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525)
공작님, 회개해주세요!-526화(526/1105)
526회
68. 공작님과 가주님 (5)
나는 무어라 반박하려 했지만, 생각을 바꿔먹었다.
한때, 세르펜스는 나에게 자신이 무섭지 않으냐는 질문을 건넸었다. 그러면서 본인이 두려움에 떨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나와 유지스가 자신을 너무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 같다며,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다.
‘과거의 세르펜스가 현재의 세르펜스를 본다면, 배부른 소리 하지 말라며 화를 내지 않을까?’
그 정도로 세르펜스의 표정에는 확신이 엿보였다.
가정에서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아이가 ‘우리 가족들은 항상 나더러 최고랬어!’라고 말하며, 우쭐거리는 것처럼.
나는 머릿속으로 어린아이 버전의 세르펜스가 의기양양하게 구는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그동안의 노력을 한꺼번에 보상받는 기분이 들었다.
열심히 우쭈쭈해 준 보람이 있다.
“선배? 어째서 지금 이 타이밍에 그런···, 감동이라도 받은 듯한 표정을 짓는 거요?”
“윈스톤은 몰라요. 지금 세르펜스가 얼마나 장하고 기특한 소리를 한 건지.”
윈스톤이 나를 이상한 놈 보듯 쳐다보았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아이도 안 키워본 윈스톤이 대체 뭘 알겠는가.
나는 1분가량 감동을 더 만끽하고 난 후에 본래의 화제로 돌아왔다.
“어쨌든 요지는 제 객관성이 의심스러우니, 윈스톤의 의견도 들어보고 싶다는 거죠?”
“그렇다. 윈스톤 경이라면 객관적으로 나를 평가해 줄 수 있을 테니까.”
세르펜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제 옆에 앉은 윈스톤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키 차이 탓에, 자연스럽게 세르펜스가 윈스톤을 올려다보는 각도가 되었다.
그에 윈스톤은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를테면 어느 날 사장님이 불쑥 찾아와 옆자리에 앉더니, ‘내게 단점이나 불만 사항이 있다면, 허심탄회하게 얘기해 보게나.’라고 하는 격이니.
더군다나 전 직장에서 바른말을 하다가 잘렸던 전적도 있는 판국에, 어찌 부담스럽지 않을 수 있을까.
“훌륭한 기사는 주군의 잘못된 점을 눈감아 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충언을 하는 자라고 생각합니다. 모진 소리도 달게 듣겠습니다. 그러니 부담 갖지 마시고, 편히 말씀해 주십시오. 프라시더스 가에는 경 이외에도 기사는 많으나, 제가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는 건 오직 윈스톤 경. 당신뿐이라는 걸 아시잖습니까?”
세르펜스가 뻣뻣하게 굳어있는 윈스톤을 향해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편하게 말하라는 세르펜스의 말에도 윈스톤의 표정은 조금도 편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일생일대의 시련을 마주한 것처럼 고뇌에 빠져들었다.
‘세르펜스는 정말 자신이 이기적이라는 말이 듣고 싶어서 저러는 걸까?’
잠깐 그런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이내 그렇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근거로 윈스톤을 바라보는 세르펜스의 눈빛 속에서 불안과 기대가 동시에 느껴졌다.
그 눈빛으로 보건대, 세르펜스가 윈스톤에게 바라는 대답은 ‘주군께서는 이기적인 분이 아니십니다.’일 거다.
‘단순히 윈스톤도 자신을 좋게 봐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섞여 있겠지만···. 그보다는 다른 이유가 더 크겠지?’
세르펜스에게 있어, 나와 유지스를 제외한 사람들의 평가는 미지의 것이다.
그동안 ‘진짜 자신’은 꼭꼭 숨겨 놓고 연기로만 사람을 대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나로서는 세르펜스가 타인의 평가에 휘둘리지 않았으면 하지만, 녀석의 태도가 잘못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항상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살아왔던 사람이 한순간에 바뀔 수 없으니까.
그리고 타인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는 아주 자연스러운 감정이니까.
아무튼 세르펜스가 윈스톤에게 ‘나는 이기적인가?’라는 물음을 던진 이유는.
나와 유지스랑은 다르게, 윈스톤이라면 자신을 냉정하게 평가해 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윈스톤이 ‘진짜 자신’을 나쁘지 않다고 말해주면, 진심으로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게 아닐까 한다.
‘물론 세르펜스 성격에 윈스톤 한 사람의 말만 듣고, 세상 모든 사람이 진짜 자신을 좋게 봐줄 거라고 믿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어쩌면 자신은 정말 괜찮은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작은 자신감 정도는 싹 틔울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윈스톤, 솔직하게 말씀해 드려요. 그게 세르펜스가 바라는 겁니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굳어있는 윈스톤을 향해 말했다.
그러자 세르펜스가 긴장된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이며 내 말에 동의했다.
아까는 모진 소리도 달게 듣겠다며 태연한 척 굴더니만. 역시나 속으로는 조마조마한 마음을 달래가며, 노심초사하고 있었나 보다.
“저는···, 전제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한참이나 말 한마디 없이 깊은 고뇌에 빠졌던 윈스톤이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세르펜스는 이기적인가, 그렇지 않은가. 그 물음에 대한 답으로는 부자연스러운 말이다.
머릿속으로 의문이 떠올랐다. 세르펜스도 의아했는지, 윈스톤에게 시선을 고정한 상태로 갸웃 고개를 기울였다.
“제가 보기에 주군께서는 ‘보호 대상’과 멀리 떨어져 지내야만 하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자신만 ‘보호 대상’과 함께 다니며, 불안감을 덜어내는 것 같아서 고민하고 계신 듯합니다. 제가 제대로 이해한 게 맞습니까?”
“네, 그게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세르펜스가 의아함과 불안함이 뒤섞인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에 윈스톤은 앞서 한참이나 말도 못 하고 머뭇대던 것이 무색하게도. 이번에는 일말의 망설임조차 없이 곧장 입을 열었다.
“설마 주군께서는 선배를 그저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만 보고, 함께 다니고 계셨던 겁니까?”
또다시 질문이다.
세르펜스는 쉽게 대답하지 못하고 혼란스럽다는 얼굴을 했다.
마치 ‘나는 지금 혼나고 있는 건가? 대체 왜지? 내가 뭔가 또 잘못한 건가?’라고 말하는 듯한 얼굴이다.
졸지에 주군을 혼내는 기사가 되어 버린 윈스톤은 고개를 반대 방향으로 돌려, 크흠 하고 목청을 가다듬었다.
헛기침은 핑계일 뿐이고, 그냥 세르펜스의 얼굴을 마주 보고 있기 힘들어서 고개를 돌린 걸 테다.
“주제넘은 소리를 했다면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제가 무엇을 잘못한 건지 말씀해 주십시오.”
세르펜스는 윈스톤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게끔 몸을 틀어 자세를 바꾸고, 소파에 비스듬하게 앉으며 부탁 조로 말했다.
여기서 윈스톤이 조금만 더 뜸을 들이면, 부탁을 넘어 애원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적극적인 모습이다.
보는 내가 다 부담스럽다.
“아, 알겠습니다.”
다행히도 윈스톤은 세르펜스가 더 구질구질한 모습을 보이기 전에 입을 열긴 했다.
그와 동시에 슬금슬금 옆으로 이동하여 세르펜스에게서 멀어졌지만.
세르펜스는 윈스톤이 알겠다고 한 것만으로도 만족했는지, 구태여 넓어진 거리를 다시 좁히지 않았다.
“주군께서 그런 고민을 하게 된 건, 시온 선배를 그저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서 생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껏 윈스톤이 세르펜스를 대할 때, 이렇게까지 단호한 태도를 보인 적이 있던가 싶을 정도로.
윈스톤은 딱 잘라 세르펜스의 말을 부정했다.
“제가···, 시온을 과하게 보호한다는 말이라도 하고 싶으신 겁니까?”
세르펜스가 울상을 지었다.
어째서 그런 잔인한 말을 하는 거냐며, 제발 그러지 말아 달라고 사정이라도 하는 것 같다.
‘무턱대고 살기를 날린다거나 화를 내는 대신에. 저렇게 저자세로 행동하는 건, 윈스톤 또한 세르펜스에게 소중한 사람 중 하나가 되었다는 증거겠지?’
세르펜스에게 소중한 사람이 늘어난 건 매우 기쁘다.
하지만 녀석이 저렇게 숙이고 들어가는 모습을 보는 건 착잡하기만 하다.
더군다나 윈스톤은 평등한 친구 사이도 아니고, 엄연히 자신의 아랫사람인데도 저러다니.
“그런 뜻에서 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시온 선배에게 위험한 일이 생긴다면, 저 또한 몸을 날려서라도 지켜 드릴 겁니다. 하지만 그건 선배가 보호해야 할 대상이라서가 아닙니다. 자신을 지킬 수단이 부족하고, 신의 사자라는 특성상. 악마 숭배 세력에게 집중적으로 노려지기 때문입니다.”
“···그게 보호해야 할 대상이라는 것과 어떻게 다른 겁니까?”
어쨌거나 윈스톤의 말은 나를 열심히 지키겠다는 뜻이었기에, 되묻는 세르펜스의 표정은 많이 누그러져 있었다.
하마터면 주군을 울릴 뻔했던 윈스톤이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었다.
그러고는 ‘그러니까···.’ 하고 운을 먼저 떼 놓고, 끄응 앓는 소리를 흘렸다.
머릿속으로는 떠오른 생각이 있는데, 그걸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게 아닐까 한다.
그로부터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윈스톤은 생각 정리를 끝내고 세르펜스를 마주 보았다.
“제게 있어 시온 선배는 ‘보호 대상’이 아니라, 함께 싸워나가는 동료입니다. 비록 적과 직접 검을 맞대는 건 아니지만, 선배는 분명 한 사람 몫을 다 하고 있습니다. 작전을 짠다거나, 임기응변으로 적을 혼란스럽게 한다거나. 적을 도발··· 하는 건 조금 자제해 줬으면 하지만. 아무튼 그 외에도 평상시 저희의 컨디션을 신경 써 준다거나 하며,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 주고 있지 않습니까?”
“그 말인즉···. 시온은 우리의 동료로서 함께 하는 것이니, 제가 다른 분들께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윈스톤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세르펜스는 멍한 표정으로 ‘아···.’ 하고 나직한 탄성을 흘리다가,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를 표정으로 입을 앙다물었다.
그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안심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세르펜스가 스스로를 이기적이라 말했던 건.
다른 사람들이 ‘어째서 너 혼자만 지켜야 할 이를 곁에 두는 거냐’라며, 자신을 비난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결론은···. 선배와 함께 다닌다고, 주군께서 이기적인 사람이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윈스톤이 머쓱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마무리 지었다.
마음 같아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뼉을 치며 ‘브라보’를 연호하고 싶었지만, 괜히 감동을 파괴할 것 같아서 꾹 참았다.
“그럼 저는 이기적인 사람이 아닌 겁니까···?”
“더하고 덜한 차이가 있을 뿐,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인 면이 있기 마련입니다. 굳이 주군의 이기적인 면을 찾아보자면, 선배에 관해 너무···. 그러지 마십시오.”
충언을 잘하는 훌륭한 기사인 윈스톤은 ‘주군께서는 하나도 이기적이지 않습니다!’로 말을 끝맺지 않았다.
아까 그게 마무리 멘트인 줄 알았는데, 아직 할 말이 더 남아 있었나 보다.
앞뒤 다 잘라먹은 윈스톤의 말에, 세르펜스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눈을 깜박거렸다.
“시온 선배가 신의 사자라고는 하나, 그것만 제한다면 그냥 평범···. 굉장히 특이하지만, 어쨌거나 결국 그냥 사람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주군께서는 선배를 완벽한 존재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건 선배에게도 부담을 주는 일이고, 장차 주군께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겁니다.”
윈스톤이 매우 옳은 말을 했다. 내가 특이하다는 말만 제외한다면 말이다.
판타지 세계에 왔더니, 만나는 사람마다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 같아서 매우 억울하다.
나는 정말 평범한 사람인데 말이다.
그래도 세르펜스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나’보다는 그냥 ‘이상한 사람’이 훨씬 낫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