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507)
공작님, 회개해주세요!-508화(508/1105)
508회
67. 공작님과 계승자들 (36)
르웰은 먼저 실례하겠다는 말을 남긴 뒤, 베일과 함께 응접실을 나갔다. 젤리 도둑 외 2인도 그들을 따라갔다.
그리고 우리는 짧은 작전 회의 시간을 가진 후. 자리에서 일어나 챈들러의 방으로 향했다.
“큰 성기사님, 잘하실 수 있죠?”
“···노력해 보겠습니다.”
내 물음에 윈스톤이 끄응 앓는 소리를 내며 대답했다.
그 목소리에 긴장감이 가득했다. 처음으로 주역으로 나서서 연기를 펼친다는 게 부담스러운가 보다.
윈스톤이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응원해 줘야겠다.
“그럼 저희는 옆방에서 대기하겠습니다. 파이팅!”
나는 주먹을 들어 올려 파이팅 포즈를 취해 보이고, 세르펜스가 열어준 문 안쪽으로 들어갔다.
챈들러의 옆방은 개인 서재 겸 집무실이었다.
대대로 가문의 후계자가 가주를 도와 영지 관련 업무를 볼 때, 이곳에서 일했다고 들었다.
‘위치상으로 봤을 때, 그냥 첫째의 옆 방에 마련된 서재라서 자연스럽게 후계자의 집무실이 된 것 같지만.’
가문의 역사가 길어짐에 따라, 상징적인 의미가 생겨난 걸 테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챈들러가 이 방을 쓰는 건 허락되지 않았고, 지금은 주인 없는 방이라고 한다.
그래도 관리는 꾸준히 되고 있었기에 내부는 깔끔했다.
“자, 신관님. 빨리 이리로 와서 그거 꺼내 봐요! 도청 장치!”
나는 후다닥 책상 앞으로 가서 의자를 빼고 에드나에게 얼른 오라고 손짓했다.
에드나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으며, 주먹 두 개를 붙여놓은 크기의 마력석을 꺼내어 책상에 올렸다.
표정이 영 못마땅한 게, 아니마와 함께 만든 마법 도구를 내가 도청 장치라 칭해서 마음이 언짢아졌나 보다.
“도청 장치가 아니라, 통신구(通信球)예요. 거리가 짧아서 그렇지.”
“반경 10미터 거리면 그냥 크게 말해도 들리는 거린데, 통신구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 않아요?”
“지금처럼 다른 방에 있을 땐 유용하잖아요. 그리고 목소리를 마력 신호로 변환하여 실시간으로 전달하고, 그것을 받아서 다시 목소리로 변환하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진행하는 게. 얼마나 복잡한 문장 구성과 고난도의 계산을 요구하는지 아세요? 그뿐만이 아니라 상대방이 움직이는 위치에 따라 변화하는 좌푯값을 쫓아···.”
어쩐지 전화기 내지는 무전기를 떠올리게 하는 설명이다.
비록 거리 제한 때문에 실 전화기 수준에서 그쳤지만.
“마력 신호가 너무 강하면 다른 사람이 눈치채 버리고, 너무 약하면 먼 거리까지 도달할 수 없다는 문제에 부딪혀 연구를 중단했지만···.”
확 끓어올라 열띤 설명을 늘어놓던 에드나가 돌연 맥 빠진 목소리로 한탄했다.
마력을 감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 존재하다 보니, 마력을 이용한 통신은 한계가 있는 모양이다.
‘공간을 잇는 게이트 마법은 존재하면서, 통신 마법이 없는 게 그런 이유였나?’
말의 내용이야 암호화할 수 있다 하더라도.
길 가던 마법사가 마력 신호를 감지하여, 장난으로 신호를 조작하기라도 한다면 엉뚱한 말이 전달될 테니까.
아니면 신호 자체를 끊어버릴 수도 있고.
더군다나 에드나와 아니마는 마법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탑에서 지냈으니, 그러한 단점이 더욱 두드러졌을 거다.
‘게다가 아니마는 에드나와 떨어져 지낼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을 테니까. 10미터 정도로 만족한 거겠지.’
통신 마법 개발에 더욱 매진했어야 한다며, 땅을 치며 후회 중일 아니마의 모습이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어디까지나 내 상상 속의 모습일 뿐. 현실의 아니마는 날아다니는 마물들을 상대로 공격 마법을 펑펑 날리고 있겠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이건 어떻게 작동하는 건가요?”
원래대로 성검 일행에 들어갔다면, 아니마의 옆에서 쉴 틈 없이 화살을 쏘느라 정신없었을 유지스가 질문을 던졌다.
검지로 통신구를 가장한 도청 장치를 톡톡 두드리는 모습이 매우 한가로워 보인다.
“아! 제가 할게요. 저희 쪽에서 나는 소리를 반대편에 전달하지 않도록, 마법진을 건드려야 해서···.”
에드나가 동그랗게 가공된 마력석에 마력을 불어넣으며 말했다. 이로써, 저 물건은 도청 장치에 한 발짝 더 다가서게 되었다.
그럼에도 유지스는 저 물건을 통신구로 대우해 주었다.
“반대쪽 통신구에는 마력을 넣지 않아도 괜찮은 건가요?”
“20분···. 아니, 단방향 통신이니까 30분 정도는 충전된 마력으로 작동시킬 수 있어요.”
어차피 세부 조작을 하려면 마법사가 있어야 하는 듯하니, 배터리 효율까지는 고려하지 않았나 보다.
마법사가 아니면 전화조차 할 수 없다는 안타까운 현실에 눈물을 삼키는 순간.
에드나의 마력을 흡수만 하던 둥근 마력석 내부에서 푸른 빛이 흘러나왔다.
“된 겁니까? 아무것도 안 들리는데요?”
“저쪽에서 아무 말도 안 하는 거겠죠.”
내가 마력석에 귀를 바짝 가져다 대고 질문하자, 에드나가 불퉁하게 대답했다.
그러면서 마력석을 자신의 앞으로 바짝 끌어당겨 놓았다. 아무래도 삐졌나 보다.
‘아무리 연구가 중지된 시제품일지라도, 만든 사람에겐 애정이 담긴 물건일 텐데···.’
내가 너무 무신경했다.
반성의 의미로, 앞으로는 저것을 통신구라고 불러 주어야겠다.
{ 갑자기 감시자를 바꾼 건 그 주교의 명령입니까? 차기 성기사 단장이 오러도 다룰 줄 모르는 일반인을 감시하다니···. }
통신구에서 챈들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기 자신을 향한 것인지, ‘성기사 오르덴’을 향한 것인지 모를 조롱이 배어난 목소리다.
{ 루테일 거리에 마물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부리는 건, 당신의 연인을 가장한 마인. ‘러스티 뤼제 폴드’로 밝혀졌습니다. 그자가 자신의 정보를 숨기기 위해 당신을 암살할지도 모르기에, 제가 경계를 서게 되었을 뿐입니다. }
이번에 말 한 사람은 윈스톤이다.
그는 말을 더듬는다거나 혀가 꼬이는 일 없이 준비된 대사를 무사히 마쳤다.
청취자가 있는 걸 알면서도 민망해하는 기색조차 없다니. 윈스톤도 은근히 연기에 소질이 있는 것 같다.
{ 러스티 뤼제 폴드···. 스칼렛이란 이름은 가명이었나···. }
챈들러가 서글픔과 불쾌함이 뒤섞인. 배신감에 젖어 든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통신구는 윈스톤의 가방 속에 넣어 두었는데, 용케도 챈들러의 혼잣말까지 잡아냈다.
벽 주변에서 서성거리며, 청각을 곤두세우던 세르펜스가 슬그머니 내 옆으로 와서 붙었다.
챈들러의 방도 그렇고 이 집무실도 그렇고 방음이 제법 좋은 편이니.
자신의 청각에 의존해 옆방의 소리를 듣는 것보다, 통신구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는 게 낫다는 사실을 인정한 거다.
“그런데 편지에 관해 그냥 물어보지 않고, 이런 번거로운 방식을 쓰는 이유가 있긴 해요? 괜히 도청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영 껄끄러운데···.”
“도청이라니, 그게 무슨 소립니까? 이것은 통신구니까 수신한다고 표현해 주세요.”
내 말에 에드나가 눈을 흘겼다.
나는 정말로 통신구를 통신구로 받아들여서 한 말이었건만. 에드나의 귀에는 비아냥거림으로 들린 모양이다.
{ 어째서 제게 그런 편지를 보낸 것입니까? }
{ 그새를 못 참고 시종장이 떠들어 댄 건가? 믿을만한 자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가주 자리에 걸맞은 사람은 나뿐이라고 할 땐 언제고, 벌써 르웰에게 붙다니···. }
챈들러의 목소리는 대답보다는 독백에 가까웠다.
갈수록 웅얼웅얼 부정확하게 발음이 뭉개지는 거로 보아, 손톱이라도 물어뜯고 있는가 보다.
“아무튼 이유를 설명하자면, 이쪽이 훨씬 간편하고 빠른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아침에도 봤잖아요? 자존심 세우느라 자신이 이용당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우겨대는 거. 대놓고 공왕이 시켜서 한 짓이냐고 물어보면, 자기는 자발적으로 성직자들을 이간질한 악숭···. 악마 숭배자라고 주장할 게 뻔합니다.”
“고작 자존심 때문에 그런 짓을 한다고요?”
“챈들러가 정말 세라투 자작이 악마 숭배자라서 죽인 건 아니잖아요. 죄가 더해져도 벌을 받는 건 똑같으니까···.”
“제기랄, 그렇겠네요!”
에드나가 내 말을 가로채며 비속어를 내뱉었다.
챈들러는 자기 입으로, ‘약해 빠진 주제에 자신에게 훈계하는 꼴을 참을 수 없어서 아버지를 죽였다.’라고 시인했다.
그것이 마인의 꾐에 넘어간 결과라 할지라도, 챈들러의 살해 동기까지 변하는 건 아니다.
결국 그는 심판대에 서게 될 테니.
연좌제를 이용해, 평소 자신을 깔보던 클로반을 길동무로 삼으려 할 가능성이 농후했다.
에드나도 그 점을 깨닫고 분노를 터트린 것이리라.
{ 이제 혼잣말은 다 하셨습니까? }
나와 에드나가 대화하는 내내 배경음처럼 깔리던 챈들러의 중얼거림이 멎고, 윈스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화를 멈추고 조용히 귀를 기울여 봐도 챈들러의 답변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 또한 침묵한 것이다.
{ 아까 저를 바라보며, 에인젤 주교에게서 벗어나 보라는 듯이 말씀하셨잖습니까. }
{ 그때 알아챈 거였나···. 그래서, 지금 그 얘기를 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제가 교단에 끌려가서, 편지에 관해 언급할까 봐 무서워져서? }
통신구에서 킥킥거리는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경망스러운 웃음소리를 뚫고, 윈스톤의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제가 직접 에인젤 주교를 없앨 수 없다면, 도와주겠다고 하셨잖습니까. }
{ 지금 무슨···. }
{ 일주일 뒤에 알려주겠다던 그 방법은 무엇입니까? }
{ 어, 어어···. }
소리만 듣고 있어도 챈들러가 얼마나 당황했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윈스톤은 챈들러가 정신을 추스를 틈을 주지 않았다.
{ 어서 말씀하십시오. }
낮게 깔리는 윈스톤의 음성이 사뭇 섬찟했다. 이어서 흡 하고 숨 들이켜는 소리와 철컥거리는 금속음이 들려왔다.
눈 감고 공포 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 다른 건 몰라도. 남들의 눈을 피해 에인젤 주교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까, 그런 편지를 쓰신 것 아닙니까? }
진득한 살기가 묻어나는 윈스톤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처음 그를 만났던 날이 떠올랐다.
그때 나에게는 세르펜스가 있었지만, 지금 챈들러에겐 아무도 없다.
단둘이 있는 공간에서. 갑옷 입은 거구의 사내가 살기를 흩뿌리며, 한 발짝씩 천천히 다가온다고 상상하니 그야말로 아찔하다.
그러한 상황을 실제로 겪고 있을 챈들러는 오죽할까.
“시···, 주교님. 혹시 오르덴 님께 큰 잘못이라도 저지르셨어요?”
“큰 성기사님은 저를 향한 악감정을 담아서 연기하고 계신 게 아닙니다. 그리고 설정을 잠시 까먹을 수는 있지만, 어중간하게 ‘시’만 입에 담았다가 철회하지는 말아주세요. 신관님이 그러시면 욕하다가 만 것 같다고요.”
“죄송해요. 마력을 쓰고 있다 보니, 지금은 어느 쪽에 맞춰서 얘기해야 하는지 헷갈려서 그만···.”
에드나가 아차 하는 표정으로 사과했다.
어차피 우리끼리만 있었기에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아니,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쉬잇-, 집중해 주세요. 특히 주교님. ‘첫 주연작을 지켜봐 줄 의무’가 어쩌고 하면서, 레반다 님께 적절한 마법이 없느냐고 물어보기까지 하셨으면서. 딴짓하시면 안 되죠.”
유지스가 검지를 세워 입 앞에 가져다 대며 눈치를 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영화관 진상 손님이 되지 않기 위해, 입을 다물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