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536)
공작님, 회개해주세요!-537화(537/1105)
537회
69. 공작님과 패륜 왕 (2)
연설이 끝나자마자 우리는 세라투 령을 떠나 수도로 향했다.
세르펜스는 진두에서 군사들을 통솔하는 베일을 호위했다.
그리고 나와 유지스, 윈스톤, 에드나는 대열의 꽁무니에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천천히 이동했다.
“주교님, 저희만 이렇게 마차를 타고 가도 되는 거예요?”
에드나가 창밖으로 내밀었던 머리를 마차 안으로 되돌리며 질문했다.
앞서 걷는 병사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는 베일과 르웰조차 말을 타고 이동 중이었다.
그런데 우리만 마차를 타고 간다는 게 심리적으로 불편했나 보다.
“신관님, 우리는 어디까지나 목적지가 같기에 함께 움직이는 것뿐입니다. 일시적인 동행일 뿐이죠. 그런데 저희가 2왕자 저하 옆에서 걷거나 말을 타고 있으면, 다들 뭐라고 생각하겠습니까?”
“···그냥 걷기 귀찮다거나, 말 고삐를 잡아줄 사람이 없어서 마차를 탄 게 아니었어요?!”
내 대답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에드나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번에는 내가 경악할 차례다.
“예?! 대체 저를 어떻게 보고···. 아니, 그 전에 ‘프라시더스 공작님’을 대체 뭐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공작이란 신분은 말입니다, 남이 탄 말의 고삐를 잡아 주는 직업이 아닙니다.”
“자기 좋을 때만 그렇게 설정과 실제를 오가는 건 너무 치사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네, 않아요!”
나는 씩씩하게 대답했고 에드나는 기가 막힌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유지스는 이런 우리를 보며 후후, 기분 좋게 웃었다.
“이런 설정이 없어도 세르펜스가 모는 말을 잘 타고 다니셨으면서, 그런 말씀을 하시나요?”
“말을 같이 타는 거랑 고삐를 잡아주는 게 어디 같습니까?”
내가 어깨를 으쓱이며 반박하자, 유지스는 듣고 보니 그런 것도 같다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에드나는 별로 동의하지 않는 표정이었지만.
덧붙여 윈스톤은 마차를 몰고 있어서 우리의 대화에 참여할 수 없었다.
‘아니지? 마부석과 연결된 창이 열려 있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걸 보면···.’
사람이 걷는 속도로 천천히 마차를 몰고 있는데, 대화에 참여할 정신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즉, 윈스톤은 그냥 대화에 끼고 싶지 않아서 못 들은 척하고 있다는 뜻이다.
“거, 큰 성기사님도 점잔 그만 빼고 저희랑 같이 놉시다!”
“저는 주변을 경계해야 해서 바쁩니다. 세 분이 재밌게 노십시오.”
“에이, 그러지 말고요. 솔직히 말해서 주변을 경계하느라 말을 안 하는 게 아니잖아요? 성기사님의 양심은 안녕하십니까?”
“···주교님의 양심보다는 안녕합니다.”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윈스톤이 이렇게 농담하는 걸 다 보고 말이다.
우리는 혁명이나 내분과 완전히 동떨어진. 일상적인 대화를 주고받으며 한참을 노닥거렸다.
그러는 동안에도 마차는 느릿하게 계속 나아갔다.
병사들은 계속 행군을 하면서 비스킷이나 육포 등으로 간단하게 점심을 때웠다.
출발하기 전에 병사들에게 충분히 고지한 내용이다.
왕실이 혁명에 관한 소식을 접하고 방비할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들이 저항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인명 피해도 덩달아 커진다는 걸 알기에, 불만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물론 우리 일행이야, 뭐. 마차에서 편히 도시락을 까먹었지만···.’
그렇다고 병사들이 매 끼니를 대충 때우도록 놔둔 건 아니다.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병사들은 두 개의 조로 나뉘어, 한쪽에서는 야영 준비를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저녁에는 제대로 된 식사를 챙겨 먹일 작정인가 보다.
식사를 마친 뒤, 병사들은 침낭 하나에 의지하며 잠을 취했다. 이곳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베일이나 르웰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다.
‘슬슬 가을인가···?’
밤바람이 제법 찼다.
다음날 새벽. 병사들은 일어나자마자 부지런히 자리를 정리하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아침도 이동하면서 대충 때울 생각인가 보다.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마차에 올라타, 아공간 주머니에서 샌드위치를 꺼내 먹었다.
샌드위치를 다 먹고 잠이 완전히 달아날 즈음. 마차가 멈춰 섰다.
나는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전방을 확인했다.
거대한 성벽이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바스툴 왕국의 2왕자 베일 바스툴이다! 왕실의 피를 이은 자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이렇게 돌아왔다! 백성들이 괴로워하는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고, 안연좌시하는 현 왕을 끌어내리고자 이렇게 검을 들었노라!”
이번에도 목소리 증폭 장치를 썼는지 베일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어제의 연설은 베일이 예비 국왕으로서 자신의 정의를 알리고, 스스로 다짐하는 내용이었다.
반면에 지금은 혁명을 주도하는 사령군으로서, 상대방에게 투항을 권고하며 협조를 요청하고 있었다.
그 때문일까?
말투에서부터 극명한 차이가 두드러졌다.
“자격이 없는 자에게 왕위를 맡겨서는 안 된다! 그대들도 내 뜻에 동의한다면 성문을 열어라!”
어제는 제법 부드러운 말투를 사용했었는데, 오늘은 전의가 넘치고 위압적인 분위기가 풍겼다.
분명 같은 도구를 사용했음에도, 그의 목소리가 어제 연설을 했을 때와 딴판으로 느껴졌다.
“······”
무언가 대답이 돌아온 것 같은데 내 청력으로는 들리지 않았다.
평소라면 세르펜스에게 물어보겠지만, 지금 그는 베일 곁을 지키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유지스를 바라봤다.
“자기에겐 결정할 권한이 없으니, 영주님을 불러올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했어요. 목소리에 오러를 담긴 한 것 같은데···. 그리 많은 양은 아니라서 먼 곳에서는 잘 안 들리나 봐요.”
유지스는 내 기대에 훌륭히 부응해 주었다.
마법으로 귀 모양을 바꿔 놓아도 단련된 신체 감각까지 사라지는 건 아닌가 보다.
“미리 영주가 대기해 있다가 재깍재깍 문을 열어 주면 좀 좋아?”
“우리는 어제 연설을 끝내자마자 쉬지 않고 계속 이동했잖아요. 그러니 영주가 아직 소문을 듣지 못한 게 아닐까요? 일부러 시간을 끌려는 작전일 수도 있겠지만···.”
유지스가 진정하라는 듯 말하다 말고, 돌연 음모론을 제기했다.
나는 그냥 별생각 없이 툴툴거린 것뿐인데.
그녀가 음모론에 더욱 심취하기 전에 말을 돌려야겠다.
“그러고 보니 저희가 거쳐 가야 할 영지가 몇 군데랬죠?”
“전부 세 군데랍니다.”
벌써 왕실이 각 영지에 시간을 끌라는 지령을 내린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판단한 걸까?
다행히도 유지스는 음모론을 계속 이어가는 대신에 지도를 꺼내어 펼쳤다.
그러고는 손가락으로 세라투 령을 가리켰다가, 수도까지 일자로 주욱 그었다.
그 경로 중앙에는 작은 영지 하나가 콕 박혀 있었다.
‘큰 영지 두 개는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가운데 낀 작은 영지 하나는 적당히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은데···.’
하지만 이 5일이란 기간은 영주들이 베일에게 협조하여, 성문을 그냥 열어 준다는 가정하에 정해진 일정이다.
길을 돌아갈 여유 시간 같은 건 애초부터 고려되지 않았다.
‘하루 정도 일찍 출발하자고 할걸.’
잠깐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번 일정을 짠 건 베일과 르웰이다.
이렇게나 촉박하게 일정을 잡은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으리라.
예를 들어, 왕이 되려면 영주 세 명쯤은 가볍게 회유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거나···.
‘너무 비약했나?’
어지간히 소문이 느린 귀족이 아니고서야. 5일이면 혁명에 관한 소식을 접하고, 가만히 집에 틀어박혀 있겠지.
왕실도 연회 같은 건 포기할 테고.
그러니 조금쯤은 늦어도 괜찮다고 생각한 거려나?
“저하께서는 일부러 영지들을 모두 거쳐 가려는 게 아닐까요?”
내가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지 눈치챘다는 듯 유지스가 말문을 열었다.
그 내용이 의아하게 느껴졌는지, 에드나가 ‘일부러요?’ 하고 물었다.
“축하연에 참석했던 귀족 중, 병력을 이끌고 수도까지 다다를 수 있는 자들이 얼마나 될까요?”
유지스는 의문에 답을 내놓는 대신, 또 다른 질문을 던졌다.
우리가 다른 영지로 진입하는 성문 앞에 멈춰 선 것처럼. 그들도 다른 가문의 영지를 거쳐야 수도에 도착할 수 있을 거다.
“몇 없겠죠. 다른 영주들이 그들에게 쉽게 길을 내어줄 리는 없으니까요.”
“게다가 5일 만에 수도까지 도착할 수 없는 거리에 사는 귀족들도 있을 테니까···.”
내가 먼저 대답했고, 에드나는 지도에 적힌 지명들을 살피느라 조금 늦게 대답했다.
유지스는 둘 다 정답이라는 듯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가는 길에 귀족들을 포섭해서, 그들의 병력과 함께 수도로 쳐들어가겠다는 거네?’
자신을 지지하며 함께 싸워줄 가능성을 운운하더니.
베일은 어떻게든 다른 귀족들의 협조까지 받아낼 생각인가 보다.
‘설마 그때부터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둔 건가?’
내가 베일을 키운 건 아니지만, 빌빌거리는 걸 데려와 살찌우고 건강을 회복시켜 놓았다.
그러니 내게도 으스댈 권리가 있지 않을까?
“왜 갑자기 그런 재수 없는 표정을 짓는 거예요?”
“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날개 다친 새를 주워 와서 치료해 주고, 회복된 새가 너른 하늘을 향해 날아가는 모습을 보며 흐뭇해하는 표정인데. 그런 걸 두고 재수 없다니요?”
“그런 느낌이 아니었는데···.”
“아니면 어떤 느낌이었는데요?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시죠?”
내가 깐죽거리며 말하자 에드나는 무척이나 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든 반박을 하고 싶었는지,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하지?’ 하고 중얼거리며 한참 동안 낑낑댔다.
그러다가 짝 하고 손뼉을 쳤다.
“그래요! 어렸을 때 잠시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사업으로 자수성가했는데, 그게 다 자신이 영향을 준 덕분이라며 떠들고 다니는 사람 같은 느낌이었어요!”
“······.”
꽤나 정답에 근접했다.
마법은 계산 능력도 중요하지만, 문장력도 갖춰야 하는. 이과와 문과를 망라한 천재만이 익힐 수 있는 학문이라는 사실을 깜박했다.
“크윽, 분하다···.”
비유로 날 능가할 수 있는 사람이 누나 말고도 있을 줄이야.
설마하니 마법사들은 다 이런 능력을 기본으로 갖추고 있는 걸까? 그래서 룩스메아는 누나를 마법사인 솔레르티아의 몸에 빙의시키려 했던 걸까?
“주교님은 무슨 이런 거 가지고 저렇게까지 분해하시는 거죠?”
“원래 주교님께서는 가끔 저렇게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보일 때가 있어요. 익숙해지시면 그냥 그러려니 하게 되실 거예요.”
에드나와 유지스가 서로의 귀에 대고 속닥거리는 척만 하고, 다 들으라는 듯이 큰 목소리로 대화를 나눴다.
마부석 쪽으로 난 작은 창문을 통해, 윈스톤의 고개가 위아래로 움직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니, 이 사람들이?!”
내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자, 에드나와 유지스가 나란히 키득거리며 웃었다.
나를 놀리는 게 아주 재밌는가 보다.
그렇게 우리가 장난을 치며 노는 사이, 영주가 도착했다.
영주는 베일의 얼굴만으로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신상과 관련된 질문을 몇 개 더 던진 후에야 성문을 열었다.
그 이후는 목소리 증폭 장치 같은 것 없이 순수한 육성으로 대화가 오갔다.
그래서 베일이 영주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가 영주를 포섭하는 데 성공했다는 건 쉽게 알 수 있었다.
영지를 가로질러 통과했을 때, 병사들이 늘어나 대열이 더 길어졌으니까.
그에 따라 베일과 우리의 거리 또한 더더욱 멀어졌다.
‘이러다 세르펜스 울겠네···.’
이렇게까지 세르펜스를 멀리 떼어놓을 생각은 아니었는데.
설마하니 이러다 베일을 내버려 두고 나를 찾아오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떠올랐다.
하지만 걱정이 무색하게도.
수도에 도착할 때까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긴, 녀석은 마물을 토벌하러 볼타 산맥으로 원정을 떠났던 적도 있었으니까. 이 정도 거리쯤은 별거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