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467)
공작님, 회개해주세요!-468화(468/1105)
468회
66. 공작님과 바스툴 왕국 (38)
* * *
우리는 아침 식사를 마친 뒤 본성으로 불려갔다.
그 이유는 기도회 때문이었다.
“에인젤 주교님께서 주관하시는 기도회에 참석하는 것만으로도 영광이거늘. 직접 별관으로 찾아오지는 못할망정, 가만히 앉아서 에인젤 주교님께 오라 가라 하다니! 이건 말도 안 되는 처우입니다.”
복도를 걸으며 세르펜스가 불평을 늘어놓았다. 스물두 살이라는 설정과 어울리는 치기 어린 말투다.
녀석이 너무 오버한 감이 없잖아 있긴 하나, 이 출장 기도회가 마음에 들지 않은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나는 세르펜스를 자제시키려는 시늉조차 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물어 화난 표정을 지었다.
이러한 우리의 행동에 시종장은 진땀을 흘렸다.
“열한 명이나 되는 인원을 수용하기에 별관의 거실이 너무 좁아서, 어쩔 수 없이 본성의 연회장으로 모시는 거라고 말씀드렸잖습니까.”
그러게 처음부터 본성에 있는 방을 내주었으면 이런 불만도 안 생겼을 텐데.
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시종장의 말을 한 귀로 흘렸다.
“신전을 세우기에 이 영지만 한 곳이 없다는 건 알지만, 이곳의 영주는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세르펜스도 시종장의 말을 무시하며, 계속해서 불만을 토로했다.
마음 같아서는 더 하라며 응원해주고 싶었으나, 대놓고 세라투 자작을 적대시하는 건 그리 바람직한 행동이 아니다.
그걸 세르펜스가 모를 리 없을 테고.
이 정도는 내가 무마할 수 있을 거라 믿으며, 내키는 대로 떠들어대는 게 틀림없다.
“이제까지 세라투 영지에는 룩스메아 교단의 신전이 없었잖습니까? 그러니 이러한 무례는 신의 말씀이 영주님에게 닿지 못한 탓입니다. 영주님도 신 룩스메아께서 이 대륙에 얼마나 큰 은혜와 사랑을 베풀고 있는지 깨닫게 되신다면, 지금 같은 태도는 쉽게 고쳐질 겁니다.”
“과연, 주교님께서는 참으로 생각이 깊으십니다.”
집 근처에 신전이 세워지고 기도회에 몇 번 참석한다고 신앙심이 생겨난다면, 내가 아직 무교(無敎)일 리가 없다.
내 입에서 나온 말이지만, 참 광신도 같은 발언이었다.
하지만 거기다 대고 과연 같은 소리를 해대는 세르펜스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주교님께서는 정말···, 신앙심이 투철하시네요.”
분명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째서인지 에드나는 세르펜스가 아닌 나를 바라보며 혀를 내둘렀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니 나는 신의 사자였다. 이런 내가 광신도 같은 소리를 한다면, 진심으로 들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오해를 바로잡고 싶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하하하! 존경스럽습니까? 신관님께서도 제 밑에서 오랜 기간 수양하신다면 저처럼 될 수 있을 겁니다.”
“아, 하하···.”
나는 에드나의 떨떠름한 웃음소리를 애써 못 들은 체했다.
때마침 연회장에 도착한 터라, 그 행동에 어색함은 없었다.
별관 거실은 너무 좁아서 안 된다길래, 얼마나 넓은 곳을 준비해 놓았나 했건만.
무도회를 열기에는 너무 좁아 보이고 티 파티를 열기에 적당해 보이는 아담한 연회장이었다.
커다란 대리석 테이블과 테이블 길이에 맞춰서 제작한 듯한, 길고 화려한 소파 때문일까?
연회장이라기보다는 응접실의 확장판처럼 보였다.
‘이 정도 인원으로 기도회를 열기에 적당한 크기긴 한데, 테이블 위가 너무 휑한 거 아니야?’
테이블과 소파가 있다면 다과도 따라와야 하는 게 당연한 이치이거늘. 다과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화병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이었다.
정말로 형편없는 손님 접대라 아니 말할 수 없다.
“오늘은 지각하지 않고 먼저 와 계셨네요?”
나는 웃는 낯으로 세라투 자작을 비꼬며, 그가 자리를 권하기 전에 소파로 가서 냅다 앉았다.
세르펜스도 신속한 움직임으로 내 오른쪽 자리를 차지했다. 유지스는 내 왼쪽에 앉았고 에드나는 그런 유지스의 옆에 앉았다.
아직 앉을 자리는 남아 있었지만, 설정 관계상 윈스톤과 베일은 내 뒤쪽에 나란히 섰다.
“어제는 사정이 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는 걸, 주교님께서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여태 그 일을 마음에 두고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세라투 자작이 여유롭게 웃음 지으며 나를 속 좁은 놈이라 비난했다.
고작 5분 10분 늦은 것도 아니고, 음식이 죄다 식을 때까지 나타나지 않은 놈이 할 소리는 아니다.
하지만 여기서 인상을 찌푸린다면 정말로 속 좁은 사람 취급을 받게 되므로, 나는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입을 뗐다.
“아침에 갑자기 기도회 장소를 통보하시길래, 오늘도 매우 바쁘신 줄 알았지 뭡니까?”
“기도회 참석 인원이 늘어난 만큼, 넓은 곳으로 장소를 옮겨야 하는 것쯤은 당연히 알고 계실 줄 알았습니다.”
“보통 성직자가 주관하는 기도회에 참석하고 싶다면, 정식 절차를 거쳐 정중하게 초청하거나, 직접 찾아오기 마련이라서요. 식사 도중에 가볍게 던지신 말이 정중한 초청인 줄은 몰랐지 뭡니까?”
“저에게 있어 별관이나 이곳 본성이나, 제 성안의 건축물인 건 마찬가지인지라. 주교님께서 불쾌함을 느끼실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별관이나 여기나 똑같은 내 집인데, 뭘 그렇게 따지느냐. 이렇게 커다란 집을 가져본 적이 없어서 별개로 느껴지나 봐?
대충 그런 의미가 담긴 말이었다.
프라시더스 공작령에 있는 세르펜스의 성에 비하면, 하잘것없는 성을 가지고 잘난체하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꼴사납다.
나는 더 이상 논할 가치도 없다는 뜻을 담아 피식 코웃음을 치며,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그나저나 바쁘신 시간을 쪼개어 기도회에 참석하실 정도라면, 신께 기원하고 싶을 정도로 간절한 소망이 있으신가 봅니다?”
“있다고 한다면 주교님께서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실 겁니까?”
세라투 자작이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내 질문에 되받아 물었다.
분명 간절히 원하는 바가 있을 텐데도. 그는 기대심 한 점 내비치지 않고 여유로운 모습을 고수했다.
상대에게 무언가를 바란다는 건 밑지는 거라고 생각해서 저러는 건지, 신에게 올리는 기도 따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저러는 건지.
그 심중을 모르겠다.
“이곳에 신전을 세우게 된다면, 영주님과 저희는 이웃지간이 아닙니까? 그 정도는 당연히 해 드려야죠.”
“그렇다면 제 가문과 이 땅의 발전을 기원해 주셨으면 합니다.”
세라투 자작이 평이한 어조로 말했다.
나라의 안녕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고 제 가문만 챙기는 건 둘째치고서라도, 어쩐지 묘하게 거슬리는 말이었다.
그는 세라투 가문의 가주이니, 자신의 가문이라 칭하는 것도 잘못된 표현은 아니다.
하지만 이 자리에는 자작 부인과 세 명의 자식들도 함께했다.
‘어지간하면 저희 혹은 우리라는 표현을 쓸 법도 한데···.’
다른 사람이 저런 식으로 말했다면, 대단히 자기중심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그냥 넘겼을 일이다.
한데 세라투 자작이 저렇게 말하니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마치 자신의 가문에 가족들의 자리를 내어주지 않겠다는 것처럼 들렸다.
명백하게 선을 긋는 아비의 말에도 둘째 클로반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고 있었다.
세라투 자작의 말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내게 물려줄 예정인 가문의 발전을 기원하시는 걸 보니, 역시 아버지께서는 나를 아끼시는구나!’라고 받아들인 모양이다.
첫째 챈들러는 멍한 표정으로 제 아비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는 실망과 서운함이 복잡하게 엉켜 있었다.
그리고 셋째 르웰은 아무런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차분한 모습 그대로 가만히 앉아있었는데, 잔뜩 풀이 죽은 챈들러의 표정과 대비되어 퍽 당당해 보이기까지 했다.
‘아버지가 나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내가 아버지를 무시하는 거야!’라고 주장하는 듯이 말이다.
“다른 분들은요?”
나는 삼 남매의 표정을 면밀히 살펴보고, 그것이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도록 그들에게도 바라는 것을 물었다.
“아버지께서 바라는 것이 곧, 제가 바라는 것입니다.”
“저, 저는 됐습니다···.”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아요.”
클로반의 대답은 예상했던 대로라 특별할 건 없지만, 챈들러와 르웰의 대답은 눈여겨볼 만했다.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다는 르웰의 말은 나중에는 말하겠다는 뜻인가 하는 의문을 남겼다.
그리고 챈들러의 대답은···.
‘어째서 됐다고 말하는 거지? 바라는 게 많을 텐데?’
성직자는 신을 받들어 모시며, 신의 말씀을 따라 행하는 자다.
신도 양심이 있다면 자기 필요할 때만 찾는 사람보다, 언제나 자신을 숭배하고 따르는 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터다.
그런 감정적인 이유가 아니더라도, 성직자가 일반인들보다 신에게 더 다가선 자라는 건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세라투 자작과 클로반 앞이라서, 눈치를 보고 있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넘어가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개운치 않다.
세라투 자작에게 애정을 받고 싶다면, 클로반처럼 아버지와 같은 것을 바란다고 말하면 될 텐데.
‘그런다고 세라투 자작이 애정을 주는 건 아니지만, 그러길 바라는 마음 때문에라도···.’
고민을 하더라도 그게 지금은 아니다.
나는 머릿속에 떠다니는 생각들을 한구석에 밀어 넣었다.
“다들 욕심이 별로 없으신가 봅니다. 부인께서는 바라시는 게 없으십니까?”
“저는 그냥 아이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자작 부인이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첫째에게 특별히 신경 쓰고 있긴 해도 다른 아이들에게 관심이 없는 건 아닌 모양이다.
그런 자작 부인의 바람을 듣고, 르웰이 슬며시 눈동자를 굴려 자신의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아닌 척, 시치미를 뚝 떼고 허공 어딘가로 시선을 던졌다.
“좋아요, 그럼 기도하겠습니다.”
소원 접수도 끝났겠다, 나는 두 손을 모아 가슴 앞에서 맞잡았다.
다른 이들도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그렇게 모두의 눈이 감기고 나서야, 자작 부인이 미간에 힘이 들어갈 정도로 간절한 표정을 지었다.
“대지를 비추는 따사로운 빛이시여, 오늘도 당신의 은혜로 말미암아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나이다. 당신의 자애로움에 이 땅에 살아가는 이들은 오늘을 살아갈 희망을 얻었고, 당신의 정의로움에 오늘을 살아갈 용기를 얻을 수 있었나이다.”
나는 성서의 구절을 응용하여 대충 서두를 열고, 세라투 자작에게 눈길을 던졌다.
기도를 하는 이 와중에도 표정 관리가 철저한 탓에 아무것도 읽히지 않았다.
“그러니 신이시여, 변하지 않는 빛이 되어 우리를 계속 비추어 주시옵소서. 이들의 가문이 지금보다 발전할 수 있도록 굽어살펴 주시옵소서.”
세라투 자작의 바람대로 세라투 가문의 발전을 입에 올려도, 그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문득 세라투 자작이 대놓고 욕심을 드러내어, ‘내가 왕이 되길 바란다.’ 따위의 소원을 빌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기도가 룩스메아에게 닿을 것 같진 않지만, 세라투 자작이 잘되는 꼴을 빌어주는 건 죽었다 깨어나도 싫으니까.
그에 비해 세라투 가문의 발전을 기원하는 것쯤이야.
베일을 왕위에 올려 줄 누군가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얼마든지 빌어줄 수 있다.
“아이들을 아끼는 어머니의 소원을 들어주시옵소서. 그리고 이들뿐만이 아니라, 이 대륙의 모든 아이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나길 바라옵니다. 모든 아이가 행복하게 자랄 수 있도록 따스하게 품어주시옵소서.”
덤덤하기 짝이 없는 세라투 자작과 달리, 자작 부인의 표정에 안도가 깃들었다.
내 기도문이 마음에 들었는가 보다.
고작 이런 말 몇 마디로 누군가에게 위안을 줄 수 있다는 사실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또한 아이들에게서 웃음을 빼앗는 악독한 자들이 업보를 치르길 바라옵나이다. 세상을 어지럽히는 사악한 자들에게 정의의 철퇴를 내려주시고, 악마를 숭배하는 간악한 자들에게 빛의 심판을 내려주시옵소서. 룩스메아 님께서 보우하사, 우리 대륙 만만세이옵나이다.”
나는 현 시국에 맞게 악숭이들의 욕으로 기도를 마무리하며 맞잡은 손을 풀었다.
우리 일행은 곧바로 눈을 떴으나, 세라투 가문 사람들은 좀 더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눈치 게임이라도 하듯이 슬그머니 눈을 떴다.
뒤늦게 기도가 끝났다는 걸 깨달은 세라투 자작이 헛기침하며 입을 열었다.
“흠, 흠! 마무리 구절이 굉장히 독특하십니다.”
“평소에는 만세만 하는데, 오늘은 특별히 힘을 더 실어 봤습니다.”
나는 가슴을 활짝 펴고 당당하게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