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555)
공작님, 회개해주세요!-556화(556/1105)
556회
70. 공작님과 함정 (3)
무려 성검의 주인씩이나 되는 강자가 뒤에서 기습해 왔다.
우리를 둘러싼 포위망이 뚫리는 건 순식간이었다.
굉음이 들려오고 불과 몇 초 지나지 않아, 휴마누스가 검숭이를 베어 넘기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어떻게 벌써 도착한 겁니까?!”
휴마누스와 내가 동시에 서로를 향해 질문했다.
“보다시피 악마가 둘이나 소환됐고, 포위당했습니다.”
“악마 소환은 그렇다 쳐도 어쩌다가 포위를 당한 거야?”
“얘기하자면 좀 깁니다.”
나는 길게 말로 풀어서 설명하는 대신, 반 토막 난 가짜 다크 엘프 시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설명을 끝냈다.
휴마누스가 대충 알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유지스가 휴마누스를 향해 ‘휴마누스도 한패였어요?!’ 하는 눈빛을 보냈다.
명불허전 휴마눈새는 이를 눈치채지 못했고, 나는 휴마누스에게 미안해졌다.
“그보다 휴마누스는 우리가 함정에 빠진 건 어떻게 알고 이렇게 빨리 도착할 수 있었던 거죠?”
“국경에 도착한 게 어제저녁이었는데, 아니마가 한시라도 빨리 에드나를 보고 싶다고 난리를 피워서···. 이 얘기는 지금 중요한 게 아니니까, 나중에 하자.”
휴마누스가 설명을 나중으로 미루며 성검을 다잡았다.
악마를 눈앞에 두고 한가롭게 대화를 나눌 시간 따윈 없다는 거겠지.
‘아무래도 아니마의 생떼에 못 이겨, 아침 일찍부터 이쪽으로 천천히 걸어오던 중. 하늘이 어두워진 걸 보고 서둘러 달려온 모양이네.’
나도 상황을 이해했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으나, 휴마누스는 내 쪽을 보고 있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하늘 위. 그러니까 악마들을 향해 있었다.
“성검의 주인까지 올 줄이야···. 괜찮을까, 레이아?”
“레이오, 우리 둘이 함께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그래. 레이아, 너와 함께라면 이기지 못할 적이란 없어!”
악마들이 주인공 일행이나 할 법한 소리를 주고받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기가 찬다.
하나 그와 별개로 저들의 자신감 넘치는 태도는 불안감을 불러일으켰다.
‘암흑가에서 소환된 첫 번째 악마는 세르펜스와 정면으로 맞붙는 게 쫄려서, 인질을 잡았었는데···.’
저 악마들은 암흑가의 악마보다 더 강할 것이다.
어쩌면 저들 하나하나가 볼타 산맥에서 나타났던 악마보다 더 강할지도 모른다.
“다들 위치를 지켜! 놈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흐트러진 포위망을 재정비하고자 법숭이가 목소리를 드높였다. 그러나 놈은 말을 채 끝맺음 짓지 못했다.
갑자기 수풀에서 푸로르가 튀어나온 까닭이다.
푸로르는 늑대와 닮은 반인반수의 모습으로 놈을 물어뜯을 듯이 달려들었다.
법숭이가 반사적으로 뒷걸음질 치긴 했으나, 연장된 목숨은 고작 1, 2초가량에 불과했다.
늑대의 힘을 빌렸던 푸로르가 이번에는 곰의 힘을 빌려왔다.
곰의 앞발처럼 거대하게 변한 푸로르의 손이 법숭이의 목을 찢듯이 갈랐다. 법숭이의 머리통은 어디론가 날아가고, 몸뚱이는 쓰러져 수풀 속에 파묻혔다.
사족 보행을 하던 푸로르가 갑자기 두 발로 일어선 탓일까? 그녀의 등에 매달려 있던 리에나가 꺅하고 비명을 질렀다.
푸로르가 아차 하며 다시 네 발로 엎드렸다.
‘볼타 산맥에서 성벽을 타고 올라왔을 땐 잠깐이라 별생각이 없었는데, 지금 보니까 상당히···. 좀 그렇네.’
내가 세르펜스를 타고 다닌 건 제대로 탑승한 게 아니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한가로운 생각을 할 때가 아니다.
나는 머릿속에서 쓸데없는 생각을 지우고 상황에 집중했다.
죽은 법숭이 옆, 또 다른 법숭이가 급히 마법진을 구현했다. 푸로르를 향해 검은 마력의 화살이 열 발가량 쏘아졌다.
법숭이에게는 안타까운 일이나 그 공격은 푸로르에게 도달하지 못했다.
낮게 날아 푸로르를 뒤따라오던 아니마가 마법으로 그것을 상쇄시킨 까닭이다.
덕분에 푸로르는 무사히 우리 곁에 도달하였고, 푸로르 라이더 리에나가 땅에 내려와 섰다.
뒤이어 아니마도 무사히 착지하여 에드나의 품에 안겼다.
“다들 명을 재촉하는구나. 이곳에 오지 않았더라면 조금이라도 더 살 수 있었을 텐데. 그렇지 않아, 레이오?”
“정말 네 말대로야, 레이아. 여럿이서 뭉치면 우리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나 봐.”
악마들이 여유롭게 대화를 주고받았다.
악숭이들을 동원하여 우리를 포위해 놓고 할 말은 아니지 않나 싶다.
심지어는 우리 일행과 성검 일행의 수를 모두 더해도 이곳에 모인 악숭이보다 적다.
“싸우기도 전에 이런 말을 해서 좀 미안한데···. 뭔가 감이 안 좋아.”
두 발로 일어선 푸로르가 그르르, 경계심 가득한 소리를 흘리며 말했다.
푸로르가 저렇게 말할 정도라면 저 악마들이 꽤 강하긴 강한가 보다.
이번 악마도 [성검의 주인]에 나오지 않았던 악마라서, 놈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니, 잠깐만. 안 나왔던 게 맞나?’
나는 천천히 기억 속 [성검의 주인] 내용을 더듬어 보았다.
쌍둥이처럼 똑 닮은 악마는 나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성검의 주인이 나타난 이상. 생포하는 건 어렵겠어, 레이아.”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하지만 우리가 성검의 주인까지 죽인다면, 마왕님께서 크게 기뻐하실 거야! 아아-, 상상만으로도 짜릿해! 그렇지 않아, 레이오?”
어쩐지 놈들의 이름이 낯설지가 않다.
익숙한 정도는 아니지만, 생전 처음 접한 것 같지는 않은. 그런 묘한 느낌이 들었다.
『 “으윽! 레이아만 무사히 소환되었다면, 내가 이런 식으로 허무하게 당하지는 않았을 텐데···.” 』
떠올랐다.
선택의 날로부터 2년째 되던 해. 악숭 세력은 두 개의 악마 소환진을 동시에 준비했었고, 휴마누스는 그중 하나를 파괴하는 데 성공했다.
그때 소환되었던 악마가 죽으면서 그런 말을 남겼더랬지.
‘당시에는 참 찌질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로써 알게 된 사실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저 악마는 둘이 모였을 때 모종의 시너지 효과를 낸다는 것.
두 번째는 악숭 세력이 상당히 많은 제물을 소모하여 저들을 소환해 냈다는 것이다.
지금은 선택의 날로부터 1년 하고 9개월이 지난 시점이다.
본래라면 2년째에 소환되었을 악마가 벌써 소환되었다는 건, 그만큼 악숭 세력이 이 함정에 공을 들였다는 뜻이겠지.
여기까지 생각을 정리하니, 한 가지 의문점이 떠올랐다.
“그런데 우리를 이리로 유인해 놓고 악마를 소환하는 건 너무 멍청한 짓 아닌가? 우리가 조금만 더 일찍 도착했으면 소환을 방해할 수도 있었을 텐데···?”
“누가 누구더러 멍청하다는 건지 모르겠네! 우리가 소환된 줄 알았다면 경계하느라, 이렇게 쉽게 함정이 걸리지도 않았을 거면서. 안 그래, 레이오?”
“네 말이 전부 옳아, 레이아. 정말 멍청해!”
내 혼잣말을 들었는지, 악마들이 울컥해 하며 반발했다.
윈스톤이 크흠 하고 심기 불편한 헛기침 소리를 흘렸다.
나로서는 ‘마왕은 학습 능력이라는 게 없나?’라는 말을 꺼내지 않은 것만으로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데.
‘것보다 마왕과 악숭 세력도 나름대로 생각이란 걸 하고 계획을 짠 거구나···. 아니면 공왕이 의견을 낸 건가?’
악마들의 말대로, 악마가 둘씩이나 추가로 소환되었다면 세르펜스도 좀 더 조심했겠지.
반박하기 어려운 말이다.
‘그나저나 저 녀석은 아직도 가만히 있네.’
휴마누스가 도착했으니 마음 편히 악마에게 달려들 줄 알았건만.
아까처럼 울 것 같은 표정은 아니었지만, 세르펜스는 긴장한 표정으로 악마들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휴마누스 또한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악마가 자신들을 공격하기 위해, 지상에 다가오길 기다리고 있는 건가?’
아까 세르펜스가 가짜 다크 엘프를 처리했던 것처럼, 원거리 공격이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다. 그러나 그 방법은 신성력 소모가 큰 편이다.
검에 두르기만 한 것과 다르게, 날려 보낸 신성력은 회수할 수 없으니까.
더군다나 거리가 멀어서 피하기도 쉽고.
‘단순하게 계산하면 세르펜스와 휴마누스가 악마를 각자 하나씩 담당하고, 악숭이들은 나머지 일행이 처리하면 될 것 같긴 한데···.’
문제는 세르펜스와 휴마누스가 저 악마들을 이기는 게 가능하느냐다.
세르펜스는 너무 어린 나이에 강해졌다.
그러한 이유로 자신보다 약한 자들만 상대해온 탓에,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강자와의 전투 경험이 부족하다.
녀석이 악마와 싸운 건 두 번.
암흑가에 나타났던 악마는 세르펜스보다 약했고, 볼타 산맥에서 나타났던 악마는 방심을 틈타 처리했다.
그리고 경험이 부족한 건 휴마누스도 마찬가지다.
이 시기, [성검의 주인]에서는 악마 소환이 아주 빈번하게 일어났다.
조금만 생각해 봐도 당연한 일이다. 제국이 망했으니까.
그렇게 죽은 사람들이 다 어떻게 되었겠는가?
고스란히 악숭이들이 주워다가 제물로 써먹었다.
계속되는 악마와의 전투. 곁에 남은 동료들이라도 지키고 싶은 휴마누스의 간절함.
그것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휴마누스는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반면에 현재의 휴마누스가 악마와 싸운 횟수는 고작 한 번뿐이다.
공국 전쟁 중에, 딱 한 번. 그게 휴마누스가 악마와 싸워 본 경험의 전부다.
악마들은 하늘에 떠서 우리를 내려다보며 비웃음을 머금었다. 어떻게 하면 우리를 효율적으로 괴롭힐 수 있을까 고민이라도 하듯, 표정에 장난기가 가득했다.
그러는 동안 악숭이들은 어느새 다시 포위망을 재구축했다.
‘도망치긴 글렀네.’
아쉬운 기분이 드는 나와 달리, 일행 중 그런 기색을 보이는 이는 없었다.
하기야 우리가 도망을 쳐서 어디로 가겠는가.
아까는 도망쳐서 성검 일행과 합류한다는 목적이라도 있었지.
휴마누스와 세르펜스가 함께 도망을 치고, 그 뒤를 악마가 쫓는다?
악숭이들이 환호하고 대륙인들이 절망할 소리다.
애초에 도망이라는 선택지는 없었던 거다.
“이제 슬슬 시작할까, 레이오?”
“잠깐!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내가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외치자, 여성 악마가 남성 악마를 바라보았다. 대답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는 모습이다.
그리고 참다못한 윈스톤이 내 팔을 잡아당겨, 나를 자신의 등 뒤로 숨겼다.
“도발하려는 게 아니라, 그냥 질문만 할 생각입니다!”
“선배는 입을 여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을 도발하는 능력이 있소. 그러니 그냥 참으시오.”
윈스톤이 억지를 부렸다.
반박해 주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으나, 저게 나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니까 참아 넘기기로 했다.
“저도 자중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악숭이랑 악마들이 이제 저랑 대화를 안 하겠다잖아요? 근데 쟤들은 절 상대해 주고 있고!”
“놈들이 상대해 주지 않으면, 선배도 상대하지 않으면 되잖소. 애초에 어째서 악마와 대화를 하려는 것이오?”
“궁금한 게 있으니까 그렇죠! 그 궁금증을 해결하려면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릅니다! 윈스톤은 저놈들이 어째서 성검의 주인인 휴마누스가 아닌, 세르펜스를 우선으로 노리는지 궁금하지도 않아요?”
악마들은 ‘가능하면’ 세르펜스를 자기네 편으로 끌어들이라는 명을 들었다고 했다. 안 될 것 같으면 그냥 죽이라는 뜻이다.
마왕이 세르펜스를 노리는 건 항상 있었던 일이지만, 이번에는 정말 작정했다는 게 느껴졌다.
이제까지는 세르펜스의 명예에 흠집을 내어 그를 타락시키는 것에 중점을 뒀다면.
이번 함정은 명백하게 녀석을 죽이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이렇게나 철저하게 준비를 했다면, 성검의 주인인 휴마누스를 죽이는 게 더 효율적이잖아?’
그런데도 놈들이 함정에 빠트린 건 세르펜스였다.
[성검의 주인]에서 세르펜스가 뒤통수를 쳐서, 그것 때문에 악감정을 품은 거라고 볼 수도 없다.그랬다면 마왕이 세르펜스를 회유하려 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거야 선배가 ‘신의 사자’니까 그런 거잖소?”
“아닌데? 우리의 최우선 목표물은 신의 사자가 아니라 ‘세르펜스 프라시더스’야. 그렇지, 레이오?”
“레이아의 말이 맞아. 마왕님께서 가능하면 신의 사자를 생포해 그를 인질로 잡고 포섭하라고 했지만, 안 되면 ‘세르펜스 프라시더스’만이라도 반드시 죽이랬지.”
내가 아닌 윈스톤과 대화하는 건 괜찮은지 악마들이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그들이 언급한 세례명이 빠진 세르펜스의 이름이 어색하다.
세례명은 마왕의 적인 룩스메아가 직접 내린 이름이라서 인정하지 못한다나 뭐라나.
[성검의 주인]에서 읽었던 악마에 관한 설정이 떠올랐지만, 지금은 중요한 게 아니니 대충 넘어가자.“거 봐요! 제 말 맞죠? 악숭 세력은 휴마누스보다 세르펜스를 먼저 죽이려고 한다니까?”
“적들이 주군의 목숨을 노린다면 그저 검으로 상대할 뿐. 그 이유 따윈 궁금하지 않소.”
자신이 직접 악마와 싸우는 것도 아니면서 윈스톤이 단호하게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