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519)
공작님, 회개해주세요!-520화(520/1105)
520회
67. 공작님과 계승자들 (48)
나는 청혼에 관한 것 말고도, [성검의 주인] 속 공왕. 아니, ‘폴드 왕국의 왕’의 행보를 기억나는 대로 설명했다.
폴드 왕국은 주인공인 휴마누스의 우군이었다.
그렇기에 그곳의 왕인 ‘러스티 뤼제 폴드’가 긍정적으로 표현된 건 당연한 일이다.
때로는 담대하게, 때로는 신중하게.
그녀는 한 나라의 지도자로서 그에 걸맞은 모습을 보였고, 성검의 주인인 휴마누스에 대한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그러한 설명이 이어질수록 휴마누스의 표정에 씁쓸함이 번졌다.
“그랬던 사람이 지금은···.”
“그런 사람이니까, 악숭 세력이 일찌감치 접근한 거겠죠. 우리 쪽 사람의 수를 줄이면서, 허를 찌를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세르펜스가 그때와는 상황이 달라졌으니. 이번에는 공왕이 배신할지도 모른다고 미리 귀띔해 주지 않았으면, 의심조차 못했을 겁니다.”
“그런데 허를 찌른다는 건 무슨 소리야?”
내가 말을 다다다 쏟아붓고 난 뒤, 잠시 숨을 돌리는 새를 노려 휴마누스가 질문했다.
“아차차! 그걸 먼저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마왕도 그 시기에 일어난 일을 알고 있거든요. 정확히 말하자면 ‘기억하고 있다.’라고 해야 하나?”
“그건 좀 위험한데···.”
휴마누스가 표정을 굳히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내가 지닌 정보의 이점이 거의 사라진다는 점에서 ‘좀’이 아니라 ‘많이’ 위험하다.
그렇게 휴마누스의 말을 정정해주려는데, 세르펜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정말로 위험한 건, 마왕에게 그 시기의 기억이 남아있다는 걸 우리가 눈치채지 못했을 경우입니다.”
세르펜스의 말을 듣고, 나는 하려던 말을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다.
녀석의 말마따나 마왕이 그 시기를 기억하고 있다는 걸 몰랐다면, 나는 분명 방심했을 거다.
사소한 차이는 있어도 큰 흐름은 변하지 않겠지.
이 사건은 타락펜스의 계획으로 시작된 일이니까, 이번에는 일어나지 않겠지.
그런 식으로 생각하다가, 함정에 빠져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도 세르펜스가 타락하지 않았으니까, 내가 할 일은 충분히 마쳤다.
이 정도면 어디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처박혀, 유유자적 은거 라이프를 즐겨도 괜찮지 않나?
그렇게 생각했던 시절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너희는 어떻게 마왕에게 기억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야?”
“자칭 ‘테네브리오의 예언자’라는 놈이 나타나서 얘기해 줬습니다. 그것만 아니었으면 악숭이들이 그때와 다른 행동을 하더라도, 그냥 상황이 바뀌니 미래도 바뀌었구나 하고 넘어갔을 텐데. 마왕과 악숭이들이 멍청해서 정말 다행이지 뭡니까?”
“진짜 멍청한 놈들이잖아? 내가 이제까지 그딴 놈들이 퍼트린 소문 때문에 힘들어했다니···.”
내 설명에 휴마누스가 진심으로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적의 실체가 멍청이라는 걸 깨닫고 현타가 찾아온 모습이다.
“그리고 덧붙여 말하자면, 이번에 공왕이 세라투 자작의 계획을 챈들러에게 말해줬던 것도 아마 그 연장선일 겁니다.”
“저번에는 악마 숭배 세력이 세라투 자작을 이용했었나 봐?”
“아뇨. 그때도 이번이랑 비슷하게 세라투 자작의 계획을 역이용해서, 그 아들에게 손을 쓴 것 같더라고요. 세르펜스가 말하길, 자기라면 클로반에게 접근했을 거라나?”
“세르펜스가···?”
내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설명하자, 휴마누스가 설마설마하는 눈으로 세르펜스를 바라보았다.
세르펜스는 으음 하고 침음을 흘리며 휴마누스의 시선을 피했다.
눈치 없는 휴마누스도 알아챌 수 있을 만큼, 속이 훤히 내비치는 행동이다.
“···그땐 세르펜스가 ‘마인 러스티’와 비슷한 역할을 맡았었나 보네.”
“악숭 세력은 마왕을 필두로 멍청한 놈들이 잔뜩 있으니까, 똑똑한 사람이 간절했나 보죠.”
“······.”
휴마누스와 내가 한 마디씩 말을 얹는 동안에도 세르펜스는 침묵을 지켰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 화제가 썩 달갑지 않은 모양이다.
“어? 잠깐만. 그럼 성내에 악마 숭배자가 없을 가능성이 크겠네?!”
“큰 정도가 아니라, 그냥 없다고 봐야겠죠. 그래서 세르펜스가 계속 ‘찾아봐도 안 나올 거다.’라는 식으로 말했던 거고요.”
“그런데도 세르펜스는 순찰을 나간다는 얘기를 한 거야?”
“유지스는 그 사실을 모르니까요.”
“말 안 했어?”
휴마누스의 물음에 나는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유지스가 충격을 받을까 봐. 그래서 숨기고 있는 거긴 한데, 따지고 보면 속이고 있는 거기도 하니까.
모든 사정을 알게 되었을 때, 유지스가 서운해하리란 것도 알고 있고.
하지만 [성검의 주인] 속 대륙은 망가져도 너무 망가졌다.
특히 성검 일행에게는 더욱 가혹한 세계였다.
휴마누스와의 단체 결혼 엔딩도 매우 충격적이긴 하지만, 각색일지도 모르니 이 부분은 차치하고서라도.
성검 일행은 악숭 세력에게 큰 위협이 되는 존재다.
그렇기에 악숭 세력은 집요하게 성검 일행을 괴롭게 했다.
‘그것을 계기로 성검 일행은 성장하긴 했지만···.’
그건 상처가 동반된 성장이다.
이겨내지 않으면 견딜 수 없으니까. 주저앉지 않으려면, 억지로라도 나아가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이겨낸 것이라 봐야 했다.
그리고 그런 시련을 준 건.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은 타락펜스의 소행이었다.
세르펜스는 그것을 유지스에게 밝히길 원치 않는다.
지금처럼 계시를 받은 척, 조금씩 정보를 흘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굳이 모든 것을 밝혀서 모두가 상처받을 필요는 없다.
“하긴, 나도 동료들에게 말하지 않았으니까.”
휴마누스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어쨌거나 이해해 줘서 다행이다.
“그건 그렇고 이번에도 악마 숭배 세력이 세라투 가문에 관심을 가진 걸 보면, 시온 네가 알고 있는 정보가 쓸모없어진 건 아닌 것 같은데···. 혹시 내가 꼭 알아두고, 대비해야 할 건 없어?”
“지금 당장 생각나는 게 있긴 한데···.”
“무슨 문제라도 있어?”
내가 말끝을 흐리며 머뭇거리자 휴마누스가 의아해하며 질문했다.
문제라면 있다. 그것도 아주 많이. 그래서 더욱 말하기 조심스럽다.
나는 고개를 돌려 옆에 앉은 세르펜스를 바라보았다.
세르펜스에게는 이미 내가 기억하고 있는 [성검의 주인] 내용을 전부 알려 주었다.
그러니 녀석도 내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눈치챘을 거다.
그냥 말해도 괜찮겠냐는 뜻으로 바라본 거였는데.
세르펜스는 한숨을 푹 내쉰 뒤, 자진해서 입을 열었다.
“엘프에 관한 겁니다.”
“엘프가 왜?”
“악마 숭배자 중에···, 엘프가 한 명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다크 엘프지만···.”
“뭐어?!”
세르펜스의 설명에 휴마누스가 기함할 듯이 놀라며 눈을 크게 떴다. 입도 크게 벌어졌는데, 턱이 빠진 게 아닐까 걱정스러울 정도다.
아까처럼 닫아줘야 하나 싶어 손을 뻗었다가, 세르펜스에게 붙잡혀 미수로 끝났다.
‘다크 엘프라면 흑마법을 배울 수 있다거나, 악마와 계약할 때 불리하다거나. 그런 걸 내가 어떻게 알고 있었겠어? 다 [성검의 주인]에 나왔으니까 알 수 있었던 거지.’
나는 속으로 한탄과도 같은 생각을 떠올리며 휴마누스가 진정하길 기다렸다.
휴마누스는 있을 수 없는 얘기에 잠시 얼이 나간 듯 보였지만, 빠르게 정신을 되찾았다.
“대체 엘프가 어쩌다가 악마 숭배 세력에 들어가게 된 거야?”
“그건 저도 잘 몰라요. 하지만 죽을 때, 고맙다고 말했으니···. 본인이 원해서 악마 숭배 세력의 일에 가담하는 건 아닐 겁니다.”
나는 이름 모를 엘프가 휴마누스의 검에 의해 죽어가던 장면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는 분명 악숭 세력에게 속아서 이용당한 피해자였을 거다.
할 수만 있다면 선택의 날이 오기 전, 윈스톤을 구한 것처럼. 그자도 구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그가 악마와 계약을 맺은 건 이십 년도 더 된 일이니까.”
그 다크 엘프는 악숭 세력이 준비한 일종의 히든카드다.
계약한 악마도 보잘것없고 엘프 본인도 능력을 제대로 키우지 않아서, 무력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위협적인 적은 아니지만.
엘프들과 다크 엘프들 사이를 이간질하기에는 충분했다.
아르케 왕국에는 ‘대륙을 배반하지 않고, 악마를 따르지 않는다.’라는 내용의 맹세를 하는 전통이 있으니까.
그리고 정말로 악마와 계약한 다크 엘프가 나타나 버렸으니까.
다른 맹세를 어겨 다크 엘프가 된 것임에도, 그것을 증명할 방도가 없으니 믿을 수 없다.
설령 증명할 수 있더라도, 앞으로 악마를 따르지 않을 거란 보장이 없다는 이유로.
일반 엘프들은 다크 엘프들을 잠재적 위협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다크 엘프들과 그들을 아끼는 가족 혹은 친구들은 억울함을 호소했다.
“당장 아르케 왕국에 알려야 하는 거 아니야? 자칫 잘못하면 내분이 일어날 수도 있잖아.”
“그것도 애매한 게···. 원래 유지스가 성검 일행이었잖아요? 그리고 유지스는 현 아르케 왕의 조카고요. 그래서 악숭 세력의 다크 엘프를 보자마자, 아르케 왕에게 알렸단 말이죠?”
“그런데?”
“별로 믿으려고 하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조카가 하는 말이라고, 긴가민가하면서 받아들이긴 했는데. 문제는 다른 엘프들의 반응이···, 어휴.”
휴마누스만 해도, 악숭 세력에 붙은 엘프가 있다는 말에 매우 놀랐다.
그 정도로 엘프가 악숭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인식이 확고했다.
게다가 엘프들은 세계수의 맹세 덕분인지, 자신들 사이에서는 악숭이가 나올 수 없다는 믿음이 있었고, 그것을 긍지처럼 여겼다.
다른 나라에서 귀족들 사이에 숨어든 악숭이 문제로 골치 아파하면, 안타까워할지언정. 공감은 하지 못했다.
마치 딴 세상 얘기를 듣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건 유지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악숭이들과 함께 있는. 심지어 역안이기까지 한 다크 엘프를 보고, 경악했더랬지.’
선례가 없었다는 건, 그만큼 엘프들이 선량하며 믿을 수 있는 존재라는 뜻이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단 한 명의 악숭 엘프의 등장만으로도 혼란에 빠지기 쉽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혼란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겪어본 적이 없으니까.
“반응이 왜? 얘기해도 안 믿고 무시라도 했어?”
“무시했으면 차라리 낫죠. 약자를 보호해야 할 왕실이 다크 엘프들을 탄압하려는 거냐며 시위가 일어나서···.”
그때 달렸던 댓글 중.
추천 수를 가장 많이 받은 내용이 분명 [맨날 꽃만 돌보다가, 머릿속에도 꽃밭이 펼쳐졌나 ㅡㅡ] 였던 거로 기억한다.
‘나는 추천을 누르지 않았지만.’
아무튼 그 일로 인해 아르케 왕실은 완전히 발언권을 잃었다.
애초에 아르케 왕국의 왕실은 지배자라기보단, 엘프들의 대표에 가까운 느낌이기도 했고.
이후에 악숭 엘프가 진짜로 존재한다는 게 밝혀졌지만, 한 번 떨어진 명예를 되찾긴 힘들었다.
다크 엘프를 믿어주어야 한다는 의견과 일단 그들을 격리해 두어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섰고.
그것을 중재해야 할 왕실은 이미 ‘다크 엘프를 탄압하는 편’이라는 낙인이 찍혀버렸다.
나는 그러한 얘기들을 휴마누스에게 설명했고, 휴마누스는 한참을 침묵 속에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너희는 아르케 왕실에 얘기하지 않고, 어떻게 할 생각이었는데?”
“악숭 엘프는 한 명뿐이니까, 소문이 나기 전에 쓱싹 하는 걸 최우선 목표로 두고 있긴 한데···.”
솔직히 말하자면, 성공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현재 악숭 엘프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고. 악숭 세력에서도 필사적으로 보호하려 할 테니까 말이다.
“나는 아르케 왕실에 알려야 한다고 봐. 미리 안다고 마땅한 대응책이 생겨나는 건 아닐지라도. 왕은 남들보다 먼저 혼란을 겪고, 남들 모르는 곳에서 그것을 받아들여야만 해. 그래서 다른 이들이 혼란에 빠졌을 때, 침착하게 그들을 진정시킬 수 있어야 해.”
휴마누스가 마치 황태자처럼 말했다.
[성검의 주인]에서 악숭 엘프에 관한 정보를 아르케 왕이 먼저 접하고, 그로 인해 일이 더 꼬여버린 것만 생각했는데.내가 너무 안일했던 것 같다.
“시온은 그렇다 쳐도. 세르펜스, 너는 어째서 이런 어중간한 작전에 동의한 거야?”
“그게···, 잘만 하면 아무 일 없이 문제를 덮을 수 있을 것 같아서···.”
휴마누스의 물음에 세르펜스가 고개를 푹 숙이며 우물쭈물 말했다.
이 악숭 엘프 사건은 [성검의 주인] 속 유지스의 각성 이벤트라고 할 수 있다.
아니, 사실 각성 이벤트라고도 뭐한 게 유지스의 실력은 거의 완성형에 다다랐다.
여기서 더 성장할 것도 얼마 없을뿐더러. 굳이 각성 이벤트씩이나 되는 것을 겪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 끝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니 그냥 멘탈이 한 번 깨졌다가, 그것을 이겨내고 정신적으로 성장했다고 우기는 것에 가까운 에피소드였다.
그렇기에 세르펜스는 이 일을 유지스 모르게, 조용히 처리하고 싶었던 걸 테다.
유지스도. 유지스의 가족인 아르케 왕실도. 그 누구도 상처받지 않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