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465)
공작님, 회개해주세요!-466화(466/1105)
466회
66. 공작님과 바스툴 왕국 (36)
마침표를 찍은 후. 나는 고개를 들어 세르펜스의 얼굴을 살폈다.
녀석은 붉어진 코를 훌쩍거리며, 미간을 찌푸린 채 세상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자신은 악인이니까, 악행을 저지르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다는 건가? ] [ 그렇지. 게다가 세르펜스’는 한낱 개인일 뿐이잖아. 그런 세르펜스’에게 세상은 너무나도 거대한 적이니까, 그에 맞서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택한 거겠지. 자신의 선택이 그릇되었음을 알아도, 그게 자신에게 걸맞은 방식이라고 생각했을 거야. ] [ <선우>의 말대로였을 가능성이 크다는 건 인정하겠다. ]세르펜스는 내 의견에 긍정을 표했지만, 어째 완전히 수긍한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이라는 단어로 시작하여 이러저러한 반론을 늘어놓을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녀석의 펜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라도 있는 걸까?
녀석의 표정에 괴로움은 가셨지만, 의구심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나는 내가 적어놓은 글들을 다시 한 번 읽어 보았다.
하지만 어떤 문장이 녀석에게 의구심을 떠안겼는지 찾을 수 없었다.
아무래도 직접 물어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펜을 들어 올린 그 순간.
– 쿵!
문 쪽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모르는 척 무시하기에는 그 소리가 너무 컸다.
세르펜스는 황급히 필담을 나눈 종이를 정리하여 아공간 주머니 속에 넣었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나, 문 앞으로 갔다. 그리고 작은 틈이 생길 정도로만 문을 열었다.
“큼, 크흠! 무슨 일 있어요?”
“아, 아, 아, 아니, 아닙니다!”
일부러 목을 가다듬는 척 헛기침을 하며 질문을 던지자, 문틈으로 베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얼마나 당황을 했는지, ‘아’라는 음절이 여러 번 반복되었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방 안의 소리를 훔쳐 들으려다가 방문에 머리를 박은 건 아니시죠?”
“······.”
모든 침묵이 긍정인 건 아니지만, 이 침묵은 긍정의 뜻을 내포한 게 확실했다.
조용하던 방안에서 돌연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으니. 대관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해할 만도 하다.
추측하건대, 베일은 바른 생활을 추구하는 왕자님답게 호기심을 억누르려고 다분히 노력했을 거다.
하지만 끝내 충동을 이겨내지 못하고 문에 귀를 가져다 대기에 이르렀고.
타인의 사생활을 침해한다는 죄의식에 마음 졸이며 긴장하느라, 자신이 투구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잊은 것이리라.
그 결과, 문에 머리를 박게 된 거겠지.
내가 생각해도 정말 완벽한 추리였다.
“들으셨군요, 제가 우는 소리를···.”
나는 손끝으로 기도가 지나가는 목 중앙을 지그시 눌러, 인위적으로 잠긴 목소리를 내어 말했다.
문 틈새로 철커덕거리는 금속음이 들렸다.
그 소리만으로도 베일이 얼마나 당황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성서를 읽다 보니, 저도 모르게 감정이 복받쳐 올라···, 크흠!”
“예?”
유지스라면 눈치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여, ‘아~! 뭔지 알죠. 저도 종종 그럴 때가 있답니다.’라고 맞장구쳐 주었을 텐데.
베일은 불신감을 압축시켜 ‘예?’라는 한 어절 속에 담았다.
“설마 작은 성기사님께서는 성서를 읽다가, 룩스메아 님의 은혜로움에 감격하여 눈물을 흘린 적이 단 한 번도 없으신 겁니까?”
“그, 그게···.”
“나 원 참. 이거 완전 빠져 가지고는···! 쯧쯧, 들어와요! 오늘 제가 작은 성기사님 정신 교육을 제대로 해드려야겠습니다!”
나는 뒤로 물러나 문에서 떨어지며 뒤를 돌아봤다.
세르펜스는 손수건을 양손으로 꼭 쥔 채, 뾰로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베일을 방에 들이는 건 마뜩잖지만, 내가 어째서 그를 들어오라 했는지 이해한 것이다.
문이 열리며 베일이 삐걱삐걱 방 안으로 들어왔다.
아니, 반쯤 들어오다가 멈춰 섰다.
멀쩡한 내 얼굴과 방금까지 운 기색이 역력한 세르펜스의 얼굴을 발견한 걸 테다.
나는 베일을 잡아당겨 방 안으로 완전히 들이고 문을 닫았다.
“작은 성기사님, 성서는 일주일에 몇 번 정도 읽고 계세요?”
“에···, 예?”
얼빠진 베일의 표정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질 정도로 멍하다 못해 맹한 대답이었다.
어차피 대답을 바라고 질문한 건 아니었다. 성기사의 일주일 평균 성서 독파 횟수 따위를 베일이 알 리 없으니까.
“하아···. 이럴 줄 알았습니다. 일주일은커녕 한 달에 한 번조차 안 읽고 계시죠?”
나는 한심하다는 투로 그리 말하며, 베일에게 탁자로 가라고 손짓했다.
다시 필기구를 꺼내어 무언가를 적는 세르펜스의 모습을 보고, 우리가 필담을 나누고 있었다는 걸 눈치챈 걸까?
삐걱거리던 베일이 정신을 차리고 자연스러운 걸음으로 탁자로 향했다.
그런 베일의 뒤를 따라 걸으며, 나는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무예를 갈고 닦는 건 좋다 이겁니다. 하지만 성기사는 기사이기 이전에 성직자란 사실을 잊어서는···. 아니지? 어제 방에 침입자가 들어오는 것도 눈치 못 채셨잖아요? 그게 다 신앙심이 부족한 탓입니다!”
“···죄송합니다.”
베일이 성의 없이 대답하며 세르펜스가 필기한 종이에 관심을 보였다.
나도 종이에 적힌 글을 확인했는데, 예상했던 내용이었는데도 불구하고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 너무 충격적이고도 안타까운 이야기를 전달받은 터라, 그에 관해 시온과 대화를 나누다가 그만···.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 죄송합니다. ]어처구니를 상실한 이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세르펜스는 손수건으로 눈가를 톡톡 찍으며 고상하게 눈물을 닦아내는 척했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가슴이 아릿한 통증을 느끼게 할 정도로 가련한 모습이다.
그런 세르펜스의 연기에 베일이 당황했는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큰 성기사님께 얘기 들었죠?”
“예? 무슨 얘기를 말씀하시는 건지···.”
“한 번만 더 방에 침입자가 들어오면 작은 성기사님을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정신 똑바로 차리라는 말을 전해달라고 했었는데. 정말로 못 들었어요?”
“아! 그거라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세르펜스가 말한 ‘안타까운 이야기’를 윈스톤에게 전해 들었느냐는 질문으로 받아들였던 모양이다.
내가 추가 설명을 덧붙이고 나서야, 베일이 뒤늦게 이해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작은 성기사님은 도대체 정신을 어디에다 두고 다니시는 겁니까? 그러니까 방에 침입자가 들어도 눈치를 못 채죠!”
“죄, 죄송합니다.”
“말로만 죄송하다 사과하면 그만입니까?”
“그럼 제가 어떻게 해야···.”
“행동으로 보여야죠, 행동으로!”
내가 베일을 열심히 갈구는 동안.
세르펜스는 부지런히 펜을 놀려, 세라투 자작이 클로반을 편애한 이유를 요약하여 적었다.
그 때문에 베일은 내 잔소리에 대답하랴, 세르펜스가 적은 글을 읽으랴. 정신이 쏙 빠졌다.
“대답 안 합니까?”
“예···에?”
“예에? 지금 안 하겠다고 대답하신 겁니까?”
“아닙니다, 하겠습니다!”
“뭘요?”
“대답을···.”
“대답 말고 행동은 어쩔 건데요?”
“그, 그것도 잘하겠습니다.”
베일의 어리바리한 대답을 듣고 있자니, 괜히 죄 없는 애를 잡은 듯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불쌍한 것도 불쌍한 거지만, 정보 전달에 방해되니까 이제 그만해야겠다.
“안 되겠습니다. 앞으로 작은 성기사님께서는 시간이 남을 때마다, 제 방에 와서 성서를 읽거나 기도를 올리도록 하세요.”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십니까?”
갑자기 세르펜스가 끼어들며 외쳤다.
시종장과 시중 배틀을 벌이는 신관 프레이의 설정값대로, 혼자서 주교님을 모시는 시간을 침해받은 데에 불만을 터트린 것이다.
그러면서도 베일에게 펜을 내밀어, 할 말이 있으면 적으라는 행동을 취했다.
베일은 건네받은 펜을 잠시 내려놓고, 투구와 오른쪽 건틀렛을 벗으며 눈으로는 세르펜스가 적은 글을 읽어내려갔다.
내가 자꾸 말을 시키는 바람에 제대로 못 읽어서 다시 처음부터 읽는 모양이다.
“들으신 그대로의 말입니다. 작은 성기사님이 하는 꼴을 봐요. 갑옷을 갖춰 입은 덕에 겉모습은 번지르르한데, 내용물은 영 맹탕이잖습니까?”
“그건 저 또한 인정하는 바이나, 주교님께서 그런 수고로운 일을 직접 하실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그래요, 원래는 선배인 큰 성기사님이 하실 일이죠.”
“그런데 어째서···.”
“어째서는 뭐가 어째서입니까? 작은 성기사님이 지금까지도 이 모양 이 꼴인 걸 보면, 답이 딱 나오잖아요. 후배를 가르치는 데 재능이 없는 거겠죠. 그런 사람이 어떻게 기사단장을 맡아서, 부하들을 지휘할는지. 역시 제가 신전의 모든 전권을 쥐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앞으로 진행될 일을 생각하면, 베일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하다.
세라투 삼 남매 중 적당한 사람을 물색하여 베일을 지지하도록 포섭해야 한다.
그런 일에 베일을 쏙 빼놓고, 나와 세르펜스 둘이서 속닥거리며 정할 수는 없다.
세르펜스도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설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물러났다.
“주교님의 그 말씀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새로이 설립될 신전의 모든 이들이 주교님을 따르게 되더라도, 주교님을 가장 따르는 사람은 저라는 걸 잊지 말아 주십시오.”
“당연하죠. 막내 신관님은 제 성을 이어받지만 않았지, 제게 가장 많은 것을 배워온 후배가 아닙니까?”
그렇게 우리가 설정 놀이를 하는 사이, 베일은 양손으로 자신의 귀를 틀어막으며 세르펜스가 쓴 글을 정독해냈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펜을 들어 글을 적는 동안에도 베일의 왼손은 귀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 이 사실을 클로반 공자에게도 알릴 생각입니까? ] [ 그러기에는 물증이 없습니다. ]다중작업 능력이 부족한 베일과는 달리, 세르펜스는 손으로 글을 적으면서도 능숙하게 즉흥 대사를 이어나갔다.
“맞습니다. 주교님의 훌륭하신 가르침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저에게 잘해라, 이 말입니다.”
“네, 앞으로 더욱 극진히 모시겠습니다.”
“좋습니다, 앞으로 기대해 보도록 하죠.”
말로는 흡족하다는 듯 받아쳤지만, 잘하라는 말은 괜히 한 것 같다는 후회가 엄습했다.
이미 신관 프레이는 할 수 있는 만큼 에인젤 주교를 모시고 있건만. 얘는 대체 뭘 더 얼마나 극진하게 모실 생각인지 모르겠다.
그렇게 설정극이 점차 부담스러워지고 있는 이 순간에도, 세르펜스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 그자는 세라투 자작을 맹목적으로 따르고 있습니다. 그러니 섣불리 세라투 자작의 진위를 밝혔다간, 이간질로 오해받아 적의를 살 뿐입니다. ] [ 증거를 잡으려면 세라투 자작이 악마 숭배자와 접촉해야 할 텐데. 우리가 성에 머무르는 동안 악마 숭배자가 나타날지 모르겠습니다. ] [ 설마 저하께서는 세라투 가문의 둘째 공자에게 모든 것을 밝힐 생각이십니까? 모든 진실을 알게 된다면, 그자는 큰 충격을 받게 될 겁니다. ]타락펜스라면 그 사실을 밝히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용했을 거라고 장담할 땐 언제고.
세르펜스가 클로반을 걱정하는 척하며 우수에 젖은 표정을 지었다.
베일은 녀석의 표정이 연기라는 걸 꿈에도 상상하지 못하고, 덩달아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작은 성기사님도 막내 신관님을 본받아, 주교인 제게 정성을 다하도록 하세요. 아셨습니까?”
나는 그저 대화가 끊기지 않도록, 내 맡은 바 임무를 다했을 뿐인데.
베일은 내게 조용히 좀 있으라는 듯 눈총을 쏘아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