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450)
공작님, 회개해주세요!-451화(451/1105)
451회
66. 공작님과 바스툴 왕국 (21)
“그럼 나머지 분들은 저쪽에 있는 방과 이쪽에 있는 방을 쓰시면 됩니다.”
시종장이 방 두 개를 가리키며 말했다.
문을 열어 확인해 보니 2인실이었다. 내 방으로 지정해 준 곳보다 내부가 좁았지만, 2인용 객실도 있긴 있었나 보다.
그 덕분에 옮겨야 하는 건 세르펜스가 쓸 침대 하나뿐이었다.
시종장은 침대를 옮기는 동안 소음이 생길 수 있다며, 정원 산책을 추천했다.
직전까지 성 안내를 받느라 한참 걸어 다녔던 터라 별로 내키진 않았지만, 정원에서 우연한 만남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우리는 짐가방을 챙겨 든 채로 별관 밖으로 나왔다.
시종장이 짐을 맡아 두겠다고 했으나 이미 신뢰도는 바닥을 찍은 후다.
네퀴테 령에서 써먹었던 변명을 고대로 늘어놓자, 시종장은 편하신대로 하라며 순순히 포기했다.
한차례 세르펜스와 말싸움을 벌인 탓에, 이번에도 물고 늘어지면 수상해 보일 거라고 판단한 듯하다.
“그런데 시종장님께서도 따라오시는 겁니까?”
“네. 여러분께서 이곳에서 머무르시는 동안 불편함 없도록, 곁에서 극진히 모시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시종장이 친절하게 웃으며 대답했으나, 신빙성은 0에 수렴했다.
우리가 가방을 두고 나왔으면 그것을 뒤지느라 따라 나오지 않았을 거라는 데에, 이 시종장의 시중 경력 20년을 걸 수 있다.
“정원은 이쪽입니다.”
우리가 집사를 따라다니며 성내 지리를 숙지했다는 걸 뻔히 알면서, 시종장이 앞서 나가며 길안내를 자처했다.>
앞으로 우리가 어딜 가든 쫓아다니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시종장은 정원을 안내하면서 친근한 척 말을 붙여왔다.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이며, 간은 센 것과 약한 것 중 어떤 게 좋고, 스테이크 굽기는 어느 정도를 선호하는지.
처음에는 이런 식으로 직업 정신이 느껴지는 사소한 질문을 던졌으나, 갈수록 개인적인 질문으로 번져갔다.
‘아직까진 민감하다고 할 만한 질문은 없긴 한데···.’
오늘은 첫날이라서 깊게 파고들지 않는다는 느낌이 강하다.
기껏 해봐야 세르펜스가 내 수발을 들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는지 물어본 게, 가장 개인적인 질문이었다.
그리고 그마저도 세르펜스가 끼어들어, 그쪽이 알 바 아니라고 일축해버렸다.
결국 시종장은 산책을 하는 동안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했다.
그리고 소득이 없었던 건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정원을 돌아다니는 내내 아무와도 마주치지 않았다.
어차피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나온 거라서, 크게 아쉽지는 않았다.
* * *
나는 방에 들어오자마자 침대에 몸을 던졌다.
그러자 세르펜스가 조르르 다가와서 내 종아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시원하긴 했지만, 기특함보다 어처구니없음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시종장이랑 시중 배틀을 뜨더니, 자기가 내 시종이라도 된 줄 아는 건가? 아니면 혼자서 아니마랑 효도 경쟁이라도 하는 건가?’
안마도 받는 사람이 원할 때 해 줘야지 고맙게 느껴지지, 아무 때나 와서 주물럭거리면 귀찮게 느껴질 뿐이다.
나는 다리를 파닥거려 녀석의 손을 떼어냈다.
“뭐해요?”
“다리 근육을 풀어드리고 있습니다. ”
“그걸 누가 몰라서 물어요? 제가 전에도 말했을 텐데요? 남이랑 경쟁하지 말고, 그냥 하던 대로 하라고.”
“아, 죄송합니다. 그럼 평소처럼 바로 씻고 주무실 수 있도록 준비해드리겠습니다.”
세르펜스가 성격 더러운 귀족을 모시는 시종 같은 대사를 남기고는 침대에서 멀어졌다.
씻고 잘 준비를 한다는 소리를 했으니, 욕실로 향한 게 아닐까 한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극인가 싶어 멍하니 엎드려 있다가, 물소리를 듣고 겨우 정신을 차렸다.
‘감시당하고 있구나!’
시종장을 떨어뜨려 놓았다고 안심할 게 아니었다.
문 닫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으니, 욕실 문은 활짝 열려있을 거다. 하지만 세르펜스가 나를 방에 두고 욕실로 들어갔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이는 곧 감시자가 방 안에는 없다는 뜻이다.
‘세르펜스가 내 다리를 주무른 거로 봐서는 소리만 훔쳐 듣는 게 아니라, 시야도 확보했다는 건데···.’
나는 몸을 돌리는 척하며 창문 쪽을 슬쩍 확인한 후, 천장을 보고 대자로 누웠다.
자세를 고치면서 잠깐 본 거라서 잠금장치까진 자세히 살펴볼 수 없었으나, 창문은 닫혀 있었다.
그래도 커튼은 쳐져 있지 않았다.
‘밖에서 안쪽을 몰래 보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볼 수 있겠지.’
세라투 자작이 감시 목적으로 붙였을 게 뻔한 데다가, 세르펜스가 같이 있으니 위험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만 이 여름에. 에어컨도 선풍기도 없는 세상에서 창문을 닫고 자야 한다는 사실이 날 괴롭게 할 뿐이다.
‘온도 조절 마법 같은 거로 방 안 온도를 유지하면 될 것 같은데, 왜 안 하지? 마법사 인건비 때문인가? 아니면 마법사들만 그 편리함을 누리고 있는 건가? 치사하게?’
마탑에서 보았던 엘리베이터를 떠올려 봤을 때,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나중에 에드나에게 한 번 물어봐야겠다.
내가 속으로 마법사의 치졸함을 욕하는 동안, 세르펜스는 방으로 돌아와 계속 부시럭거렸다.
물소리가 계속 들려오는 거로 보아 욕조에 물을 받는 막간을 활용하여, 다른 일을 찾아 하는 듯했다.
나는 상체를 일으켜 녀석이 뭘 하는지 확인했다.
세르펜스는 내 가방에서 잠옷을 꺼내고, 흐트러진 물건들을 다시 정리하고 있었다.
가방 안에는 교단으로부터 받은 옷가지와 간단한 간식류. 그리고 일곱 빛깔 깃털 펜 세트와 앞서 방문한 영지에서 받았던 뇌물 등.
‘에인젤 주교’가 가지고 있어야 할 물건들이 전부 들어 있다.
그렇기에 가방을 훔쳐 간다면 조금 곤란할 수도 있지만, 훔쳐보는 것 자체는 아무런 문제 없다.
그런데도 정원을 산책할 때 가방을 들고 나간 이유는 단순하다.
‘네퀴테 령에서 만들었던 설정을 유지해야 하니까.’
자고로 설정에는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는 게 유지스의 지론이다.
그리고 가방을 너무 쉽게 내어주면, 중요한 물건을 따로 챙겨 들고 다닌다는 사실을 간파당할지 모른다는 이유도 있었다.
“목욕 준비를 마쳤습니다.”
세르펜스가 욕실에 들어갔다가 나오더니, 곱게 접힌 내 잠옷을 양손으로 받쳐 들고 말했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욕실로 향했고 세르펜스도 따라 들어와서 문을 닫았다.
‘옷만 두고 나가는 거 아니었어?’
내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세르펜스를 쳐다보자, 녀석은 조심스럽게 들고 있던 내 잠옷을 아무렇게나 수건걸이에 걸어 놓았다.
그러더니 자신의 아공간 주머니에서 펜 두 자루와 종이를 꺼냈다.
필담을 하자는 뜻이다.
내가 펜 한 자루와 종이를 받아서 [ 감시? ]라고 쓰자, 세르펜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옷소매를 걷어붙였다.
[ 팔뚝 근육 자랑? ]내가 추가로 적은 글씨를 보며 세르펜스가 인상을 팍 찡그렸다. 누가 보아도 ‘장난하나?’라고 묻는 표정이다.
그의 추측대로 장난으로 쓴 게 맞았기에, 나는 방금 쓴 글 밑에 동그라미를 크게 그렸다.
세르펜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욕조에 받아진 물에 왼팔을 푹 담갔다. 그리고 물에 담근 팔을 살살 흔들어서 첨벙거리는 소리를 냈다.
“온도는 적당하십니까?”
물 온도는 나보다 물에 팔을 담근 자기가 더 잘 알 텐데.
머릿속에 떠오른 그 생각을 고스란히 적어서 녀석에게 보여주고 싶었으나, 장난치지 말라고 혼날 것 같아서 그만두기로 했다.
대신 검지 끝을 물에 살짝 담갔다가 뺐다.
“아, 이거 애매하네. 여기서 조금만 더 뜨끈했으면 딱 좋았을 텐데. 물 온도 점수는 10점 만점에 7점입니다.”
“여름이라서 더우실까 봐, 일부러 평소보다 찬물 비율을 늘렸습니다.”
내 말에 세르펜스가 눈을 흘기며 대답했다.
물 온도가 미묘한 것보다 더욱 용납할 수 없는 대답이다.
자고로 목욕물에 몸을 담근다는 행위는 후끈하게 익혀지는 감각을 즐기며, 뜨거운 물에 피로가 살살 녹아내리는 듯한 기분을 느끼기 위함이거늘.
“여름이라고 찬물을 더했다니. 이러다가 겨울에는 절 끓는 물에 집어넣겠습니다?”
“아, 아닙니다.”
“지금 제게 말대답을 하시는 겁니까?”
“아닙···.”
세르펜스가 입을 꾹 다문 채로 나를 빤히 쳐다봤다. 이제 장난은 진짜 그만해야겠다.
나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욕조에 등을 기댄 채로 글씨를 썼다.
[ 아도르도 앉아. 건식 욕실이라 이런 건 편하네. ]내가 적은 글을 본 세르펜스가 한 손으로 신관복을 정리한 후,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 물에 담근 팔을 휘적거리며, 다른 손으로 글을 적었다.
[ 남의 세례명을 글로 남기지 마라. 그리고 왜 갑자기 반말이지? ]저번에 휴마누스와 그의 약혼녀, 그리고 리에나의 세례명을 적을 땐 잠자코 있더니.
남의 세례명은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자기 세례명은 귀한가 보다.
[ 필담에 존댓말을 쓴다는 건 잉크와 종이 면적, 그리고 시간을 낭비하는 행위니까. ] [ 설마 세례명을 쓴 것도 같은 이유인가? 고작 한 글자를 줄이려고? ] [ 글자 상으로는 하나지만, 획수로 따지면 차이가 꽤 많이 나. ]세르펜스는 내가 적은 글씨를 쳐다본 후, 고개를 들어 나를 노려보았다.
욕조에 팔을 떡하니 걸친 채로, 참방참방 물을 휘젓는 모습이 ‘계속 이렇게 허튼소리를 하면 이 물을 너에게 뿌려버리겠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위협적이라기보다는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 큰 어른이 건식 욕실에서 물장난을 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빨리 화제를 돌려야겠다는 생각으로 본론을 꺼내 들었다.
[ 그래서 감시자는? ] [ 아직은 밖에 있다. ]반말은 그냥 넘어가기로 했는가 보다.
하기야 저번에 반말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라고 말했었으니까.
한 입 가지고 두말하려는 건 아니고, 정말로 갑자기 내가 반말을 쓰는 이유가 궁금했던 모양이다.
[ 밖이라면 욕실 밖? 아니면 방 밖? ] [ · ]세르펜스가 무언가 적으려고 펜을 종이에 가져다 댔다가, 생각이 바뀌었는지 내가 쓴 [ 방 밖 ]이라는 글자에 동그라미를 쳤다.
잉크와 종이 면적. 그리고 시간을 아끼는 현명한 방법이다.
[ 아도르가 보기에 세라투 자작은 어때? ] [ 확신하기에는 이르지만, 악마 숭배 세력과는 아직 접촉하지 않은 듯하다. ] [ 왜? ] [ · ]또다시 세르펜스가 무언가를 쓰려다 말았다.
이번에는 종이에 펜을 갖다 댄 상태로 멈춘 탓에 펜에서 나온 잉크가 번져서 커다란 점을 그려냈다.
나는 손을 물에 담갔다가 뺀 뒤, 손가락을 튕겨 세르펜스에게 물방울을 튀겼다.
정신이 들었는지 세르펜스가 황급히 펜을 든 손을 거둬들였다.
내가 뭐하냐는 표정으로 녀석을 쳐다보자, 세르펜스가 머뭇거리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왼손으로 애꿎은 물을 찰박거렸다.
[ 당신의 이름은 어떻게 쓰지? ]글을 쓰려다 멈춘 게, 내 이름을 쓰려다가 쓸 줄 몰라서 그런 거였나 보다.
이곳의 문자 체계로 소리 나는 대로 적는다면 ‘서언우’ 혹은 ‘서누’가 최선이니까.
‘대충 그렇게 써도 알아볼 텐데.’
내 이름을 정확하게 발음하려던 것과 같은 맥락이 아닐까 한다.
나는 킥킥 웃으며 종이에 [ <유선우> ]라고 적었다.
고작 이름 석 자에 불과한데, 막상 적어놓고 나니 기분이 이상하다.
그곳의 글자를 잊지 않았다는 안도감과 반가움이 뒤섞여 기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 <유선우> ]세르펜스가 내가 적은 글씨 아래에 똑같이 따라 적었다.
얼마나 똑같이 적었냐면, 모르는 사람이 보면 같은 사람이 적었다고 착각할 정도였다.
[ 필체까지 베낄 필요는 없지 않아? ] [ <유선우 유선우 유선우 유선우 유선우···> ]명필인 세르펜스가 내 악필을 똑같이 따라 쓴다는 게 민망해서, 생각 없이 쓴 글이었건만.
그게 세르펜스 안의 무언가를 자극했는지, 녀석이 내 이름 석 자로 미친 듯이 글씨 연습을 시작했다.
‘그걸 꼭 지금 해야 하나?’
밖에 감시자가 있으니 적당히 시간을 때우다 나가야 하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글씨 연습을 하려거든 쓰던 글이라도 마저 써놓고 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악숭 세력이 접근한 것 같지 않다는 근거가 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