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505)
공작님, 회개해주세요!-506화(506/1105)
506회
67. 공작님과 계승자들 (34)
“한 명은 주교님의 방에 침입했던 자입니다.”
의아함이 표정에 드러났던 걸까?
아직 질문을 던지지 않았음에도, 윈스톤이 알아서 낯선 사내의 정체를 밝혔다.
의문이 해소되자 절로 손뼉이 쳐졌다.
“아! 그 젤리 도둑!!”
“젤리 도둑은 당신이지 않습니까!”
젤리 도둑이 울컥 소리를 질렀다. 그 목소리에서 억울함이 잔뜩 묻어났다.
누가 들으면 대단한 누명이라도 뒤집어쓴 줄 알겠다.
허락도 없이 남의 방에 침입하여, 멋대로 가방을 뒤적거린 주제에. 고작 젤리 하나 가지고 저렇게까지 억울해할 일인가 싶다.
“이상한 소리 하지 마세요. 애초에 그 젤리는 제 것인데, 도둑질이 어떻게 성립합니까?”
어처구니없다는 감정이 목소리에 그대로 실렸다.
세르펜스도 내 말에 동의하는지,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뚱해 보이는 표정이 마치, ‘귀담아들을 필요도 없는 소리를 들었다.’라고 말하는 듯했다.
이런 우리의 반응에 젤리 도둑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으나, 입만 벙긋거릴 뿐.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아까 주교님께서 젤리를 드셨다고 하시지 않았어요?”
젤리를 먹지 않은 젤리 도둑을 대신하여 말을 꺼낸 사람은 르웰이었다.
다른 사람이 같은 질문을 던졌다면, 아직도 나를 모르는 거냐고 장난치듯 대답했을 거다.
하지만 그녀는 정말 나를 모른다. 그래서 나는 친절하게 설명해 주기로 했다.
“나중에 다른 침입자가 나타나면 헷갈리잖아요. 그래서 별칭을 붙여준 것뿐입니다.”
“역시 당신이 먹었으면서···!”
젤리 도둑이 원통하다는 듯, 또다시 소리쳤다.
내가 젤리를 먹는 장면을 두 눈으로 봐 놓고, ‘역시’가 왜 붙는 건지 모르겠다. 자신에게 믿음이 부족한 자다.
조금 딱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오르덴 님께서는 알고 계셨습니까? 젤리를 먹은 사람이 주교님이라는 사실을···.”
“상식적으로 당연한 일입니다. 감시 대상의 음식에 손을 대는 감시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
베일은 윈스톤에게 말을 붙였다가, 졸지에 상식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투구 때문에 표정을 볼 수 없는데도, 침묵을 통해 베일이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누구보다 빠르게 젤리 도난 사건의 진범으로 나를 지목했지만, 사실은 긴가민가했었나 보다.
“그보다 저자는 어떻게 해서 함께 오게 된 겁니까?”
“저 두 사람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세르펜스의 질문에 윈스톤이 발꾼이들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젤리 도둑이 제 발로 ‘날 잡아가소!’ 하며 찾아오진 않았을 테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얘기다.
저 세 사람이 함께 일한다는 건 얼추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휴가처까지 파악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알았으면 어제 놈들을 잡고 나서, 바로 물어봤을 텐데.’
내가 이런 속 편한 생각을 떠올리고 있을 때.
옆에 앉은 세르펜스는 신경에 날을 세웠다.
“함정일지도 모르는 곳을 혼자 가신 겁니까?”
“예···? 아! 오늘 오전 중에 서문을 통해 세라투 령으로 들어올 예정이라고 들었고, 그곳에서 붙잡았습니다. 제가 먼저 묻지 않았다면 들을 수 없는 정보였고, 셋이 한 번에 덤빈다 한들 위협적인 수준은 아니었으며, 만약의 경우에도 성문을 지키는 병사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윈스톤이 잠시 얼타다가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안전이 확보된 상황이었음을 최선을 다해 알렸다.
이등병처럼 군기가 바짝 든 모습만 봐 오다가, 이등병처럼 어리바리하게 구는 모습을 보니까 느낌이 새롭다.
‘잠깐만, 이등병 같다는 점에서는 그게 그건가?’
이등병답지 않은 건, 윈스톤의 근육뿐인가 보다.
“서문이라···.”
세르펜스가 낮게 읊조리며 고개를 주억였다. 무언가와 타협이라도 하는 듯한 행동이다.
성검 일행과 공왕이 싸우고 있는 장소는 영주성 기준으로 동남쪽이었고, 서문은 당연히 서쪽에 있다.
그 전투에 휩쓸리지 않을 거라는 판단하에, 윈스톤이 움직였다는 걸 이해해 준 것이리라.
‘윈스톤은 조금 긴가민가한 경계에 있었는데, 과보호 목록에 제대로 추가해 뒀구나?’
세르펜스가 진심으로 아끼는 사람이 늘어났다는 사실이 기쁘면서도, 한 편으로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아끼는 사람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느니, 차라리 자신이 힘든 게 낫다고 생각하는 녀석의 사고방식 때문이다.
오랫동안 희생을 강요당한 까닭일까?
어쩌면 소중한 것을 가져보지 못한 탓에, 조그마한 흠집조차 견딜 수가 없어서.
그래서 제 사람들을 과보호하게 된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 휴마누스가 목록에 추가되면, 자기가 성검을 들고 싸우겠다고 하는 거 아냐?’
상상만 했는데도 아찔하기 그지없다.
그나마 다행인 건, 휴마누스가 친구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나 몰라라 할 위인(爲人)이 아니라는 점이다.
만약 휴마누스가 남보다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었다면, 나는 [성검의 주인]을 끝까지 읽지 못했을 거다.
휴마누스가 자신보다 모두를 위하는 사람이었기에. 언제나 정의로운 사람이었기에.
주인공이 눈새라는 고구마 설정을 이겨내고, 그의 이야기를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거다.
‘물론 태블릿 PC의 힘이 가장 결정적이긴 했지만···.’
나는 고개를 내려 두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태블릿 PC는커녕 스마트폰조차 없는 빈손이다.
무지막지한 허무감이 나를 덮쳤다.
“공을 세운 건 인정하겠습니다. 하나 주교님의 제일가는 수하는 바로 저, 프레이 A. 글라우벤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허무의 바다에 빠질 뻔한 나를 건져 올린 건, 세르펜스의 헛소리였다.
아니. ‘신관 프레이’의 설정을 빼고 ‘세르펜스어 해석기’에 돌리고 나서야, 그 진의를 파악할 수 있는. 고도로 암호화된 치하의 말이었다.
잘하셨습니다. 역시 당신은 내게 있어 제일가는 기사입니다. 그 사실을 잊지 말고, 앞으로도 지금처럼 안전을 신경 쓰며 행동해 주시길 바랍니다.
대충 이런 뜻이다.
세르펜스어 마스터인 나조차도 진땀을 빼게 한. 역대 최고 난도를 자랑하는 지문이었다.
과연 윈스톤이 이걸 제대로 이해했을지 모르겠다.
나는 긴장으로 마른 침을 삼키며, 손에 땀을 쥐고 윈스톤의 대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
윈스톤은 그대로 침묵하고 말았다.
아무래도 세르펜스의 말속에 숨겨진 뜻을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다.
지금은 보는 눈들이 많아 넘어가지만, 나중에 세르펜스의 옆구리를 찔러봐야겠다. 윈스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말로 다시 한번 얘기해 주라고 말이다.
그렇게 생각 정리를 끝낸 뒤. 나는 윈스톤에게 두었던 시선을 그의 옆에 있는 세 사람에게로 옮겼다.
그리고 한쪽 손을 들어 올리며 발언했다.
“어쨌든···. 묶이지 않은 채 제 발로 여기까지 따라왔다는 건, 저희에게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는 거죠?”
내 물음에 발꾼이들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나머지 한 명. 젤리 도둑의 의견은 다른 듯 보였다.
“뭐?! 너희 지금 주인님을 배신하겠다는 거야? 뒷골목에서 굶어 죽어가던 우리를 살려주고, 단련시켜서 한 사람 몫을 하게 해 주신 분을?!”
젤리 도둑이 그런 말은 듣지 못했다는 표정으로 버럭 화를 냈다.
이제까지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저러는 거로 보아, 발꾼이들이 같이 가자니까 생각 없이 쭐레쭐레 따라왔나 보다.
‘발꾼이들이 어째서 세라투 자작 따위에게 충성을 보이나 했더니···.’
그들이 어린아이였을 때, 세라투 자작에게 거두어진 모양이다.
챈들러와 클로반을 제 입맛대로 키운 것처럼. 이 세 명도 세라투 자작이 원하는 대로, 자신에게 충성을 다 하도록 키워낸 걸 테다.
“주인님은 돌아가셨어.”
윈발꾼이 골치 아프다는 듯 이마를 손으로 짚으며, 짧고 간결한 문장을 입에 담았다.
그러자 젤리 도둑이 ‘어···?’와 ‘뭐···?’ 사이의 어중간한 발음으로 반문했다.
저 짧은 문장이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세라투 자작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가 보다.
“우리를 데려온 성기사님의 말씀에 의하면, 오늘 아침. 식사 도중 큰 도련님의 손에 살해당했다나 봐.”
“뭐?! 음침해 보이는 게, 언젠가 사고를 칠 것 같더라니···.”
누구보다도 음침한 직업을 가진 젤리 도둑이 분하다는 표정으로,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세라투 자작 같은 놈의 죽음에 분통을 터트리다니.
고된 훈련을 시키면서도 충성심을 길러야 하는 만큼. 세라투 자작이 저들에게는 친절하게 대해 주었나 보다.
‘친자식들에겐 더없이 잔인하게 굴었으면서···.’
딱 봐도 챈들러와 클로반보다 정서적으로 안정된 세 사람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영 께름칙하다.
아동 학대범을 두고, ‘그럴 사람이 아닌데···.’라고 말하는 동네 사람 인터뷰를 듣는 느낌이다.
“언젠가 사고를 칠 사람은 주인님 쪽이겠지.”
“너,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설명할 테니까, 제발 둘 다 입 좀 닥쳐!”
빈정거리는 베발꾼의 말에 젤리 도둑이 욱하며, 베발꾼의 멱살을 틀어쥐려 했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의 사이에 윈발꾼이 끼어들었다.
‘얘네가 정보원인지 암살자인지, 둘 다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그쪽 분야를 업으로 삼는 사람은 과묵한 이미지로 상상하고 있었는데.’
직업과 성격은 별개인가 보다.
나는 머릿속에서 편견을 하나 지웠다.
그동안 윈발꾼은 젤리 도둑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을 설명했다.
챈들러가 연인과 나눈 대화.
세라투 자작이 악숭 세력과 만나기 위해 챈들러를 미끼로 쓰려 한 일.
그리고 챈들러의 연인이 마인이라는 것까지.
“어? 마인 얘기는 큰 성기사님께서 말씀하신 겁니까?”
“예. 그 정도는 알고 있어야, 순순히 따를 것 같아서 얘기해 두었습니다.”
윈스톤의 입이 가벼운 편은 결코 아니다. 입이 무거운 정도를 넘어, 말수까지 적었다.
그런데 세라투 자작의 죽음에 이어, 마인에 관한 얘기까지 설명해 놓았을 줄이야.
‘우리가 설명할 필요 없이, 자기들끼리 얘기를 나누니 편하긴 한데···.’
갑자기 윈스톤이 수다쟁이가 된다고 하더라도, 문제 될 건 없지만.
의외라는 생각은 지울 수가 없다.
“연인을 인질로 잡고 첫째 공자를 협박해야 한다고 떠들어대기에, 다시 기절시킬까 하다가 어차피 얘기해야 할 것 같아서 말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채 입을 열기도 전에 윈스톤이 알아서 설명을 시작했다.
오늘만 해도 벌써 두 번째다.
“또한, 이 셋은 세라투 자작의 밑에서 오랫동안 눈과 귀가 되어 왔습니다. 구태여 궁금해하지 않아도, 가문의 일에 많은 것을 알고 있을 겁니다.”
“세라투 자작의 죽음이 알려지면, 젤리 도둑이 도망가서 세라투 가문의 정보를 팔아 치울지도 모르니까, 발···. 아니, 저 두 사람에게 협조를 구해서, 젤리 도둑까지 잡아 왔다. 그 얘기죠?”
“그렇습니다.”
윈스톤이 ‘발’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무덤덤한 말투로 대답했다.
그러자 어째서인가 발꾼이들이 뒤통수라도 맞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에게는 악마 숭배자의 하수인 취급을 받고 싶지 않다면, 순순히 협조해야 한다고 말하더니···!”
“그 말도 사실입니다.”
발꾼이들이 발끈하든 말든, 윈스톤의 목소리는 태연하기 짝이 없다.
설정극에 익숙해지더니 뻔뻔함만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