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484)
공작님, 회개해주세요!-485화(485/1105)
485회
67. 공작님과 계승자들 (13)
내가 통쾌함을 느낀 것과는 별개로, 방 안의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세르펜스는 순진무구한 얼굴로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아기’란 단어를 중얼거렸고, 에드나는 자신의 발언이 부끄러웠는지 고개를 푹 숙이며 사과를 연발했다.
아무래도 내가 나서서 화제를 다시 돌려놓아야겠다.
“에드나 씨의 단어 나열은 신경 쓰지 마시고, 그렇게 생각하신 이유나 알려 주세요.”
“세라투 자작은 오래전부터 악마 숭배 세력과 연을 만들길 바랐잖습니까? 하지만 악마 숭배자가 찾아오지 않는 이상, 그들과 만나기란 요원한 일입니다.”
내 말에 세르펜스가 알았다는 뜻으로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설명을 시작했다.
녀석의 말대로 악숭이들은 만나고 싶다고 해서, 만날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다.
놈들이 어디에 숨어 지내는지 알 수 없으니 만나러 갈 수 없다.
그렇다고 대대적으로 찾아와 달라고 떠들어 댔다간, 악숭이보다 이단 심문관을 먼저 만나게 될 테다.
“그자가 에인젤 주교를 자신의 아래에 두려고 한 것도 비슷한 맥락일 겁니다. 자신은 한참 전부터 준비를 마쳤는데, 악마 숭배 세력은 찾아오지 않으니. 이제 그쪽은 가망이 없다고 판단하여, 차선책으로 교단을 이용하려던 게 아닐까 합니다. 혹은 자신이 왕이 된 이후를 생각하여, 미리 관계를 다져 놓은 걸 수도 있으나···. 본론에서 너무 멀어지는 것 같으니, 이 얘기는 이후에 다시 하겠습니다.”
잠시 뒤로 밀어 놨지만, 얘기를 하긴 할 생각인가 보다.
“어쨌거나 이런 와중에, 악마 숭배 세력이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나타난 겁니다.”
“그 침입자 말이죠?”
“네. 아마도 세라투 자작은 악마 숭배 세력이 자신과 거래를 하기 전에, 관찰 중이었다고 판단했을 겁니다.”
침입자가 성 밖으로 빠져나갔던 날. 세라투 자작의 감정이 유난히도 큰 폭으로 동요했던 게 떠올랐다.
그때는 그냥 모르는 사람이 집에 숨어든 것에 대한 두려움인 줄로만 알았는데.
세르펜스의 말을 듣고 났더니, 그날 세라투 자작이 보였던 태도가 다르게 해석되었다.
“그렇다면 세라투 자작은 성직자 일행이 원망스럽겠네요? 침입자가 도망가게 된 원인이니까요.”
유지스가 한쪽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말했다.
반대쪽 손은 여전히 세르펜스의 팔을 붙들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아예 팔짱을 끼고 있었다. 계속 저러고 있을 생각인가 보다.
나는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잡고 있던 세르펜스의 팔을 슬그머니 놓아주었다.
세르펜스는 아쉽다는 듯. 잠시 내 쪽을 힐끔 곁눈질했으나, 티 내지 않고 설명을 이어 나갔다.
“그래도 세라투 자작에게는 악마 숭배 세력의 구미를 자극할만한 미끼가 남아 있습니다.”
“그게 ‘그 사람’···. 그러니까 첫째 공자를 말하는 거죠?”
“네, 맞습니다.”
유지스의 물음에 세르펜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표했다.
그 대답에 생각이 많아졌는지, 유지스가 끄응 앓는 소리를 냈다.
“설마 자작은 이런 상황까지 대비해서, 첫째 공자를 홀대하며 키웠던 걸까요?”
“그보다 저는 세라투 자작이 ‘지금까지 첫째 공자를 살려 뒀다는 것’ 자체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 그렇네요? 세라투 자작이 악마 숭배 세력의 도움으로, 둘째 공자의 신분을 가로챈다고 했을 때. 첫째 공자의 존재는 방해만 될 뿐인데···.”
유지스가 탄성을 내지르며 말문을 열었다가, 점차 말이 느려지더니 결국 흐지부지 말끝을 흐렸다.
그러고는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설마···.’ 하고 중얼거렸다.
세르펜스는 유지스가 떠올린 게 맞는다고 긍정이라도 하듯,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두 사람을 보며, 나는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심각한 얘기 중에 죄송하지만, 저희도 알 수 있게 말로 풀어서 설명해 주실래요?”
내 말에 유지스가 깜박했다는 듯 ‘아!’ 소리를 냈고, 세르펜스는 ‘선우라면 알아들었을 줄 알았는데?’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를 높이 평가해 주는 건 고맙지만, 다른 사람들도 있으니 그 점을 유념해 줬으면 한다.
“세라투 자작은 자신이 직접 마인이 되는 건 원치 않을 겁니다. 중간에 대리인을 두고 악마와 계약하길 바랄 겁니다. 그래야 ‘왕’으로서 전면에 나설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하지만 그런 방법을 쓰더라도 악마의 힘을 빌리는 이상, 그 기운이 육체에 남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리고 ‘세라투 자작’은 대외적으로 죽은 사람이 되겠죠. 그래서 첫째 공자를 ‘악마와 계약을 해서 아버지를 죽인 사람’으로 몰아가고, 본인은 피해자가 되려고 하는 게 아닐까 해요. 육체에 남은 악마의 기운은 악마에게 공격을 당한 탓이라고 무마할 속셈으로 말이에요.”
유지스가 세르펜스의 말을 이어받아, 설명을 마무리 지었다.
아무리 악마를 숭배하거나 악숭 세력에 동조하는 것이 연좌제 대상이라고 한들.
룩스메아 교단은 융통성 하나 없이 꽉 막힌 집단은 아니다.
악숭이에게 죽을 뻔했다가, 겨우 살아난 피해자를 가해자의 가족이란 이유로 사형시키지는 않는다.
베일이 내부 고발자로서 연좌제 책임을 면한 것처럼 말이다.
“아까 본론에서 멀어지는 것 같다며, 나중으로 밀어 둔 얘기도 이것과 관련된 내용이죠?”
“네. 아무리 피해자 신분으로 형벌을 피한다 하더라도, 가족 중에 악마 숭배자가 있었다는 사실까지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교단 관계자와의 친분입니다.”
세르펜스가 무슨 의미로 친분을 운운하는지 알겠다.
사람들이 비난의 눈초리로 대하더라도, ‘교단이 피해자라고 인증을 해 주고, 친하게 지내기까지 하는데. 너희가 뭔데 난리냐?’라고 뻔뻔하게 나올 수 있으니까.
‘물론 세라투 자작으로서 친하게 지내는 것과 클로반의 신분으로 친하게 지내는 건 별개지만···.’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라면, ‘형제의 손에 의해 아버지를 잃은 아들’ 역할로 동정심을 사기 쉬워 지겠지.
일부러 내 앞에서 클로반과 애틋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고.
비록 애들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서, 애틋하기는커녕 역겨움만 느껴졌지만 말이다.
“덧붙여 교단의 힘을 이용하여, 대가를 요구하는 악마 숭배 세력의 접근을 차단하는 것 또한 가능해집니다.”
세르펜스의 설명을 쉽게 표현하자면 세라투 자작이 먹튀를 계획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알면 알수록 세라투 자작은 참 기막힌 사람이었다.
매우 좋지 않은 방향으로 말이다.
그렇게 속으로 혀를 내두르고 있는 그때.
“괴, 굉장합니다···!”
난데없이 베일이 감탄스럽다는 듯 말했다.
그 반응에 모두의 이목이 베일에게로 쏠렸다.
시선이 집중되자 당황했는지, 베일이 무언가 부정이라도 하듯 손바닥을 앞으로 하며 손을 마구 흔들어댔다.
“세라투 자작이 아니라, 두 분이 굉장하다는 얘기였습니다! 세라투 자작이 영지를 확장한 것과 두 아들을 대하는 태도와 그들의 상태만 보고, 여기까지 파악한다는 게···. 저로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비단 베일만 그런 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거다.
휴마누스처럼 눈치가 0에 수렴한다면 더더욱 알아채기 힘들 테고 말이다.
‘그런 점에서 휴마누스는 주변 사람들한테 진짜 잘해야 돼.’
다행히 인복이라도 타고났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성검의 주인]은 휴마누스의 소멸된 눈치로 인해, 대륙이 멸망하여 조기 완결 났을 거다.
“과찬이십니다. 그저 어림짐작한 것들을 바탕으로 그럴듯하게 끼워 맞췄을 뿐, 진짜라고 확인된 것은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들으면 들을수록, 두 분의 말대로일 거라는 확신이 듭니다.”
존경심 가득한 베일의 말이 부담스러웠는지, 세르펜스가 부정하고자 몇 번이나 입술을 달싹거렸다.
하지만 그는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베일이 세르펜스만 콕 찍어서 말한 게 아니라, 유지스까지 묶어서 ‘두 분’이라고 칭했으니까.
처음 한 번은 버릇 때문에 부정의 말이 자동으로 튀어나온 거라 어쩔 수 없었지만, 이 이상 부정한다면 유지스까지 깎아내리는 게 될 테니 말이다.
그냥 감사하다고 말하면 끝날 일인데도, 세르펜스는 이럴 땐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쑥스럽다는 표정으로 몸을 배배 꼬았다.
함께 칭찬을 받은 유지스는 어쩌고 있나 궁금해서, 몸을 앞으로 기울여 유지스의 모습을 살폈다.
깊게 눌러쓴 후드 아래로, 옅은 미소를 머금은 유지스의 입매가 보였다.
어떻게 봐도 일부러 입을 다물고 있는 모습이다.
– 똑똑똑
그 순간, 문 쪽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안절부절못하던 세르펜스가 도망치듯 후다닥 일어나서 문을 열었다.
그 과정에서 유지스는 세르펜스의 팔을 순순히 놓아주었는데, 어차피 녀석이 다른 자리에 앉을 리가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리라.
밥 먹으려면 어차피 놓을 수밖에 없기도 했고.
‘어? 그런데 저 녀석은 후드 안 써도 괜찮나?’
밖에서 눈에 띄지 않으려고 입은 거였으니, 상관없을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괜히 답답하게 후드를 쓰고 있었다고 생각하며, 아예 로브까지 벗어서 소파 등받이에 걸쳤다.
“아이고, 직접 문을 열어 주실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친절하시기도 하···.”
여관 주인이 문이 열림과 동시에 아부성 멘트를 날리다가, 세르펜스의 얼굴을 보고 눈을 커다랗게 떴다.
아무런 대비 없이 세르펜스의 미모를 마주했으니. 저렇게 놀라는 것도 당연하다.
세르펜스는 그런 여관 주인의 손에 들린 쟁반을 뺏어 들며,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음식은 이게 전부입니까?”
“아, 아니요! 더 있습니다! 직원이 없어서 저 혼자 2층까지 들고 오느라···. 바로 나머지 음식들을 가져오겠습니다!”
제정신을 차린 여관 주인이 후다닥 아래층으로 뛰어 내려갔다.
세르펜스는 방문을 그대로 열어둔 채, 쟁반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나처럼 로브를 벗어 소파에 걸쳐놓고, 다시 열린 문 앞으로 가서 대기했다.
‘저럴 거면 같이 내려가서 음식을 가져오는 게 낫지 않나?’
잠시 후, 다시 나타난 여관 주인은 양손에 쟁반을 각각 하나씩 받쳐 든 상태였다.
문을 열 필요가 없어졌기에 이번에는 두 쟁반을 한꺼번에 들고 온 모양이다.
“엇···, 교단의 성직자분들이셨습니까?”
여관 주인이 세르펜스와 내 복장을 보고, 또다시 놀란 눈을 했다.
그래도 이번에는 아까처럼 넋을 놓지는 않았다.
세르펜스는 여관 주인의 물음에 대답을 하는 대신, 고개를 까딱거린 후 턱짓으로 테이블을 가리켰다.
이번에는 쟁반을 받아 줄 생각이 없는가 보다.
여관 주인이 아쉽다는 표정으로 조심조심 걸어와, 테이블 위에 쟁반들을 내려놓았다.
나는 그가 쟁반에 담아온 음식 그릇과 식기류 등을 테이블로 옮기는 동안, 궁금했던 것을 묻기로 했다.
“여관 규모가 꽤 큰 것 같은데, 직원이 한 명도 없어요?”
“어휴, 말도 마십시오. 그놈의 악마 따위를 숭배하는 이단 놈들 때문에 요즘 경기가 말이 아닙니다. 게다가 기찻길까지 끊어 먹어서, 손님이 안 온 지도 한참 됐습니다. 월급 줄 돈이 없으니 직원들까지 자르고···. 아! 그래도 음식 맛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원래 요리는 제 담당이었거든요.”
여관 주인이 주절주절 떠들어대며 불만을 토로했다.
쌓인 게 많은가 보다.
“아무튼 그렇다고 영업을 중단할 수도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저 혼자 여관을 지키고 있는데, 여러분께서 와 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아까는 그냥 장난을 치시는 줄 알았는데···. 과연 룩스메아 교단에서 오신 분들이셨군요. 이런 은혜를 베풀어 주시다니, 역시나 자애로운 신 룩스메아 님을 모시는 분들답습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성직자 행세를 하는 동안은 여관 대신 신전을 이용했더니, 숙박 사업이 이렇게까지 위태로워졌을 줄은 몰랐다.
앞으로는 일부러라도 여관에서 묵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혹시 다음에 또 들러서 돈을 써 달라고 호소하는 건가?
“일단 준비한 식사는 여기까지입니다. 그래도 디저트가 남았으니, 식사를 마치고 나면 바로 나가지 마시고, 저를 불러주···.”
여관 주인의 말은 끝까지 이어질 수 없었다.
줄곧 방문 앞에 서 있던 세르펜스가 별안간 문을 닫아 버렸기 때문이다.
“···부르러 내려오시는 게 귀찮으시다면, 여기서 대기할까요?”
여관 주인이 어리벙벙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투철한 서비스 정신을 관철했다.
이게 바로 300만 아스의 위엄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