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527)
공작님, 회개해주세요!-528화(528/1105)
528회
68. 공작님과 가주님 (7)
* * *
르웰의 연설은 성공적이었다.
후계자로 유력했던 클로반도 첫째인 챈들러도 아닌. 그녀가 연단에 섰을 때, 혼란스러워하며 수군거리던 목소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혼란은 잠시뿐. 르웰의 입이 열리고 나자, 수군거림은 차츰 사그라들었다.
르웰이 연설에서 말한 것은 크게 두 가지였다.
그저께 있었던 마물들의 습격에 관한 것과 휴마누스 일행을 향한 감사 인사였다.
따지고 보면 연결된 한 가지 주제였지만, 시간 배분상 그렇게 두 가지 내용으로 구분되어 머리에 남았다.
전대 세라투 자작의 죽음을 언급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 얘기는 처음에만 잠깐 스쳐 지나갔을 뿐. 르웰의 말이 이어질수록, 그것은 ‘중요한 주제’에서 밀려났다.
‘현재 영지민들에게 중요한 건, 전대 세라투 자작이 어쩌다가 죽었는지 따위가 아니니까.’
영지에 마물들이 몰려들었던 건, ‘마인 러스티’의 소행이었다.
성검의 주인과 그 동료들의 빠른 대응 덕분에 사망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마인 또한 도망쳤으니, 이제는 안전하다.
무너진 건물들의 복구 작업은 최대한 빨리 진행할 예정이고, 그동안 머무를 장소와 음식을 제공하겠다. 금전적인 보상도 준비하고 있다.
이게 바로 영지민들이 원하던 얘기였고, 르웰은 그것들을 빼놓지 않고 말하였다.
영지민들은 마인이라는 무시무시한 적이 나타났었다는 말에는 공포를. 그자가 도망쳤다는 말에는 기쁨을. 복구 작업과 보상에 관한 말에는 안도를 느꼈다.
그런 영지민들의 앞에서 르웰은 조금의 흔들림도 보이지 않았다.
떨림 없는 목소리는 무척이나 당당했고, 작은 체구에서 나왔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힘이 넘쳤다.
권위를 내세우기보다는 책임을 말하였고, 그 모습이 자연스럽게 르웰을 지도자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휴마누스를 비롯한 성검 일행들에게 감사를 표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다른 무엇보다도 영지민들의 안전을 우선시한 그 뜻을 높이 기리며, 영지민들로 하여금 주위를 둘러보게 했다.
그러고는 ‘지금 마주 보는 당신의 가족과 친구와 이웃이 바로, 성검의 주인과 그 일행분들께서 구해낸 목숨’이라고 말하였다.
르웰은 성검 일행이 있었기에 모두가 이곳에 모일 수 있었으며, 자신은 영지민들의 무사한 얼굴을 마주할 수 있게 되어 더없이 기쁘고 감사하다고도 말했다.
자신의 안전을 걱정해 주며, 무사함에 기뻐하는 사람을 부정적으로 여기는 자는 극히 드물다.
심지어 말로만 그러한 게 아니라, 피해를 본 사람들에게 보상까지 약속했다.
악숭이들로 인해 현실은 불안했고, 그런 상황에서 높으신 양반이 자신들의 안전을 신경 써 주는 모습을 보였으니.
영지민들은 빠르게 마음을 열었다.
그녀의 연설 내용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일파만파 퍼져 나갔고, 세라투 령은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다.
전투가 치러졌던 루테일 거리의 복구 작업도 착착 진행되어 갔다.
르웰과 베일은 정신없이 서류 속에 파묻혀 살았고, 우리는 신전을 세울 터를 보러 다니는 척. 세라투 령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다녔다.
종종 사람들이 르웰이나 휴마누스에 관해 얘기하는 걸 들을 수 있었는데, 성공적인 연설 덕분인지 긍정적인 의견이 대다수였다.
‘아직은 어린 영주가 잘 해낼 수 있을까 불안해하는 사람도 없잖아 있지만···.’
그건 시간이 해결해 줄 일이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르웰의 작위 계승을 축하하는 연회가 열리는 날이 되었다.
오늘만큼은 르웰과 베일도 손에서 일을 놓고, 연회가 열리기 전까지 응접실에서 휴식을 취했다.
“보통 연회 당일이 신경 쓸 게 많고, 가장 바쁘지 않아요?”
“이번 연회는 대충 치러지는 게 핵심이니까 괜찮습니다.”
르웰은 내 물음에 그렇게 대답하고는 그 어느 때보다 여유로운 모습으로 차를 홀짝였다.
하기야 연회에는 빠질 수 없다는 악단조차 섭외하지 않았으니. 신경 쓸 것 자체가 별로 없을 것 같다.
“그나저나 오늘이 바스툴 왕국의 역사를 다시 쓰기 위한, 첫걸음을 내딛는 날인데. 굉장히 태연해 보이시네요?”
“지금보다 며칠 전 영지민들 앞에서 연설할 때가 더 떨렸습니다.”
“에이, 하나도 안 떠신 것 같던데요?”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보여야 하는 자리니까, 그럴 수밖에요.”
르웰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후후 웃음소리를 흘렸다.
그녀는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말했지만, 정말로 별거 아닌 일이 될 수는 없다.
떨지 않아야 하는 자리라고 해서, 진짜로 떨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세상 모든 사람이 그럴 수 있다면 면접 자리에서 떠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겠지.
그러니 르웰이 훌륭히 연설을 끝마친 건. 그 뒤에 있는 게 노력이든 재능이든 뭐든 간에, 정말 대단한 거다.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은 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긴장해야 할 분은 따로 있는데, 저까지 긴장할 필요가 있나요.”
르웰의 말대로, 그녀의 작위 계승을 축하한다는 건 귀족들을 불러 모으기 위한 구실일 뿐.
조금 후에 시작될 연회는 베일을 왕위에 올리기 위해, 그를 도와줄 귀족들을 설득하는 자리다.
“제가 초대장을 보낸 이들은 전부 현 바스툴 왕실에 불만을 가진 자뿐입니다. 또한 그런 이유가 없더라도. 저하께서 살아 계시고 왕위를 찬탈하고자 준비하고 계신다는 걸 알게 된다면, 자신의 영달을 꾀하려 저하를 돕고자 하겠지요. 그렇기에 제가 걱정해야 할 건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서 진심 어린 충성을 받아 내는 건, 오롯이 내 몫이겠지.”
여유로운 르웰과는 반대로. 베일의 표정과 목소리에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베일이 못 미더운 건 아니지만, 옆에 똑 부러지는 르웰이 있어 줘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괜히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길 반복하는 베일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불쑥 장난기가 돌았다.
“그렇게 긴장되면, 제가 신성력이라도 써 드려요?”
“사양하겠습니다. 이제 고작 시작일 뿐인데, 벌써 타인의 능력에 의존할 수는 없습니다. 아니, 앞으로도 그건 마찬가지일 겁니다. 저의 정신이 나약하다면, 짊어지고 나아가든 이겨내든. 제가 스스로 해결해야 할 일이지, 외면해서 좋을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베일이 인상을 찌푸리며 불만스럽다는 듯 대답했다.
신성력도 없는 내가 신성력을 써 줄까 물었으니. 자신을 시험하는 것처럼 느껴졌나 보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낄낄 웃었고, 베일의 미간에 새겨진 골은 더욱더 깊어졌다.
“인상 피세요, 인상! 이제 겨우 스무 살밖에 안 되셨는데, 그러다가 저보다 먼저 주름이 생기겠습니다?”
“주교님께서 지금처럼 저를 놀리지만 않는다면, 그럴 리는 없습니다.”
“놀리다니요? 신성력으로 정신을 안정시키는 게 얼마나 섬세한 작업인데! 제 걱정 어린 성의를 그렇게 해석하시다니, 참으로 서운합니다.”
“하지만 주교님은···! 후우─, 됐습니다.”
내가 흐르지도 않는 눈물을 훔치는 시늉을 하자, 베일이 무언가를 말하려다 말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대충 주교님은 신성력 하나 없는 일반인이지 않으냐는 말을 하려던 걸 테다.
하지만 그 사실을 르웰이 알 리가 만무했고. 그녀는 자신의 군주가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하께서는 주교님의 말씀에 이상하리만치 쉽게 흥분하시는 것 같은데···. 두 분 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정말 많은 일이 있었···.”
“아무 일도 없었네!”
베일이 내 말을 싹둑 잘라먹으며 다급히 소리쳤다.
심지어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떠올린 탓인지 얼굴까지 붉힌 터라, 누가 보아도 ‘무슨 일이 있었다.’라고 강하게 주장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니 르웰의 표정에 호기심이 더 선명하게 떠오른 것도 당연한 일이다.
베일이 정말 말할 거냐고 묻는 듯. 혹은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입을 다물라고 으르기라도 하는 듯.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나를 노려보았다.
‘저래봤자 하룻강아지가 짖는 것 같아서, 하나도 위협적이지 않지만.’
그래도 정말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말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애초에 그 얘기를 하려면 세르펜스가 ‘프라시더스 공작’이라는 것도 밝혀야 하고 말이다.
나는 호기심 가득한 르웰의 얼굴을 마주 보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사이가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르웰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도저히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다가 시계를 힐끔 보고 난 후 자신의 앞에 놓인 찻잔을 비워 냈다.
“이제 연회 시작 전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저는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옷도 갈아입어야 하고, 아직 연회에서 시중을 들 사용인들에게 저하의 정체를 말하지 않은지라. 입단속을 시킬 겸, 그들이 놀라지 않도록 미리 말해 두어야겠습니다.”
“예, 그럼 연회장에서 봅시다.”
내가 손을 흔들며 말하자, 르웰이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목인사를 했다.
최근 르웰과 늘 붙어 다니던 베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보안을 철저히 해야 하니, 연회 중에도 성기사 갑옷을 그대로 입고 있을 생각인가 보다.
“그러고 보니, 주교님께서는 갈아입을 의복이 든 가방을 항상 가지고 다니시지요? 시종에게 얘기해 둘 테니, 번거롭게 별관까지 갈 것 없이 안내해 드린 방에서 예복으로 갈아입으시면 됩니다.”
르웰이 나가려다 말고, 문득 떠올랐다는 듯 말했다.
설마 연회에 참석하는 성직자들은 예복을 입어야 한다는 규칙이라도 있는 걸까?
그렇다고 하기엔 성검 일행의 출정식에 예복을 입은 성직자는 한 명도 못 봤다.
심지어 출정식의 주인공 중 한 명인 리에나조차 활동복을 입고 있었다. 주교급이라 예복을 받았을 텐데도 말이다.
어리둥절해 하는 나를 바라보며 베일이 득의양양하게 웃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베일이 무언가 꾸미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럼 저는 진짜로 나가보겠습니다. 자세한 건 저하께서 설명해 주실 겁니다.”
아니나 다를까.
르웰이 베일에게 설명을 들으라는 말을 남기고 응접실을 나갔다.
문이 닫히자마자, 나는 곧장 베일을 향해 따지듯 물었다.
“무슨 꿍꿍이입니까?”
“별거 아닙니다. 저는 그저 룩스메아 교단의 주교께서 저희의 앞날을 기원하는 기도문을 외워 주신다면, 귀족들이 의지를 다지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의견을 냈을 뿐입니다.”
제대로 나를 물 먹였다고 생각했는지, 베일의 미소가 짙어졌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헛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내가 곤란해진 건 맞긴 하다. 하지만 그 곤란함보다 더 큰 궁금증이 나를 덮쳤다.
“앞날을 기원하는 그런···, 중요한 일을 진짜 주교도 아닌 사람에게 맡겨도 되겠어요?”
“진짜 주교는 아니지만, 신의 계시를 받는 신의 사자이지 않습니까?”
룩스메아가 내게 직접 계시를 내리니, 내가 기도를 올리는 것도 당연히 귀 기울여 줄 거다. 뭐 그런 논리였다.
언뜻 그럴듯하게 들리는 말이었지만, 턱도 없는 소리다.
나는 룩스메아에게 직통으로 계시를 받은 적도 없고, 룩스메아가 내 말에 귀를 기울였으면 진작에 신호를 보내왔을 거다.
내가 욕을 해댄 것에 화를 내든,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든. 이도 저도 아니면 세르펜스를 잘 키워줘서 고맙다고 감사 인사를 하든.
하지만 룩스메아는 그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그건 그렇다고 치죠. 그럼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질문인데, 반역의 성공을 기원하는 기도를 제게 맡기고 싶으세요? 아시잖아요, 제가 어떤 기도문을 외는지.”
“아···.”
거기까진 생각 못 했는가 보다.
베일이 절망 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이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내게 상의도 없이 기도문을 외게 시켜놓고 저딴 반응이라니. 정말 해도 너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