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502)
공작님, 회개해주세요!-503화(503/1105)
503회
67. 공작님과 계승자들 (31)
“그리고 막내 신관님이 첫째님한테 ‘연인분께서 세운 계획’이 어쩌고저쩌고 하며 들먹거렸잖아요? 사실 그 계획에 관해서, 저희는 아는 게 없습니다. 세라투 자작이 첫째님께 미행을 붙인 건 어제가 처음이었거든요. 그래서 뭔가 실행에 옮기겠다는 얘기만 전해 들었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주교님의 말씀은···. 정확한 정보가 없는 상태로 떠봤을 뿐인데, 큰 오라버니가 보기 좋게 걸려들었다는 뜻이군요?”
“네, 바로 그거죠! 이해력이 참 좋으십니다!”
나는 르웰의 깔끔한 정리에 감탄하며 짝짝짝 박수를 쳤다.
이런 내 행동에 르웰은 잠시 황당하다는 얼굴을 했다가, 이내 표정을 수습했다.
“말하지 않은 정보를 공유한다기보다는 거짓말을 바로잡는다는 느낌이긴 하지만···. 일단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일단이라뇨? 좀 더 감사를 표해 보세요!”
“어차피 증인을 이곳으로 데려오면 밝혀질 일 아니었나요?”
맞는 얘기라 반박할 말이 없다.
내가 쳇 하고 혀를 차자, 르웰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긴장이 많이 풀린 모습이다.
아무래도 우리가 공유하지 않은 정보는 이게 전부라고 생각하나 보다.
하지만 본론은 이제부터다.
“그보다 르웰 님, 폴드 공국의 공왕에 관한 소식을 들으셨습니까?”
“지금 대륙에서 그 마인에 관해 모르는 사람도 있나요? 자국의 백성들을 악마의 제물로 바쳐, 마물들을 부리는 힘을 얻었다지요?”
그렇게 답하며, 르웰은 뜬금없이 공왕에 관한 걸 왜 묻느냐는 표정을 지었다.
알고 있다니 설명할 거리가 줄어서 다행이다.
“르웰 님께서는 그 사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자는 선을 넘었어요. 어떤 사정이 있었든, 그건 지도자라면 결코 해서는 안 될 행동이에요. 그런 사람에게 마물을 지배하는 능력이 생기다니. 아이러니하다고 해야 할지, 고약하다고 해야 할지···.”
“그런 사람이 새언니가 된다면 어떨 것 같아요?”
“미쳤, 아니, 미치셨어요?!”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공왕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늘어놓던 르웰이 질색하며 소리쳤다.
다짜고짜 챈들러의 연인이 공왕이라고 말하면 놀랄 것 같아서, 돌려서 설명해 보았는데 정신 건강을 의심받을 줄이야.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니었나 보다.
심지어 세르펜스조차 ‘에인젤 주교’를 감싸주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주교님, 제발···. 설명할 때만이라도 진지하게 해 주십시오.”
베일이 사정이라도 하듯 간절하게 말해 왔다.
절절함이 가득 묻어나는 그 목소리에 르웰의 얼굴 근육이 경직됐다.
이러다가 내가 매일 장난만 치는 사람이라고, 르웰이 오해하는 건 아닐지 우려스럽다.
나는 정말 진지한 사람인데.
“정보 전달이 제대로 안 되는 것 같으니, 그냥 직설적으로 말하죠. 첫째님의 연인이 바로 그 공왕입니다.”
“네?! 그러니까 큰 오라버니께서 만나던 그···, 눈이 안 보인다던 평민 애인을 말씀하는 게 맞나요?”
한 번 완충 작업을 거쳤음에도 르웰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반문했다.
하기야. 챈들러가 자신의 연인은 ‘자기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사람’이라고 떠들어 댔으니.
모르긴 몰라도 엄청난 괴리감을 느끼고 있을 거다.
“마인의 가장 큰 특징은 역안이잖습니까? 눈이 안 보인다고 거짓말을 한 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 겁니다.”
“그렇···군요. 결국 큰 오라버니가 사랑하던 건, 전부 거짓이었네요. 오라버니의 마음도, 상대의 정체도. 전부 다.”
르웰이 한탄하듯 중얼거렸다.
자신의 큰 오라비를 딱하게 여기는 것 같기도 하고, 어찌 들으면 한심스럽게 여기는 것 같기도 했다.
뭐라고 말을 얹기 뭐한 주제다.
어차피 르웰도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닌 듯 보여서, 나는 말을 돌리기로 했다.
“그리고 성검의 주인과 그 일행이 공왕을 쫓고 있다는 것도 알고 계시죠?”
“그야 당연히···. 설마, 성검의 주인도 이곳에 와 계신 건가요?!”
“이번엔 빨리 눈치채시네요?”
“그건···. 됐어요.”
무언가 말하려는 듯하던 르웰이 입을 다물어버렸다.
“하긴. 마인이 주변에 있다는 소리를 들으면 현실을 부정하고 싶지만, 성검의 주인이 주변에 있다는 소리를 들으면 마음 한쪽이 든든해지는 법이니까.”
“···고생이 참 많으시네요.”
르웰이 나와 대화를 하다 말고, 베일을 바라보며 안쓰럽다는 투로 말했다.
베일은 그런 르웰의 동정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고초를 알아달라는 듯,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벌써 군신 간에 쿵짝이 참 잘 맞는다.
“어쩐지. 큰 오라버니 앞에서는 연인이 악마 숭배자일 거라고 말해놓고, 어째서 그녀를 잡으러 가지 않으시는지 의문스럽다 했어요. 이제 보니, 성검의 주인이 와 계셔서 그런 거였군요.”
“네, 뭐 그렇습니다. 아마 지금쯤이면 박 터지게 싸우고 있겠죠.”
“그렇다면 곧 보고가 들어오겠네요.”
영지 내에서 큰 전투가 벌어질 거란 말에 르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래도 간접 피해가 두려워 마인을 놓아준다면, 장차 더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보게 될 거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지, 르웰은 부채를 꽉 움켜쥐었다.
“그건 그렇고, 여러분께서는 같이 싸우지 않아도 괜찮은 건가요?”
“저희는 저희의 일을 해야죠.”
나는 르웰의 시선을 회피하며 대충 대답했다.
보는 눈이 없는 곳에서 싸운다면 모를까. 우리의 정체가 드러난다면, 변장까지 해 가며 이곳에 와 있는 이유가 사라진다.
‘베일은 제국에 나라를 팔아먹으려 한다는 소리를 들을 테고, 휴마누스는 휴마누스대로 자격 논란이 더 심해지겠지.’
사실 가장 문제가 되는 건, 휴마누스 쪽이다.
공왕의 능력을 생각했을 때, 성검 일행이 패배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들을 위협하려면 마물 한두 마리로는 어림도 없으니까.
즉, 공왕을 잡느냐 놓치느냐. 이게 관건이다.
‘[성검의 주인]을 통해서 본 공왕은 치밀한 성격이었어. 그런 사람이 도망칠 수단을 준비해 두지 않았을 리가 없지.’
휴마누스가 공왕을 처치한다면 단연코 만사형통이다. 하지만 놓치게 된다면 욕을 바가지로 듣게 될 거다.
그런데 여기서 세르펜스까지 나선다면 문제는 한층 심각해진다.
공왕을 처치해도 세르펜스 덕이 될 테다. 그리고 행여 공왕을 놓치기라도 한다면···.
‘사람들은 체념하겠지, 공왕을 잡는 건 불가능하다고. 그리고 언제 마물에게 습격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게 될 거야.’
세르펜스가 성검의 주인이 돼야 했다는 얘기가 나돌게 된 건, 악숭 세력의 이간책이다.
하지만 그 이간책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던 건, 사람들의 머릿속에 ‘세르펜스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20여 년이나 되는 긴 세월 동안.
모든 이들의 머릿속에 ‘제국의 프라시더스 공작이 성검의 주인이 되어, 대륙을 구원할 것이다.’라는 세뇌 아닌 세뇌가 자리하고 있으니까.
휴마누스가 고배를 마셔도, 세르펜스가 나섰더라면 하고 기대할 수 있는 거다.
반대로 세르펜스가 실패를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성검의 주인은 휴마누스였으니.
현 성검의 주인인 휴마누스와 세르펜스가 동시에 나서면 안 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이 둘은 함께 싸울 때, 완벽한 승리를 거두어야만 한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희망이 사라지면, 그땐 평화도 사라지는 거다.
‘[성검의 주인]을 통해 보았던 대륙의 모습처럼.’
지금은 여관 주인이 장사가 안 된다며 푸념을 늘어놓을지언정, 꿋꿋하게 여관 문을 열고 손님을 기다렸다.
하지만 [성검의 주인]에서는 무법자들을 피해, 모든 가게가 문을 꽁꽁 걸어 잠갔다.
“혹시 성검의 주인과 싸우셨어요?”
“예? 그게 무슨 소립니까?”
“저도 이상한 질문이라는 건 알지만, 주교님의 표정이 좀···.”
르웰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무리 내가 표정을 좀 굳혔기로서니, 성검의 주인과 싸웠냐는 질문을 받게 될 줄은 몰랐다.
대체 날 어떻게 보면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 따지려는 순간.
– 똑, 똑, 똑.
누군가가 응접실 문을 두드렸다.
르웰이 손을 뻗어 근처에 드리워진 호출 줄을 잡아당겼고, 잠시 뒤 기사와 시종장이 함께 방으로 들어왔다.
이상한 조합이다.
“마틴 경은 오늘 외부 순찰을 나가는 날이 아니었나요? 그런데 어째서 시종장과 함께 들어오시는 건가요?”
르웰이 보기에도 둘의 조합이 이상했는가 보다.
기사와 시종장이 같이 찾아올만한 일이라고는, 시종장이 수상한 짓을 하다가 기사에게 걸려서 끌려오는 것 말고는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시종장은 두 손과 두 발이 모두 자유로운 상태였다.
“보고할 것이 있어서 성에 왔다가, 영주 대리님께서 이곳에 계신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오던 중. 시종장이 복도에서 수상하게 서성거리기에 함께 오게 되었습니다.”
마틴 경이라 불린 기사가 굳은 표정으로, 시종장과 함께 응접실을 찾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시종장은 정말로 수상한 짓을 하다가 붙잡혀 온 것이었다.
‘그나저나 밖에서 들어온 거라면, 영주 성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일 텐데.’
영주가 죽고 막내가 영주 대리를 맡게 된 상황에, 수상해 보이는 사람을 끌고 올 생각까지 하다니.
훈련이 아주 잘 된 기사다.
“저, 저도 보고할 게 있어서 아가씨···. 아니, 임시 가주님을 찾아오게 된 겁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들어가지 않고 복도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던 건가?”
“그게 조금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지라···.”
마틴 경이 매우 의심쩍다는 표정으로 시종장을 노려보았다.
매서운 기사의 시선에 시종장이 몸을 움츠렸다.
“그보다 급한 일이 있으셨던 거 아닙니까? 저는 조금 나중에 보고해도 괜찮으니, 먼저 하십시오.”
시종장의 말에 마틴 경의 눈빛에 깃든 의심이 더욱더 짙어졌다.
하지만 정말 급한 일이 있었던 건지, 마틴 경은 시종장에게서 시선을 떼고 르웰을 바라보았다.
“루테일 거리 일대에 마물과 악마 숭배자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성검의 주인과 그분의 일행으로 보이는 분들이 나타나, 놈들을 막아선 상태입니다.”
루테일 거리면 공왕의 거처가 있는 장소다.
영주성 기준 동남쪽으로 한참을 가야 나온다나 어쨌다나 했던 것 같은데. 아무도 안 사는 곳은 아니나, 그럭저럭 외진 곳이라고 들었다.
공왕은 남들의 눈을 피하려고 그곳에 자리를 잡은 거겠지만, 전투로 인한 간접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건 다행이다.
“병사 지원이 필요한가요?”
“섣불리 전투에 개입하다간, 그분들의 발목을 잡게 될 겁니다.”
“영지민들은 무사히 대피했나요?”
“경비대의 모든 인원이 영지민들을 전투 영향권 밖으로 대피시키는 데 전념하고 있습니다.”
갑작스레 영주 대리를 맡게 되었음에도, 차분하게 상황을 파악해 나가는 르웰의 모습에 마틴 경의 눈빛에 이채가 감돌았다.
“부상자는요?”
“소란을 듣고 찾아갔을 땐, 이미 성검의 주인 일행분들이 놈들과 대치하고 계셨습니다. 그분들께서 조속히 조치한 덕분인지, 중상을 입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크게 다친 사람이 없다는 말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신성력도 없는데 부상자들을 치료해 달라는 부탁이라도 받으면 정말 난감해질 뻔했다.
‘휴마누스, 나이스!’
마물과 악숭이들이 뜬금없이 나타난 게 아니라, 성검 일행이 그들을 급습한 것이니만큼. 인명 피해가 없도록 준비를 철저히 하고 쳐들어간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