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421)
공작님, 회개해주세요!-422화(422/1105)
422회
65. 공작님과 주교님 (37)
“이건 또 무슨···.”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이 안 나온다.
나만 쏙 빼놓고 자기들끼리 쑥덕거리며 대본을 만들고, 제2막으로 넘어가 버리다니.
“도저히 주교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정말 꼴불견입니다.”
이게 대체 무슨 설정인지 파악할 새도 없이. 윈스톤이 무감정한 목소리로 유지스의 말에 동조했다.
실망을 하다 하다 제풀에 지쳐 포기하게 된.
자신의 감정을 소모하여 분노하는 것조차 아깝다는 듯한 경멸조의 말투였다.
반면에 길길이 날뛰듯 분노하는 사람도 하나 있었다.
“힘들게 싸우고 있는 사람을 모욕하다니, 최악이라는 말로도 모자랍니다! 당신이 그러고도 사람입니까?!”
베일은 신나게 나를 삿대질하며 소리쳤다. 정당하게 나를 까도 되는 이 상황이 매우 마음에 들었나 보다.
그는 진작부터 이럴 줄 알았다느니 어쨌느니 하며, 다다다 말을 쏟아냈다.
투구로 가려진 베일의 표정은 개운하게 웃고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저, 정말로, 믿을 수가-, 없네요. 주교라는, 사람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
진정으로 의심해야 할 것은 베일의 투구 속 표정이 아니었다. 귀를 의심케 하는 에드나의 발연기에 나도 모르게 새끼손가락을 세워 귓구멍을 후볐다.
방금 에드나가 내뱉은 말의 높낮이 변화를 화살표로 표현한다면, 격투 게임 필살기 커맨드 보다도 복잡하고 어지러울 게 분명하다.
“하···!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비웃을 생각까지는 없었는데, 입을 열자 헛웃음이 절로 터져 나왔다. 그 괴상망측한 발연기가 머릿속에서 맴맴 돌아다닌 탓이다.
에드나도 자신의 연기가 너무 수치스러웠는지,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이며 부들부들 떨었다.
“그, 그게···. 그러니까-, 으읏···!”
“진정하세요, 레반다 님. 너무 흥분하셨어요. 심호흡하세요, 심호흡!”
유지스가 에드나의 손목을 끌어당긴 후, 윈스톤의 뒤에 숨겼다. 분노가 극에 달하여 말이 제대로 안 나온다는 설정값을 부여해 준 것이다.
에드나에게 조금만 더 센스가 있었더라면 뒷목을 부여잡는 동작을 취했을 텐데.
그 점이 조금 아쉬웠다.
“비록 에인젤 님께서 매사에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하긴 해도, 그 마음속에는 따스함과 신 룩스메아 님을 향한 신앙심을 품고 있을 줄 알았건만!”
에드나의 발연기를 법숭이의 뇌리에서 지워버리기 위해, 유지스가 열연을 펼쳤다.
그녀가 무슨 생각으로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 아직 감이 오지 않는다. 하지만 저렇게나 열정을 불태우는데,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다.
나는 일부러 짝다리를 짚으며 입을 뗐다.
“그래서 뭐요? 저를 이 자리에서 죽이기라도 하려고요?”
“에인젤 님이 그 명석한 두뇌로 교단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셨다는 건, 저도 잘 알고 있답니다. 그런 에인젤 님이 악마 숭배에 거부감이 없다는 걸 알게 된 이상···. 그래요, 그리하지 못할 것도 없죠.”
내 비아냥거림에 유지스가 활에 화살을 메겼다.
그러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법숭이었다.
“자, 잠깐···! 거기 너! 빨리 결계를 거둬라!!”
법숭이가 다급한 목소리로 세르펜스를 향해 소리쳤다.
하지만 세르펜스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 계속해서 검을 휘두를 뿐이었다.
녀석의 전신에서 신성력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깨달음을 얻어 각성의 문턱에 도달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실상은 그냥 신성력 낭비일 뿐이지.’
어쨌거나 세르펜스는 무아지경에 빠진 척. 무언가에 홀린 표정으로, 적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검술만 따지자면 프라시더스 공작 이상 가는 재능’이라는 설정값에 맞춰, 갈수록 신묘해지는 검술에 적들이 애를 먹고 있었다.
녀석이 상대하고 있는 자는 총 일곱이었는데, 그들 중 도적은 없었다.
대부분은 세르펜스가 해치운 걸 테다. 그러나 줄곧 결계만 두드리던 도적들도 하나둘 픽픽 쓰러지는 거로 보아, 진기를 전부 소진하여 쓰러진 놈들도 몇 명 있지 않을까 한다.
“왜 하필 지금!”
법숭이가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를 질렀고.
“진짜로 활을 쏘시려고요? 에이, 그건 좀 아니지 않아요? 아직 악마 숭배 세력에 붙겠다고 확실히 선언한 것도 아닌데. 요즘같이 손이 부족한 시기에 주교급 인물을 즉결 처분한다니. 감당할 수 있으시겠어요?”
나는 악역 같은 대사를 읊으며 이죽거렸다.
“저런 정신 나간 새끼가···! 이단 심문관을 도발하지 마!!”
법숭이가 비명처럼 날카롭게 소리쳤다.
그리고 유지스가 한껏 당겼던 활시위를 놓은 것도 바로 그때였다. 화살이 쇄애액 소리와 함께 내 발치를 향해 날아들었다.
나를 직접 노린 것도 아니라, ‘나는 얼마든지 당신을 쏠 준비가 되어있다.’라는 의미가 담긴 위협사격일 뿐이었으나.
– 카앙!
세니어 자식이 천지 분간하지 못하고 결계를 펼쳐 나를 보호했다.
결계에 부딪혀 튕겨 나가는 화살을 보며, 나는 속으로 쯧 혀를 찼다.
분명 세르펜스는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검 형태로 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는데.
피아 식별 능력이 떨어지는 건 둘째 치고서라도, 검의 본분을 다할 생각이 없는 게 분명하다.
‘세르펜스 이 자식···! 내게 호신용 검술을 가르치기만 했지, 실전을 겪게 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을 거야.’
녀석의 그런 무의식이 반영된 것이 바로 나를 감싼 이 신성 결계이리라.
법숭이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 내가 자력으로 결계를 펼친 거라고 생각한 거겠지.
“방금은 그저 경고에 불과했지만···.”
유지스가 화살집에서 느릿한 동작으로 새로운 화살을 꺼내며, 의미심장하게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생략된 뒷말이 많은 상상을 하게 한다.
“상단 분들, 휘말리고 싶지 않다면 당장 에인젤 님에게서 떨어지세요!”
유지스는 화살을 메기며 다시금 목소리를 높였다.
상단 직원들이 휘말릴까 봐 걱정되어 신성력을 쓰지 않았다는 변명이었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지레 겁을 먹고 후다닥 내 곁에서 멀어졌다. 그들은 결계 가장자리에 선 일행들 근처로 옹기종기 모였다.
플라가는 상단주랍시고 다친 말콤을 챙겨, 부축하며 이동했다.
“지금부터는 에인젤 님이 아닌 제가 일행의 리더를 맡겠어요. 이견 따위는 받지 않을 거랍니다.”
독재자 같은 유지스의 발언에도 반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처음부터 그렇게 짜 맞추고 연기를 시작한 걸 테니까.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일행들 쪽으로 유지한 채로, 힐끔 곁눈질해서 세르펜스를 쳐다보았다.
녀석은 일말의 동요 없이 검숭이들을 상대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유지스가 나를 진정으로 해칠 리 없다고 믿는 거다. 예전이라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감동이 밀려와 코끝이 찡해졌다.
“도망칠 곳은 없답니다. 당신의 자랑스러운 프레이 신관님은 당신을 구할 수 없어요. 지금 정신을 차린다 해도, 지쳐서 바로 쓰러지겠죠. 이곳은 에인젤 님이 스스로 만든 덫이랍니다.”
유지스는 내 시선 처리조차 설정으로 승화시켜 버렸다.
그 즉흥적인 설정 부여에 소름이 다 돋았다.
“저희 모두를 상대로 그 결계가 과연 얼마나 갈까요?”
유지스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윈스톤과 베일이 검 끝으로 나를 겨누며 자세를 낮췄다. 공격 명령이 떨어지는 즉시, 내게 달려들기 위한 준비 자세였다.
두 사람의 동작이 딱 맞아떨어진 거로 봐서, 미리 약속해둔 대사였나 보다.
“저 마테리아 S. 사지타가 이단 심문관의 자격으로, 전(前) 주교인 에인젤 H. 셀레스트님을 심판하겠어요!”
그리고 이게 돌격 신호겠지.
윈스톤과 베일이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와 동시에.
“주교를 지켜야 한다!!”
법숭이가 악을 쓰며 소리쳤고, 상단 직원들이 일제히 후방의 두 사람. 좀 더 명확하게 따지자면 최약체로 보이는 에드나에게 달려들었다.
인질로 삼으려는 작정인 게 틀림없다.
유지스가 급하게 화살을 쏘아 보내어, 에드나를 붙잡으려 하는 플라가의 손을 꿰뚫었다.
그리고 시위를 당겼던 손으로 에드나를 잡아당겨 자신의 뒤로 숨긴 후, 활대를 크게 휘둘렀다.
정령력도 신성력도 깃들지 않은 평범한 활이었지만, 그걸 휘두르는 사람은 수백 년간 활을 쏘아왔다.
평범한 사람이 버틸 수 있는 위력이 아니었고, 상단 놈들은 우수수 쓰러졌다.
윈스톤과 베일도 곧장 뒤로 돌아서 상단 놈들을 향해 돌격했다.
내 쪽으로 달려들 땐 적당히 속도를 조절했던 건지, 급작스러운 턴에도 넘어지는 일은 없었다.
‘베일이 살짝 미끄러지긴 했지만, 정식 기사도 아닌데 그 정도 실수쯤이야.’
활에 맞아 쓰러졌던 놈들이 달려오는 두 명의 성기사를 보고 몸을 일으켜 달아나려 했지만 헛수고였다.
세르펜스의 결계가 그들의 퇴로를 차단했으니까.
어쩔 수 없이 놈들은 득달같이 에드나를 향해 달려들었고, 유지스가 에드나를 지키는 동안 윈스톤과 베일이 상단 놈들을 때려서 기절시켰다.
나는 세니어가 펼쳐준 결계 속에서 척 하니 팔짱을 끼고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러다가 기절한 사람들 사이에서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것을 발견했다. 시체처럼 쓰러져 있던 말콤이었다.
놈의 손에는 이어달리기할 때 쓰는 바통처럼 생긴 무언가가 들려있었는데, 문제는 그 끝에 뾰족한 송곳 같은 것이 흉흉하게 반짝였다는 거다.
“신관님, 발밑에!”
나는 에드나의 발치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에드나가 ‘꺍!’ 하고 괴상한 비명을 지르며 후다닥 뒷걸음질 쳤다. 그러자 그녀를 향해 천천히 기어가던 말콤이 벌떡 일어나 달려들었다가, 유지스가 양손으로 힘껏 휘두른 활에 맞고 날아가 버렸다.
“아, 미친! XX 깜짝 놀랐네!”
에드나가 현재 자신의 감정 상태를 거친 언어로 표현했다.
하지만 그녀가 놀란 마음을 가라앉힐 새도 없이, 더 놀랄만한 상황이 벌어졌다.
말콤의 손에 들려있던 바통 모양 송곳이 날아가서, 쓰러져 있던 상단 직원 중 한 명에게 박혔다.
그러자···.
“끄, 끄으윽-!”
비명조차 질러보지 못하고 몸을 이리저리 비틀어대다가 추욱 늘어졌다.
피부는 물론이거니와 크게 치켜뜬 두 눈은 동공이며 흰자위며 할 것 없이, 새까맣게 물들어 버렸다.
‘독···, 이려나?’
상당히 치명적으로 보이는데도 다른 상단 놈들은 꺼내 들지 않았다.
그런 점으로 미루어 봤을 때, 저 물건을 가진 건 ‘인질 역할을 맡았던’ 말콤 뿐이라는 뜻이다.
삐끗해서 일이 틀어지게 되면, 말콤 한 명에게만 모든 죄를 뒤집어씌우고 빠져나갈 작정이었던 게 확실하다.
아니면 겨우겨우 인질을 구해내고 난 후, 힘이 빠진 우리를 공격할 요량이었다거나.
“주교! 어째서 경고를 한 거지?!”
“아차! 반사적으로 저도 모르게 그만···? 하지만 잘 생각해 보세요. 그동안 일행이라 생각하며 지내온 시간이 있는데, 어떻게 한순간에 적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주교오···!!”
법숭이가 핏발 선 눈으로 나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지금 저럴 때가 아닐 텐데.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공평하게 갑시다! 뒤를 조심하세요.”
“뒤···?”
내 주의를 들은 법숭이가 의아해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법숭이의 관심이 우리에게 쏠린 사이. 본 실력을 완전히 드러내어 검숭이들을 단숨에 해치운 세르펜스가 그곳에 서 있었다.
녀석의 일격에 법숭이는 쓰러져 버렸다.
“어휴, 드디어 끝났네!”
진짜 지긋지긋한 싸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