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544)
공작님, 회개해주세요!-545화(545/1105)
545회
69. 공작님과 패륜 왕 (10)
“마인 러스티···!”
칼립스 이단 심문관이 검을 꽉 움켜쥐며 소리쳤다. 성기사들도 제각기 무기를 꺼내 들었다.
그러나 공왕은 겁먹기는커녕 ‘훗!’ 하고 웃으며 여유롭게 다리를 꼬았다.
어디 덤빌 테면 덤벼 보라는 듯 말이다.
그런 공왕의 모습에 위축되기라도 한 건지, 성기사들이 주춤거렸다.
칼립스 이단 심문관도 검에 신성력을 밀어 넣기만 할 뿐. 쉽사리 공왕에게 달려들지 못했다.
그런 성직자들의 반응이 재밌다고 느껴진 걸까?
공왕이 조롱 섞인 웃음소리를 흘렸다.
“후후, 다들 조심성이 많은가 봐? 나를 보면 곧바로 달려들 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는 걸 보면.”
“쓸데없이 시간 끌지 말고, 어서 악마를 소환해라!”
현 바스툴 왕이 명령하는 듯한 말투로 공왕을 채근했다.
목소리에서 가득 묻어나는 초조함이 권위 의식까지 숨겨주지는 못했다.
“아, 악마 소환이라니! 그렇다면 저 마법진이···?!”
누군가의 발언을 시작으로 불안에 찬 웅성거림이 퍼져 나갔다.
그 불안이 불만으로 변하는 건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빨리 저 마인을 공격하지 않고 뭐 하시는 겁니까?!”
뒤따라온 병사들 사이에서 누군가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겁에 잔뜩 질린 목소리였다.
갑옷에 새겨진 가문의 문양만 다를 뿐, 비슷비슷해 보이는 갑옷을 입은 병사 중. 목소리를 낸 사람을 가려내기란 쉽지 않다.
그런 익명성이 있었기에 성기사들을 독촉할 수 있었던 걸 테지.
“어떤 함정을 설치해 놓았을지 모릅니다! 섣불리 다가갔다간, 되레 역으로 당할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저자로부터 굉장히 섬뜩하면서···. 거대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칼립스 이단 심문관이 시선을 공왕에게 고정한 채로 말했다.
콕 찍어 무슨 기운이라고 말하지 않는 거로 보아, 단순한 흑마력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섬뜩한 기운이라···. 혹시 이걸 말하는 것이냐?”
공왕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품 안에서 손수건으로 감싼 무언가를 꺼냈다.
그리고 그 손수건이 거두어지는 순간. 윈스톤의 커다란 손바닥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손바닥을 눈에 직접 손을 가져다 댄 건 아니었지만, 공왕이 꺼낸 물건을 보지 못하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앗! 갑자기 뭐예요?!”
눈동자만 굴려 옆을 확인하니, 유지스에게 눈이 가려진 에드나가 당황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마인 러스티가 꺼낸 건 혈옥이랍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신이 망가져 버려요.”
유지스가 공왕이 꺼낸 물건의 정체를 설명했다.
윈스톤과 유지스는 암흑가에서 혈옥을 본 적 있으니, 재빨리 대처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베일이야 세르펜스가 챙겨줄 테고.
문제는 르웰을 비롯한 귀족들이나 병사들이다. 기사들도 살짝 걱정되긴 하지만, 일반인보다야 괜찮겠지.
“모두 시선을 돌리십시오! 절대로 저것을 오래 쳐다보면 안 됩니다!”
“다들 고개를 숙이세요!!”
룩스메아 교단의 성직자들이 소리쳤다.
목소리에 신성력이라도 담은 건지, 여기저기에서 ‘헉!’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혈옥에 현혹되었던 사람들이 제정신을 차리며, 뒤늦게 아찔함을 느끼고 헛숨을 들이켠 걸 테다.
“이래서야···.”
공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에 뭐라도 더 붙어야 무슨 뜻으로 한 말인지 유추라도 해 볼 텐데. 공왕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그 대신 혈옥을 치운 건지, 유지스가 에드나의 눈에서 손을 떼어냈다.
윈스톤은 내가 그의 손등을 톡톡 건드리고 나서야 손을 거뒀다.
‘···어?’
순간 공왕과 눈이 마주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라 착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쩐지 내 감이 맞는다는 확신이 들었다.
“러스티! 대체 뭐 하는 게냐?!”
“하···. 참으로 성질이 급한 자로구나. 그간 이런 자를 왕으로 모셔온 사람들이 불쌍할 지경이네. 지금은 이렇게 내 손에 들어와 있지만. 이들에겐 지금이 더 행복하려나?”
공왕이 현 바스툴 왕을 향해 비웃음을 지어 보인 후, 검은 손수건으로 감싸인 혈옥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사라진 사람들은 전부 죽어서 혈옥의 재료가 되어 버린 게 틀림없다.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가 있지?! 당신도 한 나라의 왕이었잖은가! 그런 사람이 어떻게, 아무런 잘못도 없는 이들을···!”
흥분한 베일이 튀어 나가려는 걸 세르펜스가 붙잡았다.
공왕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아무런 감흥 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말은 내가 아니라, 네 아비에게 해야 하는 것 아니더냐? 근위병과 근위기사들을 부려 사람들을 잡아 오라 한 건, 내가 아닌 네 아비니라.”
그러도록 시킨 건 본인이면서. 공왕은 모든 죄를 현 바스툴 왕에게 전가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현 바스툴 왕이 잘못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그자는 분명 선을 넘었다. 왕으로서든 인간으로서든.
굳이 죄의 무게를 따져야 한다면, 이번 일에 한해서는 현 바스툴 왕의 잘못이 크다. 바스툴 왕성에서 일하던 사람들을 제물로 바친 거니까.
누군가의 꼬드김에 넘어갔다고 한들. 그는 자신의 행동이 잘못된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자신의 욕심 때문에 죄를 저질렀다.
‘설령 부추긴 사람이 없더라도···. 저런 사람은 자신의 이해득실 때문에 남을 해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겠지.’
으득, 이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베일이 분한 표정으로 이를 악물고 공왕을 쏘아보다가, 고개를 홱 돌려 현 바스툴 국왕을 바라보았다.
핏발 선 두 눈을 마주한 현 바스툴 국왕이 흠칫 몸을 떨었다.
“어디 그뿐인 줄 아느냐?”
공왕이 말을 이었다.
분노와 슬픔이 뒤섞인 베일의 얼굴을 보고, 공왕은 눈을 빛내며 씩 웃었다.
마치 자신이 입을 열면 베일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기대된다는 듯이.
‘[성검의 주인]에서도 종종 저 표정에 대한 묘사가 나왔었지, 아마?’
주로 악숭 세력의 일에 반격할 준비를 할 때, 저런 표정을 지었던 거로 기억한다.
그게 아니면 자신의 ‘왕국’을 무시하는 타국 왕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줄 때나 짓던 표정인데.
그랬던 그녀가 이제는 악숭 세력의 편에 서서, 이제 막 일어나서 나아가려는 자를 조롱하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면?”
“이곳에 있는 ‘바스툴 왕실’의 사람이 어째서 너와 네 아비뿐인지. 어디 한번 잘 생각해 보아라.”
공왕의 말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다.
현 바스툴 왕은 자신의 아내와 자식들까지 전부 악숭 세력에게 바쳤다는 뜻이다.
베일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살짝 벌어진 입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는 느릿하게 고개를 돌려, 그게 사실이냐고. 어떻게 인간이 그럴 수 있느냐는 눈으로 현 바스툴 국왕을. 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제국의 속국 출신의 왕답게, 이제는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넘긴 노예가 된 것이냐며 나를 비웃더니. 상황이 급박해지자, 어찌하면 나처럼 마인이 될 수 있느냐고 묻더구나! 아하하하!”
공왕이 즐겁다는 듯이 소리 높여 웃었다.
어째서 왕이 왕실에서 일하던 사람들과 제 가족을 제물로 바쳤는지 알겠다.
그리고 가족들을 바쳐야 할 정도로 제물이 부족했으면서. 어째서 근위병과 근위기사는 제물로 바치지 않았는지. 그 또한 알 것 같다.
‘자기 휘하의 군대가 있으면, 마인이 되어 악숭 세력에 속하게 되었을 때. 대우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겠지···.’
지금의 공왕처럼 말이다.
아까 보았던 법숭이가 죽어가면서 공왕을 욕한 걸 보면. 그리고 [성검의 주인] 속 타락펜스가 악숭 세력에서 겉돌았던 걸 생각해 보면.
악숭 세력 내에서 공왕은 겉돌고 있을 거다.
하지만 외부에서 보기에 공왕은 전 대륙을 떨게 만든 유명한 마인이다.
당연히 좋은 대우를 받고 있을 거라고 착각한대도 어쩔 수 없다.
“네 아비의 실체를 듣고 나니, 기분이 어떠하냐? 이 반역에 정당성이 생겨 기쁜가? 아니면 이런 비겁한 자의 피를 이었다는 사실이 저주스러운가?”
공왕이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베일을 조롱했다.
그녀가 악숭 세력에 붙어 마인이 되었다는 건 진작 알고 있었던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타락한 모습을 직접 목격하고 났더니 보통 충격적인 게 아니다.
‘게임하는 내내 서포터 역할을 해 주던 npc가 어느 날 갑자기 흑화하더니, 눈이 돌아가서 광역 어그로를 끄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차라리 처음부터 흑막이었다고 하면 배신감에 치를 떨기라도 하지.
공왕의 경우에는 잠깐 눈을 뗀 사이에 적들의 사상에 감화된 거라서, 순수하게 미워하고 적대시하기에는 묘하게 찝찝하다.
‘게다가 공왕은 [성검의 주인]에서 모든 나라가 휴마누스에게서 등을 돌렸을 때. 가장 먼저 지지 선언을 한 지도자이기도 하니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또다시 공왕의 시선이 나에게 닿았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싱긋 눈웃음 지었다.
“네가 그 ‘에인젤’이라는 주교로구나. 챈들러에게 얘기는 많이 들었도다. ‘경박하고 욕심 많은 사람’이라지? 그 곁에는 붉은 머리칼에 모노클을 낀 ‘고작 젤리 따위에 연연할 정도로 유치한 데다가, 자기주장이란 게 없는 아첨꾼’이 하나 붙어있다고 들었는데···. 그자는 어디에 두고 온 게냐?”
공왕의 말에 나도 모르게 ‘헐!’ 하는 소리를 내뱉고 말았다.
대체 챈들러는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제 연인에게 나와 세르펜스의 흉을 보았던 걸까?
챈들러를 순순히 신전으로 이송시키면 안 됐다. 적어도 보내기 전에 뒤통수 한 대는 갈겨 줬어야 했다.
“그자의 안목은 믿지 않으니, 개의치 말아라. 자신감이 부족하고 독점욕이 강한 자이지 않으냐? 내가 다른 남자에게 관심을 보이는 듯하니, 어떻게든 깎아내리려 한 것이겠지.”
그렇게 말하며, 공왕이 묘한 미소를 지었다.
흡사, ‘너와 그 신관은 그런 사람이 아니잖아. 그렇지?’라고 말하듯이.
“저는 교단에 귀의한 몸이라서, 연애 같은 건 불가합니다. 막내 신관님도 그건 마찬가지고요. 그러니 관심 같은 건 부디 꺼 주실래요?”
“걱정하지 말아라. 나도 이성적인 관심은 아니었으니.”
“어떤 종류의 관심이든 간에, 악마와 엮인 자의 관심 따윈 필요 없습니다.”
“과연 듣던 대로 혀가 참 매끄럽구나.”
불과 몇 분 전에는 챈들러의 안목 따윈 믿지 않는다더니. ‘듣던 대로’ 좋아한다고 비꼬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공왕은 분명 듣긴 들었을 거다.
‘에인젤 주교가 아닌, 신의 사자인 시온 리벨론에 대해서.’
법숭이의 말을 듣고 어느 정도 짐작하긴 했다.
역시 공왕은 내 정체를 간파한 모양이다. 덤으로 세르펜스에 관해서도.
“될 수 있으면 제 혓바닥에도 관심을 꺼 주셨으면 하는데.”
“아쉽게도 그쪽에는 관심이 있어서, 그렇게는 못 하겠구나.”
“제 혓바닥은 그쪽한테 관심 없다는데요?”
“그딴 건 내 알 바 아니니라.”
언변이 너무 뛰어나도 문제인가 보다.
내가 살면서 받아 본 관심 중, 가장 고맙지 않은 관심이다.
그렇게 일방적인 관심은 범죄나 다름없다고 따끔하게 쏘아 주기 위해, 막 입을 열려는 찰나.
“됐습니다, 주교님. 이제 생각이 정리되었으니, 계속 그렇게 시간을 끌어주시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베일이 뜬금없는 소리를 해댔다.
나는 베일의 생각이 정리될 때까지 시간을 끈 것이 아닐뿐더러, 먼저 대화를 시작하지도 않았다.
공왕이 멋대로 내게 관심을 보였을 뿐이지.
내가 대체 그게 무슨 말이냐는 표정을 짓자, 베일이 나를 마주 보며 미간을 팍 찡그렸다.
‘상황상···, 대충 그런 척하며 맞장구나 치라는 뜻이려나?’
나는 알아들었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공왕과 말을 오래 섞어서 좋을 건 없다. 언제 내 정체를 발설하려 들지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