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442)
공작님, 회개해주세요!-443화(443/1105)
443회
66. 공작님과 바스툴 왕국 (13)
“아니, 그게 그런 건 아닌데, 어찌어찌하다 보니 그렇게 되어버려서···.”
“반쯤 농담으로 한 소리니까, 진정하세요.”
내가 횡설수설하며 뭐라고 변명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자니, 에드나가 나를 위한답시고 말했다.
반이 농담이면 나머지 절반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 걸까?
그녀의 연기 실력이 형편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그런가, 차마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는 공연히 유리잔에 담긴 얼음을 입에 물었다.
에드나도 더는 김이 올라오지 않는 커피를 입에 머금었다.
“그나저나···, 그 아이가 저에 대해 그렇게 말하던가요?”
잔을 내려놓으며 질문하는 에드나의 표정이 왠지 모르게 멋쩍어 보였다.
나는 손바닥을 펼쳐 들어서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제스처를 취한 후, 입속의 얼음을 아그작 아그작 씹었다.
“혹시 아니마 씨도 세르펜스처럼, 자신을 찬양에 가까운 극찬을 하고 있을까 봐서 그래요?”
“그렇다기보다는 그 아이가 너무 제게 얽매이지 않았으면 해서요. 아니마는 이미 천재라는 수식어조차 부족한, 매우 뛰어난 실력의 마법사잖아요?”
에드나가 진지한 상담을 하는 척, 은근슬쩍 아니마의 자랑을 끼워 넣었다.
재능 자랑이 주제라면 만능형 천재인 세르펜스가 아니마보다 몇 수 위다.
입이 근질근질해졌지만, 세르펜스의 재능에 대해 말하자면 오늘 밤을 지새우고도 모자랄 것 같아서 참기로 했다.
“하지만 그 아이의 재능은 이 정도가 아니에요. 아직도 훨씬 발전할 여지가 있어요.”
“그건 그렇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에드나의 말에 공감했다.
[성검의 주인]에서 에드나의 사후, 아니마의 마법 실력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된다.복수심이 원동력이 되긴 했지만, 아니마의 재능이 밑받침되지 않았다면 이뤄낼 수 없는 쾌거였다.
나도 걱정 많은 보호자지만, 에드나도 참 어지간하다.
에드나는 자신이 아니마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것 같아서, 아니마가 자신을 따른다는 사실에 순수하게 기뻐하지 못하나 보다.
그 정도를 넘어서 외면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아니마가 자신의 실력에 맞춰, 성장 속도를 제한한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아니마가 마법을 완전히 놓아버리지 않고 지금의 수준에 도달할 수 있었던 건, 에드나가 곁에 있어 줬기 때문이다.
그런데 에드나가 아니마의 성장에 걸림돌이 된다니.
모순적으로 들리지만, 사실이기도 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되게 애매하네.’
나는 괜스레 얼음 하나를 또 입 안에 넣고 굴리며 생각에 잠겼다.
차가운 얼음이 혀를 얼얼하게 하고, 이와 부딪히며 달각달각 하는 소리를 냈다.
에드나가 무엇을 기준으로 우리가 다르다고 말한 건지는 몰라도, 그 말에 틀린 점은 없었다.
나와 에드나의 교육 방침은 완전히 딴판이었고, 제각기 놓인 처지도 달랐으니까.
– 똑똑똑.
사념에 빠진 나를 건져낸 건, 마주 앉은 에드나가 아닌 문밖의 누군가였다.
갑자기 들려온 노크 소리에 나와 에드나는 반사적으로 문 쪽을 쳐다봤다.
“저랍니다!”
문 너머에서 들려온 낭랑한 목소리는 유지스의 것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자, 세르펜스의 손을 잡고 선 유지스의 모습이 보였다.
데리고 옆 방에 들어가 있으라는 뜻이었는데 그대로 계속 잡고 있었나 보다.
“갑자기 무슨 일이에요?”
우리의 대화를 듣다가 할 말이 생겨서 온 건가 싶어, 나는 들어오라는 의미에서 옆으로 비켜서며 질문했다.
그러나 유지스는 고개를 흔들며, 엉뚱한 말을 했다.
“이번에는 프레이 님의 편을 들기로 했답니다.”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세르펜스를 쳐다보자, 녀석이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봤다.
이젠 하다 하다 보호자 포지션의 에드나까지 질투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이내 지워 버렸다.
그런 이유라면 유지스가 세르펜스의 편을 들어줬을 리가 없으니까.
“오늘은 쉬기로 하셨잖습니까?”
세르펜스가 볼멘소리로 말했다.
에드나와 음료를 마시며 대화하고 있을 뿐이었는데, 어째서 내가 일벌레 취급을 당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저는 이만 돌아가 볼게요.”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돌아보니, 어느새 에드나가 테이블 정리를 마친 상태였다.
어차피 대화는 소강상태에 들어섰다. 붙잡아도 할 말도 없고, 붙잡을 이유도 없다.
“아, 네. 안녕히 가세요.”
나는 얼떨떨한 목소리로 에드나를 배웅했다.
그녀가 나가자마자, 세르펜스가 방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그러고는 혼잣말로 작게 중얼거렸다.
“저쪽은 경계하지 않아도 될 줄 알았는데···.”
에드나를 질투하는 것만큼은 아닐 줄 알았는데 그게 맞았다니.
황당함을 금할 길이 없다.
“이젠 하다 하다 그 마법사’들’까지 신경 써 주는 건가?”
어째서인지 세르펜스가 목소리를 잔뜩 낮추며 으르듯 말했다.
표정도 그렇고 말투도 그렇고, 화가 난 게 틀림이 없어서 매우 당혹스럽다.
베일을 신경 써 줄 때도 질투하고 서운해할지언정, 나한테 화를 내진 않았는데.
‘게다가 ‘들’은 또 뭔데?’
아무래도 세르펜스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줄 알았던 ‘저쪽’은 에드나 한 명이 아니라, 에드나와 아니마 세트 구성을 말하는 거였나 보다.
홀아버지의 재혼을 반대하는 아들도 아니고, 얘가 대체 왜 이러나 싶다.
“아니, 일단 진정하세요. 지금 세르펜스 하나 돌보는 것도 간당간당하는데, 여기서 어떻게 식구를 더 늘리겠습니까?”
“그러니까 하는 말이다.”
세르펜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모습이 마치, 자기 하나 키우는 것도 벅차면서 왜 자꾸 여기저기 깔짝거리는 거냐고 한탄하는 것처럼 보였다.
다른 집 애들은 동생이 갖고 싶어서 난리라는데, 우리 집 애는 외동이 좋은가 보다.
그런 생각을 이어나가고 있는데, 세르펜스가 인상을 있는 대로 찡그리며 손가락으로 자신의 미간을 꾹꾹 눌렀다.
“오늘 하루는 아무것도 안 하고 쉬기로 한 거 아니었나?”
녀석이 골치 아프다는 듯 내뱉은 건 문 앞에서 했던 말의 반복이었다.
그냥 유지스를 설득하려던 변명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러고 있는데요?”
“몸만 가만히 있다고 해서 쉬는 건 아니잖은가? 내가 당신에게 배운 ‘휴식’은 이런 게 아니다.”
“어···.”
나는 오늘 신전에 도착한 후 있었던 일들을 천천히 되짚어 보았다.
베일의 상담에 응해주고, 세르펜스를 혼내고 나서 세라투 가문에 관해 얘기하고.
저녁을 먹은 뒤 에드나와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대화의 흐름이 호기심 해결에서 아이 자랑으로 흘러갔다가, 또다시 무거운 방향으로 빠졌다.
이 말인즉.
실질적으로 쉬었다고 표현할 수 있는 시간은 에드나의 아니마 자랑에 맞장구치며, 세르펜스 칭찬을 틈틈이 끼워 넣으며 떠들어 댄 게 전부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적극적으로 끼어드는 건데. 후회가 막심하다.
“세르펜스는 제가 쉰다고 말만 하고 안 쉬니까, 걱정돼서 화가 난 거죠?”
“나는 화나지 않았다.”
“아뇨, 세르펜스는 지금 화난 거 맞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화내지 않는다.”
“에엥? 구라 치시네.”
예전에 나를 ‘선우 경’이라고 부르며 자기 입으로 화났다고 말했던 주제에.
내가 발뺌하지 말라는 눈빛으로 노려보자, 세르펜스가 아쉽다는 듯이 ‘칫!’ 하고 잇소리를 냈다.
“···그래, 당신이 말한 대로 화난 게 맞다.”
세르펜스가 분하다는 표정으로 자신이 내게 화를 내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예전에도 화낸 적 있으면서,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내가 싫어할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우리 애가 갈수록 겁이 많아져서 걱정이다.
“이 와중에도 또···.”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꿰뚫어 보기라도 한 듯, 세르펜스가 못마땅하다는 말을 흘렸다.
흘러가는 생각을 틀어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건만.
억울한 기분이 슬쩍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런데 좀 전에 에드나와 나눈 대화는 어쩔 수 없었어요. 만약에 제가 세르펜스는 저 없이도 괜찮을 거라던가, 얼마든지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세르펜스는 지금보다 더 화낼 거잖아요?”
“그자들은 그동안 좁은 탑에서만 생활하며, 항상 접하던 이들만 접해왔다. 오해가 생겼다면 그 때문이겠지. 이제는 둘 다 탑 밖으로 나와서 여러 사람을 만나기 시작했으니, 시간이 흐르고 나면 알아서 깨닫게 될 거다. 무엇보다 그건 그들 사이의 문제다. 그런 일로 당신이 고민하고 심력을 소모할 이유는 없다.”
녀석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세르펜스를 살피고 분석하며 조언을 하는 게 일상이 되어, 나도 모르게 그게 버릇이 되었나 보다.
‘아니마 혼자 들러붙는 것도 아니고. 에드나도 아니마를 아끼고 있으니까, 사실 문제 될 것도 없는데···.’
그나저나 이런 얘기가 세르펜스의 입에서 나올 줄은 몰랐다.
아니마가 에드나와 함께 있고 싶다며 떼를 썼을 때, 그런 아니마의 모습에 이입했던 주제에.
웬일로 녀석이 이런 문제에 확실하게 선을 긋고 끊어냈다.
이게 성장을 한 건지, 자기 편할 때만 이입을 했다 안 했다 하는 건지.
아직은 분간이 안 된다. 좀 더 지켜봐야겠다.
“대체 이건 언제 쉬는 거지?”
세르펜스가 내 머리에 가볍게 노크하며 말했다.
두드렸다기보단 살짝 건드리는 수준이라 아프진 않았다.
“알았어요! 이제 진짜 쉬겠습니다!”
살다 살다 일벌레 세르펜스에게 휴식을 강요당하는 날이 올 줄이야.
불과 2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일이다.
그렇게 나는 다음 날 오후 2시까지 푹 쉬어야만 했다.
왜 하필 두 시냐고 물었더니, 세르펜스는 식후 소화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대답했다.
언제부터 얘가 이런 걸 신경 썼는진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쭉 신경 써 줬으면 좋겠다.
아무튼 새벽 예배에 참석할 때, 그리고 아침과 점심을 먹었을 때 외에는 줄곧 방에만 있었다.
침대에서 뒹굴 거리다가 지루해져서 슬그머니 일어날라치면, 세르펜스가 무섭게 노려보며 따지고 들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좀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는 걸 즐기는 게 아니었느냐니···.’
내가 녀석에게 한 얘기라서 반박도 할 수 없다.
그나마 여름이라서 이불 밖은 위험하다는 이유로, 나를 이불로 돌돌 싸놓지 않은 게 다행이다.
결국 나는 침대에 대자로 누워 멍을 때리며,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안 하기 위해 애썼다.
그러다가 까무룩 낮잠이 들기도 했다.
감시자가 있다는 것과 오후에 일정이 있다는 것만 제외하면, 오랜만에 휴일을 맞이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일어나도 된다.”
가볍게 흔들어 깨우는 세르펜스의 손길에 나는 부스스 눈을 떴다.
창밖에서 들어오는 따사로운 햇살을 만끽하며, 식후 낮잠을 즐기다 보니 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지루했던 건 잠깐뿐이고 막상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쉽기 그지없다.
요즘 바쁘게 사느라 잠깐 잊어버릴 뻔했는데, 역시 나는 노는 걸 좋아하는 게 확실하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흐트러진 머리와 옷차림을 정돈하고, 세르펜스와 함께 회의실로 향했다.
세르펜스의 말에 따르자면, 다른 일행은 일찌감치 회의실에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다는 모양이다.
어차피 방도 근처인데 다 같이 가지 왜 다들 먼저 갔나 싶었는데, 회의실 문을 열자마자 훅 밀려 들어오는 유자 향에 그 생각이 싹 가셨다.
얼음 동동 띄운 유자 에이드와 유자 마들렌···.
‘그리고 저기 오랑제뜨처럼 보이는 것도 분명 유자겠지.’
아무튼 초콜릿으로 코팅한 유자 당절임까지.
누가 준비했는지는 뻔했다.
그리고 내 옆에서 으스대고 있는 세르펜스의 표정을 봤을 때, 누가 이런 계획을 꺼냈는지도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