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494)
공작님, 회개해주세요!-495화(495/1105)
495회
67. 공작님과 계승자들 (23)
휴마누스는 복잡한 표정으로 세르펜스를 바라보다가, 돌연 피식 실소를 흘렸다.
“세르펜스가 이런 식으로 나에게 장난치는 날이 올 줄이야. 이제는 내가 정말 편해졌나 봐?”
“예? 장난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장난, 아니었어?”
“장난입니다.”
세르펜스의 대답에 휴마누스가 십년감수했다는 듯,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휴마누스의 모습에 세르펜스가 머쓱하다는 표정으로 옆머리를 넘기며 입을 열었다.
“그보다 하실 말씀이 있었던 것 아닙니까?”
“아, 맞다! 일단 편하게 앉아서 얘기하자.”
휴마누스가 소파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굳이 서서 얘기할 이유도 없고, 곧 식사가 나올 테니 나쁘지 않은 제안이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접시들을 떠올리기 전까지는.
이미 늦었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허겁지겁 테이블로 뛰어가 접시들을 한데 모아 쌓아 올렸다.
“그 접시들은···?”
“그, 그게···. 와플을 먹었던 접시인데···. 이따가 저녁을 다 먹고 나면, 막내 신관님 몫으로 따로 만들어 달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니 서운해하지 마세요.”
내 말에 세르펜스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누가 봐도 서운해하는 표정이다.
“세르펜스, 너 디저트 같은 거 안 좋아하지 않았어?”
“저는 ‘세르펜스’가 아니라, ‘신관 프레이’입니다. 그리고 신관 프레이는 어린 시절, 에인젤 주교님께 칭찬을 받을 때마다 간식도 하나씩 받았습니다.”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야?”
“교단에 맡겨진 어린아이가 외로움에 사무쳐, 칭찬과 인정에 목말라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간식의 달콤함을 바라는 것인지. 그 둘을 분별할 수 있을 리가 없고, 결국 양쪽 모두에 매달리게 되었다는 설정입니다.”
처음 듣는 설정이다.
그냥 어린아이 입맛이라서 디저트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될 것을. 저런 장황한 사연을 지어낼 필요가 있는 건지, 몹시 의문스럽다.
“그리고 프레이 님은 어린 시절부터 ‘성기사’로서의 재능이 출중했죠. 거기에 노력까지 더해졌으니. 에인젤 주교님께 칭찬과 간식을 받는 날이 유달리 많았을 거예요. 그로 인해 자신은 다른 아이들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고, 오만하고 도도한 성격으로 자라게 된 거겠죠?”
유지스도 지지 않고 새로운 설정을 즉석에서 만들어 냈다.
그리고 세르펜스는 그렇다고 말하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서 세르펜스가 디저트를 좋아한다는 거야, 아니면 디저트를 좋아하는 설정이니까 억지로 먹는다는 얘기야···?”
휴마누스가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질문했다.
눈치가 없어서 ‘이제 세르펜스라고 부르지 말고, 프레이라고 불러라.’라는 세르펜스의 의도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모습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세르펜스에 대해 알아가려고 노력하는 모습이기도 했다.
눈치 빠른 세르펜스는 그런 휴마누스의 노력을 알아채고, 잠시 설정 놀이를 그만두고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왔다.
“저는···, 으음···. 좋아합니다.”
“그랬구나. 그걸 알았더라면 공작저에 놀러 갈 때마다 간식을 가져가서, 같이 티타임이라도 가졌을 텐데.”
공작저에 갈 때마다, 집무실에서 일하는 세르펜스와 마주해야만 했던 휴마누스가 아쉽다는 듯 중얼거렸다.
일부러 그런 상황을 연출했던 세르펜스가 으흠, 헛기침을 했다.
갑자기 미안해졌나 보다.
“그런 개인적인 얘기는 이제 그만···. 나중에 따로 하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주셨으면 합니다.”
“아! 미안.”
“그리고 저희의 현재 신분에도 신경 써 주십시오. 어째서 제가 프라시더스 공작이 아닌, 신관 프레이로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알고 계시잖습니까?”
“응, 앞으로는 조심할게. 아니, 조심하겠습니다.”
나중을 기약하는 세르펜스의 말 덕분일까?
남처럼 지내자는 얘기에도 휴마누스는 기분 좋게 웃으며 대답했다.
“어색해서 그런데, 나는 편하게 반말하면 안 될까? 얘기를 나누다 보니 마음이 잘 맞아서, 친구가 되기로 했다는 설정으로···.”
“······.”
“어쨌든 하려던 말은 네가··· 아니라, 여러분께서 제국과 펠로 왕국의 국경 부근에서 붙잡은 악마 숭배자들이 지니고 있던 ‘주사기’ 형태의 물건에 관한 겁니다.”
휴마누스가 우리의 설정극에 슬그머니 숟가락만 올리려다가, 포기하고 본론을 말했다.
세르펜스는 그저 째려보기만 했을 뿐인데. 그게 거절의 뜻이라는 걸 알아보다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으나, 다른 사람이 아닌 휴마누스가 알아봤다는 점에서 괜히 대견스러웠다.
‘그건 그렇고, 나도 휴마누스가 존댓말하는 게 엄청 어색한데···.’
나한테만이라도 반말을 써 달라고 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건 에인젤 주교의 설정과 충돌하므로, 그냥 어색함을 참기로 했다.
“그 내용물이 응축된 흑마력이라는 것쯤은 여러분께서도 알아채셨을 겁니다.”
휴마누스가 세르펜스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 시선을 받은 세르펜스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본래 흑마력은 그렇게까지 뭉쳐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람의 몸에 투여된 후에도 한참이나 몸 밖으로 흘러나오지 않았다는 것도 그렇고···. 아! 이건 당시 교단에서 거두어 간 시체를 통해 알게 된 거라고 합니다.”
휴마누스가 말을 하다 말고, 추가 설명을 덧붙였다.
그 모습으로 보아 사람에게 직접 투여해 본 거냐고 교단 측에 질문했었나 보다.
“아무튼 흑마력이 한계치 이상으로 뭉칠 수 있었던 건, 그 안에 들어간 특정 성분 때문이었습니다.”
“조사 결과가 이제서야 나온 건, 그 성분의 정체를 파악할 수 없어서 그랬던 거로군요?”
유지스가 손을 들어 올리며 질문했다.
휴마누스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교단에서는 마법 시약 제조와 관련된 재료들을 구해서, 닥치는 대로 비교해 보았으나 그와 비슷한 것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외부의 기관에 도움을 청하기엔, ‘신성력을 사용하지 못하게 만드는 약물’이라는 증언이 걸려서, 제 동료인 아니마에게 성분 분석을 부탁하게 됐는데···.”
굉장히 꺼림칙하다는 듯. 휴마누스가 설명 도중에 말끝을 흐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도대체 그 내용물이 뭐길래 저렇게까지 기분 나빠 하는 건지, 불안해지려는 찰나.
“참고로 그 성분의 정체를 알아챈 건 접니다.”
휴마누스가 느닷없이 자랑질을 했다.
아니마의 자존심이 상했을까 봐, 걱정이라도 된 걸까?
에드나가 아니마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고, 아니마는 이때다 싶었는지 울상을 지어 보이며 에드나에게 엉겨 붙었다.
그런 아니마의 표정에서 분한 기색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알랑거리는 아니마에게서 신경을 끄고,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래서 그 성분이란 게 대체 뭡니까?”
“‘악마의 혈액’입니다. 공국 전쟁 도중, 악마와 싸웠을 때 그 피를 뒤집어쓴 적이 있어서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사람이나 동물 피와 많이 달라요?”
“네. 새까맣고 기름처럼 번들거리며, 일반적인 생물의 피와는 다르게 굳지도 않습니다.”
악마의 회복 속도는 일반적인 생물들과 궤를 달리한다.
상처가 나더라도 딱지가 앉을 새도 없이 바로 회복되니, 혈액 응고 기능이 없는가 보다.
“그런데 프레이 님은 저보다 악마와 싸운 횟수가 많은데도 몰랐습니까?”
“저는 악마와 싸운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어째서 그 주사기 속의 내용물을 직접 분석해 보지 않은 거냐고 물으신 거라면···. 주교님께서 위험하니 자세히 살펴보지 말라고 하셔서, 그 말에 따랐을 뿐이라고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세르펜스의 대답에 휴마누스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나와 세르펜스를 쳐다보았다.
나와 세르펜스 중, 누가 더 어처구니없는 사람인지 가늠해보는 듯한 시선이다.
“제가 안 말렸으면, 막내 신관님은 분명 자기 몸에 주사기를 꽂았을 겁니다! 얘는 그러고도 남을 녀석이에요!”
내 고자질을 듣고 나서야, 휴마누스가 무례한 눈빛을 거두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세르펜스가 긴 시간 동안 자기 자신을 억누르며 희생해 왔다는 사실을 이제는 알기에. 내 말을 이해하고 동조할 수 있는 거다.
“핵심 성분이 악마의 혈액이라면, 악마 숭배 세력이 그것을 완성한 건 공국 전쟁 도중일 겁니다.”
자기에게 불리한 얘기가 나오자, 세르펜스가 잽싸게 중요한 화두를 꺼냈다.
악마가 소환된 장소는 암흑가였다.
그 악마는 연기로 이루어져서 ‘혈액’이 없는 데다가, 세르펜스가 즉각 처치했다.
두 번째 악마는 볼타 산맥의 결계를 깨고, 마찬가지로 세르펜스가 해치웠다.
‘그 직후 세 번째 악마가 소환됐지만, 바로 자취를 감췄지···.’
네 번째 악마는 전쟁 도중에 나타나서 휴마누스가 없앴다고 들었다.
“설마 세 번째 소환된 악마는 처음부터 피를 뽑으려고 소환한 건가···?”
“악마를 ‘숭배’하는 세력이 할 만한 짓은 아닌 것 같은데요?”
내 혼잣말에 유지스가 모순되는 얘기를 들었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의구심을 드러냈다.
“마왕이 그렇게 하라고 지시를 내린 거겠죠. 그게 아니고서야, 악마가 인간들에게 자기 피를 제공하겠습니까?”
“그래도 연구에 필요하다고 말을 했으니, 악마에게 피를 제공하라는 명령을 내린 거 아닌가요? 그런 게 아니라면, 마왕이 처음부터 악마 숭배자들에게 악마의 피를 사용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게 되는데···. 흑마력은 신성력에 약하다는 게 당연한 상식이잖아요? 그런데 마왕은 어째서 악마의 피를 인간들에게 제공하면서까지, 흑마력을 응축시켜 투여할 생각을 하게 된 걸까요?”
유지스가 골똘히 고민하며 의문점들을 늘어놓았다.
마왕의 힘을 가로채 신성력을 없앴던 마왕펜스의 선례가 떠올랐지만, 그것을 입 밖으로 낼 생각은 없다.
“흑마력 쪽이 열세긴 해도, 어쨌거나 그 두 기운은 서로 충돌하잖습니까? 그러니 왕창 때려 부어서 신성력이 고갈되고 나면 어떻게든 되겠지 싶었나 보죠.”
“그런 발상이라면 진작에 떠올릴 수 있었을 텐데요? 그런데 어째서 기나긴 대륙의 역사상, 단 한 번도 쓴 적 없는 방법을 이제 와서 쓰기 시작한 걸까요?”
유지스의 질문을 듣고 나자, 불현듯 성검이 고장 난 것 같다던 휴마누스의 말이 떠올랐다.
마왕이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자신이 회귀했다는 자각은 하고 있으니.
시간을 조작한 룩스메아가 적지 않은 힘을 소모한 것쯤은 알고 있을 거다.
현재 대륙의 정세는 [성검의 주인] 때와 비교하자면. 아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안정적이다.
하지만 마왕이 원하는 건 대륙 제패가 아닌, ‘유일신’ 자리다.
‘룩스메아가 큰 힘을 소모한 지금보다, 마왕이 유일신 자리를 차지하기 좋은 타이밍이 있을까?’
그래서 악마의 피를 인간에게 제공한다는 자존심 상하는 짓을 감수할 정도로, 사활을 걸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신성력 보유자가 성직자만 있는 것도 아닌데, 굳이 성직자만 노리는 것도 이상하지 않아요?”
유지스가 또다시 의문을 제시했다.
이번 건 정말 감도 안 잡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