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436)
공작님, 회개해주세요!-437화(437/1105)
437회
66. 공작님과 바스툴 왕국 (7)
“자, 그럼 여기서 얘기 끝!”
“끄, 끝이라니···.”
나의 상담 종료 선언에 베일이 눈에 띄게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 얼굴이 마치 자신은 아직 답을 얻지 못했다고 말하는 듯 보였다.
‘이미 마음속으로 답을 다 내려놓고 온 주제에.’
베일은 우리에게 현 바스툴 왕국이 어떻게 보이느냐고 물었다.
그 질문에 답을 하다 보면, 바로잡아야 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마지막 한 발짝을 내디딜 용기가 없어서 누군가 등 떠밀어주길 바라고 왔다는 뜻이다.
한두 번쯤은 조언을 구할 수도 있다지만, 이건 조언 수준을 넘었다.
“쯧, 자기가 나아갈 길쯤은 스스로 선택하세요. 다시 한 번 이런 일로 답답하게 굴면 자립심 없는 아기 취급해 줄 테니까, 그리 알아요.”
내가 노골적으로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하자, 부끄러움을 잘 아는 베일의 얼굴이 다시금 붉어졌다.
‘오늘 하루, 얼굴색이 대체 몇 번이나 바뀐 건지 모르겠네.’
베일은 매우 불만스럽다는 표정을 짓긴 했으나, 내 말에 따지고 들지는 않았다.
줄곧 입을 다문 채, 조용히 앉아 있는 세르펜스에게 의견을 물으려는 시도 또한 하지 않았다.
자신의 앞날을 좌지우지할 선택을 타인에게 떠넘기는 게, 부끄러운 행동이라고 자각한 모양이다.
“오늘 하루는 아무것도 안 하고 푹 쉴 예정이니까, 내일까지 찬찬히 생각해 보시고 결론이 나오면 말씀해 주세요.”
마음이 어느 쪽으로 기울었는지는 확실하게 드러났지만, 그게 결심했다는 뜻은 아니기에.
나는 베일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기로 했다.
‘내일까지’라는 구절에서 베일의 어깨가 흠칫 들썩였다.
더는 결정을 미룰 수 없음을. 이번이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선택의 기회임을 새삼스레 깨달은 거다.
“···알겠습니다.”
베일이 진지한 낯으로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그를 다급히 불러세웠다.
“아, 잠깐만요! 아직 나가라고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물어볼 게 있으니까, 다시 앉아주세요.”
베일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의자에 궁둥이를 다시 붙이며,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괜히 똥개훈련이라도 시킨 것 같아서 멋쩍은 감이 없잖아 있지만, 나에게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다음에 방문할 영지인 세라투 령의 영주에 대해, 뭐 아는 거 없어요?”
“세라투 자작 말입니까?”
베일의 표정에 깃든 의구심이 더욱 짙어졌다.
이제까지 다른 영지에 방문할 때는 그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으니, 이상하게 생각할 만도 했다.
세라투 자작에게 남들과 다른 특별한 점이라도 있는지 떠올리려 애쓰기라도 하듯이.
베일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가 입을 열었다.
“세라투 자작령이 어지간한 백작령 수준의 면적을 갖춘 것 때문입니까?”
그런 이유는 아니었지만, 모르고 있던 정보니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 확인해 보니, 세르펜스가 바스툴 왕국의 지도를 꺼내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 펼쳐진 지도 위에 세르펜스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은 ‘세라투 자작령’이었다.
‘이 정도면 리벨론 령보다 큰 거 아니야?’
지도의 축척을 다시 한 번 확인해도 결과는 변하지 않았다.
리벨론 령이 백작령 중에서는 작은 편에 속한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신성 루멘 제국’의 기준이다.
신성 루멘 제국과 바스툴 왕국은 그 땅덩이 크기부터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으므로, 귀족들에게 배분되는 영지의 넓이 또한 상당한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국의 귀족이 무조건 타국의 귀족보다 부유한 건 아니다.
땅이 넓을수록 부를 쌓기에 유리하긴 하나, 주변 물가라던가 땅의 비옥도나 특산물의 값어치, 영주 개인의 능력 등등. 이것저것 고려해야 할 게 많다.
‘아무튼, 바스툴 왕국의 자작령이 이만한 땅덩이를 가진다는 건 말이 안 되는데?’
나는 지도에서 눈을 떼고, 설명을 요구하는 눈으로 베일을 쳐다봤다.
어째 베일의 표정이 떨떠름해 보였다.
이게 다 갑자기 지도를 꺼내 든 세르펜스 때문이다.
“본래 세라투 령은 지금처럼 넓지 않았습니다. 특별하다 할 만한 생산물도 없어 영지 수입도 변변치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세라투 자작의 상재가 뛰어나, 영주 개인 자산만큼은 웬만한 대영주와 견줄 만했죠.”
자신과 관련된 얘기를 할 때는 한없이 작아졌던 베일이 차분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그러고 보면 베일이 부담을 느끼지 않을 만한 주제로 대화하는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세라투 령이 지금의 면적을 확보한 건 당대에 들어서입니다.”
“자작이 왕에게 엄청나게 잘 보였나 봐요?”
“······.”
내 물음에 베일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가, 고개를 흔들어 떨쳐냈다.
나름대로 근거가 뒷받침된 추측이었는데, 베일에게는 그렇게 들리지 않았나 보다. 정보 격차로 인해 벌어진 참사다.
그때 세르펜스가 손가락으로 내 팔뚝을 톡톡 건드렸다.
“이곳을 봐 주십시오.”
시선으로 녀석의 손가락을 좇아서 도착한 지점은 또다시 지도 위였다.
이번에는 세라투 령이 아니라 그 주변의 영지를 하나씩 짚어 나갔다. 지금 우리가 머물고 있는 에스토 령을 제외하면, 그 땅이 하나같이 좁았다.
“설마 돈 주고 산 겁니까?”
돈이 많다던 설명이 떠올라 혹시나 해서 질문하자, 베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영주 재량으로 땅을 사고팔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은 둘째 쳐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당장은 쓸모없는 땅이라 할지라도, 가만히 놔두면 언젠가는 쓸 일이 온다. 하다못해 나무를 심어놓고 베어서 팔아도 돈이 된다.
심지어 주변 영지의 크기로 봤을 때, 안 쓰는 땅만 판 수준이 아닌 것 같다.
게다가 영지란 ‘돈’으로 치환할 수 있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다.
조상 중 누군가가 공을 세워 받은 명예의 증명이자, 가문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역사 그 자체다.
그러한 땅을 일부라도 돈을 받고 판다는 것만큼 불명예가 어딨겠는가.
“단체로 세라투 자작에게 빚이라도 졌대요?”
“비슷합니다. 처음부터 땅 자체를 넘기려던 건 아니고 담보로 내걸었을 뿐이지만, 결국 돈을 갚지 못했으니···.”
빈정거리는 투로 대충 던진 말이었는데 긍정의 답이 돌아왔다.
본래 영지가 얼마만한 크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은 돈이 오고 간 건 결코 아닐 거다.
“당대의 일이라면···. 그게 몇 년 전 일이죠?”
“20년은 족히 넘었습니다.”
“예?!”
나도 모르게 깜짝 놀라서 반문하고 말았다.
기껏해야 1, 2년 전의 일인 줄 알았는데 꽤 오래전 일이다.
당시 자작이 몇 살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최소 스무 살로 어림잡아도 지금쯤이면 마흔이 훌쩍 넘는다.
[성검의 주인]에서 베일은 재상인 ‘세라투 후작’을 ‘형’처럼 생각한다며, 휴마누스에게 슬쩍 귀띔하던 장면이 있다.그리고 베일과 세라투 후작을 묶어서, ‘바스툴 왕국의 젊은 왕과 젊은 재상’으로 표현한 문장도 있었다.
“왜 그렇게 놀라십니까?”
“아뇨, 놀라다니요? 제가요? 착각하셨습니다. 그건 그렇고, 지금 자작은 몇 살이래요?”
“···올해로 쉰다섯입니다.”
신성 루멘 제국의 현 재상인 아르젠토 공작이 70대였으니, 그에 비하면 젊은 게 맞긴 맞다.
하지만 이제 막 스무 살을 넘겼을 뿐인 베일과 한데 묶어 젊다고 표현하기엔 어폐가 있다. 형이라기보단 아비뻘이기도 하고.
“자식은 몇 명 있고, 나이는 어떻게 된대요?”
“왜 자꾸 이런 걸 물으시는 건진 모르겠지만···. 아들 두 명은 각각 스물일곱과 스물여섯이고, 막내딸은 열여덟 살입니다.”
“아, 애매하네!”
“······.”
베일이 나를 몹시 수상하다는 눈으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수상하다는 눈초리를 받은 건 하루 이틀 있었던 일이 아니다. 나는 가볍게 베일의 시선을 무시하며, 질문 폭탄을 던졌다.
“그건 그렇고 후계자는 누구래요? 역시 첫째려나?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 뒤집힐 수도 있으니, 확정하긴 좀 그런데···. 피동적으로 누군가의 말에 따라 움직이면서도, 능동적으로 다른 누군가를 좌지우지할 만한 성격은 어느 쪽이죠? 연기 실력은 누가 더 뛰어나요?”
“···대체 질문의 목적이 뭡니까?”
베일은 내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미심쩍어하며 똑같이 질문으로 되받아쳤다.
목적을 알리지 않으면 말해 주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자작도 아닌 자작의 아들까지 베일이 파악하고 있을 거란 보장은 없다.
“아, 됐어요. 어차피 직접 가서 보면, 대충 감이 잡히겠죠.”
열심히 질문을 던지다 말고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태도를 보이자, 베일이 인상을 있는 대로 구겼다.
그러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갑자기 표정을 굳히고 침통한 낯을 했다.
“그런 표정 지어도 말 안 해줄 겁니다.”
“예?”
“기운 없는 척하면 제가 대답해 줄 거라 기대하고, 일부러 시무룩한 표정을 지은 거 아닙니까?”
“아닙니다.”
베일이 황당하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정말 아닌가 보다.
가만 생각해 보니, 시무룩한 표정으로 원하는 걸 쟁취하는 건 세르펜스의 수법이었다.
내가 세르펜스를 대하는 것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착각했나 보다.
“이제 됐으니까, 돌아가서 일 보세요.”
“···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아니죠, 이따 저녁 식사 때 봐야죠.”
내가 베일의 말을 정정해주자, 그는 나를 밥에 미친놈을 보는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비리비리했던 자신을 잘 먹여서 건강하게 만들어 준 사람에게 매우 실례되는 눈빛이다.
“그럼 이따 저녁에 뵙겠습니다.”
베일이 마지못하다는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그리고 세르펜스에게 가볍게 눈인사를 한 뒤, 방 밖으로 나갔다.
탕 하고 문 닫히는 소리가 나자마자, 세르펜스가 방음 스크롤을 꺼내어 찢었다.
“정말로 그자를 아기 취급해 줄 생각인가?”
요즘 들어 부쩍 부끄러움을 상실한 녀석이 질투심을 드러냈다.
다 큰 성인을 아기 취급한다는 게, 무슨 특별 대우라도 되는 듯한 투다.
“그 얘기를 한 게 언젠데···! 계속 머릿속에 담아두고, 벼르고 계셨던 겁니까?”
“내 질문에 대답부터 해라.”
진지하기 짝이 없는 세르펜스의 표정에 나는 황당을 금치 못했다.
그러고 보면 세르펜스는 ‘벌레 새끼’라는 단어를 이상한 뜻으로 해석했던 전적이 있었다.
아무래도 아도르는 아직 아기라서 단어의 활용 폭이 극단적으로 좁은가 보다.
“세르펜스···. 다 큰 성인을 아기 취급 한다는 건 말이죠, 보통 조롱의 의미로 쓰입니다. 집에 가서 엄마 젖이나 더 먹고 와라, 뭐 그런 느낌이죠.”
설명이 끝나기 무섭게 세르펜스의 시선이 내 가슴팍으로 향했다.
적절한 예시라고 생각하여 말한 건데, 세르펜스의 귀에는 그렇게 들리지 않았나 보다.
나는 슬그머니 양팔을 들어 올려 X자로 교차해 가슴 앞에 모았다. 그러자 세르펜스가 혐오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쨌든 저도 베일을 아기 취급 할 생각이 없지만, 베일은 더더욱 아기 취급을 받고 싶어 하지 않을 거라는 말이었습니다!”
“그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르잖는가.”
“억지 부리지 마세요.”
“당당하게 유아 퇴행적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도 있는데, 어째서 그럴 리가 없다고 단언할 수 있는 거지?”
응애펜스가 아기 아니마. 줄여서 아기마를 운운하며 말하자, 매우 그럴듯하게 들렸다.
하마터면 설득당할 뻔했다.
“알았어요, 알았어! 설령 베일이 입에 공갈꼭지를 물고 나타나는 한이 있어도, 절대 아기 취급 하지 않을 테니까 안심하세요.”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믿어주도록 하지.”
세르펜스가 도도하게 턱을 치켜들며 말했다.
분명 ‘응애’를 시켰을 때까지만 해도 수치심이 남아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시키지 않아도 응애, 으앙, 앙앙 다 할 것 같다.
도대체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건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