 먹고 싶지 않다고요?”
“···어째서 다들 이렇게 태평하신 겁니까?”
내 물음에 베일 또한 물음으로 답했다. 잔뜩 낮춘 그의 목소리에는 경계심이 도사리고 있었다.
상단 측이 수상하다는 얘기를 해놓고도 우리는 계속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런 우리를 보며 베일은 자기 혼자서라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게 아닐까 한다.
‘그래 봤자 본인만 피곤할 텐데.’
쯧쯧. 속으로 혀를 차며, 마시멜로를 조심스럽게 모닥불 근처로 가져갔다.
마시멜로를 구울 땐 아주 섬세한 기술이 필요하다. 불에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살살 꼬치를 돌려야 한다.
빨리 먹고 싶다고 가까이 가져간 순간 새하얀 마시멜로는 화르륵 불타오르고, 재빨리 불을 꺼도 새하얀 그 자태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마니까.
“왜긴 왜겠습니까? 우리가 경계하고 있다는 티를 내지 않기 위해서죠. 우리가 의심을 지우고 방심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야, 저자들도 허술하게 나오지 않겠습니까?”
“그것도 그렇지만···.”
“작은 성기사님이 보시기에, 저희가 마냥 태평한 것처럼 보였다면 다행이네요. 적을 속이려면, 아군부터 속여야 하는 법이라니까. 말이 나와서 하는 얘긴데, 작은 성기사님께서는 주변 사람들을 속이는 방법도 익혀 두셔야 합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겉으로 다 드러납니다.”
나는 다 구워진 마시멜로 꼬치로 베일을 삿대질하듯 가리키며 훈수를 두었다.
그런 내 행동을 다른 의미로 받아들였는지, 베일이 머뭇거리는 듯하더니 갑자기 휙 마시멜로 꼬치를 뺏어가 버렸다.
‘이번에는 줄 생각이 없었는데, 내가 먹으려고 구운 건데···!’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기왕지사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또다시 마시멜로를 꿰어 모닥불에 구웠다. 그렇게 완성된 마시멜로 구이는 무척이나 맛있었지만, 너무 달아서 하나 이상은 못 먹겠다.
세르펜스나 구워 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