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496)
공작님, 회개해주세요!-497화(497/1105)
497회
67. 공작님과 계승자들 (25)
그런 반항적인 세르펜스의 행동에,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펜을 움직였다.
[ 아도르가 내 안전을 염려하는 마음은 잘 알고 있어. 그건 고맙다고 생각해. ] [ 그럼 뭐가 문제지? ] [ 너무 과하잖아. ]세르펜스는 내가 쓴 글을 눈으로 읽으며, 왼손으로는 자신의 입을 꾹 눌렀다.
무의식적으로 입술을 삐죽이려다가, 내게 또 꼬집힐까 봐 물리적으로 누르고 있는 모습이다.
[ 아도르는 예전에도 내 안전을 걱정하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잖아.지금은 아도르의 신성석으로 만든 세니어도 있고, 유지스와 윈스톤. 그리고 에드나 씨도 곁에 있어.
예전과 비교하면 훨씬 안전해졌는데, 어째서 아도르는 더 불안해진 거야? ] [ 이제는 <선우>의 존재가 적들에게 알려졌잖은가. ] [ 그래서 악숭이들이 나를 더 집요하게 노릴 테니까, 조심하는 것뿐이라고 말하고 싶은 거야? ]
내 물음에 펜을 쥔 세르펜스의 손이 움찔거렸다.
자신의 얘기가 그저 변명에 불과하다는 것을 본인 스스로도 알고 있다는 뜻이다.
그도 그러한 게, 지금의 나는 세르펜스의 보좌관이자 신의 사자인 ‘시온 리벨론’이 아니다.
룩스메아 교단의 주교급 인물인 ‘에인젤 H. 셀레스트’다.
실제 능력이야 어찌 되었건, 남들이 보기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 불안함은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이성을 갉아먹고 제 덩치를 키우지.아도르는 그런 식으로 자신이 키워낸 불안함에 사로잡혀 있는 것뿐이야. 내 말이 틀려? ] [ ]
답변은 없었다.
세르펜스는 정곡이 찔린 사람처럼. 아니, 정곡이 찔려서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하고 펜을 든 채로 굳어버렸다.
모든 것이 멈춘 것만 같은 정적 속에서.
쏴아아, 욕실에서 들리는 물소리가 유독 크게 느껴졌다.
‘아, 맞다. 물!’
나는 세르펜스의 눈치를 보며, 살금살금 욕실에 가서 물을 끄고 다시 방으로 나왔다.
그때까지도 세르펜스는 꼼짝도 하지 않고 그대로였다.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로 고개를 푹 숙인 뒷모습이 못내 안쓰럽다.
울컥한 마음에 녀석의 어깨를 두어 번 토닥여준 뒤, 내 자리로 돌아와 펜을 들었다.
[ 나는 아도르가 불안함 같은 부정적인 감정에 휘둘려, 자신을 잃지 않았으면 해.앞으로 일어날지도 모를 일을 대비하는 건 좋다 이거야.
하지만 일어날지도 모를 일을 걱정하느라, 당장 해야 할 일을 뒷전으로 미루지는 마.
나야 항상 보호받는 처지지만, 세르펜스는 적들과 싸우거나 정보를 구하기 위해 직접 나서야 하잖아.
그런 사람이 내 안전을 걱정하느라, 눈앞의 일에 집중하지 못하면 어떡해? ]
답답한 마음에 이것저것 늘어놓다 보니 글이 길어졌다.
그렇게 불안감을 퍼내어 쏟아냈는데도, 마음은 여전히 무거웠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걱정이 는다고 하더니···.’
어쩌면 불안감에 사로잡힌 건 나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세르펜스가 강하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언제나 녀석이 위태로워 보이니까 말이다.
[ 미안하다. 걱정을 끼쳐서. ]손이 떨린 탓인지, 세르펜스답지 않게 글자가 삐뚤빼뚤했다.
삐죽 튀어나오려는 입술을 누르던 그의 왼손은, 이젠 치밀어 오르려는 울음을 틀어막는 것처럼 보였다.
[ 그런 거로 따지면 나야말로 미안해해야지. ] [ <선우>는 잘못이 없다. 다 내가 잘못해서 ] [ 그렇게 따지면 아도르의 잘못도 아니지. ]나는 왼손으로는 펜을 쥔 세르펜스의 손을 잡아 멈추며, 오른손으로 글을 적었다.
세르펜스가 고개를 들어 올려 나를 바라보았다.
마음에도 없는 말로 자신을 위로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듯한 눈빛이다.
[ 내가 그동안 아도르나 다른 사람들만 믿고, 너무 조심성 없이 행동한 것도 없잖아 있는 것 같아서 그래.앞으로 내 행동 중에 불안해 보인다 싶은 게 있다면, 그때그때 알려줘. 고치도록 노력해 볼게. ]
나는 마침표를 찍은 후, 세르펜스의 손을 슬그머니 놓아주었다.
세르펜스는 머뭇거리다가 손을 움직여 글을 적었다.
[ 내가 바로 옆에 있을 땐, 이전처럼 편하게 행동해도 괜찮다. ] [ 날 지켜주겠다는 뜻이지? 고마워. ] [ 그리고 나도 앞으로는 내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보겠다. ]중간에 한 번 위기가 찾아오긴 했지만, 세르펜스는 울지 않고 나와 타협점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나는 그런 세르펜스가 기특해서, 녀석의 머리카락이 헝클어질 정도로 마구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자 세르펜스의 두 눈이 곱게 휘어졌다.
[ 웃으니까 보기 좋네. ]그냥 생각 없이 쓴 글에 세르펜스가 입을 가리던 왼손을 떼고, 더욱 환하게 웃음 지었다.
별것 아닌 얘기에도 이렇게나 기뻐하다니.
책임감이 막중해지는 한편,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예전에는 세르펜스가 가슴에 응어리진 울분을 토해냈으면 하는 마음에, 녀석이 울기를 바랐다.
하지만 역시 우는 것보단 웃는 게 좋다.
[ 아 참. 챈들러의 감시는 유지스에게 정령을 보내 달라고 부탁하자. ]내가 적은 글에 세르펜스의 눈이 동그래졌다.
정말 그래도 되느냐고 묻는 거다.
‘정령이 있다는 것은 곧 엘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우리가 정체를 숨기고 있는 이상, 정령은 돌발 상황이 벌어져도 즉각 대응에 나설 수 없다.
유지스와 멀리 떨어진 상태로 정령이 발휘할 수 있는 힘에도 한계가 있고.
그렇기에 세르펜스가 내 안전을 걱정하면서도, 직접 챈들러를 감시하러 가야 하나 고민했던 걸 테다.
[ 뭘 그렇게 놀라? ] [ 아까는 나를 내보내지 못해서 안달이더니, 갑자기 왜 마음을 바꾼 거지? ] [ 아닌데? 처음부터 그렇게 얘기할 생각이었는데? 못 믿겠으면 우리가 나눈 대화를 다시 처음부터 읽어 보든가. ]내 얘기에 세르펜스가 반신반의하며, 필담 내용을 처음부터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녀석의 눈동자가 종이의 맨 아랫단을 향했다가, 다시 맨 윗단으로 옮겨갔다.
‘백날 반복해서 읽어 봐라, 그런 내용이 나오나.’
나는 그저 오늘 밤에는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을 뿐이다.
그런데 세르펜스가 괜히 넘겨짚으며, 자신이 방에 남아야 할 이유를 변명처럼 늘어놓았다.
그래서 내가 반박한 게 전부다.
그 사실을 눈치챘는지, 세르펜스가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 정말 처음부터 그럴 작정이었다고? 내가 <선우>를 걱정하니까, 생각을 바꾼 게 아니라? ]앞으로 내 안전에 더 신경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건 맞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맹세컨대, 세르펜스에게 챈들러 감시를 맡기지 않을 생각이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종이의 위쪽.
세르펜스가 적은 [ 세라투 자작을 죽이기 위한 계획이겠지. ]라는 문장을 가리켰다.
어차피 챈들러가 노리는 건 세라투 자작의 목숨이다.
그렇기에 돌발 상황이라고 해 봤자, 챈들러가 세라투 자작을 죽이는 것 정도다.
르웰이나 클로반에게 해를 끼칠 가능성이 전무하다고는 장담할 수 없지만, 그 순서는 세라투 자작 이후일 거다.
그 정도면 어떻게든 막을 수 있다.
[ 그런 사람이 잘못되어도 <선우>는 가슴 아파할 거잖은가. ]세르펜스가 내 눈치를 살피며 끼적끼적 소심하게 글을 적었다.
도대체 녀석은 나를 어떤 사람으로 보고 있는 걸까?
[ 아니, 세라투 자작처럼 사람 같지도 않은 놈은 예외야.만약 세라투 자작이 잘못되었을 때 내가 가슴 아파한다면, 그건 그가 죗값을 치르지 않고 죽었기 때문이야.
피해자들에게 아무런 보상이 될 수 없어서. 죽고 나서도 오랫동안 그 피해자들을 괴롭힐 테니까. ]
솔직하게 말하자면 챈들러가 세라투 자작을 죽이는 것도 마음이 불편한 게 사실이다.
챈들러는 자신의 의지로 그것을 행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지만, 실상은 타인의 의지대로 조종당한 것에 불과하니까.
그런 건 복수도 뭣도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자신의 의지로 복수할 기회를 잃은 셈 아닌가?’
그렇다고 챈들러를 말리기 위해 세르펜스를 보낸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세르펜스 또한 아버지에게 학대를 당했던 아이였고, 끝내 제 손으로 전대 프라시더스 공작 부부를 죽였으니까.
챈들러를 감시하라는 건 그가 세라투 자작을 죽이는 장면을 지켜보거나, 세라투 자작을 보호하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세르펜스에게 그런 일을 시킬 수는 없다.
‘유지스에게는 미안하지만···. 세르펜스의 처지를 알고 있으니, 이해해 주겠지.’
마음 같아서는 감시고 뭐고 내팽개치고 싶다.
그러나 만에 하나라도 챈들러가 훼까닥 돌아서, 르웰까지 해친다면 큰일이니까 어쩔 수 없다.
유지스에게 텔레파시가 닿길 바라며. 속으로 그녀에게 사과하고 있는데, 세르펜스가 내 눈치를 보며 무언가 써 내려갔다.
[ 전대 프라시더스 공작 부부도, <선우>의 기준에서는 ‘사람 같지도 않은 사람’ 부류에 속하나? ]여기서 그렇다고 대답하는 건 쉽다.
실제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거짓말을 하는 것도 아니고, 세르펜스 또한 만족할 테니까.
예전이라면 고민할 필요도 없이, 무슨 그런 당연한 질문을 하느냐고 답했을 거다.
‘하지만 세르펜스도 이젠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날 때도 되지 않았나?’
이제는 스스로 생각해서 자신만의 기준을 세울 때도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건 몰라도 전대 프라시더스 공작 부부에 관한 건, 세르펜스가 스스로 정의를 내려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그들의 그림자는 평생 세르펜스를 따라다니며, 그를 괴롭힐 거다.
‘그러니까 얘가 아직도 이런 질문을 하는 거겠지.’
세르펜스가 그들을 혐오했다면 일이 이 지경까지 오지도 않았다.
범죄자나 악숭이의 목숨을 끊는 건, 이렇게까지 오래 담아두는 것 같지 않으니까 말이다.
내가 아무리 세르펜스를 안심시키려고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녀석의 생각이 변하지 않는다면 소용없는 짓이다.
불안과 죄책감은 예고도 없이 불쑥불쑥 찾아올 테고, 그때마다 나는 녀석을 안심시키기 위해 진땀을 빼게 될 테다.
‘그리고 세르펜스는 지금보다 더 나에게 의존하게 될 게 뻔해.’
내가 대답을 하지 않자 초조해졌는지, 세르펜스가 검지로 내 손등을 톡톡 건드렸다.
어째서 대답해 주지 않는 거냐고 묻는 듯 울먹거리는 표정은 덤이다.
이쯤 되면 ‘빨리 그렇다고 대답해라.’라고 강요하는 것에 가까웠다.
[ 잠깐 생각을 좀 하느라. ] [ 어려운 문제였나? ] [ 그건 아니고, 아도르의 생각이 궁금해져서. 아도르의 기준에서 그들은 어떤 사람이야? ]내가 되물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걸까?
세르펜스가 멍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방금 세르펜스가 그랬던 것처럼, 녀석의 손등을 톡톡 건드렸다.
[ <선우>는 내가 타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있잖은가. ]세르펜스가 정신을 차리고 글을 적었다.
나를 포함한 몇몇을 제외하면, 제대로 된 인간 취급도 안 하는 걸 뻔히 알면서 왜 이런 질문을 하느냐는 뜻이다.
[ 알고 있는데 그게 왜? 아도르는 그 사람들과 생판 모를 타인을 동일 선상에 놓고 있어? ]그 정도로 세르펜스가 그들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세르펜스는 흔들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 거 봐. 아니잖아. 그러니까 조금이라도 그들을 떠올리게 하는 얘기가 나올 때마다 괴로워하면서, 나를 찾는 거 아니야? ] [ <선우>의 말대로다. 나는 ]문장을 끝까지 쓰기도 전에 세르펜스의 손이 멈췄다.
그 손이 움직인 건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 나는 아직도 그들이 두렵다.그들을 죽이면서 대의를 위해서라고 나 자신을 합리화하려 했지만,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렇다고 복수를 위해 그들을 죽였던 것도 아니다.
그래서 그들이 죽었다는 걸 알고 있는데도, 종종 그들이 내 안에 살아있는 것만 같아. ]
세르펜스는 눈을 꼭 감은 채로 엉망진창인 글씨를 써 내려갔다.
[ 만약 그들이 지금 세르펜스의 눈앞에 나타나서, 그때와 똑같이 행동하려 한다면 어떻게 하고 싶어? ] [ 그냥 멀리 떠나보내고 싶다. 내 눈에 보이지 않고, 내 귀에 그들의 소식이 들리지 않는 곳으로. ]내가 질문을 적고 손등을 톡톡 건드리자, 세르펜스가 눈을 뜨고 대답을 적었다.
이제는 그들이 자신에게 한 행동이 불합리한 것이라는 걸 알고 있을 텐데. 그럼에도 평화롭기 그지없는 방식이다.
[ 그럼 그렇게 해. 좋은 방법이네. ]나는 세르펜스의 생각을 존중하며, 그를 응원해 주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