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500)
공작님, 회개해주세요!-501화(501/1105)
501회
67. 공작님과 계승자들 (29)
우리의 설정극은 어느덧 추리극으로 탈바꿈되어 있었다.
그러나 일반적인 추리극과는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했다.
작은 단서를 찾아내어 그것을 기반으로 생각의 가지를 뻗어 나가, 진실에 도달하는 게 보통이라면 유지스의 추리는 그 반대였다.
처음부터 진실을 알고 있는 상태로, 과정과 결론을 끼워 맞추는 방식이다.
‘게다가 그 과정 속에는 약간의 날조도 섞여 있지···.’
하지만 이 자리에서 그 사실을 아는 건, 우리 일행들뿐이다.
우리만 입을 다물고 있으면, 예의 ‘침입자’에 대한 진실은 영원히 묻히게 될 거다.
“사, 사주라니! 그게 대, 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립니까?!”
“말을 더듬는 걸 보니, 더 수상해 보이네요.”
“제가 마, 말을 더듬는 건, 원래부터···.”
“네? 하지만 조금 전만 해도 멀쩡하게 잘 말씀하셨었잖아요.”
“그, 그그, 그건···.”
챈들러는 더 이상 ‘악마 숭배자를 처단한 정의의 사도’가 아니다.
순간적인 충동으로 모든 일을 그르친 어리석은 사람이 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은 그 정도를 넘어, 누군가의 사주를 받아 살인 멸구를 한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샀다.
자신감은 이미 잃어버린 지 오래요, 상대는 자신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강자인 이단 심문관이었으니.
유지스가 챈들러를 몰아갈수록, 챈들러는 긴장하며 더욱더 심하게 말을 더듬었다.
그런 모습은 모두의 머릿속에 뿌려진 의심의 씨앗을 싹 틔우기에 충분했다.
“자, 잠깐만요. 이단 심문관님의 말씀은···, 큰 오라버니께서 악마 숭배 세력과 결탁해서 아버지를 죽였다는 뜻인가요?”
르웰이 얼떨떨하다는 표정으로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버지가 죽은 자리에서, 가주 직을 놓고 형제와 경쟁을 해야 한다면. 평범한 도덕관념을 가진 사람은 자괴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을 돕기로 한 우리가 챈들러를 악숭이로 몰아가는 듯 행동하니.
르웰이 당혹스러워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결탁을 한 건지, 아니면 그저 이용당했을 뿐인지는 아직 몰라요. 하지만 적어도 당신의 오라버니가 세라투 자작의 계획을 알아낸 게 아니라는 건 확실하답니다.”
“···설명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저 사람은 조금 전에 르웰 님을 향해, 그걸 대체 어떻게 알았느냐고 질문하셨잖아요. 그 질문에서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나요?”
유지스가 친절하게. 하지만 씁쓸함이 배어든 말투로, 르웰이 이해할 수 있도록 차근차근 설명을 시작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저는 한 가지 의문을 느꼈답니다.”
“의문이요?”
“세라투 자작의 지난 행동에 의구심을 느껴, 그의 계획을 알아챈 거라면. 어떻게 알았느냐고 따질 게 아니라, ‘너도 그걸 눈치채고 있었던 거야?’라고 물었어야 해요.”
“···아.”
르웰이 탄식을 흘리며, 챈들러를 바라보았다. 흔들리는 눈동자는 수많은 의문을 품고 있었다.
챈들러가 주춤거리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큰 오라버니, 정말···. 정말 그런 거예요?”
“아, 아니야! 누가 시킨 게 아니라···, 내, 내가···. 심판을 내린 거야. 아버지는 악인이니까···.”
한여름에 추위라도 타는 것처럼, 챈들러가 덜덜 몸을 떨면서 말했다.
자신의 연인을 감싸기 위해 저렇게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약자’라고 생각했던 사람에게 자신이 조종당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은 것뿐일까?
“되도록 당신에게 ‘과격한 수단’을 동원하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 말로 물을 때, 대답해 주셨으면 한답니다.”
몸을 떠는 챈들러가 안쓰러웠는지, 유지스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단 심문관 설정에 따라 ‘과격한 수단’을 운운하긴 했지만, 유지스의 말속에 담긴 건 협박이 아닌 부탁이었다.
자의로 악숭 세력의 일을 도운 것과 속아서 이용당한 건, 그 취급이 다르니까.
챈들러의 죄를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다는 유지스의 마음이 담겨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런 유지스의 마음은 챈들러에게 닿지 못했다.
“보아하니, 르웰과 뒤에서 모, 몰래 얘기를 나눈 것 같던데···. 르웰을 가주로 세우고 싶어서, 괜한 트집을 잡는 거 아닙니까? 제, 제가 가장 유력한 계승권자니까?”
우리가 괜한 트집을 잡아 챈들러를 몰아간다는 말은 틀렸지만, 그 외의 얘기는 사실에 근접했다.
챈들러가 사고를 치지 않았더라면 르웰을 도와 세라투 자작을 없애고, 그녀를 가주로 세울 예정이었으니까.
“교단은 계승권 싸움에 끼어들지 않는답니다. 그렇게 해야 할 이유도 없고요.”
“하···, 거, 거짓말! 이유가 없기는 왜 어, 없습니까? 르웰이 가문을 이어받으면 편의를 봐줄 테니까, 자기를 도와달라고···. 부탁한 거 아, 아닙니까?”
“억측으로 교단의 성직자를 모욕하는 건 그만두세요. 당신을 불리하게 할 뿐이니까요.”
“마, 마음에도 없는 말로, 걱정해 주는 척하지 마!!”
챈들러가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고는 작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엄지손톱을 잘근잘근 물어뜯었다.
가만히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니, ‘동정 따윈 필요 없어.’라는 말이 드문드문 들려왔다.
그런 챈들러의 모습에 세르펜스가 갸우뚱 고개를 기울였다.
마치 ‘그 좋은 걸 왜 마다하지?’라고 묻는 듯이 말이다.
‘동정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세르펜스 얘는 진짜···.’
이 녀석 때문에라도, 내가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으시다면, 그렇게 하세요. 하지만 대답은 제대로 해 주셔야 한답니다. 당신에게 세라투 자작의 계획을 알려준 건 누구죠?”
“어, 어째서 내가 누군가가 알려주지 않으면, 모,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르웰도 누, 눈치챘다면 저도 당연히···.”
“다른 누군가가 할 수 있었다고 해서, 당신도 할 수 있는 건 아니랍니다.”
유지스의 말이 자신을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졌는지, 챈들러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다.
“이제 그만하고 말씀해 주세요. 누가 당신을 부추겼죠? 직접 죽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더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암시를 준 사람이 분명 있을 텐데요?”
“그런 사람은 업, 없습니다! 다 내가 눈치채고, 생각해서···.”
“혹시 그 사람은 당신의 연인인가요?”
쐐기를 박는 유지스의 질문에 챈들러가 ‘흡!’하고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그러다가 제 실수를 눈치챘는지, 다시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고작 열아홉밖에 안 된 동생이나, 한낱 평민 나부랭이도 아는 걸, 나만 모를 거라고···. 그, 그렇게 단정 짓는 겁니까?!”
평민 나부랭이라니. 사랑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단어 선택이다.
연인을 감싸주는 게 아니라, 자존심 때문에 인정하지 못한 것 같다는 가설에 무게가 실렸다.
“지금은 자존심 같은 걸 세울 때가 아니랍니다.”
“나, 나는···, 자존심을 세우는 게···.”
“후우─.”
자꾸 고집을 부리는 챈들러의 행동에, 결국 유지스는 긴 한숨을 내뱉었다.
힘없이 늘어뜨린 어깨가 많이 지쳐 보였다.
그런 유지스가 안쓰러웠는지, 세르펜스가 팔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이제 그만 하십시오, 마테리아 님께서는 할 만큼 다 하셨습니다.”
“하지만···.”
“주교님께서 기다리고 계시는 게 안 보이십니까?”
유지스를 위로해 주려나 보다, 기특하네···라고 생각했던 것도 잠시.
세르펜스가 느닷없이 나를 들먹거렸다. 이건 대체 무슨 상황극인지 당최 알 수가 없다.
그래도 일단 맞춰주긴 해야 하니까,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불편한 기색을 연기했다.
“죄송해요, 제가 쓸데없이 고집을 부려서.”
“괜찮습니다, 그럴 수도 있죠.”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유지스에게 사과를 받으며 거들먹거렸다.
누가 나에게 쪽대본이라도 써서 던져 줬으면 좋겠다.
“이, 이제 근거도 없이 사람을 몰아가는 건, 그만두기로 한 겁니까?”
한창 자신을 몰아세우던 유지스가 물러날 것처럼 행동하자, 챈들러가 안심한 표정으로 자신의 희망 사항을 늘어놓았다.
그런 챈들러의 표정이 도로 일그러지는 건 금방이었다.
“이제 그쪽에게 자백할 기회는 없습니다.”
“자, 자백이라니···.”
“그쪽이 그 연인이라는 사람과 ‘세라투 자작 살해’를 모의하는 걸 지켜본, 증인이 있습니다.”
세르펜스가 불쾌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지극히 사무적인 말투로 말했다.
녀석의 말을 듣고 나서야 뒤늦게 발꾼이들의 존재가 떠올랐다.
‘아! 유지스는 챈들러의 죄를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어서, 챈들러가 직접 공왕을 고발하길 바란 거였구나.’
그러나 챈들러는 유지스의 선의를 걷어찼다.
하다못해 공왕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녀를 감싸주려 한 거였다면 동정심이라도 생겼을 텐데.
인간의 바닥을 본 것 같은 느낌에 착잡함만 생겼다.
“거, 거짓말! 제가 아버지를 죽일 거라는 걸, 미리 알고 이, 있었다면. 어째서 저를 막지 않았던 겁니까?”
“오늘 아침 식사 자리에서 세라투 자작을 죽이는 건, 연인분께서 세운 계획에 없었던 일이잖습니까. 그쪽이 충동적으로 살인을 저질러 계획을 망쳐 놓고, 어째서 자신을 막지 않았느냐고 묻는 건 대체 무슨 경우입니까?”
세르펜스가 모든 계획을 파악한 후, 그것에 대비하고 있었다는 식으로 말했다.
발꾼이들을 통해 얻은 정보는 ‘챈들러가 계획을 실행하려 한다.’라는 것뿐. 구체적인 내용까지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건 챈들러도 마찬가지다.
그는 우리가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모른다.
“세라투 자작이 그쪽에게 미행을 붙여 놓았다는 걸, 모르고 계셨나 봅니다. 그 연인이라는 사람은 미행이 붙었다는 걸 알고도, 세라투 자작과 협상을 하려고 놓아준 듯하던데···.”
세르펜스가 숨 쉬듯 자연스럽게 챈들러와 공왕 사이를 이간질했다.
챈들러의 얼굴에 노기가 서린 건 당연한 순서다.
“아, 아버지와···, 협상을 하려 해, 했다고?”
“연인의 배신을 눈치채어, 일부러 계획에서 벗어난 시각에 살인을 저질렀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었건만. 아무래도 제가 그쪽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했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세르펜스의 표정은 무심함 그 자체였다.
경멸이나 조롱보다도 더한 무시에 챈들러가 분노로 몸을 떨었다.
“만약 내가 방금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더라면···, 내, 내가···.”
“모처럼 계획을 세워 줘도 충동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보다, 세라투 자작처럼 치밀한 사람이 낫다고 평가한 게 아닐까 합니다.”
“가, 감히···, 내가 없으면 아, 아무것도 못 하는 하찮은 게, 감히 나를 아버지와 저울질하며, 평가를 해?!”
챈들러가 제 손으로 머리를 마구 쥐어뜯으며 길길이 날뛰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평가를 내린 건 공왕이 아니라 세르펜스였지만, 자격지심에 사로잡힌 챈들러의 귀에는 다르게 들리나 보다.
가만히 두면 상스러운 말이 챈들러의 입에서 튀어나올 기세라, 나는 그를 저지하기 위해 손을 들어 올리며 외쳤다.
“아무튼 그 연인분이 아버지를 죽이라고 부추겼다는 건, 첫째님 입으로 시인하신 겁니다?”
“···예?”
챈들러가 산발이 된 머리를 하고, 멍한 표정으로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