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575)
공작님, 회개해주세요!-576화(576/1105)
575회
71. 공작님과 성검 (17)
“지금 이간질하시는 겁니까?”
목소리에서 떨떠름한 감정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이런 내 물음에 성검펜스의 표정에 당혹스러움이 스쳐 지나갔다.
그 당혹은 나타났을 때보다 더 빠르게 사라졌고, 성검펜스는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내 시선을 피했다.
“···특별한 의도를 가지고 한 말은 아니었습니다.”
성검펜스가 고개를 돌린 채 말했다.
‘정말로 그러할까?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성검펜스가 자신의 바람과 의도를 깨닫지 못했을 가능성은?’
의심스럽다. 하지만 구태여 따져 묻지 않았다.
그가 안쓰럽다는 이유로 ‘현재의 세르펜스’의 자리를 그에게 내어줄 수는 없으니까.
성검펜스가 그러는 것처럼, 나도 모르는 척 넘어가기로 했다.
“당신의 말대로 세르펜스가 그러고 싶어 했을 수도 있죠. 하지만 처음 사귄 친구에게 애착을 보이며, ‘너는 나랑만 놀아야 해.’라고 주장하는 건 생각보다 흔한 사례입니다. 특히나 세르펜스처럼 ‘개인의 소유물’을 가져보지 못한 아이일수록 이런 성향은 더 두드러집니다.”
나는 ‘그러고 싶어 했을 수도 있다.’라고 말문을 열었지만, 사실은 알고 있다.
세르펜스라면 정말 그랬을 거라는 걸.
내가 베일에게 신경 쓰는 걸 못마땅히 여기고, 교황이 내 이름을 묻지 못하도록 원천 차단하는 걸 옆에서 지켜봤는데 어떻게 모를까.
애먼 곳을 향했던 성검펜스의 시선이 다시 나에게로 돌아왔다.
“···이기적인 마음의 발로입니다.”
“당연히 채워져야 할 것이 채워지지 않은 탓이며, 차차 나아질 수 있는 부분입니다.”
나는 성검펜스의 두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며 말했다.
불만스럽게 찌푸려진 미간으로 보아, 녀석은 내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모양이다.
성검펜스는 어지간히도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싶지 않은가 보다.
“만약 제가 일행들에게 정체를 밝히고자 했다면, 세르펜스는 막지 않았을 겁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그리하지 않으셨습니까?”
“제가 불안해서 그랬습니다.”
일행들이 나에게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까, 자신을 믿지 못한 거냐고 실망하지는 않을까.
그런 이유는 아니다.
물론 걱정을 아예 안 한 건 아니지만, 나는 내 동료들이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유지스는 상냥하고, 윈스톤은 믿음직스럽고, 에드나는 다정하니까.
내가 다른 세상에서 왔다는 걸. 그리고 특별할 거 하나 없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나면, 그들은 나를 동정할 거다.
어쩌면 이전보다 더 따뜻하게 대해줄지도 모른다.
나는 그게 불안했다.
그들이 나를 딱하게 여길까 봐. 그리고 세르펜스가 그러는 것처럼 나를 걱정하며 전전긍긍할까 봐.
그러면 내가 정말 불쌍하고 외로운 사람이 될 것 같아서.
낯선 세상에 홀로 똑 떨어졌다는 게 실감 날 것 같아서.
‘세르펜스에겐 외롭다는 걸 인정하라고는 했지만···.’
나와 그는 처한 상황이 다르다.
세르펜스가 외로움을 인정하는 게 타인의 따스함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라면, 나는 그 반대에 가깝다.
이곳에 적응하지 못하게 만들고, 그리움을 불러일으킬 거다.
‘그리고 끝내는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겠지.’
그러다 보면 세르펜스를 원망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본래 살던 세상의 가족과 친구들에 밀려, 이곳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이 더 이상 소중하지 않게 느껴지는 건 원치 않는다.
‘더군다나 이곳에서는 그곳으로 돌아갈 수 있다지만, 그 반대는 안 될 거 아니야?’
잠깐의 향수 때문에 충동적으로 돌아갔다가 이곳이 그리워지면.
이곳에 남겨두고 온 소중한 인연들이 다가올 역경을 잘 헤쳐나갈 수 있을지 불안해지면.
‘나’라는 보호자를 잃은 세르펜스가 허망함을 느끼며, 나를 만나기 이전으로 돌아갈까 걱정스러워지면.
그땐 정말 돌이킬 수 없다.
후회하고 또 후회하며, 과거의 나를 원망하게 될 것 같다. 어째서 그런 안이한 선택을 한 거냐고.
“······.”
성검펜스가 느릿하게 눈을 깜박거리며, 생각에 잠긴 나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관찰하는 듯한 시선이 부담스럽다.
“아무튼 저는 대답해 드렸습니다.”
“아···.”
실례될 정도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는 걸 이제야 인지했는지, 성검펜스가 탄성을 흘리며 잽싸게 고개를 돌려 시선을 거뒀다.
그러나 채 몇 초 지나지 않아, 슬그머니 곁눈질로 나를 쳐다보았다.
“저···, 괜찮으십니까?”
“뭐가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와 성검펜스는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티를 내지 않고 넘어갔다.
“제 이야기는···. 어디서부터 설명해 드리면 됩니까?”
“세르펜스가 말하고 싶은 부분부터 그만 말하고 싶은 부분까지요.”
내 대답이 끝나자 성검펜스가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어떤 얘기로 말문을 열고, 어떤 내용은 빼야 할지. 생각을 갈무리하는 걸 테다.
그러는 동안 나는 성검펜스를 살펴보았다. 아까 성검펜스도 나를 관찰했으니 이걸로 퉁 칠 생각이다.
세르펜스의 아공간 주머니에서 나온 이 마차의 내부는 매우 쾌적했다.
의자는 안락하고, 찬 바람을 완벽하게 막아주었으며, 마법등도 달려있다. 하지만 외양은 사람들의 눈길을 잡아끌지 않도록 평범하고 투박했다.
나무로 된 창문은 닫아두면 바깥과 내부가 완벽하게 단절되었다.
성검펜스는 굳게 닫혀 바깥이 보이지 않는 창문을 바라보았다.
과거의 기억들을 되새기고 있는 탓인지, 희미하게나마 드러났던 감정들이 다시 우울함 속에 파묻혔다.
‘그래도 발작할 것 같지는 않네···.’
자신이 겪었던 모든 일이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게 되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려나?
죽었던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자각했을 땐 그토록 충격을 받았으면서. 발버둥 치며 견뎌왔던 삶이 통째로 사라져 버린 건 괜찮다니.
정말 그런 거라면 무척이나 씁쓸한 일이다.
‘그만큼 녀석의 삶이 고통스러웠다는 뜻이니까.’
녀석의 얼굴에서 눈을 떼고 시선을 조금 내렸다.
풀어놓은 청은 빛 머리칼이 아무렇게나 흘러내린 상태였다. 머리카락 사이로 언뜻 보이는 목덜미에 난 자줏빛 멍이 아까보다 선명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색이 더 진하게 올라온 것 같다.
‘생각 정리가 끝나는 대로, 저거부터 치료하라고 해야겠다.’
나는 눈을 돌려 마차 내부를 살폈다.
어디를 보든 상관없다. 마법 스크롤의 남은 시간을 확인하려는 거니까.
내부를 둘러싼 푸른 마력의 벽이 상당히 희미해져 있었다.
내게 마법 스크롤의 남은 시간을 특정할 수 있는 능력 따윈 없다. 그래도 이런 상태라면 몇 분 내로 효력이 다 할 것임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아공간 주머니에서 마법 스크롤을 한 장 더 꺼내어 찢었다.
“음···.”
그 소리에 상념에서 깬 것인지, 아니면 타이밍 좋게 생각을 마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성검펜스가 침음을 흘리며 옆으로 돌렸던 고개를 바로 하며 나를 마주 보았다.
“까먹기 전에 목에 난 멍은 치료해 두는 게 낫지 않을까요?”
“아···.”
내 말에 성검펜스가 탄성을 내뱉었다. 그 반응으로 보아 정말 까먹고 있었나 보다.
녀석은 손수건과 촛대를 든 양손을 내려다보며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손수건을 잠깐 무릎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제 목덜미를 스윽 훑어내렸다.
“누르지 말고요.”
“······.”
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하자, 성검펜스가 나쁜 짓 하다가 들킨 아이처럼 흠칫 몸을 움츠렸다.
무의식중에 행한 버릇이었나 보다.
하여간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녀석이다.
“죄송합니다.”
자신의 목에 난 멍을 치료한 뒤, 성검펜스는 내게 사과했다.
사과는 자기 자신에게 해 주었으면 좋으련만. 아니면 현재의 세르펜스에게 하던가.
말을 씹기도 뭐하고 됐다고 하기도 뭐해서, 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저는 ‘용사의 무구’를 하나도 얻지 못하였습니다.”
성검펜스가 멍이 사라진 목을 계속 매만지며 말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괜히 불안해졌다. 손에 뭐라도 쥐여주는 게 좋을 것 같다.
세르펜스라면 쿠키나 막대 사탕 등. 이것저것 쥐여줄 것이 잔뜩이었지만, 성검펜스가 그것을 받을 것 같지는 않으니.
나는 녀석의 무릎에 놓인 손수건을 집어 들어 다시 건넸고, 성검펜스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그것을 받아들었다.
‘그나저나 용사의 무구에 관한 건 끝까지 숨길 줄 알았는데.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생긴 건가?’
의문이 떠올랐지만, 나는 굳이 그것을 파헤치려 노력하지 않았다.
아니, ‘않았다.’라는 표현에는 어폐가 있다. 성검펜스의 말에 집중하느라 딴생각을 이어나가지 못한 거니까.
첫 번째 시련에 연거푸 실패한 뒤 도망친 일.
두 번째 시련을 끝마치고 아무것도 얻지 못했던 것.
그리고 마지막 시련에서 세계수에게 들은 조언 아닌 조언.
“아차! 용사의 무구는 성검의 주인이 바라는 힘···이었죠?”
내 물음에 성검펜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련에 통과하면 당연히 받는 보상이라는 생각에, 용사의 무구가 지닌 본질을 깜박 잊었다.
전대 프라시더스 공작의 교육이 글러 먹었다는 걸 재확인한 순간이다.
자신의 잣대를 아이에게 들이대며 아이의 개성과 자유를 억압하는 건, 절대로 올바른 교육 방침이 아니다.
그냥 아이를 괴롭히는 것에 불과하다.
아이가 강하게 자라는 데 필요한 건 단련이 아닌 사랑이다.
그 사실을 전대 프라시더스 공작이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랬더라면 세르펜스는 그 어떠한 역경에도 쉬이 무너지지 않았을 거다.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 하나는 타고난 놈이니, 유능한 인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며 동료로 만들었을 수도 있겠다.
‘그리고 성검의 주인 중 역대 최강이라 불리며, 맡은 바 임무를 무사히 완수했겠지.’
한 아이의 빛나는 미래가 어른의 욕심으로 인해 망가져 버렸다.
언제 하루 날 잡고 제국의 차기 황제에게 아동 복지의 중요성을 설파해야겠다.
내 비록 민주주의 사상 전파는 포기했지만, 아이들의 복지는 절대 포기하지 못하겠다.
어떤 세상이든, 어떤 시기든. 어린아이는 보호받아 마땅하니까.
“그나저나 용사의 무구 시스템도 참 융통성이 없네. 눈치가 있다면 디저트가 무한대로 나오는 상자 같은 거라도 만들어서 내놔야지. 쯧!”
그래도 세계수가 성검펜스에게 꼭 필요했던 존재. 즉, 유지스라는 ‘동료’를 붙여주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만약 그러지 않았더라면 성검펜스는 ‘타인이 건네는 진실한 마음’을 알지 못한 채 죽었을 테니까.
인성은 다소 의심스럽지만, 세계수는 무능메아보다는 유능했다.
“그런 의미에서 뭐 하나 드실래요?”
“···지금은 됐습니다.”
“나중에는 먹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는 거죠?”
“······.”
성검펜스는 내 물음을 씹었다.
제대로 대답해 달라고 닦달하고 싶었으나, 그가 하던 얘기를 이어나갔기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입을 닫고 경청했다.
유지스와 함께하던 시간을 말하는 성검펜스의 얼굴에는 후회가 가득했다.
하지만 혼자서 시련을 받으러 다니던 시절을 말할 때보다 편해 보였다.
유지스가 추측했던 대로, 그녀는 성검펜스를 일방적으로 쫓아다녔다고 한다. 그가 거슬려 하지 않을 만큼 적당한 거리를 두고.
“그래도 떨어뜨려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나 봐요?”
“제 본성을 아는 사람이라 조금 껄끄러웠지만, 차라리 잘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보는 앞에서 저에 관한 얘기를 떠들고 다니지는 않을 테니, 감시한다는 생각으로 내버려 두었습니다. 가끔 유자 열매를 권하는 것 말고는 귀찮게 굴지도 않았고···.”
성검펜스의 마지막 말에 나는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매번 변변찮은 것만 먹고 다니는 성검펜스가 안쓰러워,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걸 내주었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생 유자 열매를 건네는 건 너무했다.
그러고 보면 엘프들은 아이가 태어나면 나무처럼 무럭무럭 자라라는 뜻으로, 나무를 한 그루 심는 풍습이 있다고 들었다.
아기 때는 부모님이 대신 돌봐주지만, 어느 정도 자라고 나면 본인이 직접 돌보며 생명의 소중함을 배운다나?
그리고 유지스의 경우, 그 나무가 ‘유자나무’였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너무한 건 유지스가 아닌 그녀의 부모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콤한 유자가 아닌 달콤한 딸기가 자라는 나무를 심었으면, 유지스는 성검펜스의 마음을 활짝 열어젖힐 수 있었을 텐데!’
이런 시답잖은 생각은 그리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성검펜스의 이야기가 비극적인 국면에 접어든 탓이다.
“어쩌면 그 시기의 저는···, 그런 날이 계속될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지난날 자신의 생각을 말하며, ‘어쩌면’이라던가 ‘같습니다.’ 따위의 이상한 표현을 붙이는 사람은 성검펜스밖에 없을 거다.
그런 어색한 문장을 시작으로, 유지스가 죽었던 날의 이야기가 성검펜스의 입에서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