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479)
공작님, 회개해주세요!-480화(480/1105)
480회
67. 공작님과 계승자들 (8)
“이 야밤에 대체 무슨 소란입니까?”
세르펜스가 문을 열어 복도를 내다보며,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그러면서 헝클어진 머리칼을 한 손으로 쓸어 넘기는 행동이 퍽 자연스럽다.
“성내 경비를 서던 병사들의 말에 따르자면, 수상한 자가 목격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직자분들의 안전이 걱정되어,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복도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시종장의 것이었다.
목격 정보를 듣자마자 바로 2층으로 올라온 것인지, 수상한 자가 성벽을 넘어 밖으로 나갔다는 말은 없었다.
나는 그 점에 유의하여 말실수를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성내에 나타난 수상한 자라면! 혹시 며칠 전에 제 방에 침입했던 자입니까?!”
“네?! 침입자가 또 나타났다고요?”
내가 신발을 대충 구겨 신고 복도로 나온 것과 비슷한 타이밍에, 유지스가 방문을 열어젖히며 튀어나왔다.
얇은 여름용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채, 몸을 칭칭 감은 모습이라 하마터면 유령으로 착각할 뻔했다.
그런 유지스의 뒤로 잠옷 차림의 에드나가 빼꼼 얼굴을 내비쳤다.
하지만 연기할 자신은 없었는지, 에드나의 입이 열리는 일은 없었다.
“제가 방금까지 이곳을 지키고 있다가, 이제 막 오르덴 님과 교대를 하려던 중이었는데···. 아무튼 수상한 기척은 느끼지 못했습니다.”
베일이 얼떨떨한 목소리로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정보까지 언급하며 횡설수설했다.
사기극에 동참한다는 생각에 많이 긴장했는가 보다.
아무래도 내가 나서서 베일의 긴장을 풀어줘야겠다.
“또, 또! 작은 성기사님이십니까?! 정말 일 똑바로 안 할래요? 도대체 무슨 정신머리로 경비를 서는 겁니까?”
“아, 아니, 그게···.”
“아니이~? 지금 제게 반말하신 겁니까? 제가 작은 성기사님 친구라도 됩니까? 예?!”
“그것이 아니오라···.”
“변명을 하기 전에 사과부터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매사에 그런 식이니까 발전이 없는 겁니다, 발전이!”
“제, 제게 대체 왜 이러십니까···?”
베일의 투구 너머로 억울함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러다간 긴장이 풀리기 전에 울음을 터트리는 게 아닐까 걱정스럽다.
내가 이러는 게 연기라는 걸 빤히 알고 있을 텐데도 저러다니. 멘탈이 약해도 너무 약해서 큰일이다.
“당장 중요한 건 렉스 님을 다그치는 일이 아닙니다. 침입자가 어디서 목격되었는지. 그리고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윈스톤이 한 손으로 베일의 어깨를 잡아당기는 동시에, 한 걸음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배역 교체였다.
위태위태했던 베일과 다르게 침착하며 안정된 연기가 돋보였다.
“제 몫을 제대로 못 한 건, 큰 성기사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직 성안에 침입자가 있다는 걸 알고 계시잖아요? 후배가 좀 모자란 것 같으면, 큰 성기사님이라도 노오력해서 경계를 더 철저히 하셨어야죠!”
“제게 잘못이 있다면, 그 벌은 달게 받겠습니다. 하지만 그건 사건을 해결하고 난 다음입니다.”
윈스톤의 훌륭한 즉흥 연기에 박수를 치며 ‘브라보!’를 외치고 싶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나는 감탄을 터트리는 대신. 그의 연기가 퇴색되지 않도록, 인상을 와락 찌푸리며 삼류 악당 같은 대사를 쳤다.
“···두고 보겠습니다.”
“좋으실 대로 하십시오.”
고저 없는 덤덤한 말투가 오히려 ‘성기사 오르덴’을 대범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유지스도 윈스톤의 연기가 마음에 들었는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래서 수상한 자가 처음 발견된 위치는 어디입니까? 그리고 그자가 어떤 목적으로 나타난 것인지, 그 원인은 파악하였습니까?”
“발견된 위치는 식자재 창고 주변이고, 그 외에 자세한 사항은 아직 모릅니다. 그자를 발견한 병사들이 서둘러 움직이는 걸, 한 시종이 보고 이곳까지 뛰어와서 알려준 거라···.”
취조라도 하는 듯한 윈스톤의 딱딱한 어투에 쫄기라도 했는지, 시종장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얘기의 주인공인 세르펜스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식자재 창고에서 끼니를 해결하며, 상처가 나을 때까지 숨어있었던 모양입니다.”
대충 성벽을 넘는 모습만 보여주고 온 줄 알았는데, 나름대로 동선을 짜고 움직였던 모양이다.
‘그럼 식자재 창고부터 병사들을 줄줄이 매달고 성벽을 넘은 뒤, 유유히 방으로 돌아왔다는 건가?’
세르펜스가 방을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왔으니.
그를 쫓아다녔던 병사들은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뛰어다녔으리라.
“아차! 식자재 창고!! 거기부터 뒤졌어야 했는데, 영주님과 그 가족들의 안전을 먼저 확인한다는 게 그만···!”
“그자는 주교님의 이런 상냥한 마음씨를 알아채고, 악용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내가 탄식하며 아깝다는 듯이 말하자, 세르펜스가 주먹을 꽉 말아쥐며 원통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녀석의 모습만 보면 당장에라도 ‘그자’를 잡아다가 복수라도 할 것처럼 보였다.
그래 봤자 ‘그자’가 바로 세르펜스 본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그저 우스울 따름이다.
그렇게 세르펜스가 자기 자신에게 시비를 걸고 있는 그때.
1층과 연결된 계단 쪽에서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발 구르는 소리가 크고 금속음도 들리는 거로 보아, 갑옷을 갖춰 입은 병사나 기사의 발소리 같다.
“다들, 후우-. 모여 계셨군요···.”
내 추측대로, 한 기사가 계단을 올라와 숨을 고르며 말했다.
훈련받은 기사가 고작 계단 한 층 올랐다고 숨이 찬 건 아닐 테다. 세르펜스를 놓친 후, 상황을 알리러 여기까지 뛰어온 거겠지.
나는 수고한 기사를 반겨주었다.
“침입자가 나타났다면서요? 잡은 겁니까?”
“그자의 실력이 상당한 데다가, 건물 지붕과 나무를 오가며 잽싸게 움직이는 통에···. 그만 놓치고 말았습니다.”
기사가 잔뜩 약이 오른 목소리로 분하다는 듯 대답했다.
그 목소리를 듣자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미안한 건 미안한 거고 연기는 연기다.
나는 대놓고 실망스럽다는 표정으로 쯧쯧 혀를 찼다.
“그런데 여러분께서는 계속 방에만 계신 겁니까?”
“무슨 그런 당연한 질문을 하십니까? 그럼 이 시간에 방에 있지, 밖에서 체조라도 할까요?”
그냥 예, 아니오로 답할 수 있는 질문에 비꼬아 대답하는 거야말로, 꼰대질의 기초라고 들었다.
그래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써먹어 봤는데, 과연.
내가 한 말인데도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싶다.
기사는 투구를 쓰고 있어 그 표정을 확인할 수 없었지만, 보나 마나 얼굴이 잔뜩 찡그려졌을 게 분명하다.
어쩌면 자신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해, 입 모양으로 소리 없이 욕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시종장이 주교님의 안전을 확인해 봐야겠다며 난리를 치는 통에, 한참 전부터 다들 복도에 나와 모여 있었습니다.”
“아! 그러셨습니까?”
별것도 아닌 질문에 비꼬았던 나와는 다르게, 협조적으로 나오는 윈스톤의 말에 기사가 매우 기꺼워했다.
어쩐지 말이 안 통하는 외국에서 우연히 같은 나라 사람을 발견이라도 한 양, 목소리에서 반가움이 가득 묻어났다.
“그런데 ‘다들’이라 함은···.”
기사가 말꼬리를 흐리며 은근하게 말했다.
다 같이 모여있었다는 윈스톤의 말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작업일 거다.
투구 때문에 시선의 방향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기사의 고개가 윈스톤 쪽을 향했다가 내 쪽으로 살짝 돌아간 건 확인할 수 있었다.
‘아니, 내 곁에 선 세르펜스를 본 거려나?’
우리 중에서 예의 ‘수상한 사람’과 가장 체구가 비슷한 사람은 세르펜스다.
그도 그러할 게, 그 둘은 동일 인물이니까.
세르펜스도 기사의 시선을 눈치챘는지, 억지로 졸린 눈을 뜨고 있다고 주장이라도 하듯 눈가를 비볐다.
침입자와 체격이 전혀 다른 유지스는 털끝만큼도 의심받지 않았는데, 괜히 하품을 흘렸다가 화들짝 놀란 척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나저나, 저 기사가 우릴 언제 봤다고 밑도 끝도 없이 의심하는 건 아닐 테고. 세라투 자작이 확인해 보라고 시킨 거려나?’
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척하니 팔짱을 끼고 아니꼽다는 표정으로 윈스톤을 노려보았다.
지금의 나는 대화에서 배제되어 몹시 기분이 나쁘다는 설정이다.
윈스톤은 이런 내 행동에 아랑곳하지 않고, 기사의 말에 답변했다.
“말 그대로 이곳에 있는 모두를 뜻합니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무것도 아닙니다.”
기사는 그 뒤로 우리에게 형식적인 질문을 몇 개 건넨 후.
침입자의 실력이 보통이 아닌 것 같다며, 그자가 다시 올 수도 있으니 안전에 주의하라고 말한 뒤 계단을 내려갔다.
이제 복도에는 우리 일행과 시종장이 남았다.
나는 삐딱하게 서서 시종장에게 따지듯이 말했다.
“뭐, 더 할 말이라도 남았습니까?”
“이런 일이 생겼으니, 아마도 주인님께서는 내일 중 주교님께 만남을 청하실 겁니다.”
“시종장님의 말이 어째,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것처럼 들리는 건 저뿐입니까?”
“분명하지 않은 표현을 써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주인님께 직접 얘기를 들은 건 아닌 터라, 어쩔 수 없었음을 이해 바랍니다. 본성에서 기도회를 여셨을 때, 사전에 장소를 말해주지 않았다며 화를 내시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이번에는 미리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때 내가 신경질 부렸던 걸, 계속 마음에 두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내가 짜증 나면 그냥 가까이 안 오면 될 텐데. 피차 피곤한 일 만들지 말고, 이제는 좀 떨어져 나갔으면 좋겠다.
“그럼 저도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시종장이 정중하게 인사를 마쳤다.
나는 그가 계단을 내려가는 것도 확인하지 않고, 곧장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엎어졌다.
“그놈의 젤리 도둑 때문에 이게 대체 무슨 난리야!”
“죄송합니다, 그때 제가 그자를 붙잡았어야 했는데···.”
세르펜스가 따라 들어와 방문을 닫으며 침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물론 목소리만 그랬을 뿐이지, 녀석의 표정은 떳떳하기 그지없었다.
그때 침입자를 일부러 놓아주었기에 르웰이라는 협조자를 얻을 수 있었고, 챈들러가 공왕으로 추정되는 인물과 만나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으니까.
‘내일 하루는 세라투 자작이랑 드잡이질을 해야 할 것 같지만, 모레쯤에는 밖에 나갈 수 있겠지?’
공왕을 찾는 것쯤은 챈들러가 데이트 갈 때, 그 뒤를 밟는 것으로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
그러니까 당장 고민해 봐야 하는 건, 밖에서 르웰과 접선하는 방법과.
‘르웰이 말한, 세라투 자작을 죽이는 방법···이려나?’
다짜고짜 놈을 죽였다간, 르웰이 살인자가 될 뿐이다.
그러니 세라투 자작이 죽어 마땅한 명분을 준비하거나, 몰래 암살을 해야 한다.
“불을 꺼도 되겠습니까?”
“그러세요.”
“네, 그럼 이번에는 정말로 안녕히 주무십시오.”
세르펜스가 불을 껐다.
마음만 먹으면 소리 없이 걸을 수 있으면서, 녀석은 뚜벅뚜벅 발걸음 소리를 내며 걸었다. 그 소리가 그치자, 이번에는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녀석이 침대로 들어가 이불을 덮고, 자기 편한 자세를 잡느라 생긴 소리일 테다.
‘저 녀석의 실력이라면, 르웰을 데리고 세라투 자작의 방에 잠입하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쉽겠지?’
하지만 그 방법만큼은 쓰고 싶지 않다.
녀석이 전대 프라시더스 공작 내외를 죽인 방법이 암살이었으니까.
르웰을 위해서든, 세르펜스를 위해서든. 세라투 자작은 ‘무고한 피해자’로 죽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