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582)
공작님, 회개해주세요!-583화(583/1105)
583회
71. 공작님과 성검 (25)
“할 말 있으면 하세요. 보고만 있지 말고.”
“그···. 아닙니다.”
할 말 있다는 표정으로 빤히 쳐다보길래 멍석을 깔아줬더니, 성검펜스가 꼬리를 뺐다.
녀석의 소심함이 처음으로 고맙게 느껴졌다.
“아무튼 세르펜스는 사랑받을 자격이 있고, 사랑받아 마땅합니다!”
“······.”
“진짜로요! 만약 제가 여자였으면 반했을지도 모를 정도로, 세르펜스는 충분히 매력적인 사람입니다!”
“그건 그냥 두 분의 취향이···, 몹시나···. 독특하셔서 그런 것 아닙니까?”
성검펜스가 떨떠름한 목소리로 답했다.
비단 목소리만 그러한 게 아니라, 얼굴 가득 꺼리는 기색이 완연했다.
그게 어느 정도냐 하면, 세르펜스가 한창 휴마누스에게 거부감을 느끼던 시절과 비견될 만했다.
나는 더 이상 오해를 받을 수 없다는 생각에 입을 열었다.
“유지스는 그런 취향이 맞지만, 저는 아닙니다!”
“저도 아니에요!”
신흥 유지스 계파의 창시자가 수그렸던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며, 당당하게 거짓말을 했다.
장담하건대 그녀는 그런 취향이다. 부정해도 소용없다.
타인의 취향은 존중해 주면서, 어째서 자신의 취향은 저리 부정하는지 모르겠다.
“마, 맞지만. 그다지 이상한 취향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나와 눈이 마주친 유지스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자신의 말을 정정했다.
다행스럽게도 유지스의 양심이 정상적으로 동작하고 있다는 게 입증된 순간이다.
“당신의 취향이 그러하시다는 건, ‘저와 함께했던’ 위리디아 님께서도 제게 그런 마음을···?”
성검펜스가 유지스의 취향을 들먹이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런 녀석의 표정 그 어디에도 설렘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다고 꺼리는 것도 아니었다.
울상 짓는 성검펜스를 향해, 유지스가 살짝 머쓱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마도 저보다 더 순조롭게 그 마음을 키워나가지 않았을까요?”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 그건···!”
또다시 날아든 돌직구에 기껏 마음을 가라앉혔던 유지스가 새된 목소리를 냈다.
이제까지 이 자리에 없는 현재의 세르펜스를 좋아하는 이유에 관해 설명했다면, 지금부터는 성검펜스를 좋아할 이유에 관해 구구절절 설명하게 생겼다.
“그런 질문은 그만 물어봐 주세요, 정말 한계예요! 저도 부끄러움이라는 게 있다고요!”
유지스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까딱 잘못하면 성검펜스가 유지스를 울리는 장면을 목격하게 생겼다.
성검펜스는 자신의 행동이 이런 결과를 불러일으킬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는지, 당황한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냥 유지스의 심장이 그렇게 말하고 있대요. 그 정도로만 알고 넘어갑시다.”
“으, 으음···. 아, 알겠습니다.”
내가 대충 둘러대며 말하자, 성검펜스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고는 유지스를 향해 실례했다며 사과를 건넸다. 마음 넓은 유지스는 그 사과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성검펜스의 실례되는 말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만두시는 게 어떻습니까?”
“네?!”
밑도 끝도 없는 성검펜스의 말에 유지스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녀석이 무슨 뜻으로 이런 말을 하는지 이해 못 하겠다는 듯. 혹은 그 의도를 눈치채긴 했지만, 외면하고 싶다는 듯한 반응이다.
“아직 ‘그런 편’일 때, 그만두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성검펜스가 다시 한번 못을 박았다.
이는 곧 세르펜스를 좋아하지 말라는 뜻이었으니. 유지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는 건, 구태여 말할 것도 없는 당연한 얘기다.
“어째서 그렇게 말씀하시나요?”
“당신은 저와 멀어지셔야 합니다. 그게 안 된다면, 하다못해 그 마음이라도 접으셔야 합니다.”
녀석이 저런 말을 하는 이유는 뻔했다.
1회차에서 유지스가 자신을 구하려다가 죽었으니까. 현재의 유지스도 똑같은 전철을 밟게 될까 봐 두려운 걸 테다.
“그걸 어째서 ‘당신’이 정하죠? 제가 좋아하는 사람은 당신이 아니라, 현재의 세르펜스예요!”
유지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졸지에 당사자에게 고백 한 번 못 해보고 차여버린 셈이니, 분노해 마땅하다.
그녀는 이제껏 단 한 번도 보인 적 없는 얼굴로 씩씩거리며 성검펜스를 내려다보았다.
“위리디아 님을 위해서입니다.”
“그게 아니라 세르펜스···. 아니, ‘당신’을 위해서겠죠. ‘당신과 함께했던’ 제가 당신을 감싸다 죽은 것이 모두 자신의 잘못 같고, 후회스러워서. 저를 통해서 죄책감을 덜어내고자 이런 말을 한 거예요. 제 말이 어디 틀렸나요?”
“······.”
속내를 간파당한 성검펜스가 입술을 꽉 깨물며 고개를 돌렸다. 유지스의 시선을 피한 거다.
“입술 깨물지 마세요. 아프잖아요.”
“······.”
성검펜스가 움찔하며 유지스가 시키는 대로 따랐다. 입술을 깨무는 대신 입을 앙다문 모습이 퍽 얌전해 보이기까지 했다.
유지스는 녀석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제가 ‘그런 편’이라고 말한 건, 언제든지 접을 수 있을 정도로 제 마음이 가벼워서 그런 게 아니에요. 그건 그러니까···. 양심 문제예요.”
돌연 유지스가 양심 고백을 했다.
그 선언을 듣고 났더니 응애펜스가 떠올라 절로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한편 성검펜스는 뜬금없는 양심 고백에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올려 유지스를 쳐다보았다.
성검펜스의 천재적인 머리로도, 현재의 자신이 ‘응애’ 하고 다닌다는 건 예측하지 못한 것이다.
“세르펜스는 점차 나아지고 있지만, 아직도 자신의 감정에 서툴러요. 그래서 제 마음을 전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든 저는 납득하지 못할 거예요. 거절하면 거절하는 대로, 받아준다면 받아주는 대로. 저는 그의 진심을 의심하겠죠. 이런 기본적인 신뢰도 갖추지 못한 채로, 당당하게 좋아한다고 말할 용기가 없어서. 그래서 ‘그런 편’이라고 두루뭉술하게 표현했던 거였어요.”
유지스가 힘없이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었다.
바로 고개를 끄덕이는 나와 달리, 성검펜스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의문 가득한 눈동자로 유지스를 바라보았다.
겉으로 드러나지만 않았지, 성검펜스 또한 세르펜스와 마찬가지로 어른아이였던 거다.
“만약 세르펜스가 제 고백을 거절한다면, 가장 먼저 ‘설마 자신이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서 그러나?’ 하는 생각부터 들겠죠. 제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런 걸 수도 있는데, 그런 가능성을 배제하고 그를 설득하려 할 거예요.”
찔리는 구석이 있는지, 성검펜스가 흠칫 놀라며 다시 고개를 돌려버렸다.
어차피 유지스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한 상태였는데도 말이다.
그녀는 자신의 발끝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반대로 저를 받아준다 해도, ‘정말 내가 좋아서 받아준 게 맞나?’ 하고 의혹을 품겠죠. 친한 친구인 저와 사이가 틀어지는 게 싫어서 마지못해 받아들인 건 아닐까. 좋아서 받아준 거라 하더라도, 그게 정말 연인 간의 사랑이 맞을까. 혹시 다른 감정과 착각한 건 아닐까. 그런 고민을 하며 자신감을 잃어갈 것 같아서···.”
어쩐지 유지스의 말이 넋두리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기왕 자신의 마음을 다 들킨 김에, 세르펜스 대신 성검펜스를 붙들어놓고 하소연을 늘어놓는 게 아닐까 한다.
‘덤으로 나까지 끼어있다는 게 문제지···.’
그게 끝이 아니다.
둘 사이의 일에 내가 끼어있는 것보다 더욱 크나큰 문제가 남아있었다.
‘돌아온 세르펜스는 성검펜스가 몸에 머무르는 동안 있었던 일을 기억할까?’
나는 제자리로 돌아와 앉으며, 힐끔 곁눈질로 유지스를 살폈다.
“사실, 저도 제 마음을 잘 모르겠어요. 그냥 세르펜스가 정신적으로 성장하면, 제 마음도 좀 더 확실해지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기다리고 있는 거죠. 어차피 인간의 수명에 비하면 제 시간은 차고 넘치니까요.”
유지스가 어깨를 가볍게 으쓱이며 말했다.
세르펜스를 좋아하는 이유를 설명하느라 모든 기력을 소진하고, 아무렇게나 생각나는 말을 내뱉는 것처럼 보였다.
세르펜스가 이 모든 일을 기억할 가능성 같은 건 안중에도 없는 눈치다.
‘하긴. 그 걱정을 하려면 성검펜스가 자신을 좋아하느냐고 물었을 때 했어야겠지.’
녀석이 돌직구를 던지고, 유지스가 당황했던 순간.
이런 상황은 예견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어째서입니까? 위리디아 님께서, 왜 저 같은 사람 때문에 그런 고민을 하셔야 하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 고민을 하게 하는 사람 따위, 좋아하지 마십시오.”
성검펜스가 두 주먹을 꽉 움켜쥔 채 유지스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어딘지 모르게 표정과 말투가 아련하다. 그 때문에 한순간, 소설이나 드라마 속 ‘서브 남주’가 빙의한 줄 알았다.
그런 성검펜스의 말에 유지스의 반응은···.
“그냥 제 취향이에요! 내버려 두세요!”
아무래도 독특한 취향 어쩌고 하는 말을 가슴에 담아두었나 보다.
유지스가 대놓고 삐친 티를 내며 투덜거렸다. 그 모습은 도무지 세 자릿수나 되는 기나긴 세월을 살아온 존재로 보이지 않았다.
“그, 그러지 마시고···,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성검펜스가 적잖이 당황하며 유지스를 설득하려 들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유지스가 좋아한다는 사람이 ‘세르펜스’만 아니었어도, 나 또한 그녀를 뜯어말렸을 거다.
그도 그러할 게 연인 간의 사랑은 서로 주고받는 것이 기본으로 깔려있으니까.
대가를 바라지 않고, 한쪽이 일방적으로 베풀어주는 아가페적 사랑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연인이란,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서로에게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는 관계다.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성숙한 사람끼리 만났을 때야 비로소, 안정적인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유지스는 내 소중한 친구이니만큼, 행복해지길 바란다.
여기서 문제는 세르펜스도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거다.
‘잠깐만, 나도 솔로인데! 내가 왜 이런 고민을 해야 하는 거지?!’
두 사람의 관계는 두 사람이 해결해야 할 일이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자.
어차피 내가 세르펜스를 잘 키워내면 해결될 문제 아닌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직 세르펜스의 의사가 불투명했다.
성검펜스가 열심히 반대 의견을 피력하고 있지만, 그게 세르펜스의 의견을 대신할 수는 없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자신의 후회를 돌이키고 싶어서 제 의사를 무시하는 건 그만둬 주셨으면 해요.”
유지스가 더 이상 말싸움을 이어나가고 싶지도 않고, 제 의사를 굽힐 생각 또한 없음을 분명하게 밝혔다.
이제는 사라져버린 과거의 존재인 성검펜스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유지스 또한 유지스대로 입을 다물어버렸다.
성검펜스가 세르펜스에 관해 함부로 말하며, 자신에게 감정을 포기하라고 강요한 게 기분 상한 모양이다.
‘아이고, 내 팔자야!’
두 사람 관계는 알아서 흘러가게 내버려 두기로 결심한 지 몇 분 만에, 그것을 뒤엎게 생겼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이번에는 성검펜스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현재의 세르펜스는 자기감정에 서툴러서 그렇지, 좋은 사람입니다. 모두가 탐낼 만한. 그리고 자신의 울타리 안에 들여놓은 사람에게 어찌나 잘하는지 모릅니다! 아, 참고로 이건 대외적인 설정이 아니라, ‘진짜’ 세르펜스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
“게다가 배려심은 또 얼마나 깊은지 아세요? 자신보다 남을 더 생각해서, 가끔은 좀 이기적으로 굴면서 욕심도 부려줬으면 하고 바랄 정도입니다.”
“···정말입니까?”
성검펜스가 소심하게 입을 뗐다.
머리 굴러가는 소리가 귓가에 생생하게 들리는 듯했다.
“그 정도로 배려심이 깊으면, 유지스는 물론이고 모두와 떨어져 혼자 다녀야 마땅하다는 소리는 하지 마세요.”
“······.”
내가 선수 쳐서 예상 답안을 내놓자, 성검펜스가 도로 입을 다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