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559)
공작님, 회개해주세요!-560화(560/1105)
560회
71. 공작님과 성검 (2)
“뭐? 아바마마께서 이곳에 와 계신다고?! 어디에···, 큭!”
휴마누스가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다가, 돌연 신음을 흘리며 몸을 웅크렸다.
그는 악마의 공격을 받고 기절했다가 이제 겨우 깨어난 참이다.
당연히 멀쩡할 리가 없고, 그 상태로 갑작스레 움직이면 몸에 부담이 가는 건 상식이다.
“다치셨습니까? 치료해 드리겠습니다.”
성검펜스가 기계적인 어투로 말하며 휴마누스와 어느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손을 뻗었다.
아무리 치료를 위해서라고는 하나, 직접 몸에 손을 얹는 것조차 꺼려진다는 듯한 행동이다.
‘혹은, 경계를 하고 있거나.’
휴마누스는 괜찮다고 대답하고는 직접 신성력을 일으켜 스스로를 치료했다.
금빛 신성력을 확인한 성검펜스가 휴마누스를 향해 두어 걸음 다가섰다.
아무래도 경계하는 쪽이었나 보다.
“나를 걱정하기 전에 네 상처부터 치료해야 하는 거 아니야?!”
뒤늦게 성검펜스의 상처를 발견한 휴마누스가 기겁하며 소리쳤다. 그 표정과 목소리에 걱정이 가득했다.
호들갑 떠는 휴마누스의 모습을 바라보는 성검펜스의 표정에 언뜻 귀찮음이 스쳐 지나갔다.
“혹시 신성력을 다 써서 그래? 내가 치료해 줄까?”
휴마누스가 성검펜스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다친 어깨를 향해 손을 뻗었다.
성검펜스가 뒤로 물러나며, 금빛 신성력이 맺힌 휴마누스의 손을 회피했다. 가까워졌던 두 사람의 거리가 다시 멀어졌다.
성검펜스가 얌전히 어깨를 내어주지 않는 이상, 치료 능력이 미숙한 휴마누스는 녀석의 상처를 치료할 수 없다.
리에나라면 직접 손을 대지 않고도 치료하는 게 가능할 터이나.
지금 성검펜스가 하는 꼴을 보면 치료 행위 자체를 거부할 것 같다.
‘직접 치료하는 것도 싫어, 남이 치료해주는 것도 싫어. 대체 왜 저러는 거야?!’
도대체 무슨 일을 겪었기에.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았기에.
어째서 저런 행동을 보이는 것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내 실력이 못 미더워서 그래? 그런 거라면···.”
“대화라면 나중에 하는 게 좋겠습니다. 아직 전투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더는 자신의 부상을 주제로 대화하고 싶지 않다는 듯, 성검펜스가 휴마누스의 말을 끊었다.
그러고는 휴마누스를 보호하듯 서서 성검을 들어 올렸다.
전투가 끝나지 않았다는 성검펜스의 말에 나를 포함한 모두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성검이 겨누어진 방향을 확인하고 당혹과 의아함을 느꼈다.
그것은 정확히 우리를 가리키고 있었다.
푸로르는 악숭이들 사이로 파고들어 싸우느라 조금 떨어져 있었지만. 성검펜스는 힐끔 곁눈질하며 그녀 또한 견제했다.
우리를 향해 살기를 흘린 건 아니었으나 적의를 가진 것만은 분명하다.
성검펜스가 살기를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마냥 안심할 수는 없다. 어찌 된 영문인지 성검펜스는 지독한 우울증과 무기력증에 시달리는 듯 보였다.
적이라는 판단이 든다면, 죽여야 한다는 의지조차 불태우지 않고 맹목적으로 죽이려 들지도 모른다는 의미다.
휴마누스를 제외한 모두의 얼굴에 긴장감이 서렸다.
“다 끝난 게 아니라고?! 느껴지는 흑마력이나 악마의 기운이라고는 잔흔뿐인 것 같은데···. 달리 느껴지는 기척도 없고.”
아직도 사태 파악을 못한 휴마누스가 끙끙거리며, 있지도 않은 악숭이의 기척을 잡아내려 애썼다.
그런 휴마누스의 행동에 성검펜스가 살짝 입을 열었다가 도로 닫아버렸다. 설명해 줄 기력조차 없다는 듯이.
[성검의 주인] 속 타락펜스가 아닌 성검펜스가 나온 건 다행한 일이다.타락펜스에 비하면 성검펜스는 생판 모를 남에 가깝고 실제로도 그러했지만.
적어도 성검펜스는 악숭 세력과 대적하는 대륙의 편으로 보였다. 휴마누스를 ‘폐하’라 부르며 치료를 권하고, 이제는 그를 지켜 주려 했다.
반면에 만약 타락펜스가 나왔다면···.
‘아니, 애초에 다른 버전의 세르펜스가 나오면 안 되잖아! 성검을 잡았는데 왜!! 다른 버전의 세르펜스가 튀어나오는 거냐고!!’
어떻게든 현실과 타협하려 노력해 보았다. 그러나 효과는 미비했다.
누가 트롤메아가 만든 시발검 아니랄까 봐, 성검은 오늘도 시발점 같은 짓을 했다. 이런 정신 나간 시발점 같으니!
기껏 상처 입고 버려진 길고양이를 주워다가, 먹이고 재우고 씻···기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애정을 듬뿍 담아 키우며 무릎냥이로 만들어 놓았더니.
노멀 모드를 클리어했으니 이젠 하드 모드로 진입하라는 것도 아니고,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인가 모르겠다.
‘이다음은 헬 모드 마왕펜스 키우기, 뭐 그딴 건가? 아니, 마왕펜스가 성검펜스보다 상위 난이도가 맞기는 해? 걘 적어도 다치면 치료는 했어!’
세르펜스가 성검과 접촉하면 안 된다고 경고를 하긴 했지만, 어쨌거나 시발검을 만든 건 트롤메아다.
미리 경고했다고 한들. 트롤메아가 이미 저지른 트롤링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그 검은 못 보던 건데···. 아, 맞다! 나 검 잃어버린 것 같아!”
휴마누스가 성검펜스의 손에 들린 성검을 보고도 알아보지 못하고, 속 편한 소리를 내뱉었다. 본인은 무척이나 심각한 것 같지만.
실로 경이로운 눈치다. 저 정도면 휴마눈새가 아니라, 눈새눈새라 불러야 했다.
성검펜스는 눈새눈새의 말을 무시했다.
나도 휴마누스의 말은 듣지 못한 거로 치고, 다시 생각에 집중했다.
‘세르펜스는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성검을 손에 쥔 걸까?’
아마도 그건 아닐 테다.
끽해봤자 저번보다 더 끔찍한 악몽에 시달리게 될 거라고. 저번보다 더욱더 생생하게 [성검의 주인] 시기의 기억을 떠올리게 될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으리라.
나는 막다른 골목에 몰린 듯한 얼굴로, 쫓기듯 성검을 향해 달려가던 녀석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우리가 함정에 빠진 것이 모두 자신의 탓이라 생각해서.
어떻게든 위기를 모면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어쩔 수 없이 성검을 쥐게 된 것이 아닐까 한다.
‘마침 악마들이 묘한 말을 주고받기도 했고.’
마왕을 물리칠 수 있는 유일한 대적자가 바로 성검의 주인이다.
성검의 주인만 사라지면 마왕이 대륙을 집어삼키는 건 시간문제다. 그런데 휴마누스가 세르펜스보다 먼저 죽으면 곤란한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휴마누스보다 자질이 뛰어난 세르펜스가 성검을 얻는 것을 경계한 거겠지.’
실제로 성검은 세르펜스의 손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리고 성검펜스는 무척이나 강했다. 정신 상태가 매우 안 좋아 보이긴 하지만.
이는 곧. 마왕은 세르펜스가 성검을 다룰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는 뜻이다.
“시온, 이게 대체 무슨 일이죠···? 갑자기 세르펜스가 왜 저러는 건가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얼어붙어 있던 유지스가 제정신을 차리고, 세르펜스 전문가인 나에게 자문해왔다.
하지만 나는 어디까지나 세르펜스 전문가일 뿐.
타락펜스라면 모를까, 성검펜스에 관한 건 하나도 모른다.
‘현재로서 확실한 건, 현 황제가 모종의 이유로 죽어서 휴마누스가 황제가 되었다는 것뿐인가?’
하지만 그게 우리를 적대시하는 성검펜스의 행동을 설명해 주지는 않는다.
나는 성검펜스의 손에 들린. 우리를 향해 겨눠진 시발검을 가만히 노려보았다.
세르펜스가 쥐자마자 모습을 바꾼 게 더 짜증이 난다.
‘그래. 용사의 무구 시스템을 생각해보면, 메인 무기인 성검의 형태가 고정되어 있다는 게 말도 안 되는 일이었어.’
그런데도 성검의 모습이 변화한다는 사실은 이제껏 알려지지 않았다. 이유로 짐작할 수 있는 건 한 가지뿐이다.
우연히도 역대 성검의 주인은 비슷비슷한 검만 사용한 게 분명하다.
기존의 성검은 가장 보편적인 장검 형태였다.
보편적이라는 건 가장 널리 쓰인다는 뜻이고, 우연이 겹칠 가능성도 상당히 크다.
‘저 시발점이 되는 검을 빼앗으면, 본래의. 내가 아는 세르펜스로 돌아오려나···?’
확신은 없지만 그렇게 믿고 싶다.
아니.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시온?”
내가 아무 말도 없이 인상만 찡그리고 있자, 유지스가 다시 한번 나를 부르며 대답을 재촉했다.
세르펜스를 원래대로 돌려놓는 건 차차 생각해보기로 하고, 일단은 눈앞의 성검펜스부터 달래놔야 한다.
우선 상처를 치료하게 하고,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얘기도 들어봐야 하고···.
“유지스, 위리디아···.”
나는 움찔하며 유지스의 이름이 들려온 방향을 바라보았다.
줄곧 지겹고 우울해서 죽을 것 같다는 얼굴을 고수하던 성검펜스의 표정에 다른 감정이 더해졌다.
“네?! 부르셨나요?”
유지스가 흠칫 놀라며 대답했다.
하지만 성검펜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괴로움과 그리움과 후회. 그리고 분노. 그런 감정들이 휘몰아치는 표정으로 입을 악다물 뿐이었다.
성검펜스가 우리를 향해 검을 겨눈 이유는 모르겠다.
하지만 가차 없이 악마를 죽였던 것과 달리, 아직까지 우리를 견제만 할 뿐. 달려들지 않은 이유는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유지스 때문인가···?’
저 반응으로 보아 이 추측이 맞는 것 같다.
그런데 성검펜스가 어째서 유지스의 이름을 입에 담으며 저런 표정을 짓는 것인지. 그러면서도 어찌하여 성검을 거두지 않는 것인지.
그건 여전히 의문으로 남았다.
‘암흑가에서 유지스를 구해낸 이후. 그녀를 다시 만난 적이 있는 걸까?’
성검의 선택을 받은 휴마누스가 마지막 시련을 받고자 아르케 왕국에 방문했을 때, 그곳에서 유지스를 만났으니.
성검의 주인이 된 성검펜스 또한 유지스를 만났으리라.
‘유지스는 성검펜스가 자신을 암흑가에서 구해준 은인임을 알아보았을까?’
그렇게 과거의 일을 떠올리며 이것저것 고민을 하다가, 나는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시온 리벨론은 선택의 날이 오기 전에 죽었다.
그것도 세르펜스의 손에 의해.
‘설마 자기가 죽인 줄 알았던 내가 살아 있어서 저러는 건가? 아니, 잠깐만. 그런데 지금 나는 변장 중이잖아?’
유지스는 머리카락 색만 바꾸고 이단 심문관 옷을 입고 있을 뿐. 기다란 엘프 귀는 그대로 드러낸 상태였다.
반면에 나는 머리카락 색을 바꾸고 눈가에 점을 두 개나 찍었지 않은가.
법숭이도 알아채지 못한 완벽한 변장이다.
“이건···, 대체 무슨 장난입니까?”
하마터면 장난이 아닌, 진지한 변장이라고 대답할 뻔했다.
딱히 나를 향한 질문이 아니었는지. 아니면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것인지.
성검펜스는 그 어떠한 반응도 내보이지 않았다.
“시온 씨.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해 봐요.”
에드나가 아니마를 꼭 끌어안고 등을 토닥거리며 소곤소곤 말을 붙였다.
그 모습이 마치 ‘너희 애가 저렇게 우울해하고 있는데 안 달래고 뭐 하고 있냐. 나를 봐라,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라고 말하는 것 같다.
나로서는 환장할 노릇이다.
저기 있는 성검펜스가 내가 아는 세르펜스면, 진작에 어화둥둥 내 새끼야 하며 둥개둥개해 주었을 테다.
하지만 지금 둥개둥개해 주려고 다가갔다간 내가 두 동강 나게 생겼다.
죽는 것도 무섭지만. 그래도 나는 죽고 나면 내가 살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이곳에 남게 될 세르펜스는?’
정신이 돌아오고 난 뒤, 제 손으로 나를 죽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녀석이 느낄 절망과 상실이 얼마나 클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내가 괜히 아무 말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 게 아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무턱대고 ‘성검 그거 지지니까, 휴마누스 형아에게 넘기고 이리 와서 사탕이나 드세요.’라고 말한다면, 녀석이 잘도 내 말에 따르겠다.
어린아이가 특정 물건에 꽂혔을 때, 무턱대고 뺏으려 들면 역효과만 생기는 법이다.
적어도 성검펜스가 어째서 우리를 향해 검을 겨누고 있는지. 그 이유 정도는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적이 아님을 증명하여 오해를 풀고, 현재 상황을 이해시킬 수 있을 테다.
녀석에게서 성검을 뺏는 건 그 이후다.
“세르펜스, 너 좀 이상하다?”
드디어 눈새눈새도 세르펜스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