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430)
공작님, 회개해주세요!-431화(431/1105)
431회
66. 공작님과 바스툴 왕국 (1)
신성 루멘 제국에서 펠로 왕국으로 넘어갈 때는 이상한 사건에 휘둘려 애를 먹었지만, 펠로 왕국에서 바스툴 왕국으로 넘어갈 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세르펜스와 유지스는 이를 두고, 수법이 드러난 탓에 새로운 접근 방식을 고안해내는 겸.
교단의 신전 증설 계획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 소규모 인원으로 원정을 떠나는 성직자들이 많아질 테니, 그것을 노리는 것 같다는 추측을 내놓았다.
신전 증설 계획은 우리가 신분을 숨긴 채로, 바스툴 왕국에 입국하기 위한 구실일 뿐.
이곳에서 할 일을 끝마친 후, 이런저런 변명을 대며 계획을 엎어버리면 그만이다.
그렇기에 당장 걱정해야 할 문제는 따로 있었다.
“이렇게 될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되지 않도록 막는다고 막았는데! 결국 이렇게 되어버렸구나!”
“그래도 복구할 수 없는 수준은 아니니, 너무 상심하진 마십시오.”
세르펜스가 테이블 위로 엎드린 내 등을 토닥거리며 나를 위로했다.
귓가로 팔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작은 바람이 일어나, 머리카락이 흔들리며 뒷목을 간지럽혔다.
고개를 들어 옆을 바라보자, 세르펜스가 손에 들린 서류로 내게 부채질하고 있었다. 매우 익숙한 장면이다.
왜냐하면 저번에 더우니까 떨어지라고 말한 이후, 녀석은 시도 때도 없이 내게 부채질을 해댔으니까.
“교단에서 준 서류로 뭐 하시는 겁니까?”
“이 서류를 테이블 위에 내동댕이친 건 주교님이시잖습니까?”
“거칠게 내려놓은 것뿐이지, 내동댕이친 건···. 아니, 뭐 됐어요. 그냥 종이일 뿐인데 별 상관없겠죠.”
나는 세르펜스의 손에서 흔들거리는 서류에 흘깃 눈길을 던지며, 가볍게 나부끼는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쓸어 넘겼다.
꽤 빳빳하고 두꺼운. 질 좋은 종이를 썼는지, 고작 네 장밖에 겹쳐지지 않았는데도 바람이 제법 시원하다.
현재 우리가 있는 곳은 콘피니에 령 지부의 신전이다. 그리고 콘피니에 령은 바스툴 왕국의 백작령으로, 펠로 왕국과 접경한 지역이기도 했다.
신전에 도착하자마자 웬 서류를 건네주기에 법숭이 심문 결과라도 나온 줄 알았건만.
그 서류에 적힌 내용은 기차의 운행 정지에 관한 내용이었고, 우리는 임시로 신전 소회의실을 빌려 원탁에 둘러앉았다.
모든 기차가 아니라 일부 노선뿐이라지만, 어쨌든 운행 정지는 운행 정지다.
그렇게 된 원인도 [성검의 주인] 때와 마찬가지로 마물 때문이다.
[성검의 주인]에서는 볼타 산맥의 결계가 무너졌을 당시. 제국이 망한 후라서 풀려난 마물들을 막을 수가 없었다.오랫동안 한 장소에 묶여 있었던 것이 한이라도 되었는지, 마물들은 대륙 각지로 널리 퍼졌다.
‘그뿐만이 아니라, 결계를 다시 만들어내지 못한 탓에 그 수도 계속해서 불어났지···.’
공왕이 ‘빼돌린’ 마물의 수는 [성검의 주인]에서 ‘풀려난’ 마물의 반의반도 못 미친다.
하지만 마물을 유인하는 게 전부였던 그때와는 다르게, 지금은 완벽하게 조종할 수 있다. 게릴라식으로 목적만 달성하고 튀는 게 가능해졌다.
악숭이들은 그 능력을 이용해, 마물로 하여금 철도를 망가트리게 한 뒤 온전히 회수했다.
‘운 좋게도 우리가 탔던 기차는 펠로 왕국을 가로지르는 동안 아무런 피해도 없었지만···.’
이제는 부채가 되어버린 서류에 의하자면. 공국과의 전쟁을 마치고 우리를 뒤따라오던 휴마누스 일행은 발목을 잡혔다나 보다.
하지만 별로 걱정되지는 않는다.
어차피 휴마누스 일행은 시련을 받으러 다니는 동안에도 기차는 이용하지 못했으니까.
‘[성검의 주인]에서도 기차를 탄 건, 고작 한두 번뿐이었지.’
우리가 제국으로 돌아갈 때가 걱정이라거나, 앞으로 있을 원거리 출장에 큰 애로사항이 생겼다거나.
이 또한 부수적인 문제다.
진짜 문제는 유통망에 큰 구멍이 생겼다는 거다.
유통 구조에 이상이 생긴다면 경제가 흔들리고, 그 피해는 대륙 전역에 걸쳐서 나타나게 될 테다.
안 그래도 최근 물가가 위태위태했는데, 이제는 걷잡을 수 없이 상승할 일만 남았다.
‘정말로 먹고살기 팍팍해지겠네···.’
돈 있는 놈들이야 큰 타격이 없겠지만, 전체 인구수를 놓고 따지고 보면 그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또한 망가진 철로 고치면 그만이라지만, 고치는 비용도 문제고. 악숭이들이 다시 철로를 끊어 먹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그런데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건, 무슨 뜻입니까?”
빙의 초반부터 ‘이건 꼭 막아야지!’ 했던 일에 실패하여 시무룩해져 있는데, 베일이 질문을 던졌다.
베일은 여기까지 오는 동안 살이 꽤 붙어서 핼쑥했던 낯이 제법 볼만해졌다.
아직도 마른 편이긴 하지만, 예전처럼 아파 보이지는 않고 날렵한 느낌이 났다.
“‘신의 사자’께서 악마 숭배자들이 볼타 산맥의 결계를 깨부수고, 마물들을 대륙에 풀어서 철도를 끊어먹으려고 한다는 걸 미리 경고하셨거든요. 그래서 대비를 한다고는 했는데, 갑자기 나타난 변수 때문에 완벽하게 막아내지 못했다. 뭐, 그런 얘깁니다.”
“신의···, 사자께서···.”
내가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자, 베일이 떨떠름한 건지 얼떨떨한 건지 모를 표정으로 입속말했다.
아직도 내가 신의 사자라는 게 사실인지 반신반의하고 있었나 보다.
그러던 중에 진짜로 예언다운 예언을 했었다는 말에, 이제야 좀 와 닿아 하는 모습이다.
‘하기야 신의 사자라는 걸 밝히고 나서도, 꼰대 설정은 계속 밀고 나갔으니까. 사기꾼처럼 보였을 만도 하지.’
내가 너그럽게 베일을 이해하기로 마음먹고, 용서해 주고 있을 때.
유지스가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휴마누스는 어떻게 한다고 하던가요?”
“여기로 온대요. 마물이 출몰하는 장소가 한 나라에 국한되지 않고, 대륙 각지 중구난방이라···. 그쪽을 쫓는 건 힘들다나 봅니다.”
“후우-, 정말 큰일이네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유지스가 대답했다.
휴마누스가 바스툴 왕국으로 온다는 사실 때문에 한탄하는 게 아니라, 마물의 이동 속도 때문에 저러는 걸 테다.
‘조류 형태의 마물을 타고 날아다니는 거겠지?’
우리 쪽 탈 것은 못쓰게 되었는데, 적팀은 아예 하늘을 날아다닌다니.
답답한 마음에 나도 유지스를 따라서 한숨을 내쉬려다가, 꿀꺽 삼켰다. 그리고 한숨 대신 다른 것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니까, 우리는 할 거 하죠.”
휴마누스 일행에 비하면 우리는 나은 편이다.
적어도 뭘 해야 할지, 뚜렷한 목표라도 있으니까.
지금쯤 휴마누스는 아주 답답하고 막막할 거다.
폴드 공국과의 전투에서 공을 세울 수 있었으나, 정작 공왕은 그림자조차 내비치지 않았다.
철로를 노리는 건 시작에 불과하다.
제대로 방어체계가 갖춰지지 않은 마을을 노린다면, 인명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거다.
그걸 휴마누스가 모를 리가 없다. 한데도 그것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완전히 사람 피 말리는 짓이지···.’
공왕인지 마왕인지. 아니면 다른 악숭이 중 누군가가 떠올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목적만은 뚜렷했다.
그들은 휴마누스가 무력감을 느끼며 정신적으로 무너지도록, 철저하게 농락하고 있었다.
“그래서 저희는 이제 뭘 해야 하는 건데요?”
에드나가 잠시를 못 참고 질문했다.
뭔가 작전 설명을 할 것처럼 운을 떼놓고, 내가 아무 말 없이 그냥 있으니 답답해졌나 보다.
“막내 신관님, 설명해 주세요!”
나는 아까부터 얼굴 옆에서 정신 사납게 흔들리는 서류를 잡아채서,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그리고 서류 부채를 빼앗긴 세르펜스가 작전 설명을 시작했다.
* * *
“네퀴테 영주성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30세 중반쯤 되어 보이는 집사가 허리를 숙이며 우리를 향해 인사했다.
“영주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내하겠습니다.”
집사가 공손하게 말하면서도, 평가하는 듯한 눈으로 우리를 훑었다.
그의 시선이 후드를 푹 눌러쓴 유지스에게 유독 길게 머물렀다.
켕기는 구석이 있어서 저러는 건지, 그냥 이단 심문관을 처음 봐서 저러는 건지. 어느 쪽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이미 눈치를 볼 대로 다 본 주제에. 집사가 아닌 척하며, 우리에게 등을 보이고 앞장서 걸었다.
‘나이를 보면 제온보다 경력도 길 텐데, 이거 순 초짜 아냐? 하긴. 여기가 이단 심문관을 보고도 눈 하나 깜빡 안 할 정도로, 프로페셔널하고 담력 있는 집사를 고용할 수준의 영지는 아니니까.’
네퀴테 령은 바스툴 왕국의 변두리에 있는, 크지도 작지도 않고 그럭저럭한 규모의 백작령 중 하나이다.
우리가 이곳에 오게 된 표면적인 이유는 새로운 신전을 세울 만한 장소를 찾기 위해서다.
그래서 ‘일정 이상의 인구수를 갖추고, 이미 설립된 신전이 없을 것’. 이 조건을 만족하는 영지 중, 콘피니에 령에서 가장 가까운 영지인 네퀴테 령에 오게 되었다.
그리고 똑같은 핑계를 대면서 땅을 보러 다니는 척, 여러 영주를 만나고 돌아다닐 예정이다.
‘모처럼 교단이 마련해 준 설정이니, 유용하게 써먹어 줘야지.’
바스툴 왕성으로 곧장 쳐들어가는 대신, 영주들을 만나고 돌아다니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악숭이와 관련된 가문을 걸러내기 위해서.
그리고 진흙 속에 파묻힌 진주까지는 아니어도 되니까, 적당히 쓸모있는 사람을 찾아내기 위해서.
‘베일이 왕위에 오르기로 결심했을 때, 그를 지지해 줄 사람이 필요해.’
만약에 베일이 왕위를 포기하게 되더라도, 영주들의 성정을 미리 파악해 두는 편이 좋다.
그래야 최악의 사태가 벌어져 왕국이 분열하게 됐을 때, 룩스메아 교단이 특정 영주를 밀어줄 수 있을 테니까.
기왕이면 모든 영주들을 다 확인할 수 있으면 좋을 테지만.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하고, 이런 부패한 나라에서 잘 먹고 잘 산다는 건 똑같이 부패한 놈일 가능성이 크니까 적당히 생략하기로 했다.
물론 큰 영지에는 이미 신전이 세워져 있을 테니, 찾아갈 구실이 없다는 이유도 한몫했다.
‘우선 중간쯤 되는 영지들부터 쭉 돌아보고, 정 인물이 없으면 그보다 작은 영지까지 확인해 봐야 하나?’
양쪽으로 열리는 커다란 목제 문 앞에서 집사가 멈춰 섰다.
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 영주가 기다리고 있다는 장소에 도착한 것이다.
‘식사실 문이겠지?’
우리는 콘피니에 령에서 출발하기 전에, 방문 목적을 밝히며 찾아가겠다는 반 통보식 편지를 보냈다.
그리고 네퀴테 령에 도착하여 다시 한 번 연락을 넣었더니, 곧바로 점심을 함께하자는 답장이 돌아왔다.
번거롭게 두 번에 걸쳐 연락을 넣은 건, 이번이 처음 방문하는 영지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신전을 세울 장소를 알아보러 다닌다는 소문이 날 테니, 다음번부터는 한 번만 보내도 될 거다.
“그럼 즐거운 식사 되십시오.”
집사가 활짝 열린 문 옆에 비켜서며 허리를 굽혔다. 우리는 그를 지나쳐 식사실 안으로 들어섰다.
열 명 정도 앉을 수 있는 기다란 식탁 위로, 열댓 명은 배부르게 먹고도 남을 것 같은 음식이 가득 차려져 있었다.
무척이나 사치스러운 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