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579)
공작님, 회개해주세요!-580화(580/1105)
580회
71. 공작님과 성검 (22)
“리에나가 기본을 익힐 때까지라면,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겠네.”
휴마누스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듯 말했다.
쓴웃음이 그의 입가에 걸렸다. 아무래도 성검펜스가 혼자 감내하는 삶을 살아온 게, 제 잘못처럼 느껴지나 보다.
성검펜스는 그런 휴마누스의 모습에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듯한 표정으로,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더 이상 대화는 이어지지 못했다.
식사가 끝나고, 성검펜스는 곧바로 수업을 재개했다.
에드나와 아니마는 둘이서 마법 연구를 한다면서 천막에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푸로르는.
“기사 나리, 할 일도 없는데 대련 한판 더 할까?”
손가락 마디를 꺾어 우두둑 소리를 내며 윈스톤에게 대련을 신청했다.
‘한판 더’라고 말하는 거로 보아, 내가 자는 동안 한 번 판을 벌였던 모양이다.
“거절하겠소.”
“왜?”
“해야 할 일이 있소.”
그렇게 대답하는 윈스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그 시선이 의미하는 바는 오직 한 가지.
성직자 설정 때문에 미뤄뒀던 체력 단련을 다시 시작할 테니, 준비하라는 뜻이다.
‘그래, 운동을 안 한 지도 꽤 됐으니까. 슬슬 살이 다시 붙기도 했고.’
그렇지 않아도 육아는 체력이 밑받침되어야 한다는 걸 실감하던 차다.
나는 군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준비 운동을 시작했다.
푸로르는 그런 나와 윈스톤을 번갈아 쳐다보며, 아쉽다는 듯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저는 이 주변을 빙 돌며 순찰을 할 생각인데···. 푸로르, 괜찮으시면 같이 가 주실래요?”
“좋아, 같이 가자!”
유지스가 순찰을 제안해 주자 푸로르가 반색하며 좋아했다.
그리고 장난스럽게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들어 제 등 뒤를 가리켰다.
“태워줄까?”
“산책을 겸해서 천천히 걸어서 다녀오는 게 어때요?”
완곡한 거절이었다.
그래도 푸로르는 좋다고 웃어댔다. 처음부터 거절당할 걸 알고 가볍게 던져본 말이었나 보다.
“세르펜스, 저 다녀올게요. 괜찮죠?”
유지스는 출발하기 전, 성검펜스에게 허락을 구했다.
성검펜스는 잠시 강의를 멈추고 가만히 눈을 깜박거리다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과보호하느라 안 된다고 할 줄 알았는데···.’
1회차 유지스의 사망 원인이 ‘자신과 함께 있어서’라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멀리 떨어지는 건 크게 걱정되지 않는가 보다.
‘하긴, 저 두 사람이라면 크게 걱정할 것도 없지.’
나도 그들이 함께 다녀오는 건 찬성이다.
유지스와 푸로르. 저 둘은 숲속에서 특히나 빠른 기동력을 자랑했다.
엘프는 태생부터 그러했고, 푸로르가 쓰는 드루이드 술법 또한 자연과 친화적인 능력이니까.
그리고 만에 하나 마음 약한 유지스가 사건 사고에 휘말릴 일이 생긴다 해도, 푸로르가 강제로 끌고 올 테고.
여러모로 마음이 놓이는 조합이다.
“그럼 시온, 잘 부탁해요.”
“네. 세르펜스는 제가 잘 보고 있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나는 준비 운동을 마무리 지으며 대답했다.
어쩐지 오전과는 상황이 반대로 뒤집힌 느낌이다.
유지스는 나와 시선을 맞추고 신뢰의 눈빛을 보낸 뒤, 푸로르와 함께 숲속으로 사라졌다.
두 사람이 돌아온 건 3시경이었다. 간식 시간에 맞춘 거다.
나도 체력 단련을 끝내고 기진맥진한 몸으로 아공간 주머니에서 디저트를 꺼냈다. 일명 ‘메도빅’이라 불리는 꿀 케이크다.
그리고 오늘은 차 대신 우유를 마실 거다.
잠을 안 자려고 하는 성검펜스에게 카페인이 들어간 음료는 금지다.
“와아~! 맛있는 꿀 케이크!! 아니마, 너무 기뻐! 빨리 먹고 싶어라~!”
내가 다 같이 먹을 거라고 말하자, 아니마가 가증스럽게도 자신을 3인칭으로 부르며 만세 삼창을 했다.
말과 행동만 저러할 뿐. 진심으로 기뻐하는 게 아니라는 것에 이 꿀 케이크도 걸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지적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도움이 됐으니까.
아니마가 마법을 전개하자, 땅이 드드득 소리를 내며 솟구치더니 그럴듯한 테이블이 완성되었다.
단단하게 압축된 흙 테이블은 툭툭 두드려 봐도 끄떡없었다.
“나도 너희 일행에 끼고 싶다.”
성검펜스에게 줄 케이크 조각을 큼직하게 잘라 접시에 옮기려는데, 푸로르가 폭탄 발언을 내뱉었다.
성검 일행의 리더인 휴마누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가, 갑자기 왜···? 내가 뭐 잘못했어?”
“하하하! 뭘 긴장하고 그래? 진심으로 한 말은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푸로르가 목젖이 보일 정도로 크게 웃어젖히며 말했다. 그제야 휴마누스가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런 휴마누스의 모습이 재밌었는지 푸로르가 또다시 아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천막과 침대 같은 걸 가지고 다니질 않나, 간식을 꼬박꼬박 챙겨 먹지를 않나. 그런 게 여유롭고 편안해 보여서 해 본 말이야. 뭐랄까, 한가롭게 여행을 다니는 것 같잖아?”
아무래도 푸로르는 우리의 복지가 부러웠나 보다.
하기야 그렇겠지. [성검의 주인]을 읽어서 아는데, 성검 일행의 복지는 영 꽝이다.
반면에 우리 일행은 언제 어디서나 편안한 취침 환경과 풍부한 먹거리를 보장하니. 당연히 부러울 수밖에.
푸로르의 말에 느끼는 바가 많았는지, 휴마누스가 진지한 표정으로 고민에 빠졌다.
나는 그에게서 관심을 끄고 성검펜스에게 꿀 케이크와 우유를 건넸다. 내게는 성검 일행의 복지보다 성검펜스의 간식이 더 중요하니까.
성검펜스는 건네받은 꿀 케이크와 우유를 자신의 앞에 내려놓고, 그것을 관찰하듯 가만히 지켜보았다.
다른 일행들도 케이크를 받을 때까지 기다려 주려나 보다.
나는 케이크를 마저 잘라서 모두에게 나눠주었다.
윈스톤은 단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오늘은 같이 먹어줬으면 해서 아주 작은 조각을 건네주었다.
다행히도 윈스톤은 군말 없이 꿀 케이크를 받아들었다.
자신이 거절하면 성검펜스도 덩달아 먹지 않는다고 할까 봐 걱정되었나 보다.
“그래. 앞으로는 우리도 침대와 천막을 가지고 다니자. 하지만 매번 야영할 때마다 그것을 꺼내 쓰지는 못할 거야. 천막을 칠 만큼 넓은 공터를 찾지 못할 수도 있고, 때에 따라서 사람들의 눈을 피해야 할 때도 있으니까. 그리고 간식은···. 노력해 볼게.”
내가 케이크 배급을 끝내고 자리에 앉을 때가 돼서야, 휴마누스가 고민을 마치고 입을 열었다.
그 진지한 모습에 푸로르가 피식 웃었다.
“농담으로 던진 말에도 이렇게 진지하게 고민해 주는 리더가 있는데, 내가 어딜 가겠어? 그냥 너 놀리려고 꺼낸 말이었으니까, 신경 쓰지 말고 케이크나 먹으셔.”
“그래도 기왕이면 편히 다니는 게 좋잖아? 그리고 이번처럼 다 같이 다니는 일이 언제 또 생길지 모르니까, 침대는 꼭 가지고 다니는 게 좋겠어.”
휴마누스가 포크를 집어 들며 결연하게 말했다.
아직 내 잠버릇은 보여주지도 못했건만. 벌써 나와 한 침대를 쓰는 것이 불편한가 보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포크로 꿀 케이크를 작게 잘라 입에 넣었다.
부드럽고 깊은 단맛이 입안 가득 퍼져나갔다. 단맛이 굉장히 강한데도, 고급스러운 느낌이다.
“이야, 맛있네! 세르펜스도 어서 먹어 봐요.”
내가 그렇게 말하고 나서야 성검펜스가 포크를 들어 올렸다.
거리낌 없이 성검으로 악마와 악숭이들을 썰어댔을 그가. 신중한 표정으로 꿀 케이크 끄트머리를 조심스레 자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실소가 터져 나왔다.
“으음─.”
세르펜스와 성검펜스가 으음거리는 건 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번 ‘으음’은 평소와 달랐다.
저 ‘으음’은 골똘히 생각하는 와중에 흘리는 침음이 아닌, 사람들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 감탄하며 내는 ‘으음’이었다.
“우유랑 같이 먹으면 더 맛있어요.”
“음···.”
뒤늦게 부끄러워졌는지, 성검펜스가 침음을 흘리며 내 시선을 피했다.
“그래도 귀여운 건 현재의 세르펜스 쪽이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유지스가 분하다는 표정으로 난데없는 소리를 해댔다. 포크를 쥔 그녀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귀를 파닥거리는 것만으로는 주체를 못 하겠나 보다.
행복한 고민에 빠진 유지스는 잠시 저대로 내버려 두는 게 좋겠다.
문제는 그런 유지스를 보고 충격에 빠진 성검펜스다.
“원래 유지스가 저런 사람은 아닌데···.”
나는 문장을 완전히 끝맺을 수 없었다. 정말 아닌 게 맞는지 확신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르펜스와 암흑가의 ‘호위 도련님’이 동일인이라는 걸 눈치채기 전.
유지스는 설레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횡설수설 아무 말이나 조잘거리다가, 세르펜스에게 상처를 준 적이 있었다.
어디 그뿐이랴?
유지스는 ‘신흥 유지스 학파’의 선구자로서 그것을 공작저에 유행시켰다.
그런 점을 미루어 생각해 봤을 때 나오는 결론은 하나뿐이다.
‘세르펜스 앞에서는 자제하고 있을 뿐. 유지스는 원래 이렇게 주책맞은 사람이구나···!’
하마터면 성검펜스에게 거짓말을 할 뻔했다.
나는 방금 내가 했던 말을 정정했다.
“유지스는 원래 저런 사람이 맞지만, 평소에는 잘 자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르펜스가 줄곧 우울하고 무심한 모습만 보이다가 불시에 귀여운 짓을 하니까, 기습을 당해서 저러는 것뿐입니다. 이해해 주세요.”
“······.”
사정을 잘 설명해 주었음에도 성검펜스의 놀란 입은 다물어지지 않았다.
어찌 보면 아까보다 더 놀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참! 그러고 보니, 유지스 님과 고용주님은 사귀고 계셨죠?”
그러고 보니 에드나는 두 사람이 사귀는 사이라고 오해하고 있었다. 정정해 준다는 걸 깜박했다.
에드나의 폭탄 발언에 성검펜스의 입이 한층 더 크게 벌어졌다.
“뭐어?! 세르펜스랑 유지스가 사귄다고?!”
“네에?! 제가 세르펜스랑 사, 사사, 사귄다고요?!”
금시초문의 소식에 휴마누스와 유지스가 동시에 경악했다.
그리고 서로를 쳐다보았다.
“어···, 사귀는 거 아냐?”
“아, 아직은 아니에요! 좀 더 자랄 때까지 기다릴 거예요!”
참으로 패기 넘치는 대답이다.
아직은 아니라는 말은 곧, 세르펜스가 다 자라고 나면 어떻게든 꼬시고 말겠다는 선언이지 않은가.
나는 유지스의 말에 감탄했다
반면에 휴마누스는 혼란스러워졌는지, ‘으응?!’ 하고 당혹에 찬 소리를 흘렸다.
“아! 죄송해요. 제가 오해를 했네요.”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얼이 빠져나간 듯한 휴마누스와 성검펜스를 내버려 두고, 에드나와 유지스가 사이좋게 대화를 나눴다.
“세르펜스, 에드나가 착각한 거래요. 그러니까 진정하시고, 어서 케이크나 먹읍시다.”
“아···, 네···.”
내가 성검펜스의 등을 살살 쓸어내리며 말하자, 녀석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정말로 내 말에 동의해서 그랬다기보다는 반사적으로 끄덕인 것에 가까웠다.
‘설마 얘, 유지스가 자길 좋아하는 걸 모르고 있었나?!’
지금 유지스가 보이는 반응으로 봤을 때. 1회차의 유지스는 성검펜스에게 푹 빠져 살았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세르펜스는 고양이처럼 섬세한 녀석이니까,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한다는 내 조언도 받지 못했을 테니. 티도 엄청나게 냈을 거다.
그런데도 성검펜스는 처음 듣는 소식이라는 듯, 충격에 빠졌다.
이쯤 되면 성검에 ‘눈치 -100’ 옵션이라도 딸린 게 아닐까 의심해 보아야 한다.
‘이 녀석이라면 누군가가 자신을 좋아해 줄 리 없다고 확신해서, 모든 가능성을 차단해 버린 거겠지만···.’
정확한 이유는 알고 있다. 초창기 세르펜스의 상태를 알고 있으니까.
그래도 나는 성검 탓으로 돌리기로 했다. 이번만큼은 성검도 이해해 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