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572)
공작님, 회개해주세요!-573화(573/1105)
572회
71. 공작님과 성검 (14)
나는 지그시 눈을 감고 깊게 심호흡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다.
입을 꾹 다문 채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는 성검펜스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처연하게 우는 그 얼굴을 마주하고 있자니, 새삼 성검펜스도 세르펜스가 맞긴 맞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한 건가?’
성검펜스의 옆자리로 가서 등이라도 토닥거려 주고 싶었으나, 그랬다간 경계심만 자극할 것 같다.
손수건을 건네면 이번에는 받아줄까?
확신은 없지만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는 것보단 낫겠지 싶다.
“닦아요.”
“······.”
“세르펜스 전용 손수건이니까, 부담스러워하거나 경계하지 말고 편하게 받아요.”
내 말에 의문을 느낀 걸까? 성검펜스가 내 주머니에서 나온 손수건과 내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나는 그런 성검펜스를 향해 씨익 웃으며 말했다.
“현재의 세르펜스도 당신처럼 잘 울거든요.”
“···죄송합니다.”
성검펜스가 영문 모를 사과를 하며 손수건을 받아갔다. 그 행동에 나는 이유 모를 안도감을 느꼈다.
눈물을 닦아낸 성검펜스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가만히 보고 있기만 할 뿐, 녀석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왜 그러셨어요?”
“죄···.”
“사과는 됐습니다.”
죄송하다는 말은 이제 그만 듣고 싶다. 그래서 나는 녀석의 말을 끊어버렸다.
성검펜스가 내 시선을 피해 고개를 숙이며, 제 손에 들린 촛대와 손수건을 내려다보았다.
둘 다 내가 건넨 물건이다.
손수건이야 그렇다 쳐도 촛대는 뭐하러 계속 들고 있는지 모르겠다. 대충 옆자리에 내려놓으면 될 텐데.
방음 스크롤을 낭비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살금살금 고개를 치켜들 정도로, 기나긴 침묵이 이어졌다.
그래도 밤은 더 길었다.
절전 모드가 되지 않는 선에서, 녀석이 입을 열 때까지 얼마든지 기다려 줄 수 있다.
굳게 닫힌 창문과 내부를 밝히는 마법등 때문일까?
마차 안의 시간이 세상과 유리되어 그대로 멈춘 것만 같다.
“잠들 수가, 없어서···.”
눈물이 멎은 성검펜스가 제 역할을 끝낸 손수건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수분이 몽땅 눈물을 통해 빠져나가기라도 한 듯 메마르고 갈라진 그 목소리와 함께. 길었는지 짧았는지 모를, 붕 뜬 시간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래서 기절할 생각이었습니까? 목을 졸라서?”
“······.”
내 물음에 성검펜스의 고개가 위아래로 움직였다.
평생 듣도 보도 못한 불면증 해결법에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온다.
오늘 갑자기 ‘잠도 안 오는데, 목을 조르면 기절하듯 잠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성검펜스의 뇌리를 스쳤을 리는 만무하다.
즉, 저런 터무니없는 방법으로 잠을 청한 게 하루 이틀 일이 아니란 거겠지.
굳이 물어 확인해 볼 것도 없다.
‘이 녀석은 도대체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망가진 걸까?’
나는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을 뒤로하고, 다른 질문을 꺼냈다.
“혹시 제가 불을 켜 놔서 못 주무신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 오히려···.”
“오히려?”
“······.”
성검펜스가 입을 다물고 미간을 찌푸렸다. 적절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아서 고민에 잠긴 듯한 모습이다.
아무래도 뒤에 이어질 말은 듣지 못할 성싶다.
그래도 성검펜스는 ‘오히려’로 운을 떼었다. 불을 켜 둔 게 득이 되면 득이 되었지, 해가 된 건 아닌 모양이다.
“그럼 악몽을 꿀까 봐 두려워서?”
“···역시, 알고 계셨던 겁니까?”
당연하다. 나는 세르펜스의 보호자니까. 세르펜스가 악몽에 시달리지 않도록 잠들 때까지 옆에서 계속 토닥여 준 적도 있다.
그런 말들이 입속을 맴돌았다. 하지만 나는 내 보호자로서의 위치를 성검펜스에게 어필하지 않았다.
그냥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부담스럽고, 한편으로는 미심쩍게 느껴질 테니까.’
머릿속으로 정리할 게 많다. 생각이 길어질 것 같다.
나는 성검펜스 절전 모드 방지책으로, 녀석의 무릎을 검지로 툭툭 건드리며 생각을 이어나갔다.
‘성검펜스는 죽었어. 직접 사인을 물어 확인해 본 건 아니지만, 아마도 자살이겠지.’
그런데 눈을 떠 보니 동료들이 잔뜩 있고, 보호자를 자처하는 신의 사자가 튀어나왔다. 얼마나 혼란스러울까?
자살 시도 후 눈을 떠보니 병원이었고, 처음 보는 사람이 자신의 보호자라 우겨대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원수였던 이들은 자신의 형제가 되었고, 자칭 보호자는 자신이 죽였던 이의 얼굴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 봐라.
진짜 환장할 노릇이겠지.
마음을 가다듬고 창밖으로 몸을 던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아니지? 이미 비슷한 행동을 했나?’
그 한 번의 발작 때문에 성검펜스를 대하기 어려워졌다. 녀석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보였다.
그런데 정작 성검펜스는 차분해 보였다.
조금 전까지 눈물을 뚝뚝 흘려댔고, 그 이전에는 이불 속에서 제 목을 조르고 있었지만.
녀석이 운 것은 스스로 목을 졸랐다는 사실을 내게 들켜 겁을 먹었기 때문이다.
목을 조른 것 또한 충동적인 행동이 아니었다는 게 밝혀졌다.
내 추측대로 성검펜스가 자살한 것이 맞는다면. 낮에 보았던 녀석의 발작은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혼란으로 인한 것일 테다.
‘그리고 자신이 죽었다는 확신을 얻어가며 차차 침착해진 거려나···?’
내가 떠올린 생각이지만, 부정하고 싶다.
“저기···.”
너무 오래 생각에 잠겼던 걸까?
성검펜스가 호칭이라고 하기도 뭐한 ‘저기’라는 단어로 나를 불렀다. 그런 그의 시선이 힐끔힐끔 제 무릎을 향했다.
언제까지 자신을 두드릴 거냐고 묻는 게 아닐까 한다.
“아! 죄송합니다, 생각을 좀 길게 하느라.”
어지간하면 ‘그쪽이 생각에 잠기는데 어째서 남의 무릎을 두드리시는 겁니까?’ 같은 질문이 돌아올 법도 하건만.
성검펜스의 입에서 나온 물음은 다른 것이었다.
“신의 사자께서 저를 바꾸신 겁니까?”
“아까 휴마누스가 한 말이 신경 쓰여요?”
내 반문에 성검펜스가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유지스는 1회차에 성검펜스와 함께했지만, 그를 바꾸지는 못한 듯하다.
어릴 적부터 함께 지내온 휴마누스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니 현재의 세르펜스가 선택의 날, ‘대륙의 운명을 단 한 명에게 떠넘기는 건 무책임한 일’이라 말할 수 있게 된 건.
자신이 접한 적 없는 제삼자의 영향이라고 판단을 내린 모양이다.
“제가 세르펜스를 바꿨느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대답하겠습니다. 하지만 영향을 주었느냐고 물으신다면 그렇다고 대답할 겁니다.”
“그게 무슨···?”
“저는 그냥 세르펜스가 모르고 있던, 세르펜스의 본모습을 함께 찾아 주었을 뿐입니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성검펜스의 눈동자에 불신감이 스며들었다. 오늘만 벌써 두 번째다.
이미 예상했던 바다. 말을 꺼내기 전부터 성검펜스가 이런 반응을 보일 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머리를 짚으며 두통을 호소하는 대신,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세르펜스는 자신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자신이 단 것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계셨습니까?”
무어라 반박하려던 성검펜스의 입이 적당한 변명조차 내놓지 못하고 다물려졌다.
초코 퍼지 마시멜로 쿠키 샌드를 정말 맛있게 먹었던 모양이다.
나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계피 맛 사탕을 꺼내어 성검펜스에게 건넸다. 녀석이 아무 생각 없이 그것을 입에 넣었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계피 맛 사탕을 싫어하죠. 자, 다시 뱉어요.”
그렇게 말하며 나는 종이를 찢어서 성검펜스에게 건넸다. 녀석은 잠시 주저하는 듯했지만, 결국 계피 맛 사탕을 종이에 뱉었다.
그 모습을 보자 웃을 기분이 아닌데도 피식 하고 웃음이 새어 나왔다.
웃게 해 준 것이 고마워, 먹다 뱉은 계피 맛 사탕을 사과 맛 사탕으로 교환해 주었다.
“이번에는 일부러라도 단맛을 의식하며 드셔 보세요. 맛있을 겁니다.”
“······.”
미각에 집중하려는 건지 성검펜스가 눈을 감았다.
사탕이 입안을 굴러다니다 이에 부딪히며 나는 달각거리는 소리가 두어 번쯤 울렸다.
성검펜스가 감았던 눈을 다시 뜨며 말했다.
“미세하게 사과 향이 나는 것 같기는 하나, 사과 맛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맛있잖아요? 그거면 됐죠.”
“······.”
내 대답이 불만족스러웠는지 성검펜스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그 표정 변화가 기껍기 그지없다.
녀석의 얼굴에서 우울감이 조금이라도 밀려날 수 있다면, 그 어떤 표정을 지어도 만족스러울 것 같다.
이런 내 바람과는 다르게 불만스럽게 찌푸려진 녀석의 미간은 금세 평평해졌다.
“덧붙여 말하자면, 세르펜스는 매운 거 진짜 못 먹습니다. 이것도 몰랐죠?”
“······.”
“누가 매운 음식을 권하거든, 절대 먹지 마세요.”
“······.”
아무 반응도 없으니 괜히 뻘쭘해졌다. 그냥 1절만 할 걸 그랬다.
하다못해 먹는 것과 성격의 변화가 무슨 상관이냐고 따져주기라도 하면 좋을 텐데.
성검펜스가 입을 다물어 버렸으니, 내가 알아서 답변을 내놓을 수밖에.
“흠, 흠! 아무튼 세르펜스는 세르펜스가 생각하는 것처럼 부족하지도, 이기적이지도, 악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상냥하고 이타적이라서 보고 있으면 안쓰러울 따름입니다.”
“진정으로 그렇게 믿고 계신다면, 신의 사자께서 현재의 저에게 속으신 겁니다.”
대외펜스 연기도 유지 못 하는 주제에, 성검펜스가 제 연기 실력을 과신하며 말했다.
“대륙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 하나만으로 버텨온 사람이. 자신의 목을 조르며 억지로 잠을 청해야 할 정도로 마음이 부서졌으면서도 악마와 싸워 온 사람이. 이렇게 희생적인 삶을 살아 놓고, 어떻게 제 말을 부정하실 수 있습니까?”
“그런 달콤한 말로 저를 현혹했던 겁니까?”
성검펜스가 그리 말하며 손수건을 쥔 손을 입가로 가져갔다. 내가 그렇다고 대답하면 당장 입안에 든 달콤한 사탕을 뱉어 버릴 것처럼.
‘달콤한 말로 남 현혹하기’의 권위자에게 이런 말을 들으니, 어이없음이 하늘을 뚫어 황송함과 맞닿았다.
그러고 보면 세르펜스도 처음에 나를 이런 식으로 경계하긴 했다. 자신의 환심을 사서 타락시키러 온 줄 알았다나 뭐라나.
그런 점에서 보면 성검펜스의 사고방식도 세르펜스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예전 추억을 되살려 준 건 좋지만, 이렇게 경계를 사서 좋을 건 없다.
그리고 나에겐 오해를 간단하게 깨부술 수 있는 만능 도구가 하나 있다. 쓰지 않을 이유가 없다.
“현혹이라니요? 그 반대입니다. 세르펜스가 믿고 있는 것들을 주입한 건, 제 욕심에 눈이 먼. 한낱 인간에 불과합니다. 반면에 저는 누구죠?”
“···신의 사자입니다.”
“저를 세르펜스에게 보낸 건?”
“신 룩스메아이십니다.”
성검펜스가 손을 내려 무릎 위에 올리며 대답했다.
룩스메아의 이름을 팔아먹은 신의 사자 찬스는 탁월했다.
“저는 그자가 세르펜스에게 씌운 굴레를 벗겨내 준 것뿐입니다. 제 말이 달콤하게 느껴졌다면, 그건 세르펜스가 바라 마지않던 말이기 때문이겠죠.”
“그렇다면···, 신의 사자께서는 제가 바라는 말을 해 주신 겁니까?”
“아니요, 그냥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한 것뿐입니다. 그리고 언제까지 저를 신의 사자라고 부를 생각입니까? 차라리 그냥 시온이라고 부르세요.”
“······.”
성검펜스가 침묵했다.
그렇게 하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도저히 분간이 안 된다.
어떻게 할 거냐고 재차 질문하려는데 성검펜스가 한발 앞서 입을 뗐다.
“그렇게 저를 믿으시다간, 언젠가 배신을 당하게 될 겁니다.”
“얼씨구?”
“신의 사자께서는 모르시겠지만···. 저는···.”
성검펜스가 괴롭다는 듯 얼굴을 찌푸리며 말끝을 흐렸다.
무슨 말을 하려고 저러는지 모르겠다. 확실한 건, 신의 사자라는 호칭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뿐이다.
“저는, 대륙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으로부터···, 도망, 쳐서···. 자살을, 했습니다.”
이미 눈치챘던 거다. 하지만 성검펜스의 입을 통해 확인받고 났더니 착잡함이 장난 아니다.
힘든 얘기를 먼저 꺼내 줘서 고맙다고 말하며 달래 줘야 할까?
아니면 자신을 깎아내리기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따져야 할까?
결정을 내리기 어려워서 망설이는 사이, 성검펜스가 재차 입을 열었다.
“이 대륙을 지킬 수 있도록, 신께서 내려주신 이 검으로···. 이 대륙을 지켜낼, 성검의 주인을···. 제 손으로, 죽였단 말입니다···.”
내 시선을 피해 고개를 푹 숙이며, 녀석은 자신의 죄를 고백했다.
“이런 거지 같은 시발검이···.”
머리에 떠오른 생각이 가감 없이 입을 통해 튀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