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534)
공작님, 회개해주세요!-535화(535/1105)
535회
68. 공작님과 가주님 (14)
* * *
마물이 철로를 끊어먹은 건 대륙 각지에서 벌어진 일이다.
하지만 기차에 탄 탑승자가 전원 사망한 사건은 오직 바스툴 왕국 내에서만 일어났다.
비록 직접 마물에게 습격을 당한 게 아니라, 철로가 끊어졌다는 걸 모르는 상태로 기차를 운행하다가 생긴 사고라고는 하나.
[“사고가 난 기차의 탑승자 명단에 2왕자로 추정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더라.”]이러한 얘기가 더해진다면 말이 달라진다.
여러 귀족 가문에서 중구난방으로 소문을 흘리기 시작하자, 바스툴 왕국 전역이 떠들썩해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 한마디가 불러온 반향은 기대 이상이었다.
우리 측에서 ‘2왕자는 기차 사고로 죽은 게 아니다.’라는 말을 흘리기도 전에, 사람들은 알아서 각종 음모론을 제시했다.
[“모종의 이유로 2왕자가 죽었는데, 때마침 기차 사고가 나서 은근슬쩍 끼워 넣은 거다.”] [“반대로 기차 사고가 일어나자, 기회다 싶어 2왕자를 죽인 걸지도 모른다.”] [“혹시 2왕자를 죽이고 나서 은폐하려고 일부러 기차 사고를 낸 거 아니냐.”] [“사실 사고 당시 생존자가 남아 있었는데, 그 자리에 2왕자가 없었다는 걸 숨기려고 전부 죽였다더라.”]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릴수록 소문은 점차 자극적으로 변해 갔다.
그 외에도 이런저런 말이 많았지만, 공통적으로 ‘누군가가 2왕자를 죽이고, 그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라는 의식이 깔려 있었다.
기차 사고와 2왕자의 죽음.
두 사건의 전후 관계를 파헤치는 건, 일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의 관심은 금세 다른 의문으로 옮겨 갔다.
[“그렇다면 누가 2왕자를 죽이고, 그의 죽음을 은폐하려 한 거지?”]그 의문에 대한 답을 내리는 건 쉬웠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바스툴 왕실을 떠올렸다. 2왕자가 기차 사고로 죽었다고 발표한 게 그들이었으니까.
베일이 왕에게 밉보였다는 사실은 바스툴 왕국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베일은 친어머니인 전 왕비가 살아있을 때만 해도, 제국에 사절로 보내질 만큼 활발히 대외활동을 했다.
유력한 차기 왕 후보였던 그가 전 왕비의 죽음 이후, 공식 석상에 나서는 일이 사라졌으니.
전 왕비의 죽음까지 거론되며, 2왕자를 죽인 건 바스툴 왕실이라는 게 거의 확정시 되었다.
소문에 예민한 귀족들의 귀에 이런 얘기가 흘러들어 가지 않을 리 없다.
르웰의 축하연에 참석했던 귀족 중 하나가 사업을 핑계로 찾아와 전하길, 귀족들 또한 베일을 죽인 흉수가 왕실일 거라고 확신한다는 모양이다.
귀족들은 왕실의 사정을 잘 아는 만큼, ‘결국 죽였구나?’ 하고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심지어는 ‘죽일 거면 선택의 날 전에 죽이시지. 잘 참다가 왜 이런 혼란한 시국에···.’라든가.
‘시기는 그렇다 쳐도, 기차 사고 같은 큰 사건이랑은 엮지 마시지.’ 같은 말을 하는 작자도 있었다고 한다.
‘이래서 평소의 행실이 중요하다니까?’
토대가 탄탄하게 깔렸으니, 작전은 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왕실은 어째서 아무 세력도 갖추지 못하여 위협조차 안 되는 2왕자를 죽인 걸까? 혹시 외부에 알려지면 안 되는 비밀이라도 생겼나? 예를 들면 악마 숭배 세력과 관련된···.”]앞서 퍼트렸던 소문과 다르게 이번 소문은 아주 은밀하고 조심스럽게 퍼져 나갔다.
하지만 기본 바탕이 되는 소문이 워낙 널리 퍼져 있었던지라.
앞에서는 말을 아끼는 척하지만, 뒤에서 삼삼오오 적은 수로 모여서 쑥덕거리니 쉬쉬하며 조심하는 것도 소용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흐르자, 첫 번째 소문을 접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두 번째 소문까지 알게 되었다.
더군다나 소문은 더 이상 바스툴 왕국 내에서만 머물지 않았다.
타국에 사는 사람들은 바스툴 왕실의 눈치를 살펴야 할 이유가 없었으니. 두 번째 소문은 근원지인 바스툴 왕국보다 외국에서 더욱 활발히 퍼져 나갔다.
‘이대로라면 바스툴 왕국은 제2의 공국이 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까지 나돌고 있다나?’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축하연에 참석했던 귀족들은 크고 작은 사교 파티에 열심히 참석했다.
차마 대놓고 ‘왕께서 악마 숭배 세력과 손을 잡았다면 정말 큰일 난 거 아니야?’라는 말은 못 하더라도.
[“공국 출신의 귀족들은 지금 전 재산과 작위를 몰수당해서, 평민보다 못하게 살고 있다더라.”] [“그 정도면 다행이지, 목이 붙어 있는 자가 드물다더라.”] [“공왕이 아주 끔찍한 짓을 저질렀다.”]이런 얘기는 얼마든지 떠들어댈 수 있었다.
거기다 대고 말을 함부로 하지 말라고 제재한다면, ‘우리 왕은 악마 숭배 세력과 손을 잡았고, 나도 거기에 동조했다.’라고 말하는 것밖에 안 된다.
평민이고 귀족이고 할 것 없이 바스툴 왕국은 불안에 잠식되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우리가 신호를 주기도 전에 교단이 나서서 바스툴 왕실에 해명을 촉구했다.
바스툴 왕실에서는 당연히 헛소문이라며 발뺌했지만···.
‘믿어줄 리가 없지.’
교단은 바스툴 왕실이 악숭 세력과 손잡으려 했다는 사실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바스툴 왕국 내의 신전은 경계 태세를 갖추고, 성기사들을 신전 주변에 세워 살벌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공국에 있던 신전 소속의 성직자들이 전부 행방불명 되었다는 걸 생각해 보면, 지당한 대응이다.
“이제 시작하는 겁니까?”
나는 호출을 받고 응접실에 도착하자마자, 소파에 앉기도 전에 질문부터 던졌다.
가만히 앉아서 소문이 퍼져 나가는 걸 보고 받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더는 좀이 쑤셔서 안 되겠다.
노는 것도 마음의 평안이 뒷받침되어야 진심으로 즐길 수 있는 법이다.
무언가 터질 듯 말 듯, 아슬아슬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으니.
빨리 바스툴 왕실을 엎어 버리고 공작저로 돌아가 쉬고 싶다는 생각만 간절해졌다.
“그럴 생각이긴 한데···.”
어쩐지 르웰이 찝찝하다는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나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무슨 문제라도 있느냐고 물어보려는 그때.
르웰이 고급스러운 봉투에 담긴 편지를 내게 내밀었다.
“왕실에서 보내온 서찰입니다.”
순간 왕실에서 ‘혁명’을 눈치챈 건가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으나, 그랬다면 꼴랑 편지 한 통으로 끝났을 리가 없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예의 소문’과 관련된 편지라는 건 틀림없다.
나는 조심스럽게 봉투에서 편지를 꺼내어 펼쳤다.
이것저것 길게 적어 놓았지만, 요약하자면 ‘작위를 이어받은 걸 축하하고, 왕실 연회에 참석해라.’라는 내용이었다.
“원래 세라투 가문은 왕실 연회에도 초청받습니까?”
“아버지께서 종종 왕실에 선물을 보내곤 했으니, 초대장이 온 게 처음은 아닙니다.”
“왕실에서 자작 가문의 선물을 받자고 친히 초대장까지 보낼 리는 없고···.”
무언가 꿍꿍이가 느껴진다.
르웰은 공식적으로 성검의 주인에게 감사를 표했고, 표면적으로는 영지 내에 신전 설립 계획을 앞두고 있으니.
어쩌면 소문을 퍼트린 배후로 의심하여, 그녀를 떠보려고 부른 걸지도 모른다.
“이런 시기에 무슨 목적으로 연회를 열어 가주님을 초대한 건지는 몰라도, 좋은 의도로는 느껴지지 않습니다.”
“아무런 견제 없이 왕성에 들어갈 기회긴 해도, 역시 참석하지 않는 게 낫겠지요?”
르웰이 미련 따윈 없다는 듯, 내 손에 들린 편지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어깨를 으쓱였다.
그냥 이런 게 있다고 보여준 것일 뿐. 초대에 응할 생각 같은 건 애초에 없었나 보다.
나도 손에 들린 편지를 그냥 찢어 버렸다.
“이제 슬슬 왕실 측에서도 무언가 행동을 취할 거라고는 예상했습니다. 아마 이번 연회는 그 ‘소문’에 관한 왕실의 입장을 표명하는 자리가 될 겁니다.”
베일은 내가 편지를 찢거나 말거나, 신경도 쓰지 않고 제 할 말을 했다.
소문은 바스툴 왕실이 나서서 수습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현 바스툴 국왕은 [성검의 주인]에서 ‘악마 숭배 세력과 교단의 싸움에 끼어들고 싶지 않다.’라고 선언하며, 휴마누스에 대한 지원을 끊고 나 몰라라 했던 전적이 있다.
그때 써먹은 변명이 ‘나라를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결단’이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다.
그러니 바스툴 왕실이 할 수 있는 건, 자신들이 악숭했다는 걸 밝히고 주변국들과 전면전을 벌이거나.
모르쇠로 일관하며 소문이 잠잠해지길 기다리는 것뿐이다.
“왕실이 어떤 선택을 내릴지, 지켜보실 겁니까?”
“연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그럴 수는 없습니다.”
내 물음에 베일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불러모은 귀족들을 흑마법으로 세뇌하여, 영지 내에 있는 신전을 공격하라고 지시한다거나.
혹은 귀족들을 인질로 붙잡아 둔다거나.
머릿속으로 여러 가능성을 떠올려 보는 그때.
“그러고 보면, 기차 사고로 꽤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도 다섯 번째 악마 소환은 아직이죠?”
유지스가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게 지금 상황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 내가 생각에 잠기기도 전에. 세르펜스가 재빨리 유지스의 말을 이어받았다.
“어쩌면 악마를 소환하기에 제물이 조금 부족했던 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부족한 제물을 충당하기 위해, 귀족들을 왕궁으로 불러들였을 가능성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여기서 세르펜스의 ‘생각해 봐야 한다.’라는 말은 곧, ‘귀족들이 그렇게 생각하도록 소문을 퍼트리자.’라는 뜻이다.
일견 그럴듯하게 들리는 말이나, 깊게 파고 들어가면 그렇지도 않다.
‘유지스야 워낙에 음모론을 좋아하다 보니 평소처럼 음모론을 제시한 것뿐일 테고. 세르펜스는 세르펜스대로, 평소와 다름없이 이간질을 시도하는 거겠지.’
[성검의 주인] 시기와는 달리, 지금은 악숭 세력이 제물을 모으기에 좋은 환경이 아니다.그러니 악숭 세력이 재깍재깍 악마를 소환하지 않는 건 제물을 아끼기 위함일 테다.
현재 차원의 궤도 상. 시간이 지날수록 마계와 가까워져, 적은 제물로 강한 악마를 소환하는 게 가능해지니까.
비단 기차 사고뿐만 아니라, 공국과 벌인 전쟁에서 희생된 이들 또한. 혈옥으로 뭉쳐져 어딘가에 보관되어 있을 거다.
‘그때 사망한 공국민 수가 얼마나 많은데···. 고작 악마 한 마리 소환되고 땡이겠어?’
차라리 세르펜스의 말대로 제물이 부족해서 악마가 소환되지 않은 거라면 좋겠다.
아무튼 그런 이유에 근거하여 세르펜스가 순진한 척 굴고 있다는 건 눈치챘지만, 나는 일부러 티 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정말 그런 거라면 큰일이 아닙니까?!”
베일이 분개하며 소리쳤다.
세르펜스의 말을 의심해 볼 생각조차 하지 않고, 대뜸 화부터 내는 그 모습에 나는 혀를 내둘렀다.
‘존경심이라는 게 대체 뭐길래, 이렇게 사람을 단순하게 만들 수 있는 걸까?’
르웰은 무언가 눈치챈 듯한 표정이었으나, 베일을 말릴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귀족들이 현 바스툴 왕실에 배반감을 느끼며 두려워할수록.
베일이 왕위에 올랐을 때, 그를 생명의 은인처럼 여겨 충성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