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573)
공작님, 회개해주세요!-574화(574/1105)
573회
71. 공작님과 성검 (15)
뒤늦게 아차 하며 성검펜스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녀석은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눈이 살짝 커진 게 놀란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재빨리 해명을 시도했다.
“아! 시발검은 그러니까, ‘모든 일의 시발점이 되는 검’을 줄여서 부르는 명칭입니다! 절대로 욕이 아닙니다!”
“······.”
내 말을 믿지 못하는 눈치다.
그렇겠지. 시발검의 뜻은 대충 넘어간다 치더라도, 앞에 ‘거지 같은’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누가 뭐래도 욕이 확실했다.
“맞아요, 사실 욕이었습니다. 험한 말 해서 미안해요. 그놈의 성검 때문에 세르펜스가 어릴 적부터 고생한 걸 생각하면 속이 뒤집혀서, 저도 모르게 그만.”
“어째서, 저를 탓하시지 않고···.”
성검펜스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겁에 질린 목소리로 ‘어째서’를 입에 올리며 내 눈치를 살폈다.
“세상에 죽고 싶어서 죽는 사람이 어딨겠습니까? 세르펜스는 그냥 벼랑 끝까지 내몰린 상태에서, 또다시 떠밀려 억지로 떨어진 것뿐이잖아요. 그걸 아는데 어떻게 세르펜스를 탓할 수 있겠어요?”
“제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모르시는 것 아니었습니까?”
녀석의 의문은 곧 내 말에 대한 긍정이나 다름없다.
너무 힘들고 견딜 수 없이 괴로워서. 그런 선택을 강요당했다는 말이나 진배없다.
“네. 직접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죠. 하지만 수도 없이 상상해 봤습니다. 만약 성검이 휴마누스가 아닌 세르펜스를 선택했다면 어땠을까 하고.”
그 상상은 실제가 되어 지금 내 눈앞에 앉아 있다.
성검펜스의 상태는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심각했다. 그렇기에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욱 피폐한 삶을 살았음을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내가 상상할 수조차 없는 고통을 겪으며, 망가져 갔을 성검펜스를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보나 마나 모든 책임을 세르펜스 한 사람에게 맡겨 놓고, 다들 나 몰라라 하며 자신의 삶을 살아갔겠죠. 그러다가 악숭이들이 사고 쳤다는 소문이라도 들려오면, 그것을 막지 못한 세르펜스를 탓했겠죠.”
성검펜스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내 말에 정곡을 찔렸나 보다.
흔히 있는 일이다. 적과 직접 싸우는 것은 두려워, 자신을 지켜주는 누군가의 등 뒤에서 비난의 창끝을 겨누는 건.
내가 살던 세상에서는 천재지변을 임금의 탓으로 돌리던 시대도 있었다.
그런 걸 보면 자신의 불안함을 달래고자, 잘못 없는 책임자를 탓하는 건 인간의 본능일지도 모르겠다.
‘나만 해도 툭하면 성검과 룩스메아를 욕하고 있으니···. 아닌가? 그래, 걔들은 좀 잘못했어. 욕먹어도 싸.’
아무튼. [성검의 주인]에서도 비슷했다.
악숭이들에 의해 가족을 잃고 죄 없는 성검일행을 욕하는 놈들은 뭐 그리 많은지.
푸로르와 아니마가 빡쳐서 이딴 놈들을 뭐하러 구하느냐고 화를 내고, 나머지 일행이 그들을 말리는 일도 더러 있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자신을 보호해 주는 이들을 비난하는 건 정말 어리석은 행동이다. 여차하면 마음이 상해서 그대로 떠나버릴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도 의외로 많은 사람이 그런 실수를 저지른다.
보호받는 걸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하는 말은 불안과 두려움을 해소할 길이 없어, 생각 없이 떠드는 소리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마음에 담아두지 마세요. 그게 힘들다면, 차라리 욕하고 화를 내세요. 배은망덕한 놈들이라고. 그것조차 어렵다면 제가 대신해 드려요?”
“···저를, 두려워했습니다.”
성검펜스가 내 말에 긍정도 부정도 아닌, 제삼의 답변을 내놓았다.
어째 생략된 주어가 ‘성검펜스에게 보호받은 사람’을 가리키는 것처럼 들렸다.
“어, 그러니까···. 악숭이들이요?”
내 조심스러운 물음에 성검펜스의 고개가 가로로 움직였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이마를 짚었다.
‘어쩐지 대외 설정에 안 맞는 말을 쉽게 하더라니!’
겁에 질린 사람들의 얼굴을 마주하며, 성검펜스가 얼마나 많은 상처를 입었을지. 안쓰러워 견딜 수가 없다.
“악숭이들이 이간질이라도 한 겁니까?”
“결국, 언젠가는 들켰을 겁니다. 제가 어떤 사람인지···.”
“이간질했다는 뜻이죠? 이런 빌어먹을 악숭이들이 진짜!”
씩씩대며 팔을 걷어붙였으나, 지금 내 앞에 있는 건 죄 없는 성검펜스 뿐. 멱살을 잡혀 줄 악숭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흥분하며 걷어붙였던 소매를 조용히 내렸다.
“괜찮다면 어쩌다가 그렇게 된 건지 설명해 줄 수 있어요?”
“신의 사자께서는 어째서 이렇게까지 저를 신경 써 주시는 겁니까?”
성검펜스가 또다시 내 질문을 무시하고 제 할 말만 했다.
아직 모든 것을 털어놓을 만큼 내게 마음을 열지 못했다는 거겠지. 그래도 신의 사자라서 그런 거냐는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는 것에 위안을 얻었다.
내가 진심으로 자신을 걱정하고 있다는 걸 알아준 걸 테다. 아닐 수도 있지만,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냥 제가 그러고 싶으니까요. 그러면 안 됩니까?”
“안 됩니다.”
지나칠 정도로 단호한 대답에 ‘엥?’ 소리가 절로 나왔다.
기껏해야 제대로 된 이유를 설명해 달라고 할 줄 알았는데.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싶다.
“신의 사자께서 현재 머물고 계시는 그 몸은···. 제가 죽인 자의 것입니다. 그 사실을 알고 계십···.”
“아는데요?”
내가 녀석의 말을 끊고 가벼운 말투로 대답하자, 성검펜스가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을 보고 있노라니 잠깐 세르펜스가 돌아온 줄 알았다.
“그런데 어째서···, 어쩌자고 저와 이런 공간에 들어오신 겁니까?”
“고작 말 없는 마차에 같이 탄 게 뭐라고···. 아! 시온이 마차 사고로 죽었다는 설정이었죠?”
“제가 두렵지도 않습니까? 제가 그쪽을 죽이기라도 하면 어쩌시려고···!”
성검펜스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경악했다. 겁을 잔뜩 집어먹은 모습이다. 누가 보면 내가 녀석에게 살해 협박이라도 한 줄 알겠다.
녀석은 자신의 말과 표정이 따로 놀고 있다는 걸 알고나 있을까?
마음 같아서는 거울을 꺼내서 보여주고 싶다.
“왜 이렇게 방어적으로 나오실까?”
“그게, 무슨 말입니까···?”
세르펜스가 벽을 치는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자기 비하를 입에 담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성검펜스와 세르펜스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세르펜스의 자기 비하는 ‘이런 나도 괜찮다고 말해 줄 거야?’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난 뒤에도 자신을 동정하며 위로해 줄 수 있냐는 도발이자, 작은 투정이다.
반면에 성검펜스는 ‘더 이상 가까이 온다면 후회하게 될 거다.’라는 의미를 담아, 자신의 허물을 내보였다.
자신은 이런 사람이니까 다가오지 말라며 경고했다.
자기혐오를 넘어선, 자기 파괴적인 행동이다.
“아까 분명히 말했잖습니까? 세르펜스에 대해, 당신보다 잘 알고 있노라고. 무슨 말로 저를 밀어내려 하든 소용없습니다.”
나는 세르펜스가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는지 알고 있다. 타락펜스가 저지른 짓을 알고도 세르펜스에게 깐죽거렸다.
‘그런데 이제 와서 정의의 편인 성검펜스를 보고 겁먹는 것도 웃기잖아?’
만약에 내가 성검펜스를 마주하고 겁을 먹는다면, 녀석이 또다시 자해를 시도할까 불안해서일 거다.
나는 타락펜스가 저지른 죄의 피해자가 아니다. 그래서 쉽게 말할 수 있는 걸지도 모르지만, 세르펜스는 보통 사람보다 마음이 여리고 정신적으로 미숙한 어린아이에 불과하다.
“아니오, 신의 사자께서는 저를 모르십니다. 그쪽이 찾았다고 생각한 저의 본모습은 진짜 제가 아닙니다. 분명 신의 사자에게 잘 보이고자 제가 연기한 모습일 겁니다.”
“세르펜스가 우리 애에 관해 뭘 안다고 그런 소릴 합니까?”
“그게 정말 저라면···. 제가 그런 사람이라면, 대륙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을 뒤로한 채 도망쳤을 리가 없잖습니까!”
성검펜스가 발악이라도 하듯 처절하게 외쳤다.
그 모습이 안타까우면서도, 촛대와 손수건을 꼭 쥐고 저러고 있으니 어린애가 생떼 쓰는 것처럼 보였다.
“그건 세르펜스가 너무 지쳐서 그런 겁니다. 외로움과 우울함에 맞서 싸울 기력이 없어서,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거잖아요?”
“그렇다 하더라도···.”
“사람은 생각보다 빨리 지칩니다. 그걸 억지로 참다가 일어난 사고를 두고, ‘그렇다 하더라도’ 같은 말을 붙여서는 안 됩니다. 세르펜스가 오죽했으면 자해와 자살을 했겠습니까? 더 이상 그를 몰아가지 마세요.”
“······.”
성검펜스가 소리 없이 입을 벙긋거렸다. 말문이 막혔나 보다.
그러거나 말거나, 할 말은 해야겠다. 막힌 건 말문이지 귓구멍이 아니니까.
“그리고 뭐, 진정한 자아는 혼자 찾아야 하나? 남이 도와줄 수도 있지! 그거 가지고 그 사람에 맞춰 연기를 하느니 마니. 애초에 그게 가능했으면, 세르펜스가 ‘그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다.’라고 말하며 울상 짓는 일도 없었을 겁니다.”
“······.”
“툭 까놓고 말해서, 세르펜스는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는 능력이 떨어집니다. 남의 입을 통해 나온 평가를 곧이곧대로 믿고 있을 뿐이죠. 그게 다 자기 주관이 없어서 그래요. 그렇다고 그게 세르펜스의 탓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란 말이죠. 그게 다 전대 공작 새끼가···!!”
이대로 계속 말을 하다 보면 비속어가 튀어나올 것 같다. 아니, 같은 게 아니라 분명 쌍욕이 튀어나왔을 거다.
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심호흡을 하며 분노를 가라앉혔다.
성검펜스가 입을 살짝 벌린 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많이 놀랐나 보다.
조금 머쓱해졌다.
“흠, 흠! 아무튼. 저는 세르펜스가 서툴러서 혼자 하지 못하는 일을 거들어 주었을 뿐입니다. 아이가 종이접기를 하다가 가위를 써야 하는 일이 생겨서 어른에게 부탁했는데, 완성작을 보고 어른이 만들어 준 거라 말하지는 않잖아요? 그건 온전히 세르펜스의 것이 맞습니다.”
“······.”
“성장은 오롯이 본인의 몫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타인의 도움을 거절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원래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며 성장합니다. 그게 당연한 겁니다.”
아이들은 혼자 자랄 수 없다. 그들을 돌봐 주는 어른의 존재가 꼭 있어야 한다.
세르펜스처럼 몸만 자란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
성검펜스의 입은 여전히 꽉 닫혀있었다.
하지만 녀석의 눈동자는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마음의 동요가 생긴 건지, 두 눈에 가득했던 우울한 감정들이 일렁이며 더 깊은 곳에 잠긴 생각들을 내비쳤다.
“혹시, 제가 현재의 세르펜스와 거리를 두길 바랍니까? 소중한 사람을 만들면 약점이 되어 노려질 테니까? 유지스를 잃었을 때처럼 상처받을까 봐 두려워서?”
“흡···!”
성검펜스가 놀란 표정으로 숨을 크게 들이켰다.
틀리면 민망할 뻔했는데 맞춰서 다행이다.
“그런 거라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원래 살던 세상에 본체를 남겨두고 왔거든요. 죽어도 고향으로 돌아갈 뿐입니다.”
내 대답이 끝나자, 성검펜스의 눈동자에 안도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
유지스를 잃었던 게 어지간히도 트라우마로 남았나 보다.
“그보다 이제 슬슬 말해 줄래요? 당신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게 어렵다면, 일부러 상처를 방치하는 이유라도 가르쳐 주세요.”
“그건···.”
성검펜스가 망설이는 표정으로 입술을 달싹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