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439)
공작님, 회개해주세요!-440화(440/1105)
440회
66. 공작님과 바스툴 왕국 (10)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려면 세라투 자작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는 게 제일 효과적이다.
세라투 자작이 무엇을 얼마나 준비해 뒀을지는 몰라도, 베일이 왕위에 오르는 데 큰 도움이 될 게 분명하다.
‘새로 나라를 세우는 것보다, 정당성 있는 후계자를 내세워 체계를 유지하는 편이 훨씬 안정적이니까. 권력과 명예만 보장한다면 얼마든지 설득할 수 있어.’
베일이 왕이 될만한 자질이 충분해 보인다면 자작이 먼저 접근할 가능성도 있다.
도움을 줄 테니 그에 마땅한 자리를 내어 달라고 말이다.
세라투 가문을 배제하면 다른 쪽에 붙거나 반역을 저지를 테고, 함께하면 힘이 된다.
저울질할 것도 없이 손을 잡는 게 유리하다.
하지만 [성검의 주인] 속 베일의 최후를 생각하면, 굉장히 꺼려진다.
“마왕도 기억이 있으니, [성검의 주인] 시기에 정체가 드러났던 자에겐 조심해서 접근할 것 같긴 한데···. 어쨌거나 악숭이의 유혹에 넘어가기 쉬운 인물이라는 뜻이잖아요? 살짝 꼬아서 ‘세라투 후작’ 말고, 현 세라투 자작이나 다른 가족에게 접근했을 수도 있고···.”
고민을 이어나가고 있으려니, 세르펜스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슬그머니 손을 들어 올렸다.
방 안에 있는 사람은 나와 녀석뿐인데도 말이다.
이유 없이 저러는 건 아닐 테고, 그만치 말하기 조심스러운 얘기를 하려는 걸 테다.
나는 말해도 괜찮다는 뜻으로 그와 시선을 맞춘 채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실질적으로 ‘그 시기’에 세라투 후작을 조종한 사람은 ‘나’였잖은가. 그러니 내가 이번에도 그자를 잘···, 설득하면 되지 않을까 한다.”
세르펜스의 입에서 나온 ‘잘’이라는 고작 한 글자에 불과한 단어가 굉장히 묵직하게 들렸다.
저 말을 풀어서 설명하자면, [성검의 주인] 속 ‘세라투 후작으로 추측되는 놈’을 꼬드겨서 그의 아버지인 현 세라투 자작을 밀어내게 한 뒤.
세라투 가문이 그동안 모아왔던 재력을 알뜰하게 뽑아 먹자는 뜻이다.
베일을 왕위에 올려 바스툴 왕국을 안정시키려고, 그의 책임감과 죄의식을 부추겨 막다른 길로 유도하던 세르펜스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니, 그거 좀 하지 말라니까요? 애초에 왕이 되는 건 베일인데, 세르펜스를 따르게 해서 뭘 어쩌려고요?”
“바스툴 왕국을 지속적으로 감시하여···.”
“기각!!”
더 들어볼 것도 없다.
말이 좋아 ‘바스툴 왕국의 지속적인 감시’지, 그냥 베일을 감시하겠다는 뜻이다.
더군다나 베일이 세라투 가문의 전폭적인 지지 하에 왕이 된다면, 공신 가문으로 인정받아 바스툴 왕국의 수뇌급 인사가 될 거다.
그런 사람이 타국의 귀족인 세르펜스의 명을 따르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바스툴 왕국의 정책에 세르펜스가 관여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그냥 [성검의 주인] 속 타락펜스가 한 행동의 완화 버전이잖아?!’
나는 절대 안 된다는 뜻을 담아 눈을 부라리며 녀석을 노려봤다.
“그렇다면 왕자가 왕위에 올라 기반을 다질 때까지만 이용한 후, 적당한 구실을 만들어 폐출하는 건 어떤가?”
이번에는 세르펜스가 토사구팽을 입에 담았다.
지속해서 써먹는 게 안 되면, 쓰고 버리면 되는 거 아니냐는 물음이다.
이 또한 당연히 안 된다.
“왕이 되자마자 큰 도움을 준 공신을 내치면, 누가 베일을 따르겠습니까?”
“발뺌할 수 없는 명확한 증거를 마련하면 된다. 이런 부패한 나라에서 깨끗한 방법만 사용해서 돈을 모았을 리가 없다.”
“이 나라 귀족들 태반이 다 그따위인데, 그걸 끄집어내면 다른 귀족들이 베일을 잘도 따라주겠습니다.”
“그러니 더더욱 본보기가 필요한 것 아닌가?”
녀석의 말인즉, ‘앞으로 비리를 저지르면 이렇게 되니까, 알아서 조심해라.’라는 경고 메시지로 삼자는 뜻이었다.
“반발이 심할 겁니다. 귀족들이 뒤에서 다 같이 악숭이랑 손잡고 반역이라도 일으키면 어쩌려고요?”
“악마 숭배 세력의 꾐에 넘어갈 이들이라면, 왕이 어떤 정치를 펼치든 간에 이득을 좇아 그리했을 거다. 하나, 방탕한 생활을 유지하는 것보다 적당히 부유한 삶을 이어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면. 그리고 왕이 흔들리지 않고 자신들을 지켜줄 거라는 확신만 있다면. 귀족들은 왕을 따르게 될 거다.”
호구 잡히기 딱 좋은 순진한 성격을 연기하면서도, 이용당하기는커녕 정치권을 쥐락펴락하는 능력자가 하는 말이다.
귀족들의 심리라면 나보다 세르펜스가 더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을 테다.
“혼란한 시기의 군주에게 필요한 덕목은 온후함이 아닌 냉혹함이다. 자신들을 지켜줄 철혈의 벽을 원한다.”
세르펜스가 냉정한 얼굴로 담담하게 말했다.
이러다가도 내가 우쭈쭈 해주면 곧장 애기펜스로 돌아오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기분이 굉장히 묘하다.
“뭐, 그래요. 세르펜스의 주장에도 일리는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를 내치고 말고를 세르펜스가 결정한다는 것부터가 내정 간섭이라는 건 알고 하는 소리죠? 제국에 이득을 주거나 바스툴 왕국에 피해를 주는 건 아니지만, 베일의 권한을 침해하는 행위라는 건 바뀌지 않아요.”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베일을 배제하고 나와 세르펜스 둘이서 이런 얘기를 주고받는 것 자체가 문제다.
그냥 일행들에게 세라투 가문에 관해 어떤 방식으로 어디까지 얘기를 풀어나가야 할지, 그 정도만 상담할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반역이 어쩌고 하는 말이 나오더니, 대화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원래라면 이런 얘기는 내일 다 같이 회의할 때 해야 하는 건데···.’
베일 앞에서는 대외펜스 버전으로 내숭 떠느라 이런 얘기를 못 할 테니까, 지금 나한테 주절주절 늘어놓는 걸 테다.
“세라투 가문을 조심하라는 조언 정도는 할 수 있지만, 그 이후의 일은 베일이 결정하게 둬야 합니다.”
“선우는 그자가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네, 베일은 잘할 겁니다.”
이런 상황이 오면 세르펜스가 꼭 하는 게 있다. 나와 시선을 맞추고 느리게 눈을 깜박거리는 거다.
내 말을 이해하려 애쓰는 것임과 동시에 자신의 말이나 행동을 돌이켜 보고, 생각을 정리하기 위함이 아닐까 한다.
“···그래. 선우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이해해 줘서 고마워요.”
내 감사 인사에 세르펜스는 말없이 눈을 새초롬히 떴다.
아무래도 내가 베일을 편들어 줘서 삐졌나 보다.
“그래도 세르펜스가 낸 의견이 무조건 나쁘다거나, 아예 못 써먹겠다거나. 그런 건 아니니까, 내일 회의할 때 적당히 걸러서, 제 의견인 척하고 얘기해 둘게요. 그걸 실행하고 말고는 베일이 결정할 일이지만,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나?”
“다른 누구도 아닌 세르펜스가 떠올린 건데, 당연하죠!”
내 말에 세르펜스가 가볍게 말아 쥔 손을 입 앞으로 가져다 대며, 으흠 하고 작게 헛기침을 했다.
기분이 풀린 티를 내지 않으려고 입술에 힘을 줘서 앙다물고 있었지만, 슬금슬금 올라가려는 입꼬리는 어쩔 도리가 없었나 보다.
녀석의 입꼬리가 기분 좋게 말려 올라갔다.
그런 세르펜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까지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나 인정에 목말랐나 싶어서 안타깝기도 하고···.’
살짝 씁쓸한 감이 없잖아 있지만, 흐뭇함을 지워낼 정도는 아니다.
나와 세르펜스는 누그러진 분위기 속에서 내일 일행들에게 말할 내용을 추려서 정리했다.
도중에 방음 스크롤의 지속 시간이 끝나긴 했으나, 숨겨야 할 얘기는 이미 지나간 후라서 스크롤을 추가로 사용하지 않았다.
“다행히 저녁 시간 전에 얼추 끝났네요.”
“식사를 끝낸 후, 회의실을 사용해도 되는지 물어보고 오면 되는 건가?”
“아뇨, 오늘은 쉰다니까요? 회의는 내일 할 겁니다.”
“그런가? 당신이 그렇게 생각한다면야···.”
세르펜스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며 말했다.
* * *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 동안, 베일의 상태는 지극히 양호해 보였다.
머릿속으로 딴생각하느라 포크질이 느릿했으나, 표정과 풍기는 분위기가 안정적이라 걱정스럽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런 사색에 잠긴 베일을 배려하기 위해, 식사는 침묵 속에서 느긋하게 이루어졌다.
“신관 님, 잠깐 저 좀 볼까요?”
식사를 끝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나는 유지스와 함께 방으로 들어가려는 에드나를 불러세웠다.
“저요? 상관은 없는데···.”
에드나가 검지로 자신을 가리키며 멀뚱멀뚱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왜 자신에게 면담을 청하는지 모르겠다는 낯이다.
그 이유는 대화를 시작하면 자연히 알게 될 거다. 그러니 지금 복도에서 설명할 필요는 없다.
그보다 방에 들어가기에 앞서 해야 할 일이 있다.
“막내 신관님과 이단 심문관님. 두 분 잠시 손 좀 주실래요?”
나는 손바닥이 위로 가게 펼쳐, 양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세르펜스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내 손바닥에 손을 척, 얹었다.
“이건 뭐 하는 건가요?”
유지스는 그렇게 물으면서도 재밌어 보인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 손바닥 위에 자신의 손을 올렸다.
나는 그렇게 받아낸 두 사람의 손을 한데 모았다.
눈치 빠른 유지스가 내가 뭘 하려는지 알아채고, 세르펜스의 손을 덥석 잡았다.
“저는 이 방에서 신관님과 대화를 할 테니까, 그동안 막내 신관님은 이단 심문관 누나하고 옆방에서 놀고 있어요.”
“제가 같이 들으면 안 되는 얘깁니까?”
예상했던 대로, 세르펜스가 자기도 끼워달라고 말했다. 내가 아무 말도 안 했으면, 여지없이 방에 따라 들어왔을 거다.
어차피 대화의 주제가 세르펜스였으니, 그가 들으면 안 될 이유는 없다.
그런데도 녀석을 떼어놓는 이유는 간단하다.
‘옆에 있으면 신경 쓰이고, 대화 도중에 끼어들지 않았으면 하니까.’
유지스에게 세르펜스의 손을 쥐여준 이유도 마찬가지다.
녀석은 나와 에드나의 이목을 속이고 숨어들어올 능력이 충분하다 못해 넘친다.
우리가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가는 순간, 머리 위로 휙 하고 들어와서 침대 밑으로 몸을 숨긴다거나.
혹은 내가 상상조차 못 한 기상천외한 방식을 쓸지도 모른다.
아무튼 유지스도 소중하게 여기는 세르펜스이니만큼, 힘으로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 방에 침입할 일은 없다.
“듣는 건 상관없지만, 따라 들어오는 건 안 됩니다.”
나는 말을 마친 후, 곧장 유지스에게 눈짓했다.
시선을 받은 유지스가 중요한 임무라도 하달받은 양. 맡겨만 달라는 듯 고개를 한 번 짧게 끄덕인 후, 세르펜스의 손을 잡아끌며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 유지스의 뒷모습이 무척이나 믿음직스럽다.
반대로 유지스에게 끌려가며, 에드나를 노려보는 세르펜스의 모습은 아주 조금 추해 보였다.
저렇게나 신성하고 반짝거리는 얼굴로 추하기도 쉽지 않은데, 그걸 세르펜스가 해냈다.
하나도 안 대단하다.
“···대충 어떤 얘기를 할지 감이 오네요.”
그렇게 말하는 에드나의 눈빛이 완전히 죽어있다.
세르펜스와 게이트 마법진을 보러 갔을 때 나눴던 대화가, 나에게 전해졌음을 알아챈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