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578)
공작님, 회개해주세요!-579화(579/1105)
579회
71. 공작님과 성검 (21)
* * *
내가 잠에서 깬 건 점심 먹을 시간이 되어서다.
먹고 자고, 일어나서 바로 또 먹는 삶이라니. 세르펜스와 성검펜스에게도 권해주고 싶을 정도로 훌륭한 생활 양식이 아닐 수 없다.
“제가 자는 동안 별일 없었죠?”
“네. 세르펜스는 성실하게 리에나 님과 휴마누스를 가르쳤고, 주변에 접근하는 사람도 없었어요.”
유지스가 내 질문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여 답변했다.
성검펜스는 발작 증세를 보이지 않았고, 적도 나타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좋아, 아주 바람직해!’
나는 만족스레 웃으며 스튜를 한 스푼 떠먹어 보았다.
새콤한 토마토소스에 고소하고 담백한 돼지고기가 어우러지니 조화로운 맛이 났다.
오랜 시간을 들여 푹 끓였는지, 안에 들어간 각종 채소들이 아주 잘 익어서 입안에서 살살 녹았다.
어제저녁이나 오늘 아침에 먹은 것보다 더 맛있다.
그러고 보면 세르펜스는 미트볼 토마토 리조또를 참 좋아했는데.
‘미트볼도 없고 리조또도 아니지만. 그래도 같은 토마토소스 베이스니까···.’
기대심을 품고, 옆에 앉은 성검펜스를 곁눈질로 살폈다.
그리고 미트볼이 없다는 생각을 취소했다. 어찌 된 영문인지 성검펜스의 그릇에만 미트볼이 담겨있었던 탓이다.
“오늘 점심은 저와 에드나 님과 아니마 님. 이렇게 셋이서 준비했어요!”
내 시선이 향한 종착지를 확인한 유지스가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자신 있게 외쳤다.
세 명의 요리사 중. 미트볼을 만들고 한 사람의 그릇에 몰아넣은 범인을 찾아내는 건, 식은 죽 먹기보다 쉬웠다.
나는 자신의 편애를 당당하게 드러낸 유지스에게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리고 다시 성검펜스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세르펜스, 음식은 입맛에 잘 맞아요?”
“···나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별로예요?”
“그건 아닙니다.”
“그럼 맛있다는 거네?”
“······.”
성검펜스가 한 박자 늦게 반응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녀석의 행동에 유지스의 귀가 신나게 파닥거렸다. 저러다가 휴마누스보다 유지스가 먼저 비행에 성공하는 게 아닐까 싶다.
물리 법칙상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런 생각이 떠오를 정도로 맹렬한 움직임이었다.
1회차 유지스의 귀는 지금보다 점잖았던 걸까?
성검펜스가 미트볼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연신 파닥거리는 유지스의 귀를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아! 혹시 세르펜스는 미트볼 좋아해?”
참 빨리도 알아챈다.
휴마누스가 자신의 눈치 없음을 뽐내며, 눈치 있는 사람인 척 굴었다.
같잖음과 하찮음.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모습이다. 그래도 이해해 주기로 했다.
낯선 언어를 배울 때, 어눌하게나마 계속 쓰려고 노력하다 보면 실력이 늘어나는 법이니까.
눈치도 비슷하겠지.
“네, 세르펜스는 미트볼이 들어간 음식을 좋아합니다. 참고로 매운 건 잘 못 먹어요.”
나는 세르펜스에 관해 아는 게 별로 없는 성검펜스를 대신하여, 휴마누스의 물음에 대답해 주었다.
성검펜스가 제 그릇에 담긴 미트볼을 내려다본 후. 고개를 들어 유지스를 쳐다보았다.
녀석은 그 상태로 멍하니 눈을 서너 번가량 깜박이다가 그녀를 향해 가볍게 목인사를 건넸다.
어리숙해 보이는 그 행동이 누나의 마음속 무언가를 자극했는지, 유지스가 발을 동동 굴렀다.
주책맞아 보였지만 행복해 보이니 그냥 내버려 두자.
“저기, 그러니까 보좌관 나리? 신의 사자 나리?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그냥 시온이라 불러요. 그리고 편하게 말 놓으셔도 됩니다.”
“어, 정말? 무르기 없기다?”
“대신 저도 이름으로 부르겠습니다.”
“좋아, 좋아! 아주 화통하네!”
푸로르가 기다렸다는 듯 말을 놓으며 기분 좋게 웃었다.
시원시원하게 웃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나까지 즐거워지는 기분이다.
“그래서 무슨 질문을 하시려던 겁니까?”
“너는 말 안 놔?”
“네, 저는 이게 편합니다.”
“그렇다면야.”
푸로르가 어깨를 으쓱이며 가볍게 대답했다.
내가 무슨 말투를 쓰든 개의치 않겠다는 태도다. 자세히 파고들지 않고 넘어가 주어서 고마웠다.
이 세상에 오고 난 뒤.
표면적으로 형제 관계인 제온과 사석에서 대화를 나누거나, 누군가와 말다툼을 벌일 때 말고는 쭉 존댓말을 써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존댓말이 익숙하고 편해졌다. 그러니 거짓말을 한 건 아니다.
하지만 그것 말고도 다른 이유가 또 있었다.
‘말싸움을 하는 거라면 모를까···. 누군가에게 친근감을 바탕으로 한 반말을 사용하면, 분명 삐지겠지?’
나도 모르게 시선이 성검펜스에게로 향했다.
내 시선을 느꼈는지, 녀석이 미트볼을 입에 넣으려다가 동작을 멈추고 나를 마주 보았다.
나는 신경 쓰지 말고 계속 먹으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아무튼 뭐가 궁금하신대요?”
“저 공작 나리 말인데, 성검의 주인이라고 했지?”
자신을 지칭하는 푸로르의 말에 성검펜스가 흠칫 어깨를 떨었다.
그 가녀리고 연약해 보이는 반응에 푸로르가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괜히 세상에 둘도 없는 악당이 된 것 같고, 잘은 모르겠지만 뭔가 큰 잘못을 저지른 것 같고.
그런 기분을 느끼고 있는 걸 테다.
‘심지어 성검펜스의 저 반응은 연기도 아닌 진짜잖아?’
언급된 것만으로도 눈치를 살피는 성검펜스도 가엾고, 졸지에 힘없는 아이를 괴롭히는 악당 포지션에 서게 된 푸로르도 가엾다.
“그게, 그러니까···. 어···, 수고 많으셨습니다.”
푸로르가 머쓱하게 머리를 긁으며 생뚱맞은 말을 내뱉었다.
원래 하려던 말은 따로 있었을 것 같은데, 성검펜스의 반응을 보고 마음이 바뀌었나 보다.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기로.
“아! 맞아요. 저희 애가 폐를 많이 끼쳤다죠? 죄송해요, 사과드리겠습니다.”
에드나가 들고 있던 그릇을 내려놓더니 돌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성검펜스에게 사과했다.
1회차 때 아니마가 벌인 일을 고작 ‘폐’라는 단어로 규정지어도 되는 걸까?
그런 거라면 2회차 타락펜스의 행동도 ‘폐’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게 아닐까?
‘행여나 2회차가 알려지게 된다면, 나도 저렇게 해야겠다.’
에드나는 허리를 꾸벅꾸벅 접어대며, ‘사죄란 바로 이렇게 하는 거다!’라는 말을 온몸으로 외치고 있었다.
저 모습이 내 미래가 될 수도 있다.
나는 에드나의 모범적인 자세를 면밀히 살피며 머리에 새겨 넣었다.
“언니이···.”
아니마가 말끝을 늘리며 에드나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자신 때문에 에드나가 누군가에게 굽신거리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가 보다.
에드나가 굽신거리던 것을 멈추고 아니마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는 그녀의 손을 꽉 잡아주었다.
“그래도 이 아이에겐 잘못이 없다는 걸 알아 주세요. 현재의 아니마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어요. 제가 사과를 드리는 건, 어디까지나 제 잘못에 대한 사과에요. 제가 없더라도 잘못된 길에 빠져들지 않도록 주의를 단단히 줬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해서···.”
“괘, 괜찮···습니다.”
에드나가 구구절절 늘어놓는 사죄의 말에, 성검펜스가 당황했는지 얼떨떨한 목소리로 용서의 말을 입에 담았다.
“언니이···!”
아니마가 감격에 겨워하며 그릇을 내려놓고 양팔로 에드나의 다리를 끌어안았다.
참으로 훈훈한 광경이다. 감동적인 장면을 봤더니 코끝이 시큰거렸다.
그래도 성검펜스가 부담스러워하니까, 이제 그만 하게 해야겠다.
“에드나 씨. 용서도 받았으니까, 이제 앉아서 하던 식사나 계속 하죠. 모처럼 준비한 음식이 다 식잖아요.”
“앗, 네.”
에드나가 다시 자리에 앉자, 아니마가 그녀의 어깨에 볼을 비벼댔다.
다리를 끌어안은 것만으로는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에 부족했나 보다.
들러붙는 아니마가 불편할 텐데도 에드나는 그녀를 떼어내지 않고, 식사를 이어가며 화두를 던졌다.
“그건 그렇고, 우리 계속 여기에서 머무르는 거예요? 황태자 전하께서 완벽한 날개를 만들어낼 때까지?”
“아무래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세르펜스의 상태가 평소와 다른 문제도 있지만, 결정적으로 휴마누스에게 성검이 없으니까요. 어쩌다가 들키기라도 하는 날에는···.”
유지스가 말끝을 흐렸다.
그렇지 않아도 휴마누스가 성검의 선택을 받은 것에 불만을 품고 있는 자들이 많다.
정확히 말하자면, ‘세르펜스가 성검의 선택을 받지 못한 것’에 불만을 품은 거겠지만.
세르펜스가 성검을 다룰 수 있다는 게 알려지면 1회차가 반복될 뿐이다.
마침 이곳은 길에서 벗어난 인적 드문 숲 한복판이니. 한동안 여기에서 머무르는 게 낫겠지.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이는 찰나, 성검펜스가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딱 한 마디. 그게 다였다.
심지어 뭐가 아니라는 건지도 설명하지 않았다.
“혹시 저희가 이곳에 모여 있는 동안, 악마 숭배 세력이 무슨 일을 벌일지 몰라 불안해서 그런가요? 그런 거라면 세르펜스와 휴마누스를 제외한 다른 일행들이 주기적으로 근처 도시에 들러, 신전을 통해 정보를 받아온다면 해결될 일이에요.”
유지스가 의아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말했다.
바라던 대답이 아니었는지 성검펜스는 조용히 고개를 흔들었다.
“전하께서 완벽한 날개를 만들어 내실 때까지. 그 가정이 틀렸습니다. 저는 그 전에···, 으음···.”
적절한 표현을 찾지 못했는지 성검펜스가 문장을 끝맺지 못하고 침음을 흘렸다.
그렇게 으음거리길 몇 번이고 반복한 끝에. 녀석은 작은 목소리로, ‘전하께 성검을 건네드릴 생각입니다.’ 하고 덧붙였다.
즉, 육체의 주도권을 세르펜스에게 돌려주고 자신은 사라지겠다는 얘기다.
‘자고 싶지 않다더니···.’
솔레르티아에게서 돌아가는 방법을 듣기 전.
내가 이곳에 머물길 바라면서도, 어떻게든 원래의 세계로 돌려보내 주겠다 약속하던 세르펜스의 모습이 떠올랐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후우···.”
과외 선생님의 수업 조기 중단 소식에 휴마누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여러모로 복잡해 보이는 표정이다.
“그래서, 언제까지 있을 예정이야?”
휴마누스가 머뭇거리며 고민하다가 체념하는 듯한 말투로 물었다.
언제까지고 성검펜스를 붙들어 놓을 수는 없다는 걸 아는 까닭이겠지.
“주교님께서 현재의 저에게 기초를 알려주실 수 있는 수준이 되면, 성검을 돌려드리겠습니다. 이 기술은 제가 만든 것이니만큼. 원리만 알게 된다면 현재의 제가 두 분을 가르쳐드릴 수 있을 겁니다.”
성검펜스가 후반부 심화 과정을 세르펜스에게 떠넘겼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녀석이 ‘하나를 배우면 열을 아는 자신의 천재성’을 과시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자존감 떨어지는 그가 그런 뜻으로 말했을 리는 없다.
그냥 별생각 없이. 자신에겐 그게 당연한 거니까, 자신이 잘났다는 것도 모르고 잘난 소리를 해 댄 걸 테다.
‘수능에서 한 문제 틀려놓고 시험에서 망쳤다느니, 자신은 멍청하다느니. 울면서 그런 소리를 해대는 느낌인가?’
그리고 휴마누스가 아닌 리에나를 지목한 건···.
휴마누스의 명예를 생각해서라도 이 이상의 분석은 생략해야겠다.
‘하긴, 리에나는 어린 나이에 주교가 될 정도로 우수하니까. 더군다나 휴마누스의 특기는 보조 계열이 아니기도 하고···.’
나는 속마음으로나마 최선을 다해 휴마누스를 두둔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