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435)
공작님, 회개해주세요!-436화(436/1105)
436회
66. 공작님과 바스툴 왕국 (6)
“이미 알고 있던 건데, 부끄러울 것까지야.”
“···제가 무엇 때문에 고민하는지, 알고 계셨습니까?”
대수롭지 않아 하는 나를 향해 베일이 질문했다.
장난치지 말라는 소리를 듣고 난 직후라서 그런가, 그 모습이 어째 ‘그렇게 잘 아는 사람이 왜 장난질이냐?’라고 비꼬는 것처럼 들렸다.
하지만 그건 내 착각에 불과하다는 듯. 혹은 내 바람에 불과하다는 듯.
베일의 얼굴에서 노여움은 찾아볼 수 없고, 수치스러움만 가득했다.
“영주 중에 정신머리가 제대로 박힌 놈이 한 명도 없어서 그러시는 거잖아요?”
네퀴테 백작과 대화를 나눴을 당시, 마차의 창문은 활짝 열려있었다.
말을 몰아 창가에 바짝 붙었던 베일이 그 대화를 듣지 못했을 리가 없다.
그런데도 베일은 ‘저런 놈은 귀족도 아니다.’라거나, ‘영주로서 자격도 없는 놈.’ 같은 소리를 하며 길길이 날뛰기는커녕.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여기까지야 뭐. 그럴 수도 있다고 쳐.’
그러나 그 이후.
내가 뇌물을 받아 챙겨도 베일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계획이 있어서 그런 거려니 넘어갔다 치더라도, 불만 한 번 내비치지 않은 건 많이 이상했다.
정의로움과 청렴함에 얽매이다시피 연연하는 베일이 아니던가.
내가 신의 사자라는 이유만으로, 뇌물 수수를 못 본 체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신의 사자가 주교의 이름을 달고 그런 짓을 하면 안 되는 거 아니냐며.
꼭 저들과 같은 방식을 취해야 했는지, 정말로 다른 방법은 없었는지 따졌어야 자연스럽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차마 내 행동에 이의를 제기할 염치가 없었던 거겠지.’
그 정도로 영주들의, 바스툴 왕국의 추한 민낯에 할 말을 잃어버린 게 아닐까 한다.
그리고 지금도 베일은 수치스럽다는 듯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푹 숙였다.
“두 분께서 생각하시기에, 현 바스툴 왕국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한참을 지나고 나서야 베일이 목소리를 쥐어짜냈다.
바스툴 왕국에 도착한 후 보아온 것들이 죄다 착취로 쌓아 올린 사치였기에, 좋은 말은 떠오르지도 않았다.
더군다나 세르펜스는 불의에 굴하지 않는 청렴결백한 성격으로 널리 알려졌다.
실상은 내게 잘 보이려고 리벨론 령에 선물을 잔뜩 보낸 전적도 있는 녀석이지만. 대외적인 직위 차 때문에 하사품으로 보였을 뿐, 그것은 명백한 뇌물이었다.
아무튼 베일은 그런 대외펜스의 생각도 함께 물었다.
이는 곧 욕해 달라는 뜻,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무슨 소리가 나올지 뻔히 알면서, 뭘 물어보고 그래요? 욕을 듣고 싶으신 거라면 방을 잘못 찾으셨습니다. 옆 방에 욕을 아주 찰지게 하는 분이 계시니까, 그분에게 가서 부탁해 보세요.”
내 말에 베일이 기가 죽어서, 고개를 숙인 자세로 허리까지 구부정하게 말아서 몸을 웅크렸다.
괜히 면박을 준 것 같아서 기분이 안 좋다.
“저하께서 느끼시는 바가 있으니까, 이렇게 찾아오신 거잖아요. 굳이 남의 의견을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까? 욕이라도 들으면 정신이 바짝 들기라도 할 것 같아요?”
설마 하는 마음에 찔러 본 건데,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던 모양이다.
베일이 고개를 숙이는 것만으로 부족했는지, 양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려버렸다. 우는 것 같진 않고, 정곡을 찔려서 수치스러워하는 모습이다.
그 모습에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이 다 나왔다.
“저하께서는 타인의 비난이 무서워서 그릇된 것을 피하시는 게 아니잖아요. 남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옳고 그름을 판단할 줄 아는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왕실의 사람들과 귀족들에게 무시당하면서까지, 올바른 것을 추구했던 거잖습니까? 그런데 왜 그렇게 본인의 판단에 자신이 없어요?”
“제가 정말로 그런 사람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왜 모르지?!”
정말 모르겠다.
세르펜스 말고 이렇게까지 자기 객관화가 안 되어 있는 사람은 없을 줄 알았는데.
“저는 계속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새로 검을 맞춘다는 핑계로 바스툴 왕국을 떠나, 테라룸 왕국으로 향했던 겁니다. 제가 먹는 음식, 입고 있는 옷. 그 모든 게 국민의 혈세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돈을 여비로 쓰고, 값비싼 무기를 사고···. 결국 저도 제가 그토록 혐오하던 자들과 크게 다를 바 없었던 겁니다.”
갑자기 베일이 고해성사라도 하듯, 자기 자신을 규탄하기 시작했다.
내가 주교복을 입고 있어도 진짜 성직자가 된 건 아닌데. 왜 나한테 와서 이러는 건지 몹시 당황스럽다.
“저는 언제든 도망치고, 불의와 타협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욕을 안 해줄 거면 듣기라도 하라는 듯, 베일이 스스로를 깎아내렸다.
그것도 자신이 싫어하다 못해 혐오하는 부류로.
베일이 이렇게 나올 줄 알았다면, 그냥 바스툴 왕국의 제도와 귀족들을 실컷 욕해줬을 텐데.
나는 정신적으로 자신을 학대하는 베일의 정수리를 내려다보며, 뒷골이 당겨옴을 느꼈다.
여기서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위로하는 건 쉽다.
하지만 그래서야, 베일에게 ‘타인의 판단’을 들려주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세르펜스와는 다르게, 베일은 뚜렷한 주관과 기준점을 가지고 있어.’
베일에겐 자신의 의지를 펼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해보지 않았기에 확신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자기 자신을 죽이고, 온갖 모순으로 얼룩진 타인의 의지에 따라 조종당하듯 움직였던 과거의 세르펜스와는 다르다.
비유하자면 세르펜스는 ‘나’라는 보행기를 타고 걸음마부터 연습 중이고, 베일은 보조 바퀴 달린 자전거를 타고 있는 거다.
이제는 보조 바퀴 없이도 달릴 수 있는데,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해서 그것을 떼어놓지 못하고 있다.
‘보조 바퀴 때문에 남들보다 뒤처진다는 걸 알아도, 넘어지지 않을 거라는 안정감을 주니까.’
그게 자신에게 해가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꾸만 의지하려 든다.
하지만 보조 바퀴가 도움 되는 건, 자전거를 아예 탈 줄 모르는 어린아이에게나 그러하다.
어느 정도 속도를 낼 줄 안다면 거추장스러울 뿐 아니라, 코너를 돌 때 크게 넘어질 수 있다.
안전을 위해 달았던 보조 바퀴가 되려 안전을 위협하는 셈이다.
‘[성검의 주인]에서 베일에게 멘토 역할을 자청했던 그놈처럼.’
베일은 바스툴 왕국을 올바른 길로 이끌며, 다 함께 대륙의 평화를 향해 나아가길 바랐다.
하지만 그놈 때문에 악숭이에게 정보를 퍼주는 꼴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놈이 건넨 독주를 마시고 목숨을 잃었다.
그의 사망 이후.
바스툴 왕국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성검의 주인]에서 자세히 언급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짐작하기란 쉽다.
후계도 남기지 못한 젊은 왕이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그를 제외한 왕족은 그가 즉위하며 모두 죽였다.
나라가 유지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 증거로 베일이 죽고 난 후. 더 이상 [성검의 주인]에서 ‘바스툴 왕국’이 거론되는 일은 없었다.
“경계하고 있다면 괜찮지 않아요?”
나는 베일에게 확신을 주는 대신, 지금처럼 계속 자신을 의심하라는 말을 건넸다.
그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지 알면서. 그래서 베일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그래서야 지금과 달라질 게 없잖습니까.”
“그럼 지금 저하께서 잘하고 계신 건가 보죠.”
일부러 가볍게 던지듯 말하자, 베일이 천천히 얼굴에서 손을 떼며 고개를 들었다.
원망스럽다는 눈초리가 나를 향했다.
아무래도 답정너를 시전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너무 무책임하게 말씀하시는 거 아닙니까?”
“제가 저하를 책임져야 합니까?”
“그건, 아니지만···.”
“저도 질문 하나 합시다. 저하의 생각은 저하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건데. 어째서 자꾸만 남의 입을 통해 확인하려 하십니까? 책임 떠넘기기예요?”
“······.”
베일의 얼굴이 또다시 홧홧하게 달아올랐다.
자기가 얼마나 부끄러운 행동을 하고 있는지 자각한 거다.
책임을 떠넘기려는 생각 같은 건 없었노라 변명조차 못 하고, 기껏 들어 올렸던 고개를 다시 숙였다.
“저하께서는 부끄러움이 뭔지 아시잖아요.”
“지금 놀리시는 겁니까?”
말을 꺼낸 타이밍이 너무 공교로웠나 보다.
붉어진 얼굴과 대조되는 새파란 눈동자가 나를 노려보았다.
“아무래도 저에 대해 잘못 알고 계신 것 같은데. 진지하게 고뇌하는 사람을 놀릴 만큼, 전 장난에 환장한 사람이 아닙니다.”
변명을 해 봤지만, 효과는 별로였다.
아까 타협이 어쩌고 하더니.
신의 사자라는 게 밝혀진 이후, 나를 ‘적폐 보좌관’ 대신 ‘장난꾸러기 신의 사자’라 받아들이기로 타협했다는 소리였나 보다.
“저하께서는 같은 나라에 속해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영주들의 만행에 부끄러워하셨잖습니까?”
“그거야 저는 바스툴 왕국의 왕족이니까···.”
“그래서 다른 왕족들은 그걸 부끄러워했습니까?”
베일은 첫 질문에 망설임 없이 대답한 주제에, 두 번째 질문에서는 주춤거리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데 왜 유독 저하만 부끄러워하시는데요? 다른 사람들이라고 수치심을 못 느끼는 건 아니잖아요.”
세 번째 질문에서는 고개조차 움직이지 않았다.
“저는 ‘부끄러움’만큼 그 사람의 기준점을 알기 쉬운 감정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부끄러워하느냐에 따라, 어떤 사람은 쓸데없는 허세를 부리기도 하고, 치기 어린 싸움을 걸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하께서는 무엇을 부끄러워하고, 그것을 떨쳐내고자 어떻게 행동하셨죠?”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베일은 무엇을 부끄러워했는지는 답변하지 않고, 어떻게 행동했느냐는 물음에만 답을 했다.
심지어 그 답변마저도 제대로 된 답이 아니었다.
“왜 아무것도 안 했다고 생각하시는데요? 목소리를 냈잖습니까. 그래서 목숨을 위협받고 개고생을 해가며 제국까지 와서, 왕실을 고발했잖아요.”
그리고 그 사실을 우리에게 알렸을 때도 마찬가지다.
진정으로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은 따로 있건만. 그는 자신의 잘못도 아닌 일을 말하면서도 부끄러워 얼굴을 붉혔다.
“그 결정, 지금 후회해요? 그때 느낀 수치심을 무시하고, 그냥 닥치고 그 자리에 앉아있을걸. 그렇게 생각하세요?”
“그건 절대 아닙니다.”
이번에는 베일이 한 치의 망설임도, 부끄럼도 없이 대답했다.
오늘 본 베일의 표정 중 가장 떳떳하고 당당했다. 목소리에서 흔들리지 않는 단단함이 느껴졌다.
‘이러면서 불의와 타협은 개뿔.’
죄를 저지른 놈들은 당당하게 구는데, 무고한 누군가가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게.
고개를 숙여야 할 놈들의 목은 뻣뻣하기만 하고, 정작 떳떳해야 할 사람은 고개조차 들지 못한다는 게.
참으로 부조리하다.
‘하지만 베일 같은 사람이 있으니까, 세상이 조금씩이나마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거겠지.’
평범하게 잘못된 것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야말로 도덕심이고, 그것을 외면하지 않는 용기가 곧 정의로움이 아닐까 한다.
그렇기에 눈앞의 부끄럼 많은 왕자님은 혼자서도 올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