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495)
공작님, 회개해주세요!-496화(496/1105)
496회
67. 공작님과 계승자들 (24)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 봤지만, 그런다고 정답이 짠 하고 튀어나오는 일은 없었다.
어찌어찌 그럴듯한 추리를 떠올린다고 하더라도, 마왕과 인터뷰라도 하지 않는 이상 그게 정답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결국 여관 주인이 음식을 가져와 테이블 위를 가득 채울 때까지, 의미 없는 침묵만 길게 이어졌다.
이대로는 시간 낭비일 뿐인 것 같아서, 나는 포기 선언을 내뱉었다.
“에휴, 모르겠다. 다들 식사나 합시다!”
“엥? 이걸로 끝입니까?”
나보다도 먼저 고민을 내던지고, 지루하다는 표정으로 딴짓을 하던 푸로르가 의아하다는 듯 질문했다.
[성검의 주인]에서 표현된 푸로르는 감이 극도로 발달한 반면, 머리를 쓰는 일에는 쥐약이었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은 아무런 의견도 안 낸 주제에 남을 닦달할 정도로 파렴치한은 결코 아니다.
“왜요? 뭔가 이상한 점이라도 있어요??”
“아까 이단 심문관 나리께선 납치 대상이 만약 ‘신성력 보유자’였다면, 짚이는 구석이 있다고 얘기하셨잖습니까? 그래서 그거라도 설명해 주시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내 물음에 푸로르가 멋쩍다는 듯, 이를 드러내어 히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러고 보면 유지스는 ‘신성력 보유자는 성직자만 있는 게 아닌데, 굳이 성직자만 노리는 이유를 모르겠다.’라고 말하였다.
바꿔 말하면, 푸로르의 말대로 ‘악숭 세력이 신성력 보유자를 납치할만한 이유로 추정되는 바가 있다.’라는 뜻이 된다.
연이은 질문 세례에 이것저것 생각하느라 바빠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그냥 흘려보낸 것이다.
‘세르펜스라면 알아챘으려나? 그런데 왜 아무 말도 안 했지?’
그런 의문을 떠올리자, 고개의 방향이 자동으로 세르펜스를 향했다.
녀석은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그 행동에는 ‘선우도 그 이유가 뭔지 아니까, 잠자코 있었던 거 아닌가?’라는 의미가 담겨있었다.
“신 룩스메아께서는 사람들의 바람 속에서 탄생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 힘의 근원은 ‘신성력’이죠.”
세르펜스가 먼저 서두를 열자, 유지스가 뒤따라 부언을 달았다.
유지스가 짐작하던 바와 세르펜스의 생각이 동일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둘의 말을 종합해 본다면···.
“마왕이 완전한 신이 되려면 신성력이 필요하다는 겁니까? 그런데 신성력과 마왕의 힘은 서로 상극이잖아요.”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랍니다. 제 생각이 맞는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어요.”
내 말에 유지스가 양손을 휘휘 내저으며 말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터무니없는 추측이니, 깊이 생각하며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다.
하지만 두 기운이 상극이라는 것만 제외하고 본다면, 꽤 그럴듯하게 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혹시 마왕이 신성력을 이용하는 방법을 알아낸 건가?’
[성검의 주인]에서 타락펜스가 마왕의 힘을 가로채, 마왕펜스로 거듭났으니.마왕이라고 해서 신성력을 사용하지 못할 것도 없다.
어쩌면 타락펜스에게 힘을 빼앗겼을 당시. 무언가 힌트를 얻은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세르펜스도 비슷한 생각을 떠올린 것일까?
깊은 생각에 잠긴 녀석의 얼굴에 죄의식이 그림자처럼 드리워졌다.
마음 같아서는 등을 토닥여주면서, 세르펜스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하지만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기에는 보는 눈이 너무 많다.
“그런데 휴마누스 님. 교단에서 전해 달라던 얘기는 그게 전부입니까?”
“더 있습니다. 그 주사기 속 내용물에는 흑마력과 그것을 붙잡아두는 역할을 하는 악마의 혈액 외에, 정신 착란을 일으키는 마약 성분도 미량 섞여 있다고 했습니다.”
대충 말을 돌리려고 던진 물음이었는데, 휴마누스가 말할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는 듯 즉각 대답했다.
마약 성분도 들어 있었다는 얘기에, ‘악숭이가 또 악숭했네’라고 생각하는 찰나.
“그리고 성직자 중 한 분이 자진해서, 그 주사기 속 내용물을 본인에게 투약해 봤는데···.”
“예?! 아니, 그걸 왜요? 악마 숭배 세력에서 만든 물건을 대체 왜 쓴답니까?!”
이어진 말이 너무 얼토당토아니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휴마누스의 말을 가로채며 따지고 말았다.
과연 그 성직자는 스스로 나선다는 의미로 자진(自進)한 게 맞는 걸까?
희생정신을 발휘하여, 자진(自盡)을 한 건 아닐까?
“그게···. 나이가 있어서 슬슬 은퇴할 생각이 있었는데, 그 전에 대륙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들었습니다.”
자진(自盡) 쪽에 좀 더 무게가 실렸다.
세르펜스도 그렇고, 신성력을 지닌 사람들은 자신의 몸에 직접 실험해 보는 걸 좋아하는가 보다.
신성력이 있으니, 악숭이가 만든 약물 따위 얼마든지 정화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 때문일까?
‘아니, 뭐. 그래···. 성직자를 생포하려고 만든 물건이니까, 죽지는 않겠지.’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꺼림칙한 놈들이 꺼림칙한 성분들만 모아서 만든 걸, 자기 몸에 투여할 수 있다니.
나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다.
“아무튼 그래서 결과는 어땠는데요?”
“주입된 흑마력의 기운을 정화하느라 체내의 신성력이 고갈되었고, 한동안 신성력이 회복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악마의 피 외에는 특별한 성분이 들어 있지 않으니, 그것 때문인 것 같긴 한데···.”
“한데, 뭐요?”
“제가 악마의 피를 뒤집어썼을 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터라, 확실한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휴마누스가 아리송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어쨌거나 ‘한동안’이라고 말하는 거로 보아, 그 성직자는 무사히 회복한 모양이다.
“그렇다면 혈액을 제공한 악마 고유의 특성 때문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네···가 아니라, 세르펜스가 암흑가에서 마주쳤던 악마도 특이한 능력을 썼다고 들었습니다.”
세르펜스의 의견에, 휴마누스가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라고 말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설정 놀이가 영 어색한가 보다.
휴마누스는 불편하다는 낯으로 어물어물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어쨌거나 교단에서 전해 달라고 부탁한 얘기는 이게 전부입니다.”
휴마누스의 말이 끝나자, 세르펜스는 냅킨을 펼쳐서 내 무릎 위에 올렸다.
더 할 얘기가 없으면 식사나 하자는 말을 ‘신관 프레이’의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런 세르펜스의 행동을 본 아니마가 에드나를 바라보며 눈을 과하게 깜박거렸다.
에드나가 아니마의 목깃 안쪽으로 냅킨을 집어넣어, 턱받이처럼 받쳤다.
“저보다 저쪽이 더 문제 아닙니까? 저 둘은 그냥 평소처럼 지내고 있는데, 왜 나한테만 박정하게 구는 거야?!”
어색함을 참다못한 휴마누스가 아니마와 에드나를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휴마누스치고는 매우 예리한 지적이다.
아니마가 저렇게 달라붙는 대상은 오직 에드나 뿐이다.
그러니 저 둘이 붙어 있으면, 신관 레반다는 에드나와 동일 인물이라고 광고하는 거나 다름이 없다.
나는 곧장 아니마에게 경고했다.
“신관님께서 누군가를 챙기는 건 그다지 이상할 게 없다지만, 아니마 님께서는 조심해주세요.”
“아아, 그럴 수가! 으윽, 신관 언니. 저 마음이 너무 아파요, 신관 언니가 호오~해 주면 나을 것만 같은데···.”
아니마가 갑자기 가슴께를 움켜쥐며, 쓰러지듯 에드나에게 기댔다.
이런 걸 두고 위기를 기회로 삼는다고 말하는 건가 보다. 정말 보통이 아니다.
그런 아니마의 행동에 에드나가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마···님, 이러시면 곤란해요.”
“신관 언니가 곤란하다면 하는 수 없죠. 그럼 앞으로는 조심할게요.”
좀 더 질척거릴 줄 알았는데, 웬일로 아니마가 순순히 떨어져 나왔다.
심지어 얼굴에 미소까지 걸려 있었다.
추측하건대 에드나가 자신을 ‘아니마 님’이라 부르며, 존댓말을 쓰는 게 새롭게 느껴져서 그런 게 아닐까 한다.
설정 놀이가 처음일 텐데도, 제대로 즐길 줄 아는 모습이다.
휴마누스가 그런 아니마를 배신자 보듯 바라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며 포크를 집었다.
그냥 포기하고 밥이나 먹는 게 낫다는 걸 깨달은 모양이다.
* * *
세르펜스에게 와플까지 먹인 후, 우리는 영주성으로 돌아왔다.
별관에 도착하자마자, 시종장이 우리를 제대로 모시지 못했다는 이유로 주인님께 혼이 났다며 앓는 소리를 해댔다.
우리는 피곤하다는 말로 그를 떼어내고 방으로 올라왔다.
세르펜스는 들고 있던 두 개의 가방을 내려놓고, 당연하다는 듯이 내가 목욕할 물을 받으러 욕실로 향했다.
‘이제 물이 받아지는 동안, 내 가방을 정리하러 나오겠지.’
그런 생각을 떠올리기가 무섭게 세르펜스가 욕실에서 나왔다.
나는 녀석이 가방 정리를 시작하기 전에, 펜으로 무언가를 적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세르펜스가 가방을 내팽개치고 조르르 다가와, 아공간 주머니에서 종이와 펜을 꺼내서 내게 건넸다.
[ 오늘 밤에는 어떻게 할 거야? ] [ 고민 중이다. 그자의 계획이 무엇인지 모르니. ] [ 챈들러는 세라투 자작을 원망하고 있고, 악숭 세력은 챈들러가 가주가 되길 바라잖아?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 [ 세라투 자작을 죽이기 위한 계획이겠지. 알고 있다. ]세르펜스가 종이를 뺏어가서, 내가 쓰려던 글을 대신 적었다. 그러고는 걱정스럽다는 눈빛으로 내 표정을 꼼꼼히 살폈다.
나는 괜찮다는 의미와 고마움을 담아서, 살며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별로 효과가 없었는지, 세르펜스는 불만스럽다는 듯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 자꾸 그러면 확 꼬집어 버린다? ]내가 적은 글을 본 세르펜스가 입술을 도로 집어넣었다.
녀석은 입을 앙다문 채로 나를 흘겨본 뒤, 종이에 글을 적어 내려갔다.
[ 윈스톤이 받은 편지만 아니었어도, 그자를 감시하러 나갔을 거다. 하지만 그 계획 속에 에인젤 주교에게 해를 입히는 과정이 있을 수도 있잖은가? ]꼬집는다는 글에 반박하는 건 아니고, 그냥 본래 얘기하던 화제에 관한 내용이었다.
필담한 종이를 모으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이후라 그런가, 이 대화의 흐름이 괜히 신경 쓰였다.
‘진지한 얘기를 하다 말고, 느닷없이 꼬집어 버리겠다며 이상한 소리 하는 사람처럼 보이려나···?’
이래서야 세르펜스가 이 종이를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 없게 되었다.
나는 찝찝한 기분을 뒤로한 채, 글을 끄적거렸다.
[ 그 편지에 적힌 날짜도 일주일 뒤잖아? 그런 계획이 있더라도, 오늘은 끽해야 빨리 결정하라는 재촉 편지나 보내고 끝나겠지. ]깊게 생각할 것 하나 없는 내용이었는데도 세르펜스의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무슨 일인가 싶어 종이에서 시선을 떼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세르펜스는 눈을 가늘게 뜬 채로, 나를 노려보듯이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 눈을 왜 그렇게 떠? ] [ 요즘 수상하다. 왜 자꾸 나를 떼어놓지 못해서 안달이지? ] [ 내가? 언제? 설마하니 발꾼이들 잡으러 갔다 온 걸 얘기하는 건 아니겠지? ] [ 영주성에 도착했을 때. 밖에 감시하는 자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나를 욕실에 남겨두고 먼저 나갔잖은가. ]최소한 발꾼이가 무슨 말의 줄임말인지 물어볼 줄 알았는데.
이상한 단어를 쓰며 논지를 흐리려고 해 봐야 소용없다는 듯, 세르펜스는 신경도 안 쓰고 제 할 말을 적었다.
[ 며칠 전, 마인의 기운을 감지했을 때도 그렇다. 나는 선우의 안전이 조금이라도 더 확보된 후에 다녀오고 싶었는데, 나를 억지로 쫓아냈잖은가? ] [ 타당한 이유가 있었잖아. 그리고 그 덕분에 공왕의 머리카락을 찾을 수 있었던 거 아니야? ]나는 물음표를 그린 뒤, 어디 반박할 수 있다면 해 보라는 표정으로 녀석을 바라보았다.
세르펜스가 분하다는 표정으로 입술을 비죽 내밀었고, 나는 망설임 없이 왼손으로 녀석의 입술을 잡고 살짝 비틀었다.
[ 진짜로 꼬집는 게 어딨는가? ] [ 어딨긴 여깄지. 나는 한다면 하는 사람인 거 몰랐어? ]세르펜스가 나를 가만히 노려보다가, 고개를 흔들어 내 손을 떨쳐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