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491)
공작님, 회개해주세요!-492화(492/1105)
492회
67. 공작님과 계승자들 (20)
“설명 다 끝났으면, 이제 방음 마법을 해제하고 싶은데···.”
아니마가 혼잣말로 웅얼거리며 에드나를 올려다보았다.
초롱초롱한 눈동자로 보아, 신관 행세하는 에드나가 보고 싶어서 저러는 게 틀림없다.
‘일반 신관님은 특별한 설정이 없어서 실망할 텐데···.’
에드나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부담스럽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대략적인 설명은 다 끝났습니다. 하지만 마법을 거두기에 앞서···. 휴마누스?”
세르펜스가 휴마누스의 이름을 다시금 입에 올렸다.
이름을 부르기 전에 짧은 머뭇거림이 없잖아 있었으나, 아까보다는 상당히 자연스러워졌다.
역시 무엇이 되었건 처음 한 번이 어려운 법인가 보다.
그러나 기쁜 일은 두 번 반복되더라도, 여전히 기쁜 법이다.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반복되었기에 더 기쁜 걸지도 모른다.
단발성 이벤트가 아니라, 앞으로도 쭉 이름으로 불러준다는 뜻이니까.
휴마누스가 눈을 빛내며 세르펜스를 바라보았다.
“응, 불렀어?”
“한동안은 저를 ‘신관 프레이’로 대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질문이나 제안할 일이 생긴다면, 일행의 대표인 ‘에인젤 주교님’께 말씀해 주십시오.”
“어, 으응···. 그럴게.”
세르펜스의 말에 휴마누스가 눈에 띄게 실망한 기색을 보였다.
장장 십여 년 만에 이름으로 불린 경사스러운 날에 들은 소리가 ‘한동안 남남으로 지내자.’였으니.
휴마누스가 저렇게 허탈해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방음 마법이 해제되면, 오르덴 님과 렉스 님은 저 사람들의 뒤쪽으로 가서 서 주세요.”
이 와중에도 유지스는 설정에 충실했다.
그녀는 후드를 단단히 눌러쓰며, 두 명의 가짜 성기사에게 배역에 걸맞은 위치로 갈 것을 요구했다.
그때, 세르펜스가 손을 들어 올리며 의견을 제시했다.
“렉스 님께서 후드를 쓰고 뒤에 가 계신다고 하더라도, 상체를 틀며 올려다보면 얼굴이 보일 수도 있습니다.”
“프레이 님의 말도 일리가 있네요. 그럼 어떻게 할까요?”
“가슴이 바닥에 닿도록 엎드리게 한 뒤, 눌러서 상체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고정하는 건 어떻습니까? 그리고 목에 검을 겨눈다면 섣불리 고개를 돌리지 못할 겁니다.”
“다소 위협적인 방법이지만, 그 정도는 해야 입을 열겠죠?”
세르펜스는 냉담한 표정과 목소리로 말했고, 유지스는 냉정하게 대답했다.
아직 방음 마법을 해제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연기 모드에 돌입한 것이다.
본격적인 설정극에 들어가기에 앞서 살짝 맛보기를 보여주는 건가 보다.
“연기···, 정말 잘하네···.”
인상 자체가 확 돌변해버린 세르펜스의 모습에 휴마누스가 떨떠름한 목소리로 감상을 말했다.
예의 ‘악몽’을 통해 본 것도 있고, 세르펜스의 과거 얘기도 들었으니.
세르펜스의 연기 실력이 수준급이라는 걸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으나, 직접 보는 건 또 다른 느낌인가 보다.
리에나와 푸로르도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세르펜스를 바라보았다.
성검 일행 중에서 세르펜스의 연기에 관심 없는 사람은 아니마가 유일했다.
아니마가 방음 마법을 해제하자, 윈스톤과 베일이 미행꾼들에게 다가갔다.
놈들은 손발이 묶인 채로 새우잠이라도 자듯 옆으로 누워있었다. 그러한 탓에 베일은 미행꾼 중 하나를 굴리기 위해 허리를 굽혔다.
반면에 윈스톤은 매우 효율적인 방법으로, 세르펜스의 명령 아닌 명령을 수행했다.
발끝으로 미행꾼을 굴린 뒤, 그 발을 바닥에 두지 않고 놈의 등 위에 올려둔 것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검을 빼 들어 그자의 목 언저리를 겨눴다.
현직 기사답게 절도 넘치는 그 동작에, 베일도 굽혔던 허리를 펴고 어정쩡하게나마 윈스톤의 행동을 따라 했다.
“으, 으윽···.”
“크윽···.”
등을 누르는 무게 때문인지 미행꾼들이 알아서 깨어났다.
놈들은 얼굴 가득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의문을 띠다가, 화들짝 놀란 표정을 거쳐, 당혹감에 물들었다.
“어, 어째서 내가 붙잡혀 있는 거지? 나는 분명 큰 도련님을 미행하다가, 성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베일에게 밟힌 놈이 얼떨떨하다는 투로 중얼거렸다. 이 상황이 현실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모양이다.
덕분에 세르펜스가 놈들을 어떻게 잡아 온 건지 파악할 수 있었다.
뒤에서 몰래 접근하여 한 방에 때려눕힌 것이 확실하다.
“첫째 님을 ‘큰 도련님’이라고 부르는 거로 보아, 영주님의 부하인가 봅니다?”
나는 베일의 발밑에 깔린 미행꾼. 줄여서 베발꾼 앞에 쭈그려 앉으며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베발꾼이 고개를 살짝 들어 올려, 나와 눈을 마주쳤다.
“목 옆에 칼 있으니까, 조심하세요.”
눈이 마주친 기념으로 충고를 해 주었더니, 베발꾼이 헉하고 숨을 크게 들이켰다.
“룩스메아 교단의 주교가 어째서 나를···.”
“‘나’가 아니라 ‘저희’라고 해야죠. 아! 칼 때문에 옆을 못 봐서 모르셨나? 저는 친절한 성직자니까, 특별히 알려드리겠습니다. 동료분께서도 함께 잡혀 와 계십니다. 혼자가 아니라서 적적하지 않아서 좋죠?”
“······.”
내가 가볍게 농담을 던졌으나, 베발꾼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떠오르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이해해주기로 했다.
원래 ‘꼰대식 유우머’는 웃기지 않는 게 정상이다. 누군가의 기분을 상하게 만드는 것에 최적화되어 있으니까.
나는 동료의 존재를 확인할 요량으로 곁눈질하는 베발꾼에게서 시선을 떼고, 윈스톤의 발밑에 깔린 윈발꾼을 살펴보았다.
윈발꾼은 얼굴을 딱딱하게 굳힌 채로, 침착하게 눈동자를 굴려 방 안의 사람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있었다.
베발꾼보다 신중한 성격인가 보다.
저런 놈은 대개 입이 무거우니까, 만만한 베발꾼 쪽을 파 봐야겠다.
“그런데 영주님도 참 이상하시지. 왜 자기 아들이 데이트하는데 미행까지 붙인 거래요?”
“그, 그건···. 큰 도련님께서 어떤 여자를 만나는지, 확인하실 생각으로···.”
“보통 이런 일 하는 사람들은 죽어도 윗사람의 지시를 비밀로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혹시 누군가에게 붙잡히면 그렇게 대답하라고 교육받았어요?”
“아닙니다! 주교님께서는 주인님의 손님이시고, 비밀을 지켜야 할 만큼 중요한 임무가 아닌 데다가, 무언가 오해가 있는 것 같아서···.”
내 물음에 베발꾼이 변명을 늘어놓았다.
세라투 자작이 대놓고 ‘나는 악마의 힘을 빌리고 싶다. 그런데 마침 악숭이가 첫째에게 접근할 것 같네? 그러니 너희가 당분간 따라다니며 지켜봐라.’라고 말했을 리는 없다.
그런 점에서 미루어 생각해 봤을 때. 베발꾼의 말대로, 챈들러가 만나는 사람이 궁금하다는 이유를 댔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일부러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는 주교님이야말로, 어째서 저희를 이렇게 잡아 놓고 위협하시는 겁니까? 게다가 교단 소속이 아닌 분들이 계시는 것 같···.”
“에인젤 주교님. 그렇게 불편하게 앉지 마시고, 여기에 편히 앉으십시오.”
윈발꾼이 처음으로 입을 열어 말을 꺼냈으나, 세르펜스에 의해 말허리가 동강 났다.
고개를 돌리니, 세르펜스가 기세등등한 얼굴로 베드 벤치를 들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일반 의자보다는 높이가 낮지만, 저기에 앉으면 발꾼이들의 눈을 보며 대화하기 힘들어질 것 같다.
“막내 신관님. 사람과 대화할 땐, 눈을 봐야 합니다. 그래야 이 사람이 거짓말을 하나 안 하나 확인할 수 있거든요. 그러기에 그 의자는 너무 높아서 안 돼요.”
내 말에 세르펜스가 자신의 손에 들린 의자를 심각한 표정으로 내려다보았다.
그러다가 결심했다는 표정을 짓더니, 앞으로나란히라도 하듯이 의자 다리가 정면으로 쭉 뻗도록 들었다.
“잘라주십시오.”
세르펜스는 윈스톤을 업신여기는 것처럼 턱을 치켜올리며, 어처구니없는 요구를 하였다.
하지만 윈스톤은 그 요구를 들어주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검이 훙 하고 휘둘러지더니, 의자 다리가 바닥에 투두둑 떨어진 것과 동시에 그의 검이 제자리로 돌아갔다.
사람 키만 한 대검을 휘둘렀다고는 믿기지 않는 속도로, 여관의 기물이 파손된 것이다.
“이제 됐습니까?”
윈스톤이 무심한 어조로 세르펜스에게 질문했다.
목소리에 감정은 담겨있지 않았지만, 어떻게 들어도 주군에게 할 법한 대사는 아니다.
“네, 됐습니다.”
세르펜스도 아무런 유감이 없다는 투로 대답했다.
부탁을 들어준 것에 대한 감사 인사 또한 없었다.
배역에 완전히 녹아든 두 사람을 보며, 나도 배역에 충실히 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 편하고 좋네!”
나는 쿠션과 상판만 남은 의자에 앉으며 감탄사를 터트렸다.
여관 주인에게 미안한 감정 같은 건 들지 않았다. 어차피 세르펜스가 의자 값을 지급할 테니까.
‘그보다 성검 일행의 반응이 궁금한데···.’
나는 슬쩍 뒤를 돌아, 그들의 표정을 살폈다.
세르펜스가 ‘전심전력으로 에인젤 주교님의 수발을 들고 있다.’라고 예고한 것이 무색해지는 얼굴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중에서도 가장 가관인 건, 역시 휴마누스였다.
휴마누스는 입을 헤 벌린 채로 멍하니 넋을 놓고 있었는데, 세르펜스가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나 보다.
내가 세르펜스의 머리를 쓰다듬는 모습을 봤는데도 저 정도라니.
지난 십여 년 동안 완벽한 모습만 보여왔던 세르펜스가 이런 행동을 하는 게, 여간 충격적인 일이 아니었나 보다.
리에나는 그냥 눈을 커다랗게 뜬 채 손으로 입을 가린 상태였고, 푸로르는 어처구니없다는 실소를 흘리며 뒷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휴마누스만큼 넋을 놓을 정도는 아니지만, 거대한 문화적 충격에 빠진 모습이다.
그런 일행들과 달리 아니마는 침착했다.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물색하다가, 소매 속에서 마법으로 축소시킨 스태프를 꺼내 들려고 했다.
에드나가 아니마를 말리지 않았더라면, 마법으로 소파를 옮기지 않았을까 싶다.
“여러분은 뭐, 할 얘기 없어요?”
나는 성검 일행을 관찰한 것에 개연성을 주기 위하여, 괜스레 의미 없는 질문을 던졌다.
아니마는 발꾼이들에게 관심이 없었고, 나머지 성검 일행은 대답할 정신이 아니었기에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 성검 일행을 대신하여, 세르펜스가 발표시켜달라는 듯 손을 들어 올렸다.
“할 말 있으면 해 보세요.”
“미행은 그 업무의 특성상, 수행원이 많을수록 들킬 위험이 커집니다. 그렇기에 보통 한 명 이상의 미행을 붙이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고작 아들의 연인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려고, 미행을 두 명이나 붙일 이유는 없다?”
“네. 주교님의 말씀대로입니다.”
나는 그저 세르펜스의 말을 다르게 표현했을 뿐인데, 세르펜스는 내 말이 옳다며 아부를 해댔다.
성검 일행 앞이라 조금은 자제할 줄 알았건만.
일관성 있는 설정에 박수갈채라도 보내주고 싶을 따름이다.
“보통 다수의 인원을 미행으로 붙이는 경우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우선 첫 번째 이유는 그 대상을 경호하기 위함입니다. 하나, 그간 보아온 세라투 자작의 행실을 생각하면 그럴 가능성은 현저히 떨어집니다.”
“그쵸. 첫째가 걱정된 거라면, 둘째랑 셋째한테 그런 것처럼 외출 금지령을 내렸을 테니까.”
“두 번째는 그 대상을 암살하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미행의 대상이 된 자는 오러도 사용하지 못하는 일반인입니다. 사람을 두 명씩이나 붙여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세르펜스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행을 전문으로 할 정도의 은신술을 익힌 자라면, 암살도 어느 정도 할 수 있으리라.
어쩌면 암살 쪽으로도 전문가라서 겸임 중일 수도 있다.
“세 번째는요?”
“위험한 자로부터 정보를 얻어야 할 때입니다. 이 경우 들킬 위험을 최대한 낮추면서, 누군가를 미끼로 버리고 남은 사람이 보고할 수 있도록. 둘에서 셋 정도의 인원이 동원됩니다.”
세르펜스의 말을 끝까지 들은 후, 나는 고개를 내려 발꾼이들을 바라보았다.
윈발꾼과 베발꾼. 딱 두 명이다.
여기에 세르펜스가 던진 깃펜에 맞아, 휴가를 떠난 것으로 추정되는 한 명을 더하면 정확히 세 명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