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449)
공작님, 회개해주세요!-450화(450/1105)
450회
66. 공작님과 바스툴 왕국 (20)
“아침은 새벽에 미리 먹으면 되고, 저녁은 밤늦게 먹으면 되겠죠. 적당히 챙겨서 방으로 가져다주세요.”
“잠깐만요, 그러면 점심은 거르게 되잖아요?”
내가 어깨를 으쓱이며 별거 아니란 식으로 말하자, 유지스가 불편하다는 음색으로 말했다.
푹 눌러쓴 후드 아래로 슬쩍 드러난 그녀의 입매가 화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는 그저 연기일 뿐.
나도 유지스도, 사전에 준비한 대화를 주고받는 것에 불과했다.
“신전을 어떻게 운영해 나갈지는 주교님 개인의 재량이니 가급적이면 넘어가려 했는데, 이건 너무 심하지 않나요?”
동감하는 바다.
아침은 일찍 먹고, 점심은 거르고, 저녁은 늦게 먹으라니. 이게 정녕 사람이 할 짓인가 싶다.
‘마음 같아서는 교대로라도 먹고 오라고 하고 싶은데···.’
세라투 가문과 악숭 세력이 이미 엮여있을지도 모르니, 최대한 뭉쳐 다니는 게 안전하다.
나는 속으로 눈물을 머금고서 유지스의 말에 반박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다 생각이 있어서 이러는 겁니다. 신전이 자리 잡게 되면, 제가 신경 쓸 일이 한둘이 아닐 텐데. 그 틈을 타, 성기사들이 파벌이라도 만들면 어떡합니까? 그래서 미리미리 대비하자는 마음으로 기강을 잡아놓는 것뿐입니다.”
내 입에서 나온 말이지만, 정말 개소리다.
기강을 잡는다는 이유로 사람을 굶기는 건 악숭이나 할 법한 짓이다.
“성기사단은 주교님께서 사적으로 휘두를 수 있는 단체가 아닙니다.”
“하지만 시기가 시기잖습니까. 조직 내에 파벌이 생겨서 좋을 건 없습니다. 명령권은 한 명이 쥐고 있어야 혼란이 적습니다.”
“그건 저도 동의하지만···.”
“큰 성기사님께서도 제 뜻을 존중하기에, 지금 이렇게 굽히고 계시는 겁니다. 이단 심문관님께서 참견하실 바가 아닙니다.”
말을 끝마치고 나자 등 뒤에서 작은 금속음이 났다.
구태여 뒤돌아 눈으로 확인할 필요 없이, 나는 그 소리의 근원을 알고 있다.
‘이 모든 게 연출된 상황이니까.’
방금 들린 금속음은 윈스톤이 건틀렛을 낀 채로, 주먹을 꽉 쥐는 바람에 생겨난 소리다.
그리고 지금쯤 베일이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투구를 쓴 윈스톤의 얼굴 쪽을 쳐다보고 있을 거다.
우리가 이렇게까지 하는 건 악숭 세력 때문이다.
악숭이들은 이간질을 밥 먹듯이 하는 종자들이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성직자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고 싶어 한다.
세라투 가문의 사람 중 누군가가 악숭이와 손을 잡았다면, 우리 사이의 균열을 눈치채고 이간질하려 들 테다.
밤이 되면 호위를 핑계로, 베일과 윈스톤을 교대로 방문 앞에 세워둘 예정이다.
악숭이와 손잡은 누군가가 이간질하러 접근한다면, 아마 그때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거 영주님 앞에서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드린 것 같아서 괜히 민망하네요. 미리 이단 심문관님께 말씀을 드려놨어야 했는데, 그동안 가만히 계시다가 갑자기 왜 이러시는 건지···.”
나는 공연히 원망스럽다는 듯 유지스를 곁눈질로 쳐다봐준 후, 세라투 자작을 향해 무안하다는 듯이 말했다.
잠자코 우리의 대화를 지켜보던 세라투 자작은 속을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괜찮습니다. 그럼 성기사 분들의 식사는 주교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준비해 드리면 되는 겁니까?”
“네, 그래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로써 한고비는 넘겼다.
그러고 보면 영주성에 머물자는 말을 꺼낸 사람은 세르펜스인데, 정작 녀석은 아무것도 안 했다.
‘주교 역할이 이렇게나 귀찮은 일투성이였다니. 이럴 줄 알았으면 출발하기 전에 세르펜스와 역할을 바꿔 달라고 할걸.’
그랬다면 꼰대 주교 에인젤이 아니라, 솔선수범하는 주교 프레이가 탄생했겠지.
나는 속으로 툴툴거리며 남은 스테이크를 마저 먹어 치웠다.
* * *
식사를 마친 후.
세라투 자작은 우리에게 집사를 붙여서 성의 안내와 더불어, 별관까지 모시라고 일렀다.
말이 좋아 안내지, 집사가 알려준 곳을 제외한 장소는 멋대로 드나들지 말라는 뜻이었다.
‘별관이 아니라 본성에 머무를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지만 아쉬운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내일은 가족들을 소개해 줄 테니, 같이 오찬을 들자고 세라투 자작이 제의한 것이다.
영주성에 머물기로 결정 나면 함께 사는 가족 소개는 자연히 따라오는 것이거늘.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자연스러울까 고심했던 게 무색해졌다.
‘들어올 때도 느꼈지만, 영주성 자체는 별로 크지 않네.’
아무래도 세라투 가문이 자작 가문이다 보니 처음 성을 지을 때 작게 지었나 보다.
우리가 집사의 성 안내를 받느라 빙 돌아서 별관 앞에 도착하자, 따로 지시를 하달받은 건지 시종과 시녀 여럿이 대기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집사는 그들 중에서도 가장 앞쪽에 서 있는 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성에 머무르시는 동안 이 건물을 사용하시면 됩니다. 자세한 안내는 이쪽에 있는 시종장이 도와드릴 겁니다.”
그 말과 동시에 시종장이 우릴 향해 정중하게 허리를 숙여 보였다.
말하는 뉘앙스로 보아 건물 하나를 통째로 내주려는 모양이다.
‘아까 세라투 자작이 조찬은 건너뛰고, 오찬 얘기를 꺼내길래 설마설마했건만.’
공작저에서 세르펜스가 베일에게 별관 하나를 통째로 내주며 비슷한 짓을 했기에,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이건 식사는 따로 준비해 줄 테니, 매번 식사 자리에 껴서 귀찮게 굴 생각은 하지 말라는 의미다.
그리고 자기가 부를 때 말고는 본성에 출입을 삼가며, 용건이 있어 찾아오고 싶다면 미리 허락을 받으라는 뜻이기도 했다.
“필요한 게 있으시거나 외출하시기 전에도, 시종장에게 말씀해 주시면 바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성에 머무르는 동안 편하게 지내겠네요.”
나는 웃으면서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입에 담았다.
시종장을 별관에 붙여놓고 우리를 전담하게 한다는 건데, 이게 배려일지 감시일지는 두고 볼 것도 없이 뻔했으니까.
“그럼 저는 아직 할 일이 남아서,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집사는 우리에게 예를 표한 뒤 본성으로 향했다.
그렇게 집사를 보내고 시종장의 뒤를 따라 별관 안으로 들어섰다.
시종장은 방을 안내해 준다면서, 우리를 곧장 2층으로 이끌었다.
그는 계단을 오르며 자신이나 다른 사용인들이 항시 1층에서 대기하고 있을 테니, 밤늦게라도 필요하면 부담 없이 부르라고 말했다.
밤늦게 부르는 것보다, 아래층에서 항시 대기하고 있는 게 더 부담스러울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가 보다.
“주교님께서는 이쪽의 가장 넓은 방을 사용하시면 됩니다.”
시종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세르펜스가 방문을 열어 내부를 살폈다.
그리고 침대가 하나밖에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불만스럽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저는 항상 주교님 곁을 보필하며 수발을 들어왔습니다.”
“···네?”
세르펜스의 말에 시종장이 어쩌란 건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조금만 생각해 봐도 침대를 하나 더 가져오라는 말이었음을 쉽게 알아챌 수 있을 텐데.
애석하게도 시종장은 세르펜스어를 해석하는 재능이 전혀 없었다.
“아! 그거라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직접 주교님의 시중을 전담할 예정입니다.”
시종장은 시종들을 통솔하기에도 바쁘다.
그런데도 시종장이 직접 시중을 든다면, 다음 두 가지 이유 중 하나다.
내가 아주 귀한 신분이라서 아주 극진히 대접해야 하거나, 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려는 목적이거나.
식사 중 세라투 자작이 보인 태도를 생각해 봤을 때, 이건 무조건 후자다.
시종장이든 다른 누가 됐든. 온종일 감시당하고 싶은 게 아니고서야, 시중은 거절하는 게 좋다.
“에인젤 주교님의 수발을 드는 건 언제나 저였습니다. 그건 제 역할이고, 그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습니다.”
내가 나서서 거절할 것 없이, 세르펜스가 시종장을 매섭게 노려보며 말했다.
언제나 내 안전 문제로 전전긍긍하는 녀석이니만큼, 시종장이 예비 암살자로 보이는가 보다.
시중을 들어준답시고 등 뒤에서 칼침이라도 놓을까 봐 경계하는 모습이다.
“그, 그래도 모처럼 시중을 들어줄 사람이 따로 있는데···. 신관님께서 편히 쉬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시종장이 당황을 금치 못하며 더듬더듬 말했다.
기세에 눌려 몸을 움츠리긴 했지만, 혀가 굴러가긴 하는 거로 보아 세르펜스가 눈빛에 살기를 싣지 않은 듯하다.
“주교님께 저 말고 다른 사람의 시중은 필요 없습니다.”
세르펜스가 도도한 표정으로 단호하게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단호하게 말해 보자면, 세르펜스의 시중도 필요 없다.
나는 혼자서도 잘 먹고 잘 씻고, 옷도 잘 갈아입는다. 누가 도와준다고 하면 괜히 부담스럽고 불편하기만 할 뿐이다.
“아무리 그래도 전문적으로 시중드는 일을 하는 저만큼, 주교님을 편히 모실 수 있을까요.”
시종장도 지지 않고 말했다.
시중을 거절한다면 그냥 물러나면 그만일 텐데도 저렇게 기를 쓰는 거로 봐서, 세라투 자작이 따로 지령을 내린 것이 확실하다.
“제가 더 잘합니다.”
논리적으로 반박할 말이 없었는지, 세르펜스가 억지를 쓰기 시작했다.
내가 알기로 세르펜스는 시중을 들어본 적은커녕, 누군가의 시중을 받아본 적도 거의 없다.
있어도 정신뿐만이 아니라 몸까지 아기였을 때, 기저귀를 갈아주며 목욕시켜준 게 전부겠지.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나이가 되자마자, 알아서 하라며 내버려 뒀을 게 분명하다.
성검의 주인이 되어 대륙을 돌아다니려면 그 정도는 혼자 할 줄 알아야 하니까.
“그럴 리가 없습니다. 제가 시종 생활을 한 지가 어언 20년이 넘었습니다.”
시종장이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세르펜스의 말을 착실하게 받아쳤다.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면 잘라버리겠다는 말이라도 들은 건가?
정말 그런 것이라면 안타까운 일이나, 그런 이유로 감시자를 곁에 두고 싶지는 않다.
“에인젤 주교님···.”
나이와 경력에서 밀린 세르펜스가 자존심이 구겨진 엘리트 같은 얼굴로 나를 불렀다.
녀석은 울고 싶지만 자존심 때문에 꾹 참는다는 듯한 표정을 연기하며, ‘안 돕고 뭐 하냐?’라는 눈빛을 마구 쏘아댔다.
‘아, 그냥 둘 다 꺼지라고 하고 싶다!’
세르펜스가 시종장과 실랑이하는 게, 단순히 나와 같은 방을 쓰기 위함이었다면 참지 못하고 속마음을 고스란히 말했을 거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긴급 작전 회의를 해야 할지도 모르니, 녀석의 손을 들어 줄 수밖에 없다.
나는 세르펜스의 얼굴을 마주하다가 한숨을 푹 내쉰 뒤 입을 열었다.
“호의는 감사하지만, 시중은 됐습니다. 그냥 얘가 잘 침대나 추가로 가져다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대답하는 시종장의 눈빛에 체념이 담겼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내 요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는 척하니 팔짱을 끼며 윈스톤과 베일을 돌아보았다.
“주교인 제가 2인실을 쓰는데, 성기사님들께서 편안하게 1인실을 쓰진 않으시겠죠? 감히?”
어차피 베일과 윈스톤은 교대로 내 방문 앞을 지키게 할 예정이라서, 방을 같이 쓰고 말고 할 것도 없다.
진짜 목적은 신체 능력이 떨어지는 마법사 에드나를 혼자 두지 않기 위함이다.
“다, 다들 방을, 같이···, 쓰신다면. 저도 마테리아 님과, 같은 방을 쓸래요.”
에드나가 오늘도 발연기를 펼치며 자신에게 주어진 유일한 대사를 읊었다.
그냥 평범하게 할 수 있는 말인데도, 연기라고 생각한 탓에 많이 긴장했는지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자기가 생각해도 발성이 엉망이라는 걸 아는지, 에드나가 쥐구멍이라도 찾듯이 유지스의 등 뒤로 숨었다.
그 모습이 마치 소심한 데다가 겁까지 많아서, 낯선 장소에서 혼자 자기 무서워하는 사람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