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566)
공작님, 회개해주세요!-567화(567/1105)
566회
71. 공작님과 성검 (8)
* * *
■
어색한 침묵이 얼마나 이어졌을까?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나는 성검펜스에게 질문을 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세계수가 어떤 식으로 도와줬···.”
“세계수와 대화를 나누지 못하셨다면, 폐하께서도 무구를 얻지 못하신 겁니까?”
성검펜스가 내 말을 끊으며, 휴마누스를 향해 물었다.
이제껏 조용히 입 다물고 있었으면서. 굳이 내가 입을 떼자마자 말을 끊는 그 행동이 무척이나 노골적으로 느껴졌다.
‘대답해주기 싫다, 이거지?’
고작 이 정도도 얘기해주지 않을 거라면, 무구를 얻지 못한 이유는 더더욱 말해주지 않으리라.
“그건 아니야, 무구를 얻긴 얻었어.”
휴마누스의 대답에 성검펜스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더욱더 짙어졌다.
그 모습에 휴마누스가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힐끔거렸다. 내가 뭔가 해주길 바라는 눈치다.
나도 성검펜스를 우쭈쭈 달래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 하지만 아직 데면데면한 사이라서 곤란하다.
낯선 어른이 간식을 주며 친한 척해 봤자 유괴범이라는 의심만 살 뿐이다.
휴마누스도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달았는지 고민 끝에 다시 입을 열었다.
“그, 그건 그렇고 나 아직 황제 아니니까 그냥 이름으로 불러 줘. 현재의 세르펜스는 그러고 있거든.”
휴마누스는 그렇게 말하였지만, 그는 황제가 되고 나서도 세르펜스에게 이름으로 불리길 바랄 것이다.
공적인 자리는 어쩔 수 없다 쳐도 사적인 자리에선 이름으로 불러 달라고 하겠지.
직접 본 건 아니나 성검펜스 시절의 황제누스도 그리 말하지 않았을까 싶다.
“······.”
휴마누스의 제안에 성검펜스는 침묵을 통해 거부 의사를 내보였다.
아무리 눈치 없는 휴마누스라 할지라도, 이렇게나 노골적인 의사 표현을 알아보지 못할 수가 없다.
아쉬움과 미안함. 그 두 가지 감정이 뒤섞인 씁쓸한 미소가 휴마누스의 입가에 걸렸다.
“싫으면 어쩔 수 없지···. 그냥 세르펜스, 네가 편한 대로 불러 줘. ‘폐하’는 빼고.”
“그럼 전하라 부르겠습니다.”
성검펜스의 칼 같은 대답에 휴마누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자그마한 목소리로 무어라 웅얼거렸다.
목소리 크기도 작고 사탕을 물고 있는 탓에 발음도 뭉개져 제대로 들은 건 아니지만, 대충 ‘하긴, 그렇겠지.’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싫으면 어쩔 수 없다며 곧장 단념하는 것도 그렇고, 어째 휴마누스답지 않다.
생각이 많아 보였다. 무언가 후회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선택의 날 이전에 세르펜스와의 관계를 바로잡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거려나?
“그···, 음···. 참! 세르펜스, 너는 세계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휴마누스가 갑자기 떠올랐다는 듯 성검펜스에게 질문했다.
다른 말을 하려다가 입이 안 떨어져서 화제를 돌린 것이 틀림없다.
아까 옷을 갈아입을 때, 그는 성검펜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말했었다. 분명 그 얘기를 하려던 거였겠지.
성검펜스는 휴마누스의 질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여전히 우울한 낯으로 조용히 눈을 깜박였다.
“아까 말했다시피, 세계수가 나한테는 말을 걸어오지 않았거든. 시련에 관한 설명도 세계수까지 안내해 준 엘프 사도에게 들었고. 내가 진짜 성검의 주인이 아니라서 무시한 걸까? 아니면 세계수에게 무슨 문제가 생긴 걸까? 세르펜스, 너는 어떻게 생각해?”
“아···.”
휴마누스가 부연 설명을 덧붙인 뒤에야 성검펜스가 반응을 보였다.
결코 좋은 반응은 아니다.
죽은 사람처럼 생기 없던 눈동자에 절망감이 더해졌고,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눈가가 붉어졌다.
겁에 질린 양, 덜덜 떨리는 몸을 한껏 움츠렸다. 그렇지 않아도 피를 많이 흘린 탓에 창백해진 얼굴이 더욱 창백하게 질렸다.
지금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모습이다.
‘짚이는 게 있구나.’
유지스가 안절부절못하며 성검펜스의 손을 꼭 잡은 채, 다른 한 손으로 녀석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성검펜스는 유지스의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그러나 상태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녀석의 눈에서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더니 방울방울 떨어져 내렸다.
‘나를 만나기 전의 세르펜스는 제대로 울지도 못했었는데···.’
성검펜스가 울고 있는 모습을 보아도 다행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감정을 참아내지 않게 되었다기보다, 감정을 참아낼 수 없게 되었다는 쪽에 가까워 보였기에.
“자, 잠깐만! 리에나를 불러올게!”
“그럴 필요 없습니다. 신성력으로 해결될 문제라면 세르펜스가 알아서 했을 테니까. 저 녀석, 그런 게 특기거든요.”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휴마누스를 말리며 성검펜스를 노려보았다.
성검펜스가 어깨를 움찔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어쩐지 아래턱이 뻐근해졌다. 나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나 보다.
“혹시···. 세계수에 문제가 생긴 겁니까? 아니, 생긴 거 맞죠?”
나는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억지로 떼어냈다. 물어보면서도, 정말 물어봐도 되는지 헷갈렸다.
하나 아무것도 모른다면 그 무엇도 해결할 수 없다.
현재의 문제든, 성검펜스의 문제든.
“···제, 탓입니다.”
성검펜스가 고개를 푹 숙이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자신은 위로씩이나 되는 것을 받을 자격도 없다는 듯. 유지스에게 잡힌 손을 빼내며, 자리를 옆으로 옮기며 그녀와 떨어졌다.
세르펜스는 제 잘못이 아닌 일에도 곧잘 자신의 탓으로 돌리곤 했다. 이는 성검펜스도 마찬가지일 거다.
“즉 악숭이가 세계수에게 해를 끼쳤는데, 세르펜스는 그것을 막지 못했다는 뜻이죠?”
“세르펜스가 아르케 왕국에 줄곧 붙어 있었을 리는 없어요. 악마 숭배자가 성검의 주인이 보는 앞에서 일을 꾸몄을 리도 없고요.”
유지스가 내 말을 이어받아 자신의 추측을 덧붙였다.
나 또한 그럴 것 같다고 생각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보나 마나 애먼 곳에서 분탕질 쳐서 세르펜스를 유인해 놓고 일을 벌였겠죠.”
나는 그렇게 말하며, 어디 틀린 점이 있으면 말해 보라는 뜻을 담아 성검펜스를 바라보았다.
성검펜스는 반박이라도 하려는 듯 고개를 치켜들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살짝 벌어지려던 입은 도로 다물렸고, 고개 또한 다시 아래로 향했다.
“시온과 유지스의 말대로라면, 세르펜스의 잘못이 아니잖아? 그런데 왜···.”
“그래도···!”
성검펜스가 휴마누스의 말을 끊었다. 울컥 치밀어 오른 듯한 목소리는 후회로 가득했다.
아무리 세계수가 유지스와의 만남을 주선해주었다지만, 반응이 너무 격하다.
‘설마···?’
아니겠지 하면서도, 내가 떠올린 것이 맞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을 물어 확인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녀석의 상처를 헤집는 꼴이 될 테니까.
그렇게 내가 망설이는 사이, 유지스가 목소리를 내었다.
“제가 죽은 게, 그때인가요?”
“흣···!”
잔잔한 목소리로 물어오는 유지스의 말에, 성검펜스가 울음인지 신음인지 모를 소리를 흘렸다.
그러고는 물기 어린 눈으로 유지스를 쳐다보았다.
성검펜스가 몸을 한껏 웅크린 탓에 자신보다 작은 유지스를 올려다보는 꼴이 되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귀를 파닥거리며 좋아할 만큼, 유지스는 주책맞지 않았다.
유지스는 다시 손을 뻗어 성검펜스의 등을 가볍게 쓸어주었다. 그 모습이 마치 ‘나는 지금 살아있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당신은···, 저 때문에 죽었습니다. 처음부터···. 곁에 두지 말았어야 했는데. 좀 더 단호하게 끊어냈어야 했는데···. 그랬더라면···.”
성검펜스가 흐느끼며 힘겹게 말을 이어나갔다.
당신을 죽게 만든 자신을 어째서 위로하는 거냐고 묻는 듯한 말이었다.
유지스가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인지는 몰라도, 저는 세르펜스와 함께 다녔던···. 아, 취소할게요. 그보다는 제가 일방적으로 따라다녔을 확률이 더 높을 것 같네요.”
“······.”
“그리고 세계수와 관련된 일로 제가 죽은 거라면···. 자꾸 제가 죽었다고 말하니까 기분이 좀 이상하네요. 아무튼 그런 거면, 세계수에 관한 소식을 듣고 아르케 왕국으로 돌아와서 제가 죽었다는 게 되네요. 혹시 제 얘기에 틀린 점이라도 있나요?”
“······.”
유지스의 말은 곧, 자신이 세르펜스를 따라가지 않았어도 죽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자신을 두고 하는 말치고는 지나치게 냉철했으나 사리에 어긋난 점은 없었다.
현재 그녀가 살아있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고, 성검펜스를 위로하고자 하는 마음이 컸기에 할 수 있는 말이기도 했다.
성검펜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제 입술만 잘근잘근 씹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렇다 해도, 당신이 저를 감싸다가 죽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건 의외의 말이었다.
성검펜스는 악마 둘을 손쉽게 처치했다. 그렇게나 강한 그가 누군가에게 감싸져야 할 만큼 위기를 맞았다니.
“제가 너무 나약해서···. 그런 말에 흔들려서는··· 안 됐는데···.”
아무래도 악숭이들이 성검펜스의 약점인 정신을 집중 공략했나 보다.
놈들이 무슨 소리를 해댔는지는 몰라도, 성검펜스가 틈을 보일 만큼 악독한 소리를 지껄였다는 건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제가 후회했나요? 죽어가면서 세르펜스를 원망했어요?”
유지스가 물었다.
성검펜스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그의 표정은 후회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럴 줄 알았어요. 지금의 저도 세르펜스가 위험해진다면, 몸을 날려서 구할 거예요. 그렇게 해서 세르펜스가 살 수 있다면 정말 기쁠 거예요.”
“그러지 마십시오.”
“어째서죠?”
“저는···, 당신께 그 무엇도 돌려줄 수 없습니다. 마음을 열기는커녕, 끊임없이 경계할 겁니다. 그러니 저 같은 것을 위해 희생하지 마십시오.”
성검펜스가 자신은 절대로 유지스에게 마음을 열지 못할 거라 단언하며. 유지스에게 자신을 위해 희생하지 말아 달라 사정했다.
참으로 우스웠다. 아니, 우습지도 않았다.
이미 유지스에게 마음을 열었다는 자각조차 못 한 채, 저런 소리를 하는 그가.
“그렇지 않아요. ‘지금의 세르펜스’라면 제가 위험에 빠졌을 때, 저를 구하기 위해 망설임 없이 행동할 거예요.”
“착각···하신 걸 겁니다.”
“착각이 아니에요.”
유지스가 얼른 자신의 말에 동의하라는 표정으로 나와 휴마누스를 바라보았다.
나는 물론이고 눈치 없는 휴마누스도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둘의 행동을 확인한 유지스가 의기양양하게 성검펜스를 향해 말했다.
“그리고 제가 보기에는 당신도 크게 달라 보이지 않네요.”
“그···, 렇지 않습니다. 저는, 저는 그런 사람이···.”
“그런 사람이에요. 다만, 당신이 모르고 있을 뿐이죠.”
“······.”
성검펜스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유지스의 시선을 피했다.
그런 녀석의 모습에 유지스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네요. 그래도 제가 살았더라면 좋았을 뻔했어요. 조금이라도 세르펜스의 곁에 오래 남아서, 완전히 마음을 터놓고 지낼 수 있었더라면. 그렇게 됐으면 좋았을 텐데.”
유지스는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성검펜스를 감싼 것이 잘못되었다는 게 아니라, 그 자리에서 생을 마감해버린. 또 다른 자신을 탓하는 말이었다.
이번에도 성검펜스는 침묵을 지켰다.
이미 울고 있지만,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