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461)
공작님, 회개해주세요!-462화(462/1105)
462회
66. 공작님과 바스툴 왕국 (32)
“에인젤 주교님!”
이제 어디를 돌아볼까 고민하며 정처 없이 걸음을 옮기는데 누군가가 나를 불러 세웠다.
뒤를 돌아보니, 시종장이 다가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치신 후, 작은 도련님의 방으로 향하셨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휴우-! 하마터면 엇갈릴 뻔했습니다.”
가까이 다가온 시종장이 흐르지도 않는 이마의 땀을 닦아내는 척하며 말했다.
시종장이면 할 일도 많을 텐데, 가서 일이나 할 것이지.
“영주성에 숨어든 침입자를 찾으러 다니신다지요?”
“아, 예···.”
“제가 앞장서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언제부터 안내와 감시가 같은 뜻을 가진 단어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성을 안내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편하긴 하겠지만, 그 사람이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남에게 일러바칠 게 분명하니.
득보다 실이 더 많다.
‘떼어놓을 방법을 생각해 봐야겠네.’
오늘은 어쩔 수 없으니, 데리고 다녀야겠다.
나는 침입자가 몰래 숨어들어 생활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시종장에게 사용하지 않는 방들을 안내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가는 도중에 이따금 멈춰 서서, 적당히 복도를 살피는 체했다.
클로반의 방을 꼼꼼하게 뒤졌던 건, 악숭 세력이 세라투 가문의 삼 남매 중 누군가에게 접근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른 곳은 설렁설렁 돌아다니며 시간만 때워도 충분하다.
특히 왕래가 많은 복도와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빈방은 더더욱 그러했다.
‘꼼꼼하게 살펴볼 기분이 아니기도 하고···.’
현재 클로반이 어떤 상태인지 파악하고 났더니, 기분이 여간 뒤숭숭한 게 아니다.
유지스와 윈스톤, 베일은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확인할 수 없었지만, 세르펜스와 에드나는 은근히 언짢은 기색을 드러냈다.
세르펜스는 내가 다른 아이에게 마음을 쓰는 게 불안한 눈치고, 에드나는 잘못된 육아 현장을 맞닥뜨린 탓에 충격을 받은 것 같다.
에드나는 그럴 만도 했지만, 세르펜스는 그래선 안 된다. 녀석은 괜한 걱정을 사서 하고 있었다.
세르펜스 말고 다른 아이를 신경 쓸 여유도, 그럴 생각도 없다고 누누이 말을 했는데.
‘베일이 왕이 되어 우리와 헤어지고 나면, 세르펜스의 불안증도 좀 사그라들려나?’
현재로선 그렇게 기대할 수밖에 없다.
나는 내 가방과 자신의 가방을 각각 한 손에 든 채, 신성력을 뿌리고 다니는 세르펜스를 보며 속으로 쯧쯧 혀를 찼다.
* * *
프라시더스 영지의 영주성과 황궁을 보고 난 뒤라서, 세라투 영주성을 너무 만만하게 봤나 보다.
아무리 작아도 성은 성이라는 사실을 간과했다.
본성 안의 비어있는 방들만 찾아 돌아다녔는데도 시간이 훌쩍 흘렀다.
“이제 슬슬 저녁때가 되어가니, 별관으로 돌아갑시다.”
“좋은 생각이에요!”
내 의견에 에드나가 반색하며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클로반의 방을 한바탕 뒤엎은 시간을 포함하면, 우리가 성안을 들쑤시고 다닌 지 5시간에 육박했다.
아무리 수색을 설렁설렁 진행했더라도, 체력이 약한 마법사인 에드나가 지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더군다나 수색해도 나오는 게 없으니, 지겹기도 했을 테고.
‘그러고 보니 세르펜스는 괜찮나?’
별관으로 향하던 중. 문득 떠오른 걱정에 나는 세르펜스의 안색을 살폈다.
세르펜스는 다른 일행처럼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며 주변을 살피는 대신, 가만히 서서 신성력을 넓게 퍼트렸다.
겉보기에는 가만히 서 있을 뿐이니 편해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신성력 소모는 말할 것도 없고 정신적으로도 피로한 일이다.
“주교님께선 정말로 대단하십니다.”
세르펜스가 잘 걷다 말고, 느닷없이 나를 칭송했다.
그런 녀석의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하긴 했으나, 저 표정은 분명 연기였다.
막내 설정에 따라서 지친 표정을 연기할 뿐. 진짜 지친 건 아니라는 뜻이다.
“새삼스럽게 무슨. 제가 대단한 게 어디 하루 이틀 일입니까?”
“그래도 감사를 드리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오늘 제게 이런 역할을 맡기신 건, 저를 수련시키기 위함이잖습니까.”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냐는 말을 적당히 에둘러 표현하자, 밑도 끝도 없는 답변이 돌아왔다.
에드나는 그런 세르펜스를 바라보며, ‘참 가지가지 한다.’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세르펜스는 에드나가 자신을 어떤 표정으로 바라보든 신경 쓰지 않고, 하던 말을 계속했다.
“일전에 주교님께서 가르쳐주신 방법대로 신성력을 통제하고 회수했더니, 신성력 소모량이 반이나 줄었습니다.”
드디어 세르펜스가 뜬금없는 말을 꺼낸 이유가 나왔다.
내가 자신을 걱정하면서도, 꼰대 주교 설정 때문에 괜찮으냐고 물어보지 못한다는 걸 눈치채고.
자신은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하려던 거였다.
‘세르펜스는 절반이라고 말하긴 했지만, 막내 신관이라는 설정을 생각하면···.’
신성력 제어 분야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녀석이니만큼, 실제로 소모한 신성력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리라.
그래도 정신적으로 피로한 건 어쩔 수 없을 테니, 저녁을 먹고 난 뒤에 따뜻한 우유라도 타 줘야겠다.
“고작 절반 가지고 되겠습니까? 앞으로도 탐지는 막내 신관님에게 맡길 테니까, 신성력 손실이 거의 나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해 보세요.”
“네, 분발하겠습니다.”
대화의 흐름에 따라 되는대로 말을 했더니, 어느새 ‘막내 신관 프레이’가 제일 중요하면서도 힘든 일을 맡게 된 그럴싸한 구실이 생겼다.
내가 괜히 세르펜스에게 괜찮으냐고 묻지 못한 게 아니다.
지금도 시종장은 우리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내 걱정을 해소해 주면서 실리까지 챙기다니. 가볍게 지나가는 대화를 통해, 두 마리의 토끼를 한 번에 잡은 격이다.
“저녁 식사를 마치신 후에는 어디를 돌아보실 예정이십니까?”
나와 세르펜스의 대화가 끊긴 틈을 타, 시종장이 친한 척하며 질문했다.
목소리가 난 쪽을 돌아보니 시종장 대신 세르펜스의 모습이 보였다.
시종장이 내게 가까이 붙으려고 하자, 녀석이 나와 시종장 사이로 쏙 들어온 것이다.
“쉴 건데요?”
“그렇죠, 밤에는 쉬어야죠. 그럼 내일 낮에는···.”
“그런 걸 왜 물으시는 겁니까? 침입자가 숨어있다가 우리 얘기를 듣고 장소를 옮기면 어쩌려고요? 혹시 침입자와 한패세요?”
나는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시종장의 말을 뚝 잘라먹었다.
가운데에 끼어든 키 큰 녀석 때문에 시종장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당황한 표정을 지었으리란 것 정도는 짐작할 수 있다.
“그럴 리가요! 절대 아닙니다!”
“쓸데없는 오해 사기 싫으면, 함부로 물어보지 마세요.”
“···네.”
그 대답을 끝으로 시종장은 입을 닫았다.
우리는 우리대로 감시자 앞에서 사사로운 대화를 나눌 생각 따윈 없다.
그 때문에 대화는 그대로 단절되어, 별관에 도착할 때까지 입을 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았던 침묵을 깬 사람은 유지스였다.
그녀는 별관에 도착하자마자, 시종장에게 질문했다.
“저녁 준비까지 시간이 좀 걸리죠?”
“7시까지 준비해 두라고 했으니, 약 10분가량 남았습니다. 하지만 서두르라고 한다면···.”
“아니요, 괜찮답니다. 그동안 저는 방에 가 있을게요.”
유지스는 시종장의 말을 도중에 끊고, 통보하다시피 말하며 위층으로 올라가 버렸다.
갑작스러운 유지스의 단독 행동에 에드나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그렇게 봐도 나는 해 줄 수 있는 말이 없다.
“저, 저도 같이 가요!”
에드나는 유지스가 사라진 방향과 나를 번갈아 보며 얼타다가, 황급히 유지스를 따라 계단을 올라갔다.
나도 방에 갈까 하다가, 그냥 거실 소파에 앉아서 기다리기로 했다.
고작 10분 편하자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하기엔 너무 귀찮았다.
그리고 정확히 10분 후, 저녁 준비가 다 되었다는 말을 듣고 별관 내부의 식사실로 향했다.
유지스와 에드나도 내려와서 함께 식사했다.
‘점심땐 그나마 일하는 중이라는 느낌이라도 있었는데.’
윈스톤과 베일을 굶겨 놓고 넷이서만 식사를 하려니 죄책감이 장난 아니다.
그 둘이 신경 쓰이기는 에드나도 마찬가지였는지, 자린고비가 굴비 바라보듯 식사 도중에 윈스톤과 베일을 힐끔거렸다.
그들이 걱정스럽긴 해도, 주교의 말을 거스를 수 없는.
소심한 신관에 딱 어울리는 모습이다.
‘유지스는 후드를 뒤집어써서 시선이 가는 방향을 알기 힘들고, 세르펜스는···.’
녀석은 에인젤 주교의 말에 맹목적으로 따르며, 그 외에는 냉정한 신관 프레이의 설정대로 행동했다.
윈스톤과 베일에게 신경을 끄고, 식사에 집중했다는 뜻이다.
‘하긴, 우리가 빨리 먹어야 윈스톤과 베일도 식사를 할 테지.’
나도 부지런히 포크와 나이프를 놀려, 스테이크를 썰어 먹는 데 열중했다.
대화 없이 먹기만 하니 식사를 끝내는 건 금방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괜히 시종장을 노려보았다.
‘우리가 식사 중에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건, 네가 의심스러워서다.’라는 의미를 담아 보았는데, 제대로 전달되었을는지 모르겠다.
시종장은 우리를 감시하는 임무를 받은 데다가, 아까 침입자와 한패냐고 물어봤던 것 때문인지 흠칫하며 시선을 피했다.
나는 그런 시종장에게서 눈을 떼고 식사실을 나섰다.
세르펜스는 나와 속도를 맞춰 걷다가, 2층에 도착하자 걸음을 서둘렀다.
녀석은 그렇게 나보다 한 발 먼저 방문 앞에 도착하여, 양손에 나눠 들고 있던 가방 두 개를 한 손으로 옮겨 들고 방문을 열었다.
‘이 녀석, 공작보다는 시종일에 더 소질이 있는 거 아니야?’
그런 생각이 잠시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공작저에서 세르펜스가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를 뚝딱 해치우던 모습이 떠오른 덕분에, 녀석의 직업 적성에 대한 의심을 지울 수 있었다.
시종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만, 세르펜스만큼 어려운 서류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실없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나는 방으로 들어가 이내 침대로 엎어졌다.
잠시 후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방안이 환해졌다. 뒤이어 촤르륵 소리가 났다. 세르펜스가 마법등을 켠 후 암막 커튼을 친 거다.
나는 마음 놓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직 주무시기엔 이른 시간인데, 바로 씻으시겠습니까? 아니면 조금 있다가 씻으시겠습니까?”
세르펜스가 주머니에서 웬 종이를 꺼내 펼치며 성의 없이 질문했다.
창문을 닫았는데 말뿐이라도 설정을 유지하는 게, 아무래도 이 방의 방음은 형편없는가 보다.
‘내 귀에는 아무 소리도 안 들리지만, 녀석의 귀에는 뭐가 들리니까 저렇게 조심하는 거겠지.’
이곳은 판타지 세상인 만큼, 일반인인 내가 아니라 녀석의 청력을 기준으로 삼는 게 안전하리라.
보는 눈만 없으면 필담을 나눌 수 있으니, 크게 불편한 것도 아니고.
그런 것보다 세르펜스가 읽고 있는 종이가 신경 쓰였다.
“이따가요. 목욕은 자기 전에 해야, 몸이 노곤해져서 잠이 잘 오는 법입니다.”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습니다.”
내가 손을 뻗으며 말하자, 세르펜스가 종이를 건네주었다.
어디선가 많이 본 동글동글한 필체가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