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565)
공작님, 회개해주세요!-566화(566/1105)
565회
71. 공작님과 성검 (7)
* * *
[[◇]]내가 성검을 손에 쥐었을 때. 놀라워하거나 의문을 품는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나 또한 그러했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째서인가,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꺾인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을 품에 안고, 나는 홀로 제국을 떠났다.
‘프라시더스 공작’에게 잘 보이려 접근해 오는 귀족들이 번거로워, 변장을 하고 미리 준비해 둔 가짜 신분증을 사용했다.
그런 철저한 준비에도 불구하고 목적지가 정해져 있는 까닭에. 혹은 이러한 시기에 홀로 다니는 여행객이 드문 탓에.
제국을 벗어나고 얼마 동안은 악마 숭배자들의 기습이 있었다.
그렇게 몇 차례. 습격해 오는 적의 숫자는 점차 많아지는가 싶더니, 포기라도 한 것인지 어느 순간부터 잠잠해졌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그저 목적지를 향해 걸음을 옮길 뿐인.
그런 낯선 시간이 주어졌다.
올바른 길을 따라 걷고 있음에도 길을 잃고 헤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작은 지명 하나 놓치지 않고 외워버린 지도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길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지도를 몇 번이나 꺼내 보아도 잘못된 것은 없었다.
나는 분명 맞는 길을 걷고 있었다. 하지만 방황하고 있었다. 감각이 어그러졌다.
오래전 묻어 놓았던 감정을 되살려, 이것의 이름이 혼란이었음을 떠올렸다.
비릿한 바다 내음이 코끝을 스쳐 지나가고 나서야 어긋났던 감각이 제자리를 찾았다.
나에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난생처음 본 바다는 황량했다.
하얀 모래사장 위로 그보다 하얀 눈이 내려앉았다.
저 멀리 펼쳐진 수평선이 무색하게도, 사막이라도 마주한 것처럼 턱없이 건조하게 느껴졌다.
배를 타고 스메른 왕국의 섬에 도착했다.
오로지 타 종족과의 교류만을 위해 존재하는 이 섬은 왕국의 주민인 메로우보다, 인간 상인이 더 많았다.
그런 이 섬에도 신전은 존재했고 신관들 또한 인간이었다.
‘메로우들은 깊은 바닷속, 자신들만을 위한 세계를 구축하며 살아간다고 하던가.’
신관의 안내를 따라 신전 내부로 들어갔다.
신전 중앙에는 작은 샘이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크기는 작았으나, 물은 파랗다 못해 검은빛을 띠었다.
그 깊이가 결코 얕지 않음을 짐작케 했다.
“당신이 성검의 주인?”
샘에서 상반신만 내놓은 누군가가 말했다.
연녹색 피부와 지느러미 모양의 귓바퀴. 그리고 목에 난 아가미는 책을 통해 읽은 ‘메로우’의 특징이었다.
“따라와.”
메로우 사도(使徒)가 물속으로 들어갔다. 첨벙하는 소리와 함께 꼬리가 수면 위로 잠시 나타났다 가라앉았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명료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물속에 몸을 던졌다.
샘은 바다와 연결되어 있었는지 소금기로 인해 눈이 따끔거렸다.
억지로 눈을 부릅뜨고 앞서가는 메로우 사도의 모습을 좇아 한참을 헤엄쳤다. 사도는 이따금 뒤를 돌아 따라오는 내 모습을 확인했다.
숨이 모자라 갑갑하다 못해 괴롭고, 어지러움이 몽롱함으로 변해갈 무렵. 한 동굴에 도착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 수 있었다.
“허억, 허억···. 쿨럭···!”
정신이 혼미한 상태로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귀에 들려오는 건 내 심장 박동과 거친 숨소리. 간간이 터져 나오는 기침 소리가 전부다.
“표정 하나 안 바뀌고 멀쩡해 보이길래 내버려 뒀더니···. 돌아갈 땐 도와줄게.”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렇게 대답하려 입을 열었으나 정작 입 밖으로 나온 건 학학거리는 숨소리뿐이다.
“힘들면 대답하지 마.”
“이제 괜찮···, 습니다. 후우···.”
억지로 숨을 억누르고, 겨우겨우 대답을 쥐어짜 냈다.
메로우 사도는 의아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고는 손가락 끝으로 동굴 안쪽을 가리켰다.
문에 성검을 꽂고 신성력을 밀어 넣으면 열릴 거라는 설명과 함께.
“그럼 나는 반대편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여기까지 혼자 힘으로 따라올 정신력이라면, 쉽게 통과할 수 있을 거야.”
그 말을 끝으로 메로우 사도는 물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그자의 말이 거짓이었음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문이 열리고 그 너머로 발을 내딛자마자 나는 무력한 어린아이로 돌아갔다.
환영은 지독하리만큼 생생해서, 피곤할 때면 찾아오는 악몽 따위와 비교하는 것조차 무색하게 느껴졌다.
가만히 몸을 웅크린 채 얼마나 떨었을까. 정신이 들고 보니 나는 동굴 입구에 쓰러져 있었다.
다시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가, 돌아오길 반복했다.
초조함이 찾아왔다. 하지만 그조차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했다.
아무리 나아가려 노력해도 제자리걸음에 불과한 현실에 숨이 턱 막혔다.
메마른 줄 알았던 눈물이 흐르고, 나 자신의 나약함을 통감했다.
“흐윽···.”
차가운 동굴 벽에 부딪혀, 흐느끼는 소리가 되돌아왔다.
그 소리는 마치 비난과도 같아서 비수처럼 심장을 파고들었다.
이럴 수는 없다.
나는 성검의 주인이 되어 대륙을 지키기 위해 태어났고, 성검의 주인으로 선택받았다.
고작 첫 번째 시련조차 이겨내지 못한다면 내 존재의 의의는 무엇이란 말인가.
다시 몸을 일으켰다. 문을 마주했다.
아직 걸음을 내딛지도 않았는데 두려움이 엄습했다. 머리가 어지럽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때, 어디선가 돌 굴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흠칫 놀라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다. 고개를 내려 보니, 발치에 손톱만 한 돌이 하나 보였다.
다시 고개를 들어 정면을 보았을 때. 어째서인가 문이 멀어져 있었다.
그제야 내가 뒷걸음질 쳤음을 깨달았다.
‘···이곳에 들어온 후, 시간이 얼마나 흘렀지?’
아직 두 개의 시련이 남았다. 이렇게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다.
다른 시련을 통과하고 나서,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는 게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지에 의하면 세계수는 성검의 주인에게 필요한 조언을 해 준다고 했다.
세계수라면 이 시련을 통과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줄 것이다.
갑자기 발밑이 쑥 꺼지는 느낌이 들더니, 차디찬 바닷물이 몸을 옭아매듯 휘감겨왔다.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자,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 보았던 풍경이 그대로 시야에 담겼다.
제자리걸음조차 아니었다. 거듭 뒷걸음질 친 끝에 원점으로 돌아와 버렸다.
나는 내가 도망치고 있음을 자각했다. 하지만 다시 물 밖으로 나가 동굴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비겁한 나 자신이 역겨울 정도로 신물이 났다.
왔던 길을 거슬러 올라, 신전에 도착했다. 샘 주변을 지키고 있는 자는 없었다.
나는 그대로 신전을 몰래 빠져나와, 육지로 향하는 배에 숨어들었다.
사람들이 주고받는 대화를 통해, 그 기나긴 시간이 고작 이틀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부지런히 서두르면 두 개의 시련을 마치고 다시 스메른으로 돌아올 수 있으리라.
‘다행···, 인가?’
* * *
두 번째 시련은 간단했다.
일지에 적힌, 시간이 오래 걸릴 테니 주의하라는 경고가 무색할 정도로.
드워프 사도가 내어준 문제는 두 개의 답을 포괄하고 있었다.
하나는 이곳에서 멀리 떨어진 활화산을 가리켰고, 나머지 답은 ‘영겁의 화로’를 가리키고 있었다.
시련을 치를 장소를 찾는 것이 목적인 만큼. 그리고 교묘하게 숨겨진 정도로 보아.
정답은 눈앞의 ‘영겁의 화로’가 분명했다.
“허어, 이걸 제대로 맞출 줄이야···. 문제를 새로 만들어야 하나···? 아!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절대 시련 장소를 일지에 적어서는 안 되네. 그래야 다음번 성검의 주인도 이 지혜의 시련을 치를 수 있지 않겠나?”
드워프 사도는 그렇게 말하며, 나를 진짜 시련의 장소로 안내했다. 그자는 건투를 빈다는 말을 남기고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사도가 자리를 비우자, 주변에 흩어져 있던 바위들이 뭉쳐 거대한 덩어리를 이뤘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핵의 위치를 파악했다.
그리고 골렘이 움직이기 시작할 때, 그것을 베어냈다.
바윗덩어리가 땅에 추락하며 지축을 뒤흔들었다.
한데 아무리 기다려도 용사의 무구는 나타나지 않았다.
일지에 적힌 내용대로라면, 시련을 마치는 대로 무구의 힘이 나타나 소지품 중 하나에 깃들어야 했다.
혹시 일정량 이상의 충격을 가해야 하는 건가 싶어, 주변에 흩어진 돌덩이를 파괴해 보았다.
“벌써 끝낸 건가?! 과연 빠르구먼! 그런데 어째서 애먼 바위를 부수고 있는 게지? 어떤 예술적인 의미가 있는 건가?”
드워프 사도가 돌아왔다.
두 번째 시련을 끝마친 것이 확실하건만. 용사의 무구는 나타나지 않았다.
‘첫 번째 시련을 건너뛴 탓인가···?’
정신이 아득해졌다.
시련을 마치고도 무구를 받지 못했다는 것을 알면. 그리고 내가 첫 번째 시련을 마치지 못하고 도망쳐 왔다는 사실을 알면.
드워프 사도가 돌변하여 나를 비난할 것만 같았다.
“···을 빨리······ 시간도··· 텐데, 혹시··· 모델······ 어떠한···?”
사도가 무어라 말을 하긴 했으나, 제대로 듣지 못했다.
나는 습관적으로 괜찮다고 대답한 뒤 그 장소에서 또다시 도망쳤다.
* * *
“세계수 님께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앞서 만났던 두 종족의 사도와는 다르게 엘프 사도는 정중하고 말이 없었다.
묵묵히 걸음을 옮기는 사도를 따라 세계수 앞에 도착했다. 사도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목인사를 건네고는 조용히 물러났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성검의 주인이여.}
세계수를 만나면 묻고 싶은 말이 많았다.
그러나 막상 세계수를 마주하자,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첫 번째 시련을 통과할 수 있는지.
어째서 두 번째 시련을 마친 뒤에도 용사의 무구가 나타나지 않은 것인지.
어찌하여 나 따위가 성검의 주인이 되었는지. 과연 그럴 자격이 있었던 것인지.
두 번째 시련을 마친 후. 이곳까지 오면서 나는 많은 고민을 했다.
어쩌면 성검은 다른 사람에게로 가야 했던 것이 아닐까?
그런데 자신이야말로 성검의 주인이라 확신하며, 존재의 의의로 삼는 어리석은 이가 나타나서.
신 룩스메아께서 벌을 내리고자. 혹은 안타까워 기회를 주고자.
성검을 건네신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첫 번째 시련을 통해, 당신의 과거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세계수의 말에 나도 모르게 흡 하는 소리를 내며 숨을 들이켰다.
‘과거를, 봤다고···?’
무엇을 보았는지 묻고 싶다. 하지만 대답을 듣고 싶지 않다.
내가 그곳에서 되새긴 것을 보았느냐고 질문하고 싶다. 하지만 답변을 듣고 싶지 않다.
추악한 내 본질을 본 건 아닐지 확인하고 싶다. 하지만 알고 싶지 않다.
행여나, 내가 바라지 않는 답이 돌아올까 두려웠다.
{성검의 주인이여. 당신은 시련을 치르지 않아도 됩니다. 그리하여도 어차피 당신은 아무것도 얻지 못할 터이니. 스메른으로 돌아갈 필요 또한 없습니다.}
“······.”
삶을 통째로 부정당한 기분이다.
머릿속에서 오만 가지 생각의 실이 마구 뒤엉켰다. 정신이 아뜩하니 괴로움이 밀려들었다.
숨을 들이켜는 게 고통스럽다.
이럴 거면 차라리 호흡을 할 수 없는 물속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그때는 괴로운 생각 같은 건 떠오르지 않았으니까. 숨을 참으며 팔다리를 휘저어 헤엄치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었으니까.
{용사의 무구는 성검의 주인을 보조하기 위한 것으로, 성검의 주인에게 필요한 힘을 부여합니다. 그리하여 성검의 주인이 원하고 이루고자 하는 바를 달성할 수 있도록, 그를 돕기 위해 존재합니다.}
“······.”
{당대의 성검의 주인이여. 당신은 무엇을 원하며, 무엇을 이루고자 합니까?}
“저···, 는···.”
말문이 막혔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서는 안 된다. 그 무엇도 바랄 수 없다.
‘왜냐하면, 나는···.’
이제까지 알고 있던. 배워 왔던. 모든 상식이 무너져 내렸다.
{당신은 그 무엇도 원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검의 주인으로서 대륙을 구하는 것이 정녕 당신의 바람입니까?}
“하···, 으읏, 아···. 끄···윽···.”
목구멍에서 끔찍한 신음이 새어 나왔다.
무의식중에 호흡을 참고 있었는지 머리가 조금 어지럽다.
눈앞이 빙그르르 돌았다. 어쩌면 눈물이 핑그르르 돈 것인지도 모른다.
“앗, 괜찮으세요?!”
머리를 울리는 것이 아닌 귓가를 울리는 이 음성은 세계수의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이렇게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눈치채지 못했다니. 믿을 수가 없다.
놀라서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움직여졌더라도 고개를 들지 못했을 것이다.
“혹시···, 전부, 들으셨···. 습니, 까?”
잠기고, 갈라지고, 흔들려 탁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한 마디 한 마디 내뱉을 때마다 입안에서 비릿한 쇠 맛이 났다.
“죄, 죄송해요! 전 그냥 세계수 님께서 부르신다고 해서 왔을 뿐인···데···. 그런데, 저희 어디선가 만난 적 있지 않아요?”
누군가가 말했다. 어쩐지 그 목소리가 귀에 익었다.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청록빛 머리칼과 레몬색 눈동자가 눈에 들어왔다.
기억에 있는 얼굴이다. 하나 ‘프라시더스 공작’으로서 마주했던 자는 아니다.
나는 반사적으로. 혹은 습관적으로 입을 열었다.
“아, 아닙···.”
“목소리를 다시 들으니까 확실히 알겠네요! 저희, 제국의 암흑가에서 만났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