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554)
공작님, 회개해주세요!-555화(555/1105)
555회
70. 공작님과 함정 (2)
“유지스, 세르펜스 쪽으로 가 주세요.”
“괜찮겠어요?”
“안 괜찮을 건 뭡니까?”
“···알았어요.”
잠시 망설이는 듯했으나 유지스는 결국 내 부탁을 들어주었다. 늪으로 변한 땅을 피해 세르펜스 근처로 다가가 들고 있던 나를 내려놓았다.
나는 땅을 디디고 서서 세르펜스에게 검집을 들이밀었다.
“어쩔 거예요?”
“···느껴지는 기척이 한둘이 아니다.”
세르펜스가 검대를 허리에 두르며 대답했다.
양손을 써야 하는 탓에 검을 잠시 검집에 넣긴 했지만, 검집을 고정하자마자 녀석은 다시 검을 뽑았다.
그 행동에는 적과 싸우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렇겠죠, 함정이니까.”
빈정거리는 말투가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이런 외진 곳으로 우리를 유인했다는 건, 평소처럼 이간질하기 위함이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를 이곳에서 죽일 셈인가?’
악숭이 몇 명으로는 세르펜스 한 명조차 제대로 감당할 수 없다. 그러니 떼거리로 몰려오는 건 당연한 일이다.
도대체 놈들은 무엇을 준비해 놓은 걸까?
조금 전부터 소름 끼치는 기운이 느껴졌다. 내게 기운을 느끼는 능력 같은 건 없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피부가 따끔따끔할 정도로 소름 끼치는 이 감각은 본능이 전해주는 경고다.
“악숭이를 보고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건 아는데, 일단 성검 일행과 합류하고 나서···.”
“이미 늦었다.”
세르펜스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
그와 동시에 하늘이 검게 물들었다. 악마가 소환된 것이다.
어두워졌던 하늘이 다시 밝아지고,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세르펜스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 표정에서 미안하다는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자신의 잘못된 판단 때문에 우리가 함정에 빠졌다고 생각하나 보다. 그 생각은 틀렸다.
문제가 있다면.
‘내 태도 탓이겠지.’
내가 유지스에게 다크 엘프 악숭이에 관해 말하는 걸 망설였으니. 나를 보호자로 생각하는 세르펜스의 속이 어떠했겠는가.
그런 와중에 보라색 피부의 악숭이를 발견했다.
어떻게든 처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잠식하는 것도 당연하다.
녀석에게 네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고자 입을 열려는 그때.
사위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아니, 들려왔다.
수풀을 건드리는 소리. 바닥에 떨어진 낙엽을 밟는 소리. 나뭇가지가 부서지는 소리 등등.
세르펜스가 나를 들고, 늪지를 훌쩍 뛰어넘어 윈스톤과 에드나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방금 자신이 베었던 시체에서 멀어지기 위함이다. 시체를 터트리는 흑마법은 법숭이들이 애용하는 공격 수단이니까.
유지스도 다크 엘프 분장을 한 시체에서 떨어졌다.
그런 그녀의 귀는 어느새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에드나가 마법을 해제한 것이다.
악숭이들과의 전투를 앞두고 만전을 기하기 위함일 테다.
에드나가 긴장된 표정으로 스태프를 움켜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윈스톤도 검을 꺼내든 채였다. 성기사 위장용 검은 아공간 주머니에 넣었는지, 들고 있는 건 크레아토가 제작한 흑색 대검이었다.
“무언가 이상하다.”
“뭐가요?”
나는 세르펜스의 말에 대답해주며 나무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악숭이들을 노려보았다.
직접 싸울 일은 없을 것 같지만, 혹시 몰라 세니어도 뽑아 들었다.
“어째서 아직도 흑마력이, 설마···?
세르펜스가 설명을 도중에 끊고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저쪽에 뭐가 있나?
의문을 떠올리며 녀석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바라보는 그 순간. 세상이 또다시 어둠에 잠겼다.
“와, 진짜 너무한 거 아니야?! 겨우 다섯 명을 상대로 이렇게나 몰려와 놓고, 악마를 둘이나 소환한다고?”
나는 악숭이들의 치사한 행위에 분노를 느끼고 목소리를 높여 항의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이상하네? 왜 이렇게 조용하지?’
내가 이런 식으로 따지면, 여기 모인 놈들의 대장급이 나서서 반론을 펼치거나 우리를 조롱해야 했다.
이제까지 그래왔으니, 이번에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건만.
조용하니까 뭔가 불안하다.
“하다못해 ‘역시 너희가 신의 사자와 프라시더스 공작 일행이 맞았군!’이라는 말 정도는 해야 하는 거 아니야?”
“······.”
“진짜 안 물어볼 거야? 내가 기껏 대답도 준비해 뒀는데?”
“······.”
정말 말을 안 할 생각인가 보다.
나는 ‘우리 정체를 알아서 뭐 어쩔 건데? 내가 악숭인데 에인젤 주교 일행을 습격해 봤다, 그랬더니 프라시더스 공작이 튀어나오더라. 어디 가서 그런 소리를 떠들어 댈 수나 있냐?’라는 대답을 폐기할 수밖에 없었다.
“하여간 겁은 많아가지고! 우리가 그렇게 무섭냐? 네놈들 하는 짓을 보니 마왕도 뻔하다, 뻔해. 겁 많고 유치하고 치사한 놈이겠지!”
“어째서 갑자기 저들을 도발하는 거예요?”
에드나가 질문했다.
이유를 알려주면 같이 욕을 해 주려나?
“선배는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것이오?”
“하지만 쟤들이 너무 조용한 게 이상하잖아요?”
“보통 그런 이유로 상대를 도발하는 경우는 없소. 그러니 제발 가만히 좀 계시오.”
윈스톤이 매정하게 말했다.
마치 어린아이에게 ‘넌 가만히 있는 게 돕는 거야.’라고 말하는 듯한 뉘앙스다.
‘내 딴에는 적들이 빈틈을 보이도록 유도하려고 그런 거였는데!’
나는 억울해져서 세르펜스를 쳐다보았다. 녀석은 표정을 굳힌 채로 입을 앙다물고 있었다.
그다음으로 바라본 유지스는···.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들을게요.”
목소리에 날이 서 있다. 무슨 소리냐고 잡아떼면 혼날 것 같다.
악숭이가 이런 짓을 꾸밀 줄 알았더라면, 다크 엘프 악숭이에 관해 얘기하는 걸 미루지 않았을 텐데.
후회해 봤자 이미 늦었다.
“어째서 마왕님께서 저자와 대화를 나누지 말라고 하셨는지 알 것 같네. 그렇지 않아, 레이아?”
“아무런 능력도 없으면서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도발을 하는 걸까? 아주 멍청해.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레이오?”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방향은 머리 위다.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박쥐 날개가 달린 사람. 아니, 악마들이 그곳에 있었다.
특이하게도 등에 달린 날개는 박쥐 형태인데, 손이 있어야 할 위치에 달린 건 맹금류의 발처럼 생겼다.
길고 날카로운 갈고리 모양 손톱이 상당히 위협적이다.
‘그나저나 어쩐지 악숭이들이 조용하더니만. 마왕이 입단속을 시켰구나?’
어이가 없다.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나누기는커녕 펜팔조차 나눈 적이 없건만. 지가 나에 대해 뭘 안다고 대화를 금지한단 말인가.
“아주 그냥 착한 어린이들 납셨네! 남의 말을 왜 그렇게 잘 들어? 악마와 악마를 숭배하는 놈들이라면 좀 반항적이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러고도 너희가 악마를 숭배한다고 말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그냥 미친 건가? 재밌네! 레이아는 어떻게 생각해?”
“나도 마음에 들어, 레이오. 산 채로 잡아다가 잔뜩 괴롭혀주고 싶어!”
내가 악숭이들에게 삿대질하며 소리치자, 두 악마가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눴다.
둘이 남매라도 되는지 키득키득 웃는 얼굴이 똑 닮았다. 이름도 비슷했다.
나와 직접 대화를 나누는 건 금지여도 자기들끼리 대화를 나누는 건 상관없는 걸까?
아니면 대화 금지령을 받은 건 악숭이들뿐이고 악마는 해당 사항이 없는 걸까?
작은 의문이 떠올랐지만, 지금 그딴 걸 신경 쓸 때가 아니다.
“감히···!”
“진정하세요, 왜 세르펜스가 도발 당하고 있습니까?”
나는 분노한 세르펜스를 달랬다.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보며 악마들이 낄낄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적들은 빈틈없이 우리를 에워싼 상태였고 하늘에는 악마가 둘이나 있다.
기회를 봐서 도망을 쳐도 모자랄 판에 우리가 먼저 달려들어서 좋을 건 없다.
도망치는 게 가능한 일인지, 그게 조금 의문이지만.
‘성검 일행이 와 줄 가능성은 없나? 악마 소환의 징후가 나타났으니, 우리 쪽으로 와 줄 만도 한데···.’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다.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는 여기에서 꼬박 하루하고도 반나절은 더 걸어야 나온다는 점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성검 일행이 우리를 기다리기로 한 장소라고 해야겠지만.
“갑자기 조용해졌는데? 겁먹은 거라면 실망이다. 그렇지, 레이오?”
“재미 없어졌으니 빨리 할 일이나 끝내자, 레이아.”
악마들이 공격 태세를 취했다.
윈스톤은 나더러 가만히 있으라고 했지만, 지금은 긴급 상황이다. 그러니 윈스톤도 이해해 주겠지.
일단 시간을 끌고 보자.
“너희는 서로 이름을 안 부르면 대화를 못 하냐?”
“방금 들었어, 레이오? 우리에게 말을 걸었어!”
“나도 들었어, 레이아. 대답하면 안 되는데 어떻게 하지?”
두 악마가 호들갑 떨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나와 말을 섞지 말라는 마왕의 명령은 악마에게도 해당하는 건가 보다.
“그런데 마왕은 왜 나와 대화를 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린 거래?”
“어째 우리한테 친근하게 말을 거는 것 같지 않아? 레이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내가 듣기에도 그런 것 같아, 레이아. 혹시 우리와 친해지고 싶은 걸까?”
고작 반말 좀 한 거 가지고 아주 꿈도 야무지다.
세상에는 카페 알바생이 친절하게 대해주면, 자신에게 반한 게 분명하다며 상상 연애를 하다가 고백하는 사람도 있다던데.
악마 중에도 그런 자들이 있나 보다.
“저자가 왜 저러는지 알 것 같아, 레이오! 우리가 너무 강해서 싸워 봤자 질 게 뻔하니까, 항복하고 마왕님을 따르려나 봐!”
“정말로?! 마왕님께서 기뻐하며 우리를 칭찬해 줄 거야, 레이아!”
이번에 소환된 악마들은 정신연령이 상당히 어린가 보다.
외형은 2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데. 악마라는 걸 고려하면 최소 몇백 살은 먹었을 테고.
“그래서 마왕은 어째서 나와 말을 못 하게 한 건데? 대화를 나누지 못하면 스카우트도 못 할 텐데. 이제 나를 영입하는 건 포기한 거야?”
나는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졌다.
“정말 마왕님을 따를 생각인가 봐! 이렇게 순순히 나오면 괴롭히지도 못할 텐데···. 어떡하지, 레이오?”
“그게 무슨 걱정이야, 레이아? 옆에 부들부들 떨고 있는 인간 보이지? 빨간 머리색의. 저자도 가능하면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랬잖아.”
“아 참! 그랬지! 그러면 저놈을 고분고분하게 만든다는 명목으로 잔뜩 괴롭힐 수 있겠다! 레이오, 넌 천재야!”
나를 고문하지 못하니 그 대신 세르펜스를 고문하겠다는 말인지. 아니면 나를 고문하며 세르펜스를 협박하겠다는 말인지.
주어가 불분명한 탓에 무슨 뜻으로 한 말인지 헷갈렸다.
하지만 한 가지 명확한 것이 있었다.
세르펜스는 저 악마의 말을 후자의 뜻으로 해석했다는 거다.
으득, 이 가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당장 악마를 베어 버리고 싶다는 듯, 세르펜스는 분노에 찬 눈빛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녀석은 그럴 수 없었다.
악마는 둘이었고 심지어 하늘도 날 수 있다.
그리고 주위에는 악숭이들이 가득하다.
악숭이들은 유지스와 윈스톤, 에드나가 상대한다고 치더라도.
과연 날아다니는 두 명의 악마를 세르펜스 혼자 묶어 둘 수 있을까?
둘 중 하나는 분명 우리 쪽을 노릴 거다.
그래야 세르펜스가 전투에 집중하지 못할 테니까.
둘이서 합공해도 세르펜스를 당해내지 못해서가 아니라, 녀석이 불안해하는 걸 보고 싶으니까.
악마가 달리 악마인 게 아니다.
세르펜스는 나와 일행들이 위험해질까 봐, 섣불리 악마에게 덤벼들지 못하고 울상을 지었다.
그때, 저 멀리서 쾅 하는 굉음이 들려왔다.
톡 하고 건드리면 눈물을 쏟을 것 같던 세르펜스의 표정이 밝아졌고, 장난기 가득했던 악마들의 표정이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그 면면을 보고 나는 확신했다. 그리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휴마누스가 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