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463)
공작님, 회개해주세요!-464화(464/1105)
464회
66. 공작님과 바스툴 왕국 (34)
그렇게 내가 속으로 반성하는 동안 세르펜스는 우유를 탔다.
내 가방에서 가루우유가 든 통을 꺼내어, 그 내용물을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찻주전자에 붓고 티스푼으로 휘저었다.
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탁자 앞에 앉았다.
세르펜스는 가루우유가 든 통을 제자리에 돌려놓은 후.
다시 탁자로 다가와 내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유지스가 쓴 쪽지를 달라는 뜻이다.
녀석은 내게서 돌려받은 쪽지를 자신의 아공간 주머니 안에 넣고, 필기구들을 꺼냈다.
나는 녀석이 꺼낸 펜을 곧장 집어 들고 필기했다.
[ 윈스톤에게도 쪽지를 보여줬는데, 괜찮지? ]세르펜스가 내가 쓴 글을 읽고 고개를 끄덕이며 찻주전자를 기울였다.
쪼르륵, 맑은소리와 함께 두 개의 잔이 채워졌다. 고소하면서도 달콤한 향이 코끝에 감돌았다.
심란했던 마음을 도닥여 주는 듯한 포근한 향에 이끌려, 나는 찻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윽, 너무 달잖아! 대체 가루우유를 얼마나 많이 탄 거야?’
모든 음식에는 적절한 비율이라는 게 존재한다. 그 비율이 무너졌을 때, 맛의 균형도 함께 무너진다.
세르펜스가 처음으로 탄 이 우유처럼 말이다.
물과 분말의 비율이 무너져, 단맛이 너무 강해진 나머지 은근하게 감돌아야 할 고소한 맛이 완전히 죽어버렸다.
“입맛에 맞지 않으십니까···?”
“막내 신관님이 직접 드셔 보세요.”
내 말에 세르펜스가 찻잔을 들었다.
우유를 한 모금 마신 세르펜스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자기 입에는 딱 맞게 달고 좋은데, 어째서 내 표정이 찡그려졌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말이다.
그러다가 내가 단 것을 좋아하지만, 과도하게 단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떠올렸는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고작 이런 것도 제대로 못 하고···. 물을 다시 끓여오겠습니다.”
“저더러 그때까지 기다리라는 겁니까? 됐으니까, 그냥 앉아요.”
나는 퉁명스럽게 그리 말하며, 재빨리 손을 움직여서 [ 기분이 별로라서, 마침 당분이 당겼는데 잘됐네. 잘 마실게. ]라고 적었다.
반쯤 자리에서 일어섰던 녀석이 내 글을 읽고, 고맙다는 뜻이 담긴 눈인사를 하며 도로 앉았다.
대접을 받는 사람은 난데, 감사 인사를 받으니 어째 몰염치한 사람이 된 것만 같다.
“그럼 저는 성서를 읽으며 마음을 갈고 닦을 테니까, 거슬리게 굴지 말고 조용히 있어요.”
“이번에야말로 주교님의 명을 완벽하게 수행해 보이겠습니다.”
세르펜스의 대답에 나는 기가 차다는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닥치고 구석에 짱박혀 있으라는 거나 다름없는 얘기에 저런 대답을 하다니.
충성심이 뛰어난 윈스톤도 저러지는 못할 거다.
[ 너무 오버하지 마. 대사에 진정성이 안 느껴지잖아. ] [ 연기에 진정성이 느껴지도록 더 노력해보겠다. ]대사를 지적하자, 연기 실력으로 커버하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녀석의 연기 실력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는지라 반박할 말이 사라졌다.
떨떠름한 기분에 휩싸인 채로 가만히 앉아있는데, 세르펜스가 무언가를 적었다.
[ 기분이 많이 안 좋아 보이더군. 이제는 괜찮은가? ] [ 덕분에 기분 전환이 되긴 했어. ] [ 내가 좀 더 빨리 왔어야 했는데, 시종장이 귀찮게 군 탓에. 미안하다. ]내 기분이 상해 있을 때, 옆에 있어 주지 못한 게 미안했는가 보다.
따지고 보면 녀석을 밖으로 내보낸 사람이 나인데도 말이다.
[ 미안할 것까지야. 그보다 귀찮게 굴다니? ] [ 방에 가 있으면 알아서 차를 내오겠다며, 나를 쫓아내려 했다. ]고작 물만 끓여오는 데 너무 오래 걸리는 게 이상하다 했더라니.
또 시종장이랑 시중 배틀을 벌였나 보다.
‘난 또 뭐라고. 우리에 대해서 꼬치꼬치 캐묻기라도 한 줄 알았네.’
괜히 물어봐서 종이만 낭비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며, 나무에게 미안한 마음이 샘솟았다.
나는 앞서 나눈 대화를 없던 셈 치기로 했다.
[ 유지스가 쓴 글, 어떻게 생각해? ] [ 나도 같은 생각이다. <선우>도 알아챘을 거라 생각했는데, 반응을 보니 아니었나 보군. ]세르펜스가 자신이 적은 글을 보여주며 나를 흘겨보았다.
그런 녀석의 표정이 마치, 세라투 가문의 삼 남매를 걱정하느라 세라투 자작의 흉계를 놓친 것 아니냐고 타박하는 듯했다.
나는 세르펜스에게 열없이 웃어 보인 후, 공연히 우유를 들이켰다.
[ 어제 <선우>는 그자가 세라투 자작이 아닌, 그의 자식에게 접근한 이유를 물었지? ]갑자기 세르펜스가 어제 못다 한 이야기를 꺼냈다.
세라투 자작의 행동 때문에 내 기분이 언짢으니, 타락펜스를 씹으며 기분 전환을 하자는 의도는 아닐 테고.
유지스의 쪽지 내용과 연관점이 있으니까 이런 얘기를 꺼낸 걸 테지만, 자세히 듣기 전에 지적해야 할 부분이 있었다.
[ 또 그런다, 또. 자기 자신을 그자 같은 삭막한 삼인칭으로 지칭하는 건 그만두래도? ] [ 그럼 내가 그자를 어떻게 불러야 하지? ]세르펜스의 의견도 나름 타당했다.
그냥 ‘나’라고 부르라고 하기에는 읽는 내가 헷갈릴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계속 ‘그자’라고 부르게 하자니, 세르펜스가 자신을 부정하는 어른으로 자랄까 봐 걱정스럽다.
내가 현재의 세르펜스와 구분할 때 쓰는 ‘타락펜스’라는 호칭이 있긴 한데, 그걸 세르펜스더러 쓰라고 하기는 많이 뭣하다.
[ 나’ ←이렇게 점을 붙이는 건 어때? 나는 세르펜스’라고 쓸게. ] [ 그 점에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 ] [ 내가 살던 곳에서 쓰는 기호인데, 완전히 동일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다른 건 아닌 변형된 것? 대충 그런 느낌적인 느낌을 표현할 때 사용해. 자세한 건 묻지 마, 문과라서 잘 모르니까. ] [ 정말 잘 모르나 보군. ]세르펜스가 내 설명이 개떡 같았다는 말을 곱게 포장해서 내놓았다.
나는 잘 설명했다고 생각했는데, 설명 천재 세르펜스에게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는가 보다.
살짝 심술이 나서 신발 앞코로 세르펜스의 정강이를 툭툭 건드려, 이제 본론을 얘기하라는 뜻을 전했다.
[ 첫째로 세라투 자작은 타인의 머리 위로 올라가고 싶어 하지, 다른 누군가의 발밑에 깔리는 건 원치 않는다. 야망이 있으며, 다른 무엇보다 자신의 목표를 우선시하는 자다. 그렇기에 그자는 도구로 사용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 [ 이거 봐. 세르펜스’를 지칭하는 표현이 생기니까, 아도르가 그자라는 표현을 써도 누구를 지칭하는지 헷갈리지 않고 좋잖아? ]내가 쓴 글을 읽은 세르펜스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소리 없이 웃었다.
그러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펜을 쥔 손을 다시 움직였다.
[ 둘째, 세라투 자작에게는 이 세상을 향한 적의가 없다. ] [ 적의? ] [ 만약 악마 숭배 세력이 이 세상을 지배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 것 같은가? ] [ 생지옥이나 다름없게 되겠지. ] [ 또한 기존의 체계는 무너지고, 마왕과 악마를 주축으로 한 새로운 체계가 세워질 거다. ]세르펜스가 무슨 뜻으로 말을 했는지 감이 잡혔다.
악숭 세력이 이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을 때. 과연 도움을 줬던 이들에게 보답이란 걸 해 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악마가 은혜를 갚을 줄 아는 종족이었다면, 악마를 숭배하는 자들이 지금처럼 대륙의 공적으로 낙인 찍히지 않았을 거다.
악마와 소통을 하며 이 세상으로 불러들일 수 있는 흑마법사들이 권력의 핵심이 될 테고, 나머지는···.
‘노예처럼 부려지거나, 제물로 바쳐지려나?’
절대 제대로 된 삶은 아니다.
세르펜스가 첫 번째 이유로 들었던 것처럼, 세라투 자작은 권력을 욕망했다,
현재의 체계가 무너지고 악숭 세력을 중심으로 새로 쓰인다면, 세라투 자작은 욕망하던 것을 평생 가질 수 없다.
[ 그러니까 세라투 자작은 악마의 힘을 이용하고 싶은 거지, 악숭이들 손을 잡고 이 세상을 무너뜨릴 생각은 없다는 얘기지? ] [ 그렇다. ]악마의 힘을 빌리려는 자들은 항상 존재해 왔다.
그러나 바라던 것을 얻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악숭이들이 날린 공수표에 뼈 빠지게 고생만 하다, 악마의 목소리 한 번 못 들어보고 제물로 바쳐지거나.
계약을 코앞에 두고 룩스메아 교단에 발각당하여 사형대에 오르거나.
악마와 계약을 하는 데 성공하더라도, 사기 계약에 놀아나 고통 속에서 후회하게 될 뿐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악마의 힘을 빌리려 하는 건, 그만큼 간절하거나.
자신은 남들과 다를 거라는 자만심 때문이다.
세라투 자작도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자만하고 있을 뿐이다.
더군다나 상대는 타락펜스다. 세라투 자작이 아무리 노회하다 한들, 역이용하지 못할 수준은 아니리라.
속으로 그런 생각을 이어나가고 있자, 세르펜스가 빠르게 무언가를 적었다.
[ 그리고 셋째. <선우>는 사용 목적이 다른 데다가, 사용법도 번거로운 일회용 도구를 굳이 써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나? ]가위로 요리하려고 노력한다면 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나온 결과물은 처참할 테다.
단호박 같은 건 다듬을 엄두조차 나지 않을 테고, 어찌어찌 손질을 하더라도 가위가 금방 망가져 버리겠지.
아무리 튼튼하고 날이 잘 벼려진 비싼 가위라도 싸구려 식칼만 못하다.
달리 적당한 도구가 없다면 아쉬운 대로 써먹을 수 있지만, 적당한 게 있다면 쓸 이유가 없는 도구.
그게 바로 세라투 자작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세라투 자작에게는 특수한 환경에서 자라온 세 명의 자식이 있었다.
[ 내’가 이용했던 도구는 자작의 둘째 아들일 거다. ]세르펜스의 글을 보고 하마터면 ‘뭐어?!’하고 소리를 내지를 뻔했다.
척 봐도 의기소침해 보이고 인정을 바라며, 다른 이들에게 무시를 당해와서 이 세상에 적의를 가질만한 첫째를 두고.
세라투 자작을 존경하는 둘째를 이용했을 거라니.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자세한 설명을 바라는 내 얼굴을 보았을 텐데도, 세르펜스는 펜을 내려놓고 찻잔을 들었다.
우유를 마시는 녀석의 표정이 어딘가 막막해 보였다.
‘큰 말썽을 부려 부모님을 학교에 모시고 가야 해서,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부모님께 이실직고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고 보면 되려나?’
속이 탈 만도 하다.
나는 녀석의 상황을 이해하고, 그를 재촉하는 대신 우유를 홀짝거리며 가만히 기다려 주었다.
세르펜스는 자신의 잔을 전부 비우고 난 후에야 다시 펜을 잡았다.
[ 세라투 자작의 자식 중, 이 세상을 부숴버리고 싶을 만큼 강렬한 적의를 가진 자는 없다. ] [ 그중에 없다면 클로반도 마찬가지라는 뜻 아니야? ] [ 맞다. 그자도 포함한 거다. ] [ ? ] [ 하지만 그자는 다른 형제들과 다르게 좌절할 수 있다. ]좌절이라는 단어를 보고 났더니, 불안함이 급격히 밀려들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머릿속에서 무언가 잡힐 것도 같다.
그래도 나는 세르펜스에게 멈추라고 하지 않았다.
세르펜스는 내 눈치를 살핀 후, 얕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리고 저지른 적 없는 잘못에 반성문을 쓰는 학생처럼, 고역이라는 얼굴로 글을 마저 적었다.
[ 자신이 존경하며 닮고 싶어 했던 대상이 사실은 자신을 한순간도 진심으로 아낀 적이 없다면.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강탈하려 한다면.자신이 믿어왔던 모든 것이 거짓이었으며, 자신의 지난 생애가 빼앗기기 위해 존재했다는 걸 깨닫고도 절망하지 않을 자가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