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556)
공작님, 회개해주세요!-557화(557/1105)
557회
70. 공작님과 함정 (4)
“어차피 우리도 이유를 설명해 줄 생각은 없었어. 그렇지, 레이아?”
“역시, 레이오야! 어떻게 내 마음을 이리도 잘 알까?”
서로 닮은 악마들이 사이좋게 말을 주고받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불현듯 누나가 보고 싶어졌다. 에드나의 품에 폭 안겨 있는 아니마를 보니 조금 서럽기까지 했다.
나는 고개를 흔들어 상념을 지워내고, 다시 현재에 집중했다.
‘그나저나 입이 가벼워 보여도, 중요한 정보를 흘릴 정도로 멍청한 놈들은 아닌가 보네.’
아무래도 마왕이 세르펜스를 우선하여 노리는 이유는 듣지 못할 성싶다.
앞으로 진행될 마왕의 계획을 알 수 있는 단서가 되지 않을까 했는데.
내가 아쉬움에 칫 하고 혀를 차는 찰나.
남성체 악마가 쏜살같이 하강하며 기습을 가했다. 목표는 세르펜스였다.
바짝 긴장하고 있던 세르펜스와 휴마누스가 동시에 반응했다.
– 카앙!
맞부딪힌 건 엉뚱하게도 세르펜스의 검과 휴마누스의 방패였다.
휴마누스는 저 나름대로 세르펜스를 지켜 주겠다고 나선 것 같은데. 결과적으로는 세르펜스를 막아선 꼴이 되어 버렸다.
그 사이 악마는 이크 하는 소리를 내며 날개를 크게 펄럭여 다시 공중으로 비상했다.
모처럼 지상에 다가온 악마가 도망가 버리자, 세르펜스의 미간이 미미하게 찡그려졌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저들의 목표가 너라길래,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이 정도 공격은 제가 막을 수 있습니다.”
“미, 미안.”
둘의 대화는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여성체 악마가 마기를 쏘아낸 탓이다.
바늘만치 가느다랗게 벼린 새카만 기운이 우리의 머리 위에 빗줄기처럼 쏟아졌다.
리에나와 세르펜스가 재빨리 신성 결계를 펼쳤다.
여기에 세니어가 펼친 결계까지 더하면, 나는 3겹이나 되는 신성 결계로 보호받게 된 셈이다.
투두두둑, 마치 거센 빗줄기가 우산을 때리는 듯한 소리가 났다.
악마의 기운이 가장 바깥쪽에 펼쳐진 백색 결계에 부딪혀 사라졌다. 백색의 신성력이라면 리에나의 것이다.
“세르펜스, 일행의 보호는 리에나에게 맡기고 우선 악마에 집중해!”
휴마누스가 그렇게 말하며 다시 지상으로 내려온 남성체 악마를 향해 성검을 휘둘렀다.
남성체 악마는 변변찮은 공격 시도조차 하지 않고, 공중에서 빙글 돌아 휴마누스의 공격을 피해내고 도로 하늘로 올라갔다.
마치 약을 올리는 게 목적이라도 되는 듯한 움직임이다.
“으음···.”
세르펜스는 대답 대신 침음을 흘렸다. 영 내키지 않는가 보다.
그래도 결계를 거두긴 거뒀는지, 은빛 결계 하나가 사라졌다. 나만 보호하고 있는 세니어의 작은 결계는 여전했지만.
이건 조절하는 게 불가능하니 그냥 그러려니 할 수밖에.
“리에나.”
아니마가 리에나의 이름을 부르자, 백색 결계도 사라졌다.
이를 기다렸다는 듯, 에드나와 아니마의 마법이 우리를 포위한 악숭이들을 향해 쏟아졌다.
악숭이들이 검을 들어. 혹은 흑마법을 사용해 에드나와 아니마의 마법 공격을 막아냈다. 그와 동시에 쾅 하는 폭발음이 울렸다.
지근거리에서 발생한 충격파 탓에 놈들이 비틀거렸다.
그리고.
“커헉!”
화려한 마법들에 가려졌던 유지스의 화살이 법숭이의 심장과 검숭이의 목을 꿰뚫었다.
법숭이는 단말마의 비명이라도 흘릴 수 있었으나, 검숭이는 그륵거리는 소리만 흘리며 그대로 명을 달리했다.
세르펜스는 리에나가 결계를 거둔 것이 못마땅한 듯. 우리 쪽을 힐끔거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도 불만을 토로하며 리에나에게 무슨 짓이냐고 따지지는 않았다. 아니, 그러지 못했다.
여성체 악마가 손톱을 세우고 세르펜스를 향해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악마의 공격을 피하는 세르펜스의 행동이 어딘가 모르게 굼떴다. 아까 발동된 흑마법의 영향으로 바닥이 늪으로 변한 탓이다.
여성체 악마는 공격을 회피한 세르펜스를 그대로 지나쳤다.
그 방향에는 남성체 악마와 싸우는 휴마누스가 있었다. 이제 보니 세르펜스뿐만 아니라, 휴마누스도 늪에서 고군분투 중이었다.
‘어쩌다가 저기까지 이동했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바로 우리 곁에 있었는데.
잠깐 눈을 뗀 2분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만에 두 사람이 어느새 저멀리 떨어져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직접 두 눈으로 본 건 아니라, 그저 추측에 불과하지만.
일행들이 악마와의 싸움에 휘말리지 않도록 거리를 두려다가 저렇게 된 게 아닐까 한다.
‘세르펜스와 휴마누스는 우리들과 거리를 두려 하고, 악마는 그들을 늪지대로 유인하려 했을 테니···.’
여성체 악마가 휴마누스의 뒤를 노리고 손톱을 휘두르는 걸 목격한 순간.
머릿속에 떠올랐던 생각들이 그대로 증발해 버렸다.
세르펜스가 여성체 악마를 뒤쫓아 검을 휘둘렀고, 악마는 예상했다는 듯 하늘 높이 몸을 띄웠다.
녀석의 검이 아슬아슬하게 휴마누스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깜짝 놀란 휴마누스가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세르펜스도 당황하여 눈을 크게 떴다.
“아, 죄송합니다.”
“괜찮으니까, 일일이 사과할 필요는···!”
휴마누스는 말을 채 끝맺지 못하고, 방패를 들어 올려 남성체 악마의 공격을 막았다. 그러고는 팔에 힘을 주어 악마를 밀쳐냈다.
남성체 악마가 잠시 균형을 잃은 틈을 타, 휴마누스가 반격을 가하려 했으나 어디선가 날아온 흑마법이 그를 방해했다.
휴마누스를 대신하여 세르펜스가 남성체 악마를 공격하려 했다.
그렇지만 악마는 한 명이 아니었다.
하늘 높이 날아올랐던 여성체 악마가 날개를 접고, 세르펜스의 머리 위를 향해 내리꽂히듯 떨어졌다.
어쩔 수 없이 세르펜스는 검을 들어 올려 여성체 악마의 공격을 막아내야 했다.
그새 균형을 다잡은 남성체 악마가 마기를 넓게 흩뿌렸다.
아까 여성체 악마가 만들어 냈던 것처럼. 바늘과 같이 가느다랗고 예리한 검은 기운이 이번에는 지면과 수평으로 쏘아졌다.
휴마누스가 방패에 신성력을 불어넣어 그것을 막아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라운드 실드에 불과했으나 저래 봬도 용사의 무구다.
휴마누스가 신성력을 부여하자, 방패 앞에 커다란 막이 생겨 넓은 범위의 공격을 완벽하게 막아냈다.
덧붙여, 세르펜스는 그냥 평범하게 결계를 펼쳐서 막았다.
‘역시 악숭이들을 처리해야 해.’
리에나에게 결계를 거두게 하고, 에드나와 함께 마법을 퍼부은 아니마의 판단은 정확했다.
악숭이들이 악마를 도와 세르펜스와 휴마누스를 공격한다면, 우리에게 승산은 없다.
그러니 둘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이 악숭이들을 상대해야 한다.
리에나의 신성력이 푸로르와 윈스톤과 유지스에게 깃들었다. 이 타이밍에 신성력을 사용했다면 그 효용은 뻔하다. 버프를 걸어 준 걸 테다.
“거기 덩치 큰 기사 나리! 내 동료들을 잘 부탁합니다!”
푸로르가 윈스톤을 향해 소리쳤다.
자신이 아니어도 일행들을 지켜줄 사람이 있으니, 마음 편히 날뛰고 올 생각인가 보다.
악숭이들을 향해 달려나가는 푸로르의 양팔과 다리에 털이 자라나고, 머리에 쫑긋한 귀가 돋아났다.
이번에도 늑대의 힘을 빌려온 모습이다.
어릴 적 늑대 무리에 섞여 생활했던 경험은 그녀에게 트라우마를 안겨줬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경험 때문에, 저 모습은 푸로르가 가장 효율적으로 힘을 끌어낼 수 있는 형태이기도 했다.
푸로르가 적진 한복판에서 날뛰었고, 유지스의 화살이 그녀를 원호했다.
눈치 빠른 유지스는 푸로르가 막아내지 못하는 방향에서 공격해 오는 적을 향해 화살을 쏘았다.
감이 뛰어난 푸로르는 자신이 상대해야 하는 적과 유지스가 처리해 줄 적을 완벽하게 구분해 냈다.
아니마와 에드나의 합공도 훌륭했다.
한 명이 물벼락을 내리면 다른 한 명이 전격 마법을 갈겼다.
화려한 마법에 시선을 빼앗긴 적들이 우왕좌왕하면, 땅에서 솟아난 뾰족한 창이 악숭이들을 꿰뚫었다.
악숭이들을 처리하는 것도 중요하긴 하지만.
“에드나 씨! 저거 늪 좀 어떻게 할 수 없어요?”
“아니마가 하고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나는 에드나의 대답을 듣고 아니마를 돌아보았다.
아니마의 주변에 그려진 두 개의 마법진 중 하나는 완성되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법숭이의 마법을 상쇄시키거나 공격을 가했고.
또 하나의 마법진은 서서히 그려지는 중이었다.
“잠깐 늪에서 나와!”
마법진이 완성됨과 동시에 아니마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세르펜스와 휴마누스가 악마를 떼어내고 늪지대에서 벗어나려 애썼다.
당연하게도 악마들이 그것을 순순히 지켜볼 리가 없다.
‘자기들은 어차피 하늘을 날고 있다, 이건가?’
겨우겨우 두 사람이 늪지대를 벗어났을 땐, 몸에 자잘한 상처가 잔뜩 생겨나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계속 늪에서 싸웠다간 더 큰 상처를 입었을 테니까. 체력 고갈 문제도 심각했을 테고.
두 사람이 늪에서 빠져나오자, 아니마가 스태프로 바닥을 내리찍었다.
늪이 부글부글 끓는 듯하더니 연기가 피어났고 땅이 바짝 말라 쩍쩍 갈라졌다.
뜨거워진 땅을 식히는 것까지 마법에 포함되어 있는 걸까?
땅이 단단하게 굳고 나자, 열기로 인해 지표면의 공기가 아른아른 일그러지던 현상이 사라졌다.
그렇다 하더라도 땅이 갈라질 정도로 건조해졌으니 주변 식물이 멀쩡할 리가 없다.
과하게 습하지도, 건조하지도 않은.
평범한 토양에서 자라던 식물들은 졸지에 늪에 빠졌다가, 끝내 빼빼 말라 시들어 버렸다.
완벽한 생태계 파괴 현장이다.
‘엘프인 유지스가 싸우느라 정신이 없어서 망정이지···. 아닌가? 봤는데도 슬퍼할 겨를이 없어서 참는 중이려나?’
어느 쪽인지는 몰라도 괜히 내가 미안해졌다.
그렇게 내가 잠시 딴눈을 판 사이. 지척에서 병장기가 맞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푸로르가 싸우는 장소에서 멀리 떨어진. 그리고 마법의 영향력을 받지 않은 방향에서 달려든 적을 윈스톤이 막아 낸 것이다.
윈스톤이 검숭이와 검을 맞대는 동안, 우리를 향해 날아온 법숭이의 마법은 리에나가 결계를 펼쳐 막았다.
돔 형태로 우리를 감싸는 것이 아닌, 방패처럼 한쪽 면만 보호하는 형태다.
‘다들 손발이 척척 맞네. 반면에···.’
나는 악숭이들과 싸우는 일행들에게서 시선을 떼고 악마와 싸우는 두 사람을 살폈다.
저쪽은 우리 편이 아니라 악마들의 손발이 척척 맞고 있었다.
하늘 높이 날아올랐던 남성체 악마가 다리에 마기를 두른 채, 세르펜스의 정수리를 그대로 쪼갤 기세로 낙하했다.
세르펜스가 땅을 박차 뒤로 물러났다.
– 콰앙!
남성체 악마의 다리가 무릎까지 땅에 틀어박혔다.
절호의 기회였다. 세르펜스가 무게 중심을 앞으로 옮기며 다시 한번 땅을 박차, 이번에는 앞으로 달려들었다.
그러나 세르펜스는 검을 제대로 휘두르지도 못하고 주춤거리며 물러나야만 했다.
여성체 악마에게 떠밀린 휴마누스가 중간에 끼어든 탓이다.
그 틈을 타 남성체 악마는 땅에 박힌 다리를 빼내고 휴마누스를 측면에서 공격했다.
휴마누스는 급하게 방패를 들어 놈의 손을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한쪽 손을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연이어 반대쪽 손이 휘둘러졌고 놈의 손톱이 휴마누스의 갑옷을 길게 긁었다.
갑옷에 손톱자국이 깊게 새겨졌지만, 휴마누스는 다치지 않았다.
저것이 용사의 무구가 아닌 일반 갑옷이었다면 종이짝처럼 찢어졌을지도 모르겠다.
손톱자국도 시간이 지나면 복구될 테니. 실질적인 피해는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리고 여성체 악마는 급하게 공격을 멈추느라 자세가 무너진 세르펜스를 공격했다.
허공을 할퀴는 악마의 손톱 궤적을 따라, 새까만 마기가 세르펜스를 향해 날아들었다.
자세가 무너진 상태였기에 세르펜스는 검을 드는 대신 결계를 펼쳐 공격을 막아냈다.
그 짧은 시간 만에 여성체 악마가 세르펜스의 코앞에 도달했다.
악마의 두 손 가득 마기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갈고리 같은 손톱이 연달아 결계를 긁어댔다.
세르펜스는 결계 안에서 자세를 다잡았지만, 결계에 가해지는 충격 탓인지 안색이 그리 좋지 않았다.
언제까지 결계 안에서 버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세르펜스가 작게 심호흡을 한 뒤, 결계를 거두는 것과 동시에 땅을 박차 뒤로 물러났다.
녀석의 신체 능력은 뛰어나지만, 그건 악마도 마찬가지다.
악마가 땅을 박차고 거기에 날갯짓까지 더하니, 세르펜스가 물러나는 것보다 악마가 쫓아오는 속도가 더 빨랐다.
악마가 마기를 가득 두른 손으로 신성력이 깃든 검날을 잡아챘다. 반대 손은 세르펜스의 가슴팍을 노리고 휘둘러졌다.
심장을 잡아챌 듯.
날카롭게 손톱을 세운 모습이 마치 사냥을 하는 맹금류의 그것을 연상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