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510)
공작님, 회개해주세요!-511화(511/1105)
511회
67. 공작님과 계승자들 (39)
마음에 큰 돌을 하나 얹은 채. 우리는 성검 일행이 올 때까지 응접실에서 대기했다.
그리고 성검 일행이 성에 도착했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식사실로 자리를 옮겼다.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서다.
우리가 먼저 식사실에 도착하고 몇 분 지나지 않아, 성검 일행도 식사실로 들어왔다.
“마인을 쫓아내고 마물들을 물리친 것만이 아니라, 다친 사람들을 치료해 주시고 정화 작업까지 해 주셨다고 들었어요. 영주 대리로서 감사를 표하는 바입니다.”
르웰은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을 향해 허리까지 숙여 가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마물 처치가 끝났다는 보고가 먼저 도착하고, 한참 뒤에 성검 일행이 도착한 이유가 바로 저 정화 작업 때문이리라.
‘일반인들이 다치지 않도록 신경 쓰면서, 싸우는 것만으로도 힘들었을 텐데···.’
아니마와 푸로르도 피곤해 보이긴 했지만, 휴마누스와 리에나에 비할 데는 아니었다.
치료는 섬세한 작업이니까 리에나 혼자 도맡은 듯하지만, 정화 작업은 둘이 같이한 모양이다.
그 두 명 중에 누구의 상태가 더 심각하냐고 묻는다면, 단연코 휴마누스라 대답할 수 있겠다.
리에나가 초췌해 보인다면, 휴마누스는 그 수준을 넘어 퀭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니 고맙기도 하고, 괜히 미안해졌다.
저들이 전투가 끝나자마자 무리해서 정화 작업을 마친 건, 성직자 신분을 사칭하고 있는 우리의 정체를 숨겨 주기 위함일 테니까.
“어···, 수고하셨습니다. 정화 작업은 저희가 해도 됐을 일인데, 감사···.”
“정화 작업은 그냥 휴마누스가 수련하려고 한 거니까, 감사 인사는 됐어요. 볼타 산맥의 결계 건도 있고 해서, 다방면으로 신성력을 활용할 수 있도록 연습한다나 뭐라나···.”
아니마가 내 말을 끊으며, 틱틱거리는 투로 말했다.
성검 일행 중 설정 놀이에 가장 적극적인 아니마가 두 사람을 대신해서 말하기로, 미리 입을 맞춰 놓은 게 아닐까 한다.
하지만 우리의 정체를 모르는 르웰이 그것을 짐작하기란 불가능했다.
르웰은 고생한 사람은 따로 있는데, 어째서 아니마가 대표로 감사 인사를 거절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튼 휴마누스가 신성력을 제대로 다룰 수 있도록 노력 중이라는 건 진짜겠지.’
나는 휴마누스를 향해 고맙다는 마음을 담아 가볍게 눈인사를 했다.
예상은 했지만, 수신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휴마누스는 피곤한지 눈을 비볐다.
“막내 신관님, 저분들께 신성력 좀 써 드리세요.”
“네, 알겠습니다.”
세르펜스가 나에게 공손하게 허리를 숙여 예를 표한 뒤, 성검 일행에게 다가갔다.
리에나와 아니마는 신성력 혹은 마력 소모로 인한 탈진과 정신적인 피로가 원인이라며, 체력 회복은 별 소용없다는 말로 거절했다.
그리고 푸로르는 못 버틸 정도로 힘든 건 아니라며 사양했다.
결국 세르펜스의 신성력을 받아들인 사람은 휴마누스 뿐이었다.
정신적인 피로와 신성력 고갈은 어쩔 수 없다지만. 체력이라도 회복되고 나자, 휴마누스의 안색이 상당히 좋아졌다.
“이제야 좀 살 것 같네. 고맙습니다, 그러니까···. 프레이 님?”
“감사 인사는 제가 아니라, 주교님께 하십시오.”
“저희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해 주셨으니,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세르펜스가 휴마누스의 감사 인사를 나에게 패스했고, 나는 그걸 다시 휴마누스에게 되돌려 주었다.
휴마누스는 내 말에 신경도 쓰지 않고 세르펜스를 관찰하듯 살펴보았다.
신관 프레이를 연기하는 세르펜스가 아직도 신기한가 보다.
그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세르펜스가 도망치듯 내 곁으로 돌아왔다.
“시장하실 텐데, 우선 식사부터 하면서 얘기를 나누는 게 어떨까요?”
“점심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식사가 아직이라니. 혹, 우리를 기다려 준 건가?”
휴마누스가 식탁으로 다가와 의자에 앉으며, 르웰에게 되물었다.
그러면서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먼저 먹었어도 괜찮았다고 중얼거리기까지 했다.
자신들이 싸우는 동안 우리끼리 먹기 미안해서 기다려 준 거라고 착각한 거다.
이대로 입을 다물어도 상관없는 일이다. 하지만 나는 굳이 입을 열어 그의 착각을 정정해 주기로 했다.
“아닌데요? 저희도 할 일 하다 보니 식사가 늦어진 겁니다.”
내가 정색하며 말하자 휴마누스가 머쓱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괜히 감동을 깨버린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상대는 휴마누스였다.
휴마누스가 멋대로 긍정적인 방향으로 착각을 하고, 그것을 바로잡지 않았을 때.
그 사소한 착각들이 쌓여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세르펜스의 사례를 통해 뼈저리게 배웠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휴마누스의 착각은 될 수 있으면 바로잡아 주는 게 옳다.
적어도 그의 눈치가 보통 사람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는 말이다.
“그, 그건 그렇고. 식사가 9인분뿐인데, 두 성기사분들께선 안 드십니까?”
휴마누스가 민망함을 달래고 싶었는지, 멀뚱히 서 있는 가짜 성기사들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그게, 주교님께서···.”
“근무 중에는 음식물 섭취를 지양하고 있습니다.”
“···네.”
베일이 무언가 말하려다가, 윈스톤의 모범 답안을 듣고 흐지부지 얼버무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도중에 끊겼지만, 베일이 원래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추측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주교님이 못 먹게 했다.’라는 설정값을 곧이곧대로 얘기할 작정이었겠지.
나는 윈스톤의 임기응변에 흐뭇한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정면으로 돌렸다.
막 자리에 앉은 리에나와 푸로르가 귓속말로 무언가 대화를 주고받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지 말고 성기사분들께서도 같이 드는 게 어떻습니까?”
“휴마누스 님, 자신의 본분을 다하고 계시는 분들에게 과하게 참견하는 건 좋지 않아요. 괜히 불편해지시잖아요.”
“그래, 리에나 말이 맞아. 위가 가득 차면 전투할 때 방해될까 봐 일부러 안 먹는 걸지도 모르는데. 무턱대고 먹으라고 하면 안 되지.”
휴마누스가 윈스톤과 베일에게 식사를 권하기가 무섭게, 리에나와 푸로르가 그를 말렸다.
어쩐지 둘이서 속닥거리더라니.
윈스톤과 베일이 식사를 거르는 이유를 눈치채고, 휴마누스를 저지하기 위해 토의한 거였나 보다.
“응? 하지만···, 아, 어. 응. 그러네.”
휴마누스가 반박하려다 말고, 급하게 말을 마무리 지었다.
베일은 기사가 아니라는 걸 떠올리고 나서야, 그의 얼굴을 남들에게 보여선 안 된다는 사실에 도달한 게 아닐까 한다.
현재 식사실에 있는 인원은 우리 일행과 성검 일행. 그리고 르웰과 사용인들뿐이었고, 사용인들이 베일의 얼굴을 알아 볼 것 같지는 않지만. 혹시 모르니 계속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한 번의 방심으로 모든 일이 틀어지면 무척이나 억울해질 테니까 말이다.
민망함을 달래려다 민망함이 두 배로 늘어나 버린 게 충격이었던 걸까?
휴마누스가 공연히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나저나 성내 분위기가 어수선하던데···. 영주가 아니라 영주 대리가 나타난 것도 그렇고, 무슨 일 있었나···?”
한동안 침묵 속에서 식사가 이어지던 중.
아니마가 스테이크를 한 조각 큼직하게 썰어, 홀그레인 머스타드 소스에 콕 찍으며 입속말로 중얼거렸다.
홀로 탐구할 주제를 떠올린 거겠거니 하고 넘기기에는 모두가 듣고도 남을 크기의 성량이었다.
누군가를 콕 찍어 직접 질문하기는 싫은데, 답은 듣고 싶을 때. 아니마가 자주 쓰는 화법이다.
나는 무심결에 에드나를 바라보았다.
아니마가 말을 했으니 쳐다보긴 했지만, 그녀의 말버릇을 고쳐줄 생각은 없어 보였다.
‘애초에 저런 버릇이 생긴 게, 마탑에서 다른 마법사들에게 따돌림당해서 생긴 걸 테니까. 어쩔 수 없나?’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버릇도 아니고.
당사자와 보호자의 태도가 저러하니, 그냥 아니마의 개성이라 여기고 넘어가야겠다고 생각하는 찰나.
달그락. 작은 식기 소리가 울렸고, 그와 동시에 테이블 밑에서 퍽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악! 푸로르, 뭐 하는 짓이야?”
“헉, 미안해! 발이 미끄러졌어!”
같은 편에게 불의의 기습을 당한 휴마누스가 고함을 내질렀고, 당황한 푸로르가 헛바람을 들이켰다.
맞은 사람은 휴마누스인데, 어째 푸로르가 더 놀란 것처럼 보였다.
‘얌전히 의자에 앉아 식사하다 말고, 발이 미끄러져서 옆 사람의 다리를 걷어찰 확률은 얼마나 될까?’
눈치 없는 휴마누스가 ‘아니마의 혼잣말’에 담긴 깊은 뜻을 눈치채지 못하고, 헛소리를 할까 봐 대기하다가.
식기 소리에 반응하여, 엉겁결에 휴마누스를 걷어찬 게 분명하다.
휴마누스는 잠시 억울하다는 표정을 짓긴 했지만,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푸로르의 모습에 한숨을 푹 내쉬고는 다시 식사에 집중했다.
그런 휴마누스를 보며 푸로르가 멋쩍게 뒤통수를 긁적였다.
식기 소리를 낸 장본인으로서, 나도 속으로 휴마누스에게 사과했다. 부디 내 사과를 제대로 받아 줬으면 좋겠는데.
“흠, 흠! 실은 오늘 아침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거든요.”
작은 해프닝이 끝나고 상황이 진정되자, 르웰이 목을 가다듬으며 말문을 열었다.
성검 일행은 르웰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척했다.
유지스가 정령을 보내어, 성검 일행에게 세라투 자작의 사망 소식을 전달한 건 우리들만 아는 비밀이다.
아니마가 성내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얘기를 중얼거린 것도 그 때문이다.
눈에 띄게 이상한 점이 있는데, 궁금해하지 않으면 수상하니까.
“그런 이유로 제가 영주 대리직을 맡게 된 거예요.”
“아, 그래서 분위기가···.”
애써 담담한 척 설명을 끝마친 르웰을 보며, 리에나가 안타깝다는 듯 탄식을 흘렸다.
그러면서도 섣부르게 위로의 말을 입에 담지 않았다. 어설픈 위로는 안 하느니 못하다는 걸 아는 걸 테다.
잠시간 식사실은 적막에 휩싸였고, 달그락거리는 식기 소리가 어지러이 울려댔다.
일반적인 귀족 가문의 식사실에서는 어지간하면 들을 수 없는 소음이다.
간혹 들리더라도 아주 작게 울릴 뿐이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식탁에 둘러앉은 9인 중, 귀족이나 왕족. 혹은 황족이 아닌 사람이 절반 가까이 되기 때문이다.
이쪽 세계 신분은 귀족이지만, 본래는 다른 세계에서 온 나를 깍두기로 친다면 그냥 절반이다.
게다가 설정극에 진심인 유지스와 세르펜스까지 가세하여, 일부러 식기 소리를 내고 있었으니.
말소리라도 있으면 모를까. 식기 소리만 울려대니 무지하게 삭막하다.
‘르웰도 르웰이지만, 지금은 휴마누스가 좀 신경 쓰이는데···.’
활기차게 이런저런 얘기를 꺼내며, 친목을 도모하고도 남았을 사람이 아까부터 묵묵하게 먹기만 하는데. 신경이 안 쓰이려야 안 쓰일 수가 없다.
단순하게 지쳤을 뿐일지도 모르지만.
‘역시 공왕 때문에 침울해하는 거겠지?’
그리고 이런 내 추측이 맞는다는 듯.
휴마누스가 나와 세르펜스 사이의 어딘가에 시선을 두며,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그런데 저희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안 물어···보십니까?”
“마물들이 엄청나게 몰려들었고, 인명 피해는 전무하다고 들었습니다. 성검의 주인과 일행분들 덕택이라고 들었는데, 정말 대단하십니다!”
나는 잠시 사용하던 포크와 나이프를 접시 위에 올려 두고, 짝짝짝 박수까지 쳐가며 휴마누스를 칭찬했다.
정말 잘했다는 뜻으로 한 행동이었건만. 휴마누스는 부담을 느꼈는지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 자리에는 ‘마인 러스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능력이 부족해서···. 기껏 발견한 마인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면목이 없다는 듯. 휴마누스가 고개를 푹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