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415)
공작님, 회개해주세요!-416화(416/1105)
416회
65. 공작님과 주교님 (31)
* * *
모닥불이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올랐고, 작은 불티가 연기를 타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 불빛은 얼마 못 가 금방 사라졌지만, 밤하늘은 이미 수많은 별빛으로 가득했다.
나는 그 아름다운 광경을 눈에 담으며 입을 열었다.
“슬슬 불침번을 정하고 자러 가죠.”
“이렇게 정하는 건 어떨까요?”
고개를 내리자 유지스가 한 손을 번쩍 들어 올린 채로, 다른 한 손에는 나뭇가지를 쥐고 바닥에 무언가를 적는 모습이 보였다.
[ 레반다 님 > 저 > 에인젤 주교님 > 프레이 님 > 렉스님 > 오르덴 님. ]마침표를 찍은 후에도 유지스의 손은 멈추지 않고 동그라미를 그려서, 우리의 가명을 둘씩 짝지어 묶었다.
“이런 식으로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교대하죠? 주교님은 모범이 되어야 하니까. 그리고 프레이 님은 막내니까 가운데에 넣어 봤어요.”
유지스가 ‘한 사람씩’이라는 말에 악센트를 주며 말했다.
에드나가 불침번을 설 때는 유지스가. 내 차례에는 세르펜스가. 베일의 순번에 윈스톤이 자는 척하며 경계를 서자는 뜻이었다.
첫 순서만큼이나 꿀이라 할 수 있는 마지막 순서가 윈스톤인 이유는, 침낭이 다섯 개뿐이기 때문이리라.
한 명씩 밀려서 침낭을 써야 하니까.
2m에 달하는 신장뿐 아니라 우람한 근육까지 자랑하는 윈스톤의 체구로, 일반 침낭을 쓴다는 건 불가능하다.
‘아무튼 중요한 건 윈스톤이 마지막 순서라는 게 아니라, 나와 세르펜스가···. 정확히는 막내인 프레이 신관이 중간이라는 거겠지.’
더군다나 ‘프레이 신관’은 에인젤 주교에게 잘 보이려 혈안이 된 인물이다. 그 실체인 세르펜스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어쨌거나 나뭇가지를 비벼 불을 붙여 보라는 말도 안 되는 요구에도, 망설임 없이 나뭇가지를 주우러 뛰어다니기까지 했다.
‘에인젤 주교가 대충 시간을 보내다가, 이단 심문관이 잠들고 난 뒤. 프레이 신관을 바로 깨워서 바통 터치해도 괜찮다는 뜻이지.’
주교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어리고 순진한 막내 신관이 그런 요구를 받았을 때. 어떻게 행동할지는 뻔하다.
불합리에 맞서 싸울까?
절대 그럴 리는 없다. 되려 영광이라 생각하며, 점수를 딸 기회라 여기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거다.
그렇게 모두가 잠든 깊은 밤.
일행 중 가장 연약한(것처럼 보이는) 막내 신관이 홀로 불침번을 서게 되고.
말도 타지 않고 온종일 걸어서 피곤했던 어린 신관은 길고 긴 밤을 홀로 지새우다가, 결국 깜박 졸게 되겠지.
적들은 분명 그 순간을 노릴 거다.
“이야~! 완전 마음에 드네요! 특히 제 바로 다음 순서가 우리 막내 신관님이라는 게!”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 거지만, 프레이 님에게 불침번을 떠넘기고 바로 주무시러 가시면 안 되는 거 아시죠?”
내가 눈치채지 못했을까 걱정되었는지, 유지스가 친절하게 계획을 짚어 주었다.
“알다마다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좋아요, 그럼 이제 자러 갈까요?”
그렇게 말하며 유지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바닥에 적힌 글자를 발로 슥슥 문질렀다.
우리의 가명과 그것을 묶었던 동그라미들이 완벽하게 지워졌다.
나는 유지스를 따라 일어나며 상단 행렬 쪽에 슬쩍 눈길을 던졌다.
주변에 횃불을 밝혀 놓은 덕분에, 마차를 지키고 선 인형(人形)을 확인할 수 있었다.
‘평범하게 도적 떼를 경계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냥 호기심이 많았을 뿐인 수다쟁이 상인과 직원들이었으면 좋겠다.
아무 일 없이 날이 밝고, 무사히 국경을 넘어서. 여행 중 일어난 가벼운 해프닝으로 추억되길 바라며.
나는 침낭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교님, 일어나세요.”
잠결에 희미하게 유지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른 사람들이 깨지 않도록 작게 말한 탓에, 몸을 흔드는 손길이 아니었다면 일어나지 못할 뻔했다.
부스스 일어나 침낭 밖으로 나오자마자 서늘한 밤공기가 내 몸을 감쌌다. 자다가 막 일어나서 그런가, 괜히 으슬으슬하다.
벌써 포근한 침낭이 그리워졌지만, 내가 쓰던 침낭은 이미 유지스가 차지한 뒤였다.
“한 시간 반 뒤에 프레이 님을 깨우시면 돼요.”
유지스가 침낭 안에서 편한 자세를 잡으려 꼬물꼬물 움직이며 속삭속닥 말했다.
그녀의 말에 무심코 세르펜스를 돌아봤다가,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슬쩍 지나가는 척 녀석을 발로 건드려서 깨워야 하나 걱정이었는데, 알아서 깼다니 마침 잘 됐다.
‘아닌가? 유지스가 먼저 깨웠나?’
어느 쪽이든 아무래도 상관없겠지.
나는 세르펜스에게서 시선을 떼고, 다시 유지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기억하고 있어요. 이단 심문관님께서는 걱정하지 말고 푹 주무세요.”
“네, 그럼 내일 아침에 봬요.”
유지스가 눈을 감는 모습을 확인하고, 살금살금 걸어서 모닥불가로 향했다.
윈스톤이 주워왔던 통나무는 피크닉 매트로 덮여 있었다. 유지스나 에드나 둘 중 한 명의 작품이리라.
아무튼 손수건 쪼가리보다 훨씬 편하고 안정적인 것만은 확실하다.
나는 상큼한 꽃무늬 의자로 탈바꿈된 통나무에 걸터앉아, 회중시계를 꺼내 들었다.
‘지금이 2시니까···. 5분 만에 자러 가는 건 너무 심하고, 10분 정도면 괜찮겠지?’
머릿속으로 대충 시간을 계산하며 크게 기지개를 켰다.
손으로는 회중시계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반복하며, 멍하니 타오르는 불길을 구경했다.
이런 걸 두고 ‘불멍’이라고 하던가?
생각을 비우고 조용히 불길을 바라보고 있자니, 묘하게 힐링 되는 느낌이다.
‘그래도 멍을 때리는 것보단, 역시 잠이 더 좋지.’
시간을 확인하니 아직 2시 7분이다.
10분까지는 성실하게 앉아있으려 했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멍 때리다 보니 졸음이 몰려들어서 그런 게 아니라, 세르펜스를 위해서다. 일어나서 앉아 있는 것보다, 자는 척하는 게 더 고역일 테니까.
나는 고이 누워있는 세르펜스에게로 다가갔다.
조금 전 눈이 마주쳤던 주제에, 녀석은 지그시 눈을 감고 색색 고른 숨을 내쉬고 있었다.
살며시 벌어진 입이 누가 봐도 깊은 잠에 빠진 모습이다.
“막내 신관님, 일어나 보세요.”
“으으음···.”
내가 볼을 콕콕 찌르며 부르자, 고개를 살짝 흔들고 꼬무락거리며 자세를 고쳐 눕는 시늉까지 했다.
아까 눈이 마주치지만 않았다면 나조차도 깜박 넘어갔을 정도로 실감 나는 연기다.
나는 속으로 혀를 내두르며 세르펜스를 일으켜 앉히려 애썼다.
아니, 그러려고 했는데 힘을 쓰기도 전에 녀석의 상체가 스르르 일어났다. 내 손은 거들기는커녕, 그저 대고 있는 것에 불과했다.
“아···. 으음···, 벌써 시간이···.”
목이 잠겨서 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다는 듯. 세르펜스는 평소보다 낮은 음색으로 쇳소리까지 섞어가며 중얼거렸다.
그러고도 모자랐는지, 완전히 잠에 취한 몽롱한 표정으로 멍하니 나를 바라보다가 눈을 비비기까지 했다.
“···주교님?”
“잠 깨셨으면 이만 나와 주실래요?”
“아, 죄송합니다.”
세르펜스가 굼뜬 동작으로 침낭 밖으로 나왔다.
내가 알아차리지 못한 적이 근처까지 와서 이러는 거라면 칭찬해 주겠지만, 그냥 연기에 재미를 들린 거라면···.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우리 아이의 배우 꿈을 응원해 줘야 하나?
“전 이만 잘 테니까, 막내 신관님은 2시간 53분 후···. 아, 그새 시간이 좀 흘렀나? 아무튼 5시에 작은 성기사님을 깨워주세요.”
“예?”
세르펜스가 못 알아들은 척했다.
졸려 죽겠는데 참 가지가지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맞춰 줘야지 어쩌겠는가. 어찌 생각하면 이것도 소꿉놀이의 일환인 것을.
“제 몫까지. 괜찮죠?”
“···네. 맡겨 주십시오.”
내가 녀석의 어깨를 툭툭 두들겨주며 말을 건네고 나서야, 세르펜스는 겨우 상황 파악이 됐다는 연기를 했다.
그 모습에 실소가 흘러나왔다.
“그럼 안녕히 주무십시오.”
“네네, 막내 신관님도 좋은 밤 되세요.”
나는 침낭 속을 파고들며 세르펜스의 인사에 화답했다.
좋은 밤이 될 가능성이 매우 낮았지만, 그러길 바라는 마음은 진심이었다.
세르펜스의 체온으로 데워진 침낭은 적당히 따뜻했고 잠은 금방 몰려들었다.
그로부터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시끄러운 소리에 눈이 절로 뜨였다. 나는 상체를 일으켜 주위를 둘러보았다.
처음 보는 놈들이 우리와 상단 사람들을 둘러싸고 있었다. 상단 측도 적으로 계산한다면, 우리는 이중으로 둘러싸인 셈이다.
‘것보다 이 사람들은 언제 여기까지 온 거야?’
마차나 말이 안 보이는 거로 봐서, 그냥 자다가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하려고 급하게 달려왔다는 설정인가 보다.
그 증거로 상단 사람들의 몰골이 장난이 아니다. 실감 나는 연출을 위해서인지, 진짜로 피를 흘리며 다친 사람도 있었다.
그래 봤자 중상이라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와, 진짜 너무하네···.”
습격을 예상하긴 했지만, 진짜로 자다가 습격을 받으니 기분이 엉망진창이다.
침낭에 들어가 있는 사람은 나와 에드나 뿐.
설정상 무기가 없어서 빈손인 세르펜스를 제외하고, 나머지 일행은 전부 일어나서 무기를 빼 들고 있었다. 심지어는 베일까지도.
“뭐, 뭐죠?! 습격? 진짜요?”
뒤늦게 정신을 차린 에드나가 허겁지겁 침낭 밖으로 빠져나왔다. 나도 계속 이러고 있을 수만은 없어서 침낭에서 나왔다.
“지금 불침번이 누구 차례죠?”
“제 차례입니다.”
착실하게 모노클까지 챙겨서 낀 세르펜스가 살짝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시계를 꺼내 시간을 확인해 보니 과연, 3시 31분이다. 1분만 일찍 일어났으면 내 책임이 될 뻔했다.
“마, 마차는 저쪽에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째서 쫓아와서, 이렇게 위협을 하는 겁니까!”
플라가가 겁에 질리기라도 한 듯 말을 더듬거리며 외쳤다.
저쪽도 나름대로 설정을 준비해 온 듯하니, 일단 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잠자코 기다렸다.
“흐흐···. 그렇게는 안 되지. 목격자를 남겨 둘 수는 없으니까···.”
“이, 이러시면 곤란해지실 겁니다! 여기 룩스메아 교단 분들이 보이지도 않습니까?!”
“크크크···. 무언가 잘못 알고 있나 보군.”
흐흐 하고 웃을 건지, 크크 하고 웃을 건지 통일해 주면 좋으련만.
아직 배역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하여 오락가락하는 모양이다.
“잘못 알고 있다니···, 그게 대체 무슨 뜻입니까?”
“우리의 목적은 금품 따위가 아니라, 바로 룩스메아의 하수인들이라는 뜻이다!”
질문을 던지고 친절하게 화답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정겹다.
답변해 주는 사람이 무기를 꺼내 들고 있지만 않았더라면, 그냥 질의응답 시간으로 착각할 뻔했다.
“너희는 참 운이 나빠. 하필이면 교단 놈들과 동행을 하다니. 그 탓에 우리가 너희를 죽일 수밖에 없게 되었잖아? 도망치는 놈이 있을까 봐, 네놈들을 먼저 습격했는데. 이렇게 한데 모여주니, 고맙기 그지없군. 흐흐흐···.”
“마, 말도 안 돼···. 안전을 위한 선택이 이렇게 목숨을 위협할 줄이야!”
두 주연 배우가 대사를 주고받으며, 열심히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우리의 이해를 돕기 위함···은 아닐 테고. 한창 싸우는 도중에 배신하기 위한 빌드업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