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471)
공작님, 회개해주세요!-472화(472/1105)
472회
66. 공작님과 바스툴 왕국 (42)
“어째서 주교님께 이런 얘기를 하시는 겁니까?”
내 의중을 파악한 세르펜스가 대놓고 의심을 표하며 화제를 돌려버렸다.
르웰은 내가 무엇을 더 알고 있는지 궁금해하는 눈치였으나, 세르펜스가 던진 질문은 가볍게 무시하고 넘겨도 될 내용이 아니었다.
그녀는 우리에게 분명히 바라는 것이 있었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신뢰가 밑받침되어야 하니까.
“주교님께서는 아버지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으실 거예요. 주교님을 자신의 밑에 두려고 하시는 게 눈에 훤히 보이니까요.”
르웰이 침착한 표정으로 나를 직시하며 말문을 열었다.
질문한 당사자인 세르펜스는 의미 없이 테이블 주변을 배회하던 것을 멈추고, 자연스럽게 내 뒤쪽에 섰다.
“한 신전의 대표가 되실 주교님을 그리 대한다는 것은 곧, 교단의 힘을 사사로이 이용하겠다는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교단을 우습게 생각하는 그 태도를 어떻게 좋게 볼 수가 있겠어요?”
“맞습니다. 영주님을 상대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괘씸하다는 말이 튀어나올 뻔해서···. 어휴! 고역도 그런 고역이 없습니다.”
나는 격하게 공감한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르웰의 말을 듣고 보니, 세라투 자작의 태도는 보통 불경한 게 아니었다.
‘세라투 자작처럼 신을 향한 공경심이 결여된 놈들이 나중에 악숭하고 그러는 거겠지.’
비록 나는 룩스메아의 성직자는커녕 신자조차 아니었지만, 진심으로 괘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룩스메아는 그렇다 쳐도, 교단은 좋은 일을 참 많이 하는 것 같던데.
안 그래도 악숭이들 때문에 고생하는 교단에 전폭적인 지원은 못 해줄망정, 기 싸움을 걸다니.
더군다나 다른 세상에서 온 나도 대륙을 위해 이렇게 고생하고 있다.
그런데 자기가 뭐라고 교단을 이용하여 사리사욕을 챙긴단 말인가.
“아, 진짜. 생각할수록 화나네!”
불쑥 화가 치밀어 올라,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나는 손에 들린 포크로 케이크를 마구 퍼먹었다. 그렇게 전투적으로 케이크 한 조각을 해치우고 났더니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나는 마음을 다잡고, 포크를 접시 위에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영주님을 흉보고 싶어서 이런 얘기를 하신 건 아니실 테고. 아무튼 그래서요?”
“그래서 교단에 좀 더 협조적인 사람이 세라투 가문의 영주가 되길 바라고, 저희 삼 남매를 유심히 살피신 거라고 생각했어요.”
“뭐, 그런 이유도 없잖아 있죠.”
나는 애써 태연한 척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차를 한 모금 들이마셨다.
르웰이 알아챘을 정도라면 분명 세라투 자작도 알아챘을 거다.
전공병 때문에 삼 남매가 어떠한 환경에서 자랐는지 분석하느라, 당초의 목적을 망각하다니.
너무 조심성이 없었다.
“그런 이유’도’ 없잖아 있다는 건, 역시 다른 이유가 더 있다는 뜻이군요?”
“맞습니다. 사실 제가 아동의 복지와 육아 방침에 관심이 많아서, 세 분을 자세히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티를 내서는 안 됐는데···.”
르웰의 물음에 나는 일행들에게 털어놓는 심정으로, 내 잘못을 이실직고했다.
그러자 르웰이 황당하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성직자분께서 그런 건 대체 왜···.”
“교단에서는 많은 수의 보육원을 운영하고 있잖습니까? 그러니 주교님께서 관심을 가지시는 것도 당연합니다. 주교님께서는 정말로 참된 보육자이십니다. 저 또한 에인젤 주교님께 거두어져, 그분의 가르침 덕에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세르펜스가 나불거리며 르웰의 물음에 대답했다.
뒤를 돌아 녀석의 표정을 확인하니, 참으로 가관이다.
세르펜스는 더없이 뿌듯하다는 듯 가슴을 활짝 편 채. ‘부러워 죽겠지?’라고 말하는 듯이 우쭐거리는 표정으로 르웰을 한껏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렇게 자랑하고 싶어서 대체 어떻게 참았나 몰라···.’
그냥 보육원 운영에 관해서만 말하면 될 텐데.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뜬금없는 세르펜스의 자랑질에 르웰도 어처구니를 상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할 일 없으면 케이크나 드세요.”
“감사합니다.”
내가 다 먹은 케이크 접시와 포크를 건네주며 말하자, 세르펜스가 ‘봤지?’라고 말하는 표정으로 르웰을 비웃었다.
그에 르웰은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보육자를 든든하게 여기는 건 좋지만, 그 자부심으로 다른 아이를 깔보듯 행동하는 건 옳지 않다.
“막내 신관님, 저기 가서 벽 보고 서 계세요. 그러면서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반성하세요.”
“예···?”
내 말에 세르펜스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불쌍해 보이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런 표정에 굴할 내가 아니었다.
“케이크는 가져가셔도 됩니다.”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세르펜스가 기운 없이 대답하며, 접시에 케이크를 한 조각 담아서 벽 앞으로 향했다.
그런 녀석의 양어깨가 힘없이 축 처졌다.
“어디까지 얘기했었죠?”
“네? 아···, 아버지를 대신할 협조자를 찾기 위해, 주교님께서 저희 삼 남매를 관찰했다는 얘기 중이었어요.”
내 질문에 르웰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무래도 아동 복지와 관련된 이야기는 없는 셈 치려나 보다.
르웰은 빠르게 침착함을 되찾고, 진지한 표정으로 재차 입을 열었다.
“아무튼 그런 이유뿐인 줄로만 알았는데, 아버지의 계획에 관해 저보다 많은 것을 알고 계신 걸 보면, 처음부터 아버지를 경계하고 계셨나 보네요.”
“그럴 수밖에 없죠. 나라 꼴이 이 모양 이 꼴이니 뒤엎고 싶을 만도 한데, 영지를 넓힐 때 부적절한 방식으로 땅을 사들였다는 얘기도 들려오고···. 다른 시기라면 교단이 끼어들 일은 아니지만, 아시다시피 시기가 시기잖습니까?”
사실을 말하자면 세라투 자작을 직접 보기 전까지 안중에도 없었지만, 나는 르웰의 말에 동의하며 주절주절 떠들어댔다.
다행히도 내 얘기가 잘 먹혀들어 갔는지, 르웰이 동감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버지께서는 교단조차 이용 대상으로 보고 계세요. 하지만 저는 달라요.”
“셋째님은 신 룩스메아 님을 진심으로 믿고 따른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요···라고 대답해 봤자, 주교님의 성에는 안 차겠죠. 필요할 때만 독실한 신자인 척 구는 건 싫어한다고 하셨으니까요.”
르웰이 그렇게 말하며 쥘부채를 든 손에 힘을 줬다.
얼굴 가득 긴장감이 서렸는데도 르웰의 입꼬리는 살짝 올라가 있었다.
나를 설득할 자신이 있기 때문일까? 혹은 자신이 주도적으로 행동하는 것 자체에 희열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고.
“저는 태어난 순간부터 삶이 정해졌어요. 가문에 이득이 되는 거래 물품으로 말이죠. 이대로 아버지께서 가문을 이끌어 나가시든. 아니면 두 오라버니 중 누군가가 가문을 이어받든. 그 누구도 제 삶을 존중해주지 않겠죠.”
비관적인 내용을 말하면서도 르웰은 무척이나 당당했다.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가슴을 활짝 펴고, 눈을 반짝이는 그 모습은 우아하다기보다는 강건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하지만 저는 물건이 아닌 사람이에요. 정략혼 따위로 팔려 나가는 정치적 희생양이 되고 싶지 않아요. 다른 누군가를 위해 제가 희생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제 의지로 해요. 제가 바라는 형태로, 제가 위하고 싶은 사람을 대신해서 말이죠.”
이토록 뚜렷한 주관을 가졌기에 르웰은 이렇게나 의연할 수 있는 거겠지.
고작 열여덟 살에 불과한 소녀가 이렇게 자라기까지 얼마나 많은 외로움을 견뎌냈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안타깝고도 갸륵하다.
“얼마든지 다른 수를 쓸 수 있는 영주님과는 다르게, 셋째님에게 우리는 자신의 삶을 되찾을 유일한 기회니까. 그 간절함을 믿고 자신을 도와 달라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맞아요. 제가 세라투 가문의 가주가 된다면, 신전을 세우실 때 영지의 가장 좋은 땅을 내어 드리겠어요. 그리고 악마 숭배 세력의 처단을 위해 금전적,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어요.”
르웰의 말을 쭉 들어보면, 인성 문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바스툴 왕국의 다른 귀족들을 비아냥댄 것만 봐도 옳고 그름의 기준이 확실했다.
지금도 기부를 운운하며 내게 뇌물을 주겠다는 말을 돌려 하지 않고, ‘악마 숭배 세력의 처단을 위해’라며 조건을 걸어 두었다.
“덧붙여 말하자면, 두 오라버니보다 저를 돕는 게 주교님께도 이로우실걸요? 두 오라버니께서는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니까요. 주교님께서 아버지를 밀어내어 가주가 되도록 도움을 준다고 제의한들, 받아들일 리가 없어요. 되려 주교님의 계획이 아버지의 귀에 전달될 뿐이겠죠.”
“둘째님은 저도 가망이 없다고 보지만, 첫째님은 잘만 하면 충분히 구슬릴 수 있을 것 같던데요?”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큰 오라버니는 보기와는 다르게···.”
르웰이 무언가를 말하려다 말고, 인상을 찡그리며 말을 멈췄다.
“다르게 뭐요?”
“생각해보니 말한다 해도 당장은 증명할 길이 없을뿐더러, 저만 뒤에서 남 욕하는 치졸한 사람이 될 것 같으니 말 안 할래요.”
“괜찮습니다. 치졸하다고 생각 안 할 테니, 말해 주시죠.”
“저는 제 판단에 의해서만 행동해요.”
단호하기까지 한 표정으로 보아, 빈말이 아니었다.
그냥 ‘본인은 나쁜 사람이 되지 않으면서 남 욕하기’의 일환인 줄 알았는데, 정말로 말하지 않을 생각인가 보다.
“쳇, 무슨 대단한 거라고···. 좀 알려주면 어디 덧나나?”
나는 작은 목소리로 꿍얼꿍얼 혼잣말을 했다.
그래도 르웰의 닫힌 입은 열리지 않았다.
정정당당하게 경쟁하겠다는 그 생각은 매우 아름다웠으나, 호기심을 자극한 뒤에 슬쩍 빠지는 행동은 조금도 아름답지 못했다.
‘대체 뭘 말하려다 그만둔 건지는 몰라도, 챈들러에게 뒤가 구린 구석이 있다 정도로만 생각하면 되려나?’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찻잔에 조금 남은 찻물을 들이켰다.
그리고 빈 잔을 다시 내려놓는 그때.
“영애께서는···. 세라투 자작과 마찬가지로, 왕이 되실 생각이십니까?”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베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얼굴이 보이지 않아도 목소리에서부터 심란함이 묻어났다.
그러고 보면 세라투 자작은 오래전부터 반역을 준비했다. 르웰이 가문을 물려받게 된다면 그 기반 또한 물려받게 될 터다.
더구나 그녀는 현 바스툴 왕국의 실태에 반감을 품고 있었다.
사람을 모으는 건 그녀의 역량에 달렸다고 하더라도, 지금 르웰의 모습을 보면 못 할 것도 없어 보였다.
“그럴 생각은 없어요. 나라를 새로 세운다면 그 과정에서 흘리는 피도 적지 않을 테고, 기틀을 닦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려요. 필연적으로 많은 희생을 야기할 수밖에 없죠. 저는 그렇게까지 욕심을 부리고 싶지는 않아요.”
“그렇다면 영애께서는 이 나라를 이대로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울분을 토해내는 베일의 목소리에, 르웰이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별로 아끼지도 않는 성기사가 자꾸 대화에 끼어드는데, 대답해 줘도 괜찮은 거냐고 묻고 싶은 게 아닐까 한다.
“바스툴 왕국에 와서 영지들을 돌아보다가, 평민들이 힘들어하는 걸 많이 봐서 저러는 겁니다. 저도 궁금했던 거니까, 그냥 대답해 주세요.”
“저는 세력을 모아 왕성을 점령한 뒤, 적당한 왕족 하나를 허수아비로 세울 생각이에요.”
오래전부터 생각해 두었던 계획인지, 즉각 대답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