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58)
공작님, 회개해주세요!-58화(58/1105)
58회. 공작가의 수상한 보좌관 (1)
‘혹시 세르펜스는 내가 무조건 들킬 거라고 생각한 거 아냐?’
그래서 나를 미끼로 자신만 쏙 빠져나간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피해망상일 가능성도 있지만, 세르펜스는 나와 유지스만 두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거기까지 생각해보면 이것은 의심이 아니라 확신이라 해도 좋았다.
“이번 미끼 작전도 직접 자원하신 거라면서요?”
안 했다. 그딴 거 자처한 적 없다.
함정 수사의 미끼든, 유지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한 미끼든.
나는 어느 쪽도 자원하지 않았다.
‘대체 세르펜스는 유지스에게 뭐라고 설명한 거지?’
어느 정도 예상은 간다.
스스로를 위험의 구렁텅이에 밀어 넣을지언정, 타인을 미끼로 삼는 것은 대외적인 세르펜스의 이미지와 어긋난다.
그러니 아마도,
“저는 리벨론 경께서 그런 위협을 감수하실 필요는 없다고 말씀드렸지만, 피해자가 더 늘어나기 전에 한시라도 서둘러야 한다며···.”
···따위의 말로 운을 띄웠을 것이다. 보는 이의 심금을 울리는 표정은 덤일 테고.
“제가 당신에 대해 잘못 판단했나 봐요. 그냥 가만히 부하 덕이나 보는 분이신 줄 알았는데, 모두 저의 오해였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순진하기 짝이 없는 유지스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진심으로 사과를 해왔다.
“리벨론 경은···. 아, 본명 맞으시나요?”
“마, 맞습니다.”
“그렇군요. 아무튼, 리벨론 경께서는 직접 발로 뛰시는 현장 체질이신가 봐요.”
내가 이번 미끼를 자처한 이유가, 노예 상인들의 아지트에 자연스럽게 잠입하여 서류를 조작할 기회를 얻기 위함이라 생각한 모양이다.
그 생각이야말로 진정한 오해였다.
‘게다가 본명이 맞느냐니? 도대체 어디까지 망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 거야···.’
물론 본명이 아니긴 하다. 이런 게 소 뒷걸음치다 쥐 잡은 격인가?
“그런데 공작가의 보좌관으로 숨어들다니, 배짱이 보통이 아니시네요. 과연 암흑가의 진정한 지배자···.”
“무,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괜찮아요, 소리라면 정령으로 차단하고 있으니···.”
유지스의 머릿속에서 나는 대체 어떤 인물이 되어있는 걸까.
‘공작가의 신임받는 보좌관 시온 리벨론. 하지만 그의 진정한 정체는 암흑가를 지배하며 악을 악으로 제어하는 어둠의 지배자였다.’
···뭐 이런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과감하게 공작가 보좌관으로 숨어들어, 중간에서 정보를 모으거나 은폐하거나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악마 숭배자에 관한 이야기도 그렇고···. 정말 굉장하신 분이셨군요. 아, 혹시 가업이신가요?”
그 오해가 나뿐만 아니라, 리벨론 백작가까지 확대되었다.
설마 ‘우리 가족에 대해 뭘 알아’의 여파가 여기까지 미친 건 아니겠지?
이젠 나도 시온의 가족에 대해 모르겠다.
“‘그’와 같은 뛰어난 사람이 당신을 모시는 것에는 다 이런 이유가 있었네요.”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하죠. 슬슬 공작님께서 오실 겁니다.”
이것에 대해선 일단 세르펜스와 먼저 대화를 해봐야 할 것 같다.
‘단순히 목소리나 말투가 비슷해서 의심하는 것 정도라면, 아니라고 우길 수나 있지···.’
서류 조작 현장을 발각당했으니 빼도 박도 못하게 되어버렸다.
나중을 기약하는 내 말에 유지스가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리고, 위층으로 돌아갔다.
‘세르펜스, 이 자식···! 이런 계획을 세울 거면 미리 귀띔이라도 해줬으면 좋았잖아! 왜 몰래 진행하는 건데!’
어차피 계획을 세우면서 말해주더라도 내게 선택권은 없었겠지만, 그래도 미리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는 컸다.
“어디 캡사이신 들어간 쿠키 같은 건 안 파나···?”
확 그냥 세르펜스에게 몰래 먹여버리게.
* * *
돌아온 세르펜스는 경비대에 노예 거래상 패거리를 넘기고, 피해자들의 인도를 부탁했다.
그리고 곧바로 수도로 돌아와, 장부와 바꿔치기 된 서류들을 들고 황궁으로 향했다.
황제는 바로 장부에 적힌 구매자 목록을 확인 후, 그들의 저택이나 성에 황명과 함께 기사들을 보냈다.
그들은 해당 소식을 듣기도 전에 도착한 기사들에 의해 집안을 수색당했다고 한다.
제국은 그들 가문에 최소한의 유지비만 남기고 전 재산을 몰수하고, 추가로 그들 가문에 향후 100년간 중앙 진출 금지를 선고했다.
‘펠로 왕국의 경우에는 영지를 완전히 몰수하고, 작위까지 박탈했다는데···. 그거에 비하면 약과지.’
몰수된 재산은 피해자들에게 보상금으로 지급되었다.
남은 금액은 그들의 정착 혹은 귀향을 돕거나, 노예로 생을 마감한 자들의 가족을 찾고 피해를 배상하는 용도로 쓰일 예정이라 한다.
‘재산이 몰수됐다 해도, 기반은 남았으니 몇 년만 지나면 금세 복구할 텐데···.’
입안이 썼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싹 다 처형시켜 버릴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성검의 주인]에서처럼 신성 루멘 제국의 속이 텅 비어버리게 되면 그 또한 곤란했다.‘아무리 세르펜스가 남아있더라도,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된 제국을 과연 다른 나라가 따르려 할까···.’
그렇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서로 주도권을 잡으려 피 터지게 싸우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이제 당장 급한 일들은 다 마무리된 겁니까?”
“내가 할 일은 끝났지. 남은 일은 황실과 재상인 아르젠토 공작이 맡아서 처리할 겁니다.”
며칠간 자문회의 긴급회의가 거듭되는 바람에 공작가의 업무까지 뒷전으로 밀렸다.
오랜만에 세르펜스의 집무실에 돌아왔더니, 책상 위에 서류가 한가득 쌓여있었다.
저택의 행정관을 새로 뽑지 않았더라면 정말 답이 없을 뻔했다.
“이걸로 밀린 업무들도 끝이니, 오늘은 그만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내가 넘긴 마지막 보고서를 확인한 세르펜스가 그리 말했다.
최근 세르펜스에게 들었던 말 중 가장 듣기 좋고 감미로운 말이었다.
하지만 나에겐 중요한 용건이 더 남았다.
세르펜스가 마지막 보고서에 서명하는 모습을 멀뚱히 지켜봤다.
“···내게 할 말이라도 남았나?”
“저보다 공작님께서 말씀해 주셔야 할 게 있을 텐데요?”
나는 유지스에게 정체를 들킨 사태에 대한 해결이 시급했다.
당장은 바빠서 유지스와 만날 일이 없었지만, 이제 슬슬 한가해지기 시작하면 그쪽에서 어떻게든 접선해 올 것 같다.
“내가? 당신에게?”
“모르는 척하지 마시죠? 위리디아님 말입니다.”
“으음···. 결국 들킨 건가?”
“들키라고 아예 판을 깔아줘 놓고, 뭐가 ‘으음···. 결국 들킨 건가?’ 같은 소리입니까?”
자신을 따라 하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세르펜스가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처음부터 서류를 제게 들린 것 하며···. 이미 다 계획 세우셨던 것 아닙니까?”
“어쩌면 그녀가 나타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정말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만약을 대비한 겁니다.”
“그렇다 해도 미리 말씀해 주셨으면 좋았잖습니까?”
“숨기려 해도 이렇게 금방 들키시는데, 들켜도 괜찮다는 걸 알면 어디까지 알려질지 몰라서···.”
결국 들킨 내가 잘못했다는 소리다.
“서류 교체만 제게 안 시키셨더라면, 잡아뗄 수도 있었을 텐데···.”
“조금이라도 잡아뗄 수 있는 여지가 보였다면, 당연히 그렇게 했겠지.”
참담한 무언가를 보는 듯한 눈빛을 한 세르펜스가 내 전신을 한 번 훑어봤다.
“공작님에 비하면 전혀 눈에 안 띄는 외형이거든요? 체격도 목소리도 완전 평범 그 자체인데!”
“당신은 어떤 의미에서 저보다 더 눈에 띕니다.”
“아니, 세상에 공작님보다 눈에 띄는 사람이 어딨습니까?”
자신의 미모를 맘껏 이용하길래, 본인이 얼마나 눈에 띄는 사람인 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주인공인 휴마누스와 나란히 세워놓아도, 세르펜스가 더 눈에 띌 것 같은데.’
처음에야 휴마누스의 자극적인 색에 눈길이 갈지 몰라도, 결국에는 세르펜스에게 모든 시선이 집중되지 않을까?
잘생긴 미남이 통용되는 것은 일부지만, 극상의 아름다움은 남녀노소를 불문하는 법이다.
“그런 얘기가 아닙니다. 문제는 당신의 말투와 행동거지입니다.”
“다소 특이한 면은 있지만, 일반적인 범주 안에···.”
“절대 없습니다. 그 때문에 확신했습니다. 리벨론 경은 절대 못 숨기겠구나, 아무리 잡아떼도 안 믿겠구나···.”
“제가 뭐 어때서요?”
“당신이 너무···. 당신 같아서?”
어감이 매우 욕 같았다.
네가 너무 개 같다거나, 개가 너무 너 같다거나···. 아무튼 그런 뉘앙스로 들린다.
“지금 절 욕하신 겁니까?”
“그대의 존재에 대한 유일성을 말한 것뿐이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슬쩍 시선을 돌리는 걸 봐서 절대 좋은 의미로 한 말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미심쩍다는 눈빛으로 그의 옆얼굴을 빤히 노려봐주자, 세르펜스가 헛기침을 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흠, 흠···! 그때 위리디아님을 밖으로 보내고 저와 당신이 남았다면, 결국 언젠가는 저까지 의심받았을 겁니다. 하지만 제가 빠지고, 두 분이 남음으로써 저는 의심에서 벗어났지 않습니까?”
“그럼 저는 어쩌고요?!”
서러움을 가득 담아 그에게 따지듯 말하자, 세르펜스가 되려 서글픈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를 지켜주겠다고 하셨잖습니까.”
“네?”
“언제는 지켜주겠다 당당히 말해 놓고, 이제 와서 말을 바꾸시는 겁니까?”
“그건 이런 의미로 드린 말이 아니었는데···.”
그가 정말 이대로 자신을 저버릴 거냐는 듯, 애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연기하시는 거 다 압니다? 절대 안 넘어갈 겁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어쩐지 잘못하지도 않은 양심이 찔리기 시작했다.
‘왜, 영화나 드라마 같은 것만 봐도 그렇잖아···.’
그것이 연기임을 알아도 그것에 감화되어 울고, 웃고, 화내게 되지 않는가.
세르펜스의 연기는 몹시 훌륭했고, 그것을 극대화 시킬 얼굴과 목소리도 지니고 있었다.
“저는 그저 리벨론 경이 하셨던 말을 믿었을 뿐인데···.”
듣고 보니 그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그래, 내가 지켜주겠다고는 했지만, 무엇을 상대로 어떻게 지켜준다는 말은 안 했잖아?’
해석하기에 따라서, 그의 본성이라던가 설정이 들키지 않도록 해주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겠다 싶었다.
그리고 그 비밀을 지키는 것도 그의 정신을 지키는 것과 밀접한 관계성이···.
“리벨론 경께서 한 입 갖고 두말하는 분인 줄은 몰랐습니다. 그렇게 안 봤는데 의리가 없으시네···.”
세르펜스가 마지막 쐐기를 박았다.
“아, 아니! 누가 뭐랍니까? 그냥 다음부터는 미리 얘기나 좀 해주셨으면 좋겠다는 뜻이었습니다!”
“예, 다음부터는 주의하겠습니다.”
언제 슬퍼했냐는 듯 세르펜스의 표정이 금세 밝아졌다. 명명백백한 승리자의 미소가 그의 입에 걸렸다.
알면서도 당하는 게 이런 건가 싶지만, 어차피 벌어진 일을 탓해도 돌아오는 건 없었다.
“어휴···. 그래서 전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요?”
“그냥 평소대로 하면 됩니다.”
“예?! 그래도 무언가 계획 같은 게···.”
“당신은 그냥 당신으로 있을 때 가장 수상하니 괜찮습니다. 무슨 대화가 있었는지 보고만 잘 해주십시오.”
수상함이 내 트레이드 마크를 넘어, 정체성 그 자체가 되어가는 것 같다.
“믿고 있습니다, 리벨론 경. 부디 저를 잘 지켜주십시오.”
“수상하다면서요!”
“당신의 수상함을 믿고 있습니다.”
나는 장담할 수 있다. 세르펜스가 지금 아무 말이나 되는 대로 내뱉는 중이란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