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52)
공작님, 회개해주세요!-52화(52/1105)
52회. 공작님에 관한 비화들 (1)
며칠 전 잭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었다.
“아버지께서 보좌관님을 한번 만나보시겠답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이게 다, 제가 매주 편지를 적어 집에 보낸 덕택입니다.”
“감사합니다!”
“다음 주말이 제 비번이니 그때 같이 가도록 하죠. 아버지께도 그리 연락드렸습니다.”
이상이 그날 있었던 대화의 내용이다. 그렇게 말하던 잭의 표정은 무척이나 밝았었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비번이었을 내일. 갑자기 바뀐 일정 때문에 그는 갈 수 없게 될 예정이다.
그 시절에 있었던 일에 대해 심도 있게 대화하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세르펜스도 함께 가기로 확답을 받았으니···.’
검술 수련을 하는 대신 내건 조건이, 바로 이거였다. 어떻게 꼬드겨낼까 고민했는데, 마침 잘됐다 싶어 은근슬쩍 끼워 넣었다.
사실 이번에도 잭의 아버지가 만남을 거절한다면, 다른 사람을 찾아볼 생각이었다.
그 당시 쓰였던 사용인 명부가 분명 공작저에 남아있을 것이다.
그래도 기왕 이라면 잭의 아버지 쪽이 낫지 않을까? 제 아들이 근무하고 있는데, 말은 좀 가려서 하겠지.
적어도, 대륙을 위한 당연한 희생이었다며 뻔뻔하게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의 세르펜스를 봐서는, 그런 말을 들어도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지만···.’
아닌 게 아니라, 오히려 상대에게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도리 따위를 설파할 것 같다.
[회개, 이제 당신도 할 수 있습니다.]따위의 슬로건을 내걸고서.
아주 차근차근 설명하고, 조목조목 이해시켜주려 하지 않을까?
기대 이상의 성장세를 보인 세르펜스를 믿었다.
하지만 기왕이면 맛있는 것만 먹이고, 좋은 것만 보여주며 키워주고 싶은 게 당연하지 않은가.
게다가 시발검에 대한 문제가 남아있는 이상, 완전히 안심하기에는 일렀다.
“일단 당장 해야 할 것은···.”
나는 잭에게 새로운 일정을 몰래 선사해주기 위해 한스의 방으로 향했다.
* * *
“···보좌관님께서 어떻게 제 방에 계신 겁니까?”
일을 끝마치고 돌아온 한스가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자신의 방문을 열자마자 내가 차를 마시는 모습이 보였을 테니 그럴 만했다.
나도 내 방에서 세르펜스가 마시던 찻잔을 발견했을 때 참 어이가 없었지.
“집사님께서 저와 서로의 방을 편히 오가는 친근한 관계를 맺길 원하시는 것 같길래, 저도 한 번 와봤습니다.”
“······.”
“그래도 찻잎은 제 방에서 가져온 겁니다?”
한스가 크게 심호흡을 한 뒤, 방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본인은 허구한 날 내 방을 들락거렸으면서 내가 한 번 왔다고 저런 반응이라니. 참 속 좁은 양반이다.
“매일 사다리를 오르내리기 힘드실 것 같아, 오늘은 제가 내려와 봤습니다.”
“그건 어떻게 아시고···.”
“욕실의 거울 뒤 통로 말입니까? 공작님께서 알려주시던데요?”
“크윽···.”
왜 저리도 분통하다는 반응인지 모르겠다.
이 통로에 대해 세르펜스가 설명하길, 원래는 업무 용도로 만들어진 것이라 했다.
공작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모시는 보좌관과, 저택의 대소사를 관리하는 집사.
그런 관계이니만큼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함께 진행해야 할 일이나, 몰래 전해야 할 명이나 서류 등이 있을 법도 했다.
“이런 협력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을 견제로 사용하다니···.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그래서, 그걸 따지러 오신 겁니까?”
한스가 의자에 털썩 앉으며 물었다. 곧 죽어도 당당한 양반이다.
“아, 그건 아닙니다. 내일 잭의 본가에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대체 무슨 생각이신 겁니까?”
“그래서 말인데, 잭의 비번을 나중으로 미뤄주셨으면 합니다.”
“···가서 무슨 대화를 하시려고?”
“에이~, 다 아시면서.”
내가 씨익 웃으며 말하자, 한스가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르며 인상을 찌푸렸다.
“저는 도무지 보좌관님이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그건 저도 동감입니다. 말이 나와 하는 말인데, 이 저택엔 오래 근무한 시종이나 시녀들이 거의 없더군요.”
“······.”
“유서 깊은 명문가에서, 참 드문 일 아닙니까?”
이전부터 쭉 느껴왔던 의문이다.
어쩌면 세르펜스가 다 자른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물어보니 아니라 했다.
그렇다는 건 역시···.
“예, 제가 그만두도록 했습니다. 입막음도 확실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대체 어디서 정보가 샌 건지···.”
“그건 아실 것 없습니다. 그보다 바로 인정하실 줄은 몰랐는데 의외입니다.”
“시간 낭비는 사양합니다.”
칼같이 딱 잘라 말하는 게, 내가 빨리 꺼져주길 바라는 모양새다.
그보다 입막음이라는 말이 걸린다.
‘물론 죽이지야 않았겠지.’
프라시더스 공작가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죽어 나간다는 소문이라도 돌면 큰일이다.
아마 협박을 좀 곁들이며, 입단속 비용을 넉넉히 찔러준 것 아닐까?
“그보다 입막음하셨다는 건, 집사님도 그 당시의 일들이 밖에 알려져선 안 된다고 판단했다는 뜻인데···. 그렇다면 어째서 방관하신 겁니까?”
“공작님께서는 대륙을 지키기 위해 태어나신 분입니다. 그 정도의 시련은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그 결과를 보십시오. 이 얼마나 훌륭한···.”
“이런 미친···! 아, 아니. 제가 말이 심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노망이라도···, 음.”
노인 공경을 하고 싶은데, 자꾸 노인 공격을 하게 만들었다.
한스라면 아마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으리라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확인받으니 더 충격적이었다.
게다가 이건 예상했던 정도가 아니지 않은가.
‘그게, 훌륭하다고?’
한스의 말에, [성검의 주인]에 나왔던 세르펜스의 모습이 떠올렸다.
『
자신들의 진정한 적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계략에 빠져 서로를 헐뜯고 무기를 겨누는 저 모습을 보아라!
이 얼마나 어리석고, 또 유쾌한 모습이란 말인가.
그 거대했던 제국이 이렇게 손쉽게 무너질 줄이야.
너무나도 간단하여, 권태가 느껴질 정도다.
어째서 과거의 자신은 이다지 쉬운 길을 놔두고, 어려운 길을 택하려 했는지 모르겠다.
세르펜스는 자신의 멍청했던 과거를 비웃었다.
천사 같은 얼굴로 뱀처럼 싸늘한 미소를 짓는다.
』
오랜만에 떠올려봤더니 약간의 광기마저 느껴지는 게, ‘어라? 내가 다른 소설을 떠올렸나?’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갈 정도였다.
‘이 괴리감 대체 어쩔거야!’
너무 훌륭해서 대륙 역사에 길이 남을 최악의 재앙으로 기록될 뻔했다.
이것은 본래의 흐름대로라면 약 2년 뒤에 벌어질 일이다.
‘이때만 해도 ‘어려운 길’이 제국을 손아귀에 넣고, 독재하는 것을 말하는 줄 알았는데···.’
이제 와 생각해보니 대륙을 지키는 일을 말하는 것이었나 보다.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저는 집사님이 공작님을 한 명의 사람으로 봐주길 바랐습니다. 그래서 저번에도···. 하지만 집사님에게는 그런 말이 통하지 않나 봅니다.”
전 보좌관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후로, 조금은 반성을 하고 있나 했다.
그러나 근본적인 부분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혹시, 잭의 아버지도 이따위 인간인 건 아니겠지?’
조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될 때까지, 세르펜스에게는 일단 밖에서 귀라도 막고 기다리라 해야 하나?
“당신이 집사라면 어떻게 해야 공작님의 짐을 함께 들어드릴 수 있을까를 고심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저번에 제게 무능하다 하셨는데, 당신은 저보다 더 무능합니다.”
“그건 누가 대신 들어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공작님께서 태어나셨을 때부터 짊어지신 숙명 같은 겁니다.”
숙명을 말하는 저 입을 꿰매, 영원히 숙면에 들게 해주고 싶다.
한스가 미래를 알고 저런 소리를 한 것은 당연히 아니겠지만, 화가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대륙은 반드시 구해낼 겁니다. 하지만 그것을 공작님께 떠넘기지는 않을 겁니다.”
“당신이 대체 뭘 할 수 있다고···.”
“어떻게든 해낼 겁니다! 그것이 제가 이곳에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어째서 내가 세르펜스의 보좌관이 된 것일까 생각해 보았다.
‘왜 하필 보좌관일까?’
그가 악마 숭배 세력에 붙어, 대륙이 입을 피해를 키우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면 더 좋은 방법이 있었다.
가령, 세르펜스가 휴마누스에게 패배하여 감옥에 갇혔을 때. 그곳을 지키는 간수가 되었다면 어땠을까?
신성력의 흐름을 제약하는 특수 감옥에 갇혀, 구속된 채 무방비 상태가 되었던 그때라면.
그리고 나처럼 우유부단한 사람 대신, 냉철한 사람이 빙의되었다면 그를 간단히 죽일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내 경우는 어떠한가.
어찌어찌 세르펜스를 바꿔나가고 있긴 했지만, 처음은 어디까지나 요행에 불과했다.
‘불확실성 요소가 너무 많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세상에 그의 보좌관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은 한 가지를 뜻했다.
나를 이곳으로 불러들인 그 존재는 대륙을 구원하며, 동시에 세르펜스 또한 구제하길 바란 것이다.
‘어느 쪽도 포기할 수 없는 욕심쟁이···.’
그 존재에 대해서는 짚이는 구석이 있다.
아니, 그 존재 외에는 달리 없었다.
‘신 룩스메아.’
[성검의 주인]은 기본적으로 신의 힘과 의지를 이어받은 성검의 주인이 악을 물리치는 내용이다.하지만 그것과 역설적인 특징이 하나 있었다.
세르펜스는 작중 진행 내내 세검을 사용했고, 마왕의 힘을 얻기 전까지 그것에 [신성력]을 덧씌워 사용했다.
신을 찾아 울부짖는 이들을, 세르펜스는 신의 힘을 두른 검으로 죽여나간 것이다.
천사같이 성스러운 모습으로, 은빛의 광휘를 뿌리는 그의 곁에 악마들이 함께했다.
‘신 룩스메아는, 그가 다시 제 품으로 돌아오길 끝까지 기다린 것이 아닐까?’
그리고 지금, 다시금 그에게 기회를 주고 있는 것이 아닐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 성검을 그에게 내리지 않은 것은, 세르펜스에게 더 이상의 짐을 지우고 싶지 않아서.
지금보다 더 이른 시기에 나를 보내지 못한 것은, 이것이 룩스메아가 가진 힘의 한계였다거나···.
‘너무 나 좋을 대로 해석했나?’
하지만 그럴듯한 가설이다. 좀 더 명확한 증거가 있다면 좋을 텐데.
선택의 날. 마음의 상처를 입고 돌아올 세르펜스에게,
‘당신이 어떤 사람이건, 조건 없이 사랑을 베풀고 지켜봐 주는 존재가 있노라고···.’
그렇게 당당히 말해주고 싶다.
“존재 이유라니···. 자신을 너무 과신하시는 것 아닙니까?”
“그건 제가 알아서 할 일입니다. 그러니 집사님께선 그냥 집사 역할이나 하세요. 내일 잭 일정이나 바꿔주시죠? 공작님도 같이 가시는 거니, 거절하시면 공작님께 이를 겁니다.”
결국 한스는 인상을 구기며, 알았으니 어서 나가라며 나를 쫓아냈다.
“진작 이럴걸, 괜히 말싸움해서 손해 봤네.”
사람이 토르투스 처럼 어느 정도 융통성이 있어야지, 너무 고집불통이니 말이 아예 안 통했다.
저런 한스같은 사람들 때문에, 괜히 멀쩡한 노신사들까지 욕먹는 것 아니겠는가.
“저 양반은 대체 언제 은퇴하려나?”
행정관 뽑을 때 집사도 고용했어야 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