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475)
공작님, 회개해주세요!-476화(476/1105)
476회
67. 공작님과 계승자들 (4)
르웰의 의중이 무엇일까 고민하는 찰나.
– 똑똑똑.
문 쪽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갑작스러운 방문객의 등장에 르웰이 인상을 찌푸리며 다시 의자로 돌아와 앉았다.
세 번째 케이크 조각을 바라던 세르펜스도 미련을 버리고, 들고 있던 빈 접시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나는 르웰이 드레스 자락을 제대로 정돈한 것을 확인한 후, 옆에 늘어진 줄을 잡아당겼다.
“시종장이 내 방에는 무슨 일이지?”
르웰이 아직 손도 대지 않은 자신의 케이크 끄트머리를 포크로 자르며 질문했다.
모처럼 기분 좋게 티타임을 즐기고 있는데 방해받아 언짢다는 듯. 그 얼굴과 목소리에서 불쾌함이 가득 묻어났다.
“슬슬 방 수색과 티타임이 끝나셨을 것 같아서, 성직자님들을 마중 나왔습니다.”
시종장이 정중한 말투로 르웰의 말에 대답했다.
그러면서도 눈으로는 방 안의 풍경을 빠르게 훑었다. 특히 서빙 카트 위에 남은 케이크와 티 테이블 위를 유심히 살피는 듯했다.
다행히 세르펜스에게 케이크를 두 조각이나 먹인 덕분에, 르웰의 접시 위 케이크가 새것이어도 수상해 보이지 않았다.
“저희가 무슨 한두 살짜리 어린애도 아니고. 길이라도 잃을까 봐서 그럽니까? 정 안내가 필요하면, 복도에 돌아다니는 사용인 중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도 됩니다. 그러니 마중 같은 쓸데없는 짓은 안 하셔도 됩니다.”
나는 시종장의 시선 처리를 눈치채지 못한 척하며 짜증스럽다는 투로 말했다.
실제로도 시종장의 간섭에 답답함이 느껴졌던지라, 목소리에 짜증을 담는 건 무척이나 쉬웠다.
그런데도 시종장의 표정은 조금도 일그러지지 않았다.
“귀한 분들을 모시는 일인데, 아무에게나 맡길 수는 없지요.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부담스러운 게 아니라, 답답해서 그럽니다.”
“그럼 내일은 본성 말고 다른 건물들을 돌아다녀 보는 건 어떻습니까?”
그런 의미로 답답하다고 한 게 아니란 걸 뻔히 알 텐데도, 시종장은 눈치 없는 소리를 해댔다.
상황과 전혀 맞지 않는 헛소리에 기가 막혀 헛웃음이 다 나올 지경이다.
르웰도 자신의 가문에 소속된 사용인이 던진 무리수에 어처구니가 없었는지, 이마를 짚으며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시종장. 주교님께서는 아직 나와 얘기를 나누는 중이니, 별다른 용건이 없으면 나가줬으면 해.”
“아! 용건이라면 있습니다. 큰 도련님께서 돌아오셨습니다.”
“그래서? 지금 내게 바쁘신 주교님을 그만 붙잡아 두라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거니?”
“그렇게까지는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침입자를 찾아내겠다며, 주인님의 방까지 뒤졌던 분께서 여기서 이러고 계신다는 게···.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어떻게 보일는지 모르겠습니다.”
아까는 르웰의 말에 깨갱 하고 꼬리를 말더니. 갑자기 시종장이 세게 나왔다.
안내인지 감시인지 태도를 분명히 밝히라는 르웰의 말을 듣고, 당당하게 우리를 감시하겠다고 밝히는 건 아닐 테고.
‘맡긴 일을 제대로 못 했다고, 그새 세라투 자작에게 혼나기라도 한 건가?’
주인을 잘못 만나 중간에서 고생하는 시종장이 조금은 불쌍해 보였다.
나는 쯧쯧 혀를 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종장이 불쌍해 보이는 것과는 별개로, 르웰의 방에 더 머물렀다간 의심을 살 것 같아서다.
우리가 르웰과 작당 모의 중이란 걸 세라투 자작이 눈치채서 좋을 건 없다.
“어이쿠,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을 줄이야! 신학을 설파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지 뭡니까?”
“정말로 유익한 시간이었어요. 주교님의 말씀을 듣고 있자니, 신 룩스메아께 한 걸음 더 다가선 것만 같아서, 마음까지 경건해지는 기분이 드네요.”
내가 커튼을 걷어 바깥의 하늘을 바라보며 호들갑을 떨자, 르웰도 자리에서 일어나 사근사근하게 말했다.
“저도 오랜만에 제대로 된 신자와 만나서 얘기를 나눈 것 같아 즐거웠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대화는 여기서 끝내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처럼 대화를 나눌 기회가 또 있을까요?”
“물론이고 말고요. 룩스메아 교단의 주교로서, 가르침을 바라는 자를 어찌 외면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별관에 머무는 동안, 언제든지 찾아오셔도 좋습니다.”
“네, 신학서를 읽다가 궁금한 점이 생기면 꼭 찾아뵐게요. 맛있는 간식도 가지고요.”
“크으~! 셋째님은 요즘 애들 답지 않게, 배우는 자세가 제대로 되어있어서 아주 마음에 듭니다!”
내가 만족스럽게 엄지를 치켜세우며 말하자, 르웰이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호호 웃었다.
그렇게 르웰과 형식적인 대화를 마친 후.
우리는 시종장을 따라 챈들러의 방으로 향했다.
“저를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먼저 방에 도착해 기다리고 있던 챈들러가 심기 불편한 표정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누가 보면 내가 챈들러를 찾는 바람에, 그가 외출 도중에 돌아오기라도 한 줄 알겠다.
“찾은 건 아니고, 방을 좀 확인할까 했죠. 다른 사람의 방도 아니고, 영주님 가족의 방인데 허락도 받지 않고 함부로 수색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 얘기는 들었습니다. 안 그러셔도 괜찮았는데···.”
챈들러가 소심하게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어쩐지 괜한 짓을 했다며 불평이라도 하는 것처럼 들렸다.
‘설마 진짜로 도중에 돌아온 건가?’
우리가 르웰의 방에서 꽤 많은 시간을 소모하긴 했지만, 그래 봤자 서너 시간 안짝이다.
챈들러가 정확히 언제 영주성을 나섰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기도회를 마친 이후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기도회가 끝나자마자 부랴부랴 나갔다고 가정한들.
르웰의 추측대로 챈들러가 데이트하러 나간 게 맞는다면, 터무니없을 정도로 짧은 시간이다.
‘꼴랑 점심 먹고 소화시킬 겸 산책 조금 하고, 어디 가서 차 한잔 마신 게 전부겠네! 영화는 없어서 못 본다고 하더라도, 연극 정도는 한 편 때려줘야 데이트라고 부를 수 있는 거 아닌가?’
생각할수록 데이트를 파투 내고 온 게 맞는 것 같다.
보나 마나 시종장의 보고를 들은 세라투 자작이 챈들러를 불러들인 걸 테다.
그렇게 생각하니 챈들러가 조금 안돼 보였다.
“데이트 도중에 아버지께 불려와서 불만스러운 건 알겠는데, 너무 꽁해 있지는 마세요. 첫째님께서는 아직 한창 젊으시잖습니까? 앞으로도 데이트할 날은 많을 겁니다.”
“예?! 제가 데이트를 하러 나간 걸, 주교님께서 어떻게 아시고···.”
내 말에 챈들러가 화들짝 놀랐다.
얼마나 놀랐는지, 움찔하며 몸을 크게 들썩이느라 한 걸음 뒤로 물러나기까지 했다.
“동생 분께서 그러시던데요? 첫째님이 최근 들어 꾸미고 밖에 놀러 나가기 시작했는데, 분명 데이트일 거라고 말입니다.”
“아···.”
“진짜 동생 분 말대로 쫙 빼입으셨네! 아침에 기도회 때 입었던 옷보다 훨씬 잘 어울리십니다. 신수도 더 훤해지신 것 같고. 연인 분께서도 흐뭇해하셨겠습니다.”
“정말로 그래 보입니까?”
“정말이고 말고요!”
“감사합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더니. 챈들러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어났다.
줄곧 우중충한 표정만 짓다가 연인 얘기에 저렇게 웃는 걸 보면, 상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가 보다.
챈들러가 르웰의 경쟁자라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계속 기운 없어 보였던 사람이 웃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에게까지 그 웃음이 번지는 듯했다.
그의 어깨라도 툭툭 두드려주면서, 앞으로도 그렇게 웃고 다니라고 말하려는 그때.
“주교님.”
난데없이 세르펜스가 뒤에서 내 어깨를 잡아 세웠다.
그 바람에 챈들러의 어깨를 두드려주기는커녕,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했다.
“지금 이게 뭐 하시는 거죠? 설마하니 ‘주교님의 토닥토닥은 나만 받을 수 있다.’ 뭐 그런 겁니까?”
“···마, 맞습니다.”
그냥 아무렇게나 던져본 물음에 긍정의 답이 돌아왔다.
어이와 터무니가 함께 손잡고 가출한듯한 기막힌 상황에, ‘헐’ 하는 소리가 입에서 튀어나왔다.
세르펜스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제 생각을 알아채 달라는 듯. 빠른 속도로 눈을 깜박거렸다.
‘어, 그러니까···. 다른 이유가 있다는 뜻인가?’
그래 봤자, 위험하니까 낯선 사람과 섣불리 접촉하지 말라는 얘기가 하고 싶은 걸 테다.
항상 있었던 일이다.
“그런 거 신경 쓸 시간에 빨리 할 일이나 하세요.”
“네···.”
세르펜스가 맥없이 대답하고는 내 어깨에서 손을 떼어내고 신성력을 넓게 퍼트렸다.
나도 이제 대화는 그만하고, 방 수색을 거들어야겠다.
르웰과 손을 잡기로 한 이상. 챈들러와 친해져 봤자 나중에 찜찜한 기분만 들 뿐이다.
그러니 대화는 여기까지만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나는 만만한 옷장을 뒤적거리며, 드문드문 허리를 펴는 척 방안 풍경을 살폈다.
챈들러의 방 가구들은 다크 우드 색이었는데, 색만 달랐지 양식은 클로반이나 세라투 자작과 엇비슷했다.
그 외에 눈에 띄는 건 화분이나 액자가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그러면서도 자잘한 소품들은 많아서, 방안이 가득 찼는데도 이상하게 삭막하고 허한 느낌이 들었다.
“수상하거나 이상한 물건은 없네요. 저희와 사용인들 외에는 주변에 느껴지는 기척도 없고.”
방 수색을 마쳤지만, 이번에도 어김없이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나는 챈들러에게 나중에라도 수상한 기척이 느껴지면 말해달라며, 예의상의 멘트를 날리고 복도로 나왔다.
저녁 시간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남은 터라, 우리는 내친김에 자작 부인의 방까지 확인한 뒤 별관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방으로 올라오자마자, 세르펜스가 가방을 내려놓고 종이를 꺼내 글을 적었다.
[ 새벽에 잠시 나갔다 와야 할 것 같다. ] [ 어디 가려고? ] [ 첫째 공자를 만났을 때. 그자에게서 악마의 기운이 느껴졌다. ]끽해봤자 세라투 자작을 감시하러 간다거나, 르웰에게 자세한 계획을 물어보러 가거나 할 줄 알았건만.
예상치 못한 내용에 나는 글을 적는 것도 잊고, 입을 떡 벌리며 세르펜스의 얼굴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 악마의 기운이라고는 했지만, 순수한 마기가 아니라 혼탁한 기운이었다. 암흑가에서 보았던 마인이 악마에게 몸을 빼앗기기 전에 풍겼던 것처럼. ]요약하자면, 챈들러에게 ‘마인’의 기운이 느껴졌다는 뜻이다.
아까 내 어깨를 붙들었던 것도 토닥토닥이 탐나서가 아니라, 이런 이유 때문이었던 모양이다.
나는 정신을 추스르고 펜을 들었다.
[ 그 얘기를 왜 지금 하는 건데? ] [ 주교와 이단 심문관도 눈치채지 못한 기운을 막내 신관이 바로 알아차렸다고 하면 이상하잖은가. ]반박의 여지가 없다.
[ 매우 희미한 기운이었기에, 주교와 이단 심문관이 눈치채지 못했다고 해도 의심하지는 못할 거다. ]세르펜스가 자신의 신성력 감지 능력을 두고, 주교와 이단 심문관의 수준을 뛰어넘었다는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적었다.
이 녀석은 자랑질을 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자랑 중이라는 것도 모르는 눈치다.
[ 아무튼 아도르가 그 얘기를 바로 말하지 못한 이유는 알겠어. 그래도 신성력을 퍼트려가며 정밀 탐지를 했잖아? 그때 알아챘다고 하면 안 되나? ] [ 나도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신성력을 퍼트리는 순간, 그 기운이 바로 사라져 버리더군. ]아무래도 챈들러에게 묻었던 마인이 기운이 세르펜스의 신성력에 닿자마자, 정화되어 사라진 모양이다.
[ 지금 나랑 장난해? ]내 물음에 세르펜스가 머쓱하다는 표정으로 시선을 아래로 떨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