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440)
공작님, 회개해주세요!-441화(441/1105)
441회
66. 공작님과 바스툴 왕국 (11)
“대충 눈치채셨다니, 단도직입적으로 묻죠. 애한테 대체 뭘 가르치신 겁니까?”
나는 방으로 들어가 의자에 앉자마자 에드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런 엄숙하고 진지한 나의 태도에 에드나가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건 저야말로 묻고 싶은데요? 대체 고용주님께 평소에 뭘 시키고 계신 거죠?”
“자존감 증진을 위한 정서 교육?”
“언제부터 고양이 울음소리를 내는 게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이 되었죠?”
“······.”
에드나의 촌철살인에 나는 잠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이 기분을 뭐라고 해야 할까?
아이가 하는 모든 행동이 귀여워서 어화둥둥 내 새끼야 하다 보니, 주변으로부터 애가 버릇이 없다며 가정 교육 똑바로 하라는 소리를 들은 듯한 느낌이다.
“아니, 뭐···. 그건 그냥 가벼운 재롱 같은 거죠. 그러는 아니마 씨도 에드나 씨 앞에서는 아기처럼 말하잖아요.”
“그 아이는 잘 어울리잖아요. 귀엽기도 하고.”
“세르펜스도 잘 어울립니다. 에드나 씨가 아직 몰라서 그러나 본데, 완전 고양이 그 자체거든요? 유지스, 제 말에 동의하면 벽을 두 번 두드려 주세요!”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벽에서 쿵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어떠냐?’라는 의미를 담아 으스대는 표정으로 에드나를 쳐다봤다. 이런 내 표정을 보고, 에드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그런데 고용주님은 굳이 따지자면 고양이 상이 아니라 강아지 상 아닌가요? 눈꼬리가 축 처져서···.”
“아니죠. 굳이 따지자면 천사 상이죠. 유지스, 동의하면 노크 세 번 부탁합니다!”
또다시 옆방에서 쿵쿵쿵 벽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역시 내 편이 가까이에 있다는 건 참 든든한 일이다.
“이럴 거면 그냥 다 같이 대화하지, 왜 옆방으로 보낸 거예요?”
“세르펜스가 자꾸 시선을 강탈해서 원활한 대화 진행에 방해를 줄까 봐서요.”
“무슨 소린지는 모르겠고, 시온 씨가 매우 심각한 팔불출이라는 것만 알겠네요.”
“저는 어디까지나 객관적인 사실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아, 네에···.”
에드나가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그런 그녀의 표정 가득 불신감이 묻어났다.
참으로 억울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공적인 대화를 할 땐 세르펜스가 낄 데 안 낄 데를 구분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내 관심을 끌기 위해 별별 짓을 다 한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시선을 끌어당기는 얼굴인데, 옆에서 꼼지락거리기까지 하면 엄청나게 신경이 쓰인다.
‘게다가 교묘한 말로 상황을 이상하게 꼬아버릴지도 모르니까.’
제국에서 베일과 셋이서 대화했을 때. 아차 하는 사이에 나는 세르펜스의 권위를 이용하려는 적폐 보좌관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휴마누스 또한 세르펜스의 세 치 혀에 놀아나서, 동료들 앞에서 이상한 사람 취급을 몇 번이나 당했다.
눈 뜨고도 코 베이는 게 바로 이런 건가 싶을 정도로, 반박 한 번 못 해보고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공격이다.
즉, 세르펜스를 유지스에게 맡기고 온 건 에드나의 정신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아무튼 얘기 좀 해 보세요. 대체 세르펜스에게 무슨 말을 했길래, 애가 포도를 한 알 한 알 닦아주고 있는 겁니까?”
“그거 원래 하시던 거 아니었어요?”
내 물음에 에드나가 깜짝 놀라 하며 되물었다.
되묻는 내용 또한 이상하다.
“네? 세상 어느 공작이 보좌관의 포도를 그렇게 정성 들여 닦습니까?”
“하지만 시온 씨는 신의 사자잖아요. 독실한 신도와 신의 사자 관계라면 그럴 만도 하지 않아요?”
에드나가 아무렇지도 않게 세르펜스를 광신도로 몰아갔다.
룩스메아가 들으면 아주 좋아할 소리지만, 애석하게도 세르펜스가 나를 따르는 건 룩스메아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진 모르겠지만, 에드나 씨가 포도를 닦으라고 가르친 게 아니라는 건 잘 알겠습니다.”
“이럴 땐 뭐라고 답해야 하죠? 알아주셔서 고맙다고 해야 하나요?”
“아뇨, ‘고용주님께서 평소에 시온 씨의 포도를 닦아주지 않았다는 건 잘 알겠어요.’라고 말씀하실 타이밍입니다.”
“······.”
에드나가 입을 꾹 다물었다. 마치 자신은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다는 듯이 말이다.
포도는 닦아주지 않았어도, 다른 과일은 닦아주지 않았느냐고 묻고 싶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평소 먹을 걸 챙겨주는 쪽은 세르펜스가 아닌 나인데도 말이다.
포도를 제외하고 세르펜스가 정성을 들여서 내게 먹을 것을 챙겨준 건, 자는 동안 입에 욱여넣은 빵과 초콜릿을 듬뿍 묻힌 초콜릿 마카롱.
이렇게 두 번이 전부다.
“세르펜스가 저를 존경하고 각별하게 따르긴 하지만, 그런 식으로 시중을 든 적은 없습니다. 앉을 때도 항상 제 옆에 앉긴 해도, 과도하게 찰싹 달라붙는 일도 없었고요.”
“그러시구나. 시중도 들지 않고, 과하게 달라붙진 않아도 무릎을 꿇고 야옹은 하는 거죠?”
“평상시에 이유 없이 녀석을 무릎 꿇리고, 야옹 하게 시키는 건 아닙니다. 그냥 세르펜스가 잠깐 엇나가서 벌을 줄 때만 그렇게 하는 건데···.”
“아···, 시온 씨는 고용주님을 무릎 꿇리고 벌을 내리시는구나···. 그리고 고양이 흉내를 시키시는구나···.”
이상하다.
에드나의 말에 틀린 점은 하나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된 것 같다.
해명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데, 해명할 말이 없다.
내가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자, 나를 바라보는 에드나의 눈이 빛을 잃어갔다.
‘이 세상에서는 무릎 꿇고 손들기가 이렇게나 과중한 체벌이었던 건가?’
세르펜스의 무릎이 나날이 가벼워지는 문제도 있으니, 앞으로는 시키지 말아야겠다.
“어, 음···. 그럼 에드나 씨는 아니마 씨가 말썽을 부렸을 때, 어떻게 혼내십니까?”
“그 아이는 말썽 같은 거 안 부려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어떻게 아이가 말썽을 한 번도 안 부릴 수가 있습니까? 모르고 하는 실수든 뭐든, 누구나 살다 보면 한 번쯤 엇나가기 마련입니다. 아이가 단 한 번도 말썽을 부린 적이 없다면, 그건 보호자가 문제를 인식하지 못했거나, 아이가 ‘착한 아이가 되어야 한다.’는 중압감에 갇혀 산다는 뜻입니다.”
“그, 그게···.”
에드나가 말을 더듬으며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찔리는 구석이 있다는 뜻이다.
결국 에드나는 자신의 양심을 외면하지 못하고 실토했다.
“그 아이가 낯을 많이 가리다 보니 작은 트러블이 발생할 때가 종종 있긴 한데···, 그냥 말로 타일러도 잘 알아들어요.”
“그래도 가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싶을 때가 있잖아요? 괜한 고집을 부리며 반성하지 않으려 한다거나, 같은 문제가 반복된다거나···.”
“없어요.”
지나치게 단호한 대답이다.
욕을 다채롭게 구사하는 에드나라면 말로 타인의 정신을 능히 제압할 만도 하나, 애를 상대로 욕설을 퍼붓지는 않았을 거다.
무엇보다 아니마가 낯을 가려서 생겨난 트러블이 한 번으로 그칠 리가 없다.
세르펜스의 낯가림이 타인과 벽을 두는 거라면, 아니마의 낯가림은 가시를 세워 다가오지 못하게 위협하는 거다.
그러니 에드나에게 걸리지 않고 뒤에서 몰래 말썽을 부리고 있음이 틀림없다.
이 사실을 일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에드나가 불현듯 의문스럽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런데 고용주님께서 엇나갈 때가 있어요?”
“어···, 그러니까 그게 말이죠···?”
나도 모르게 눈동자를 굴려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쳐다봤다.
세르펜스는 대단한 말썽꾸러기라 그에 관한 얘기를 하자면 오늘 하루로는 안 끝나는데, 그중에서 말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다.
“세르펜스는···, 낯을 많이 가려서, 간혹가다가···. 네, 그럴 때가 있습니다.”
설마하니 에드나도 이런 이유로 대답을 꺼렸고, 그렇게 망설임 끝에 나온 대답이 낯가림이었던 걸까?
뒤늦게 미안한 마음이 물밀듯 밀어닥쳤다.
앞으로는 돌보는 아이가 저지른 잘못에 관해서 자세히 물어보지 말아야겠다.
“이 문제는 서로 터치하지 않기로 하죠.”
“네, 그러는 게 좋겠어요.”
합의는 매우 빠르게 이루어졌다.
뒷말 또한 나오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그날 세르펜스에게 무슨 얘기를 하신 겁니까?”
“저는 포도의 ‘포’자조차 언급한 적 없어요.”
아무래도 에드나가 많이 억울했는가 보다.
이미 지나간 문제를 다시 가져와서 이렇게 불만을 토로하는 걸 보니 말이다.
“그냥 그 아이가 제 옆에 찰싹 붙어서 재잘재잘 떠들고 있는 걸 보고 있노라면 흐뭇한 기분이 든다거나. 연구가 잘 안 풀려서 스트레스 받을 때 옆에 와서, 손수 포장지를 벗겨낸 커피 맛 사탕을 입에 쏙 넣어 준다거나···.”
역시나 옆에 달라붙은 건 에드나가 한 말 때문이 맞았다.
그리고 포도의 진실도 어렴풋이 알 것만 같다.
사탕처럼 동글동글하게 생긴 포도알의 껍질을 벗겨내면 끈적한 과즙이 손에 묻으니, 그냥 닦아내는 선에서 그친 거였다.
‘입에 직접 넣어주지 않은 거야 뭐···. 자기가 생각해도 그건 좀 아닌 것 같아서, 생략한 거겠지.’
이로써 모든 수수께끼가 풀렸다.
그냥 세르펜스가 과도한 응용력을 발휘한 것뿐이라는 진실을 마주하고 나니, 괜히 민망해졌다.
에드나에게 뭘 가르친 거냐고 따지기 전에, 자세한 정황부터 파악했어야 했는데.
“그리고 몸이 찌뿌둥해서 기지개를 켜면 쪼르르 다가와서 어깨를 조물조물해 준다거나···.”
아직 안 끝났나 보다. 내 궁금증은 풀렸는데도 에드나의 말은 멈추지 않았다.
그녀의 말을 끊고 섣불리 따진 것에 미안하다고 말해야 할까?
하지만 아이 자랑을 끊는 게 더 미안한 행동이 아닐까? 그러니 그녀의 자랑을 들어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과가 아닐까?
나는 고민 끝에 그녀의 말을 조용히 들어주기로 결정을 내렸다.
“어디서 배워온 건지 귀여운 율동에 맞춰 동요를 불러 주기도 하고요, 그냥 와서 귀엽게 방싯방싯 웃기도 하고. 하루는 씻고 나와서 침대에 누우려는데, 아니마가 이불에 들어가 있지 뭐예요? 그래서 뭐 하는 거냐고 물어봤더니···. 후후, 시온 씨도 알다시피 프뤼네 왕국은 좀 춥잖아요? 그래서 제가 따뜻하게 잘 수 있도록, 제 이불에 들어가서 덥혀놓은 거래요. 정말 발상이 귀엽고 기특하지 않나요?”
내가 살던 세상에는 선침온금(扇枕溫衾)이라는 말이 있다.
여름에는 부채질로 잠자리를 식혀 아버지께서 시원하게 주무실 수 있도록 하고.
겨울에는 체온으로 아버지의 이부자리를 미리 덥혀놔서 따뜻하게 주무실 수 있도록 했다는, ‘황향’이라는 효자의 이야기에서 비롯된 사자성어다.
아니마는 그런 효를 행한 것이다.
과연 어릴 적부터 쌓아온 효도 경력에서 오는 짬밥은 무시할 게 못 되었다.
나도 모르게 ‘와!’ 하고 탄성을 흘렸고, 에드나는 더욱 신나서 아니마 자랑을 떠들어댔다.
“최근에는 말이죠, 여행 중에 발견했다면서 마법 실험에 필요한 희귀한 식물을 보내줬지 뭐예요? 실험할 여건이 안 돼서 자신이 쓸 수 없다 해도, 팔아서 여행 자금에 보태 써도 될 텐데···. 아니마가 이렇게 마음이 착해요. 아 참! 그리고 제 생일이 4월인데, 작년이랑 올해 생일 선물을 모두 챙겨줬어요. 그것도 정확히 생일에 맞춰 도착하도록 말이죠. 여기저기 돌아다니느라 바쁠 텐데. 정말 상냥하지 않나요? 저도 생일을 챙겨주고 싶었는데, 그 아이가 한곳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서 그러지 못한 게 천추의 한이네요.”
더는 ‘기분이 안 좋을 때 풀어주는 방법’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정말로 이건 순도 100% 자랑질이다.
‘생일은 세르펜스도 잘 챙겨 주는데···. 그것도 시온 생일과 내 생일, 둘 다….’
이 사실을 자랑할 수 없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