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583)
공작님, 회개해주세요!-584화(584/1105)
584회
71. 공작님과 성검 (26)
유지스에 이어, 나에게까지 속마음을 들키고 지적당한 탓일까?
성검펜스가 또다시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나는 녀석의 등을 두드려주던 손으로, 이번에는 그의 어깨를 짚었다.
“애초에 세르펜스는 혼자가 될 수 없습니다. 세르펜스가 그러길 바란다고 하더라도 주변인들이 그렇게 두지 않을 테니까요. 당장 여기 있는 저와 유지스만 해도, 다가오지 말라고 밀어내든 말든 끝까지 세르펜스와 붙어 있을 겁니다.”
나는 그렇게 말을 마치고, 유지스를 쳐다보았다.
내 시선을 받은 유지스가 뾰로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서···, 입니까?”
“당신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었으니 알 거 아닙니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부정하지 마시고 잘 생각해 보세요.”
“혹, 위리디아 님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오늘 새벽에 말씀드렸다시피, 감시를 위해 제가 일부러···.”
“백 보 양보해서, 유지스는 그렇다 칩시다. 하지만 휴마누스는요?”
“······.”
세르펜스는 휴마누스와 거리를 두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이는 성검펜스도 마찬가지였겠지. 그럼에도 황제누스는 끈덕지게 ‘우리는 친구 사이’라며 앵무새처럼 조잘거렸을 게 뻔하다.
어제 천막에서 대화를 나눴을 때. 휴마누스가 벌떡 일어나자, 성검펜스가 보인 반응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황제라는 직위 때문에 여정을 함께하진 못했을 테지만. 그는 지속해서 성검펜스에게 관심을 보였을 거다.
“만약 휴마누스에게 ‘황제가 되어 제국을 이끌어야 한다.’라는 책임감만 부여되지 않았더라면, 그는 절대 당신이 혼자가 되는 걸 두고 보지 않았을 겁니다.”
“······.”
“대답이 없는 건, 동의하신 거로 받아들이겠습니다.”
“······.”
성검펜스가 침묵으로써 내 말에 동의를 표했다.
그러고는 시선을 내리깔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소심하게 입술을 오물거렸다.
“현재의 저는···. 여러분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소중하게요.”
“···그게 끝입니까?”
“이것, 참.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얘기가 긴데···.”
“그렇다면 됐습니다.”
내가 거들먹거리며 입에 시동을 걸고 자화자찬을 늘어놓으려던 찰나. 성검펜스가 내 말을 뚝 잘라버렸다.
살짝 머쓱해졌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에 철판을 까는 것도 정도가 있지, 내 입으로 신께서 내린 선물을 운운하는 건 역시 민망하다.
“소중한 것이 생긴 저는···, 불안에 떨거나 두려워하지 않았습니까?”
“가끔 그럴 때도 있긴 했지만, 즐거워할 때가 더 많습니다.”
“세르펜스가 불안해하는 건, 대부분 시온이 자신의 안전을 챙기지 않아서 그런 거잖아요.”
토라져 있느라 침묵을 지키던 유지스가 갑자기 우리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크게 다쳐서 돌아오는 바람에 세르펜스를 걱정시켰던 사람이 할 말이 아니다. 프뤼네 왕국에서 있었던 그 얘기를 꺼낼까 하다가, 성검펜스 앞이라서 참았다.
나는 유지스를 살짝 흘겨봐 준 뒤, 다시 성검펜스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무튼. 제가 살던 곳에는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생길지 어떨지 모르는 불안 요소 때문에,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포기하면 안 된다는 뜻이죠. 미래가 불안하다고 해서, 눈앞의 행복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문제가 생기면 그때 가서 해결하면 그만입니다.”
“저는···.”
“알아요. 세르펜스가 배운 건 제가 말한 것과 정 반대라는 거. 그러니까, 당신이 무슨 마음으로 유지스에게 단념하라고 말했는지 이해합니다.”
나는 성검펜스의 어깨를 짚고 있던 손으로 녀석을 토닥여 주었다.
딱히 내 손을 뿌리칠 생각은 없는지, 성검펜스는 얌전히 내 토닥임을 받았다.
“당신은 유지스를 동료라고 생각하고 있었죠?”
“그랬던 것, 같습니다. 너무 늦게 깨달았지만···.”
자신이 유지스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줄 알았더라면, 그녀를 그렇게 보내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 걸까?
성검펜스가 뚝뚝 끊기는 듯한 말투로 대답했다. 누가 울보펜스 아니랄까 봐, 또 울 것 같은 표정이다.
나는 이미 지나간, 돌이킬 수 없는 이야기를 하는 대신. 앞으로의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현재의 세르펜스는 그것을 빨리 깨달았으니까.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삶의 즐거움도.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고자 하는 자신의 마음도. 그러니까 세르펜스는 실수하지 않을 겁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여기, 세르펜스의 진심이 담긴 결정체도 있잖아요.”
나는 씩 웃으며 허리춤에 달린 세니어를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리며 말했다.
성검펜스가 세니어에 잠시 시선을 두었다가, 유지스를 쳐다보았다. 유지스에게도 세니어 같은 물건이 있느냐는 무언의 질문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세르펜스가 만들어낸 신성석은 하나뿐이었다.
세르펜스에게 아무것도 받지 못한 유지스는 조용히 성검펜스의 시선을 피했다.
그런 그녀를 성검펜스가 그러면 그렇지 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세르펜스가 유지스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고 오해한 모양이다.
성검펜스가 유지스에게 그만두라는 말을 또 하기 전에, 나는 세르펜스를 변호하고자 필사의 변명을 시작했다.
“어···, 이 세니어는 말이죠? 세르펜스를 닮아서 과보호하는 경향이 심해서, 아무 때나 신성 결계를 펼칩니다. 유지스 같은 전투원이 지니고 다니면 여러모로 불편할 수밖에 없어요. 타이밍에 맞춰 활을 쏴야 하는데, 그 순간 신성 결계가 펼쳐져 앞을 가로막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건···.”
“실제로도 저 이거 들고 다니면서, 제대로 휘둘러 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적이 나타나기만 하면 결계를 쳐대는데 싸울 수가 있어야죠. 아니, 이럴 거면 대체 검술은 왜 가르쳐 준 거야? 말하다 보니 어이가 없네! 더 웃긴 게 뭔 줄 압니까? 결계로 절 보호하면서, 신체 능력 향상 버프를 걸어준다는 겁니다! 대체 왜?! 그냥 신성력 낭비잖아!”
“으음···.”
“당신이 봐도 어이가 없죠? 세르펜스의 과보호가 이렇게나 심합니다!”
“······.”
대답이 없는 건 동의한 거라고 약속했던 바. 성검펜스가 이번에도 침묵을 통해 내 의견에 동조해 준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덤으로 유지스의 서운함을 달래는 데에도 성공했다.
유지스가 작은 목소리로 ‘확실히, 좀 거추장스러울 것 같긴 해.’ 하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여우와 신포도]라는 우화가 떠오르는 발언이다. 모르는 척하자.“어쨌든, 이건 저처럼 아무런 무력도 갖추지 못하는 사람에게나 유용한 물건입니다.”
“그렇···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더군다나 신성석을 만드는 동안에는 세르펜스의 신성력이 묶이게 되잖아요? 아무리 일부분에 불과하다지만, 요즘 같은 시기에는 여러모로 위험한 행동입니다.”
“음···.”
성검펜스가 침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내 말에 완전히 넘어온 것이다.
“하여간 그런 거니까, 당신도 세르펜스를. 자기 자신을 좀 더 믿어 보세요. 당신은 혼자일 때보다, 누군가와 함께일 때 더 강해질 수 있는 사람이에요.”
“······.”
“자, 그러니까 어서 사과하세요.”
“···예?”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나 보다. 성검펜스가 멍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그 모습에 작게 혀를 차며, 나는 성검펜스의 어깨를 짚은 손에 단단히 힘을 줬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아서, 아예 체중을 실어 눌렀다.
서 있는 상태로 앉아있는 녀석에게 거의 기대다시피 내리눌렀으니. 보통 사람이라면 무게를 못 이겨 살짝 기우뚱했을 텐데, 성검펜스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유지스랑 현재의 세르펜스에게 사과하라고요.”
“아···. 죄송합니다, 위리디아 님. 제가 무례를 범했습니다.’
성검펜스가 유지스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정중하게 사과했다.
그런 녀석의 행동에 유지스가 휙휙 양손을 내저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다소 기분이 상하긴 했지만, 무례까지는 아니었어요. 어째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사정을 알고 있으니···. 오히려 제가 더 미안하죠. 당신과 함께했던 제가 그렇게 된 게, 당신에게는 큰 상처였을 텐데···. 그때 얘기를 들먹여서 죄송해요.”
“아닙니다. 위리디아 님께서는 그런 말씀을 하실 자격이 있으십니다.”
그렇게 말하며 성검펜스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녀석의 두 눈에 담긴 우울함이 더욱더 짙어졌다.
그 우울함 뒤편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녀석의 눈동자를 자세히 관찰하고 있는데, 갑자기 성검펜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지레 놀라서 나도 모르게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뭘 봐요?”
“예? 아···. 그게, 현재의 저에게는 어떻게 사과를 하면 될는지···.”
“어려울 거 없습니다. 잘 먹고 잘 자면서 몸 건강을 해치지 않는 거. 자기 자신에게 감사를 표하는 건, 그걸로 충분합니다.”
“···노력해 보겠습니다.”
성검펜스가 끄응 앓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보면 내가 불가능한 일이라도 시킨 줄 알겠다. 아무래도 녀석이 혼자 자는 건 불가능할 성싶으니, 역시 내가 도와줘야겠다.
* * *
밤이 깊어, 착한 어린이와 건강을 생각하는 어른은 잘 시간이 되었다.
대화를 마친 유지스는 옆 천막으로 건너간 지 오래요, 휴마누스와 윈스톤이 들어와 각자 침대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성검펜스도 얌전히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어제처럼 초를 새것으로 갈아놓은 뒤, 의자를 끌어와 성검펜스의 침대 옆에 두고 앉았다.
이런 내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는지, 성검펜스가 멀뚱멀뚱 눈을 깜박거리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재워줄게요.”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윈스톤이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러고 자면 아침에 입술 다 틉니다. 촛불 때문에 신경 쓰이는 거라면 수면 안대라도 드릴까요?”
“귀마개는 없소?”
“없는데요.”
“그럼 됐소.”
그 말을 끝으로, 잠시 얼굴을 내비쳤던 윈스톤은 도로 이불을 뒤집어썼다.
이불에 소리 차단 효과가 있는 것도 아닐진대. 괜한 헛수고가 따로 없다.
‘저러지 말고 세르펜스를 어린아이로 인정하면 편할 텐데.’
그래도 사회성을 기르기 위해서, 세르펜스를 어른으로 봐주는 사람이 일행 중 한 명쯤 있는 게 좋겠지.
세르펜스가 언제까지고 어린아이로 남아있을 수만은 없으니까.
“저를 재워 주신다니···. 어떻게 말입니까?”
“일단 자세부터 바꾸죠.”
그렇게 말하며, 나는 성검펜스의 이불을 확 들췄다. 나무토막처럼 반듯하게 누워있는 성검펜스의 전신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녀석을 살짝 굴려서 옆으로 눕게 한 뒤, 다리를 접어 태아 자세를 취하게 했다.
“이게 세르펜스가 편한 마음으로 깊이 잠들 때 취하게 되는 자세입니다!”
“오오~, 뭔가 전문적인 느낌인걸?”
성검펜스에게 이불을 덮어주며 의기양양하게 말하는데, 등 뒤에서 난데없이 감상평이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휴마누스가 턱을 괸 상태로 비스듬하게 누워, 내가 하는 양을 지켜보고 있었다.
“구경났어요?”
“궁금한 걸 어떡해?”
휴마누스가 호기심 가득한 눈동자를 빛냈다.
이제부터 내가 할 행동은 토닥거리는 것뿐인데. 무언가 굉장한 모션을 취해야 할 것만 같은 부담스러움이 나를 덮쳤다.
‘아냐, 그래도 역시 평소대로 하자.’
괜히 자장가 같은 걸 불러줬다가, 돌아온 세르펜스가 자신에게도 안 해준 걸 해 주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삐지면 곤란하다.
듣는 사람이 많아서 좀 부담스럽기도 하고, 긴장해서 삑사리라도 나면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지 못할 것 같다.
“별거 없으니까, 잠이나 주무세요. 세르펜스가 신경 쓰여서 못 자면 전부 휴마누스 책임입니다.”
자기 때문에 성검펜스가 못 자는 건 싫은지, 휴마누스가 조용히 몸을 돌려 누웠다.
나도 휴마누스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의자에 앉았다.
“자장자장, 이제 눈 감고 편히 주무세요.”
내가 그리 말하며 어깨를 토닥여주자, 성검펜스가 이게 대체 뭐 하는 거냐는 시선을 보내왔다.
저렇게 눈을 뜨고 있으면 다가오려던 잠도 달아나 버릴 테다. 나는 놀고 있는 손으로 아예 성검펜스의 눈을 덮어버렸다.
“이게 무슨···.”
“괜찮아요, 괜찮아. 무섭지 않아요. 악몽을 꾸는 것 같으면 제가 깨워 드릴 테니,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누군가 가까이 다가오면 알림이 울리는 마법진도 설치되어 있고, 유지스의 정령도 이 주변을 지키고 있으니. 긴장하며 주변을 경계할 필요도 없습니다.”
계속해서 성검펜스를 토닥거리며, 그가 안심할 수 있는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다가 말문이 막히면, 괜히 ‘자장자장’을 연발하며 시간을 끌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등 뒤에서 휴마누스의 하품 소리가 들려왔다.
‘자라는 성검펜스는 안 자고, 왜 휴마누스가 하품을 해대는 거야?’
그런 불만이 머릿속에 떠올랐을 때.
성검펜스가 몸을 살짝 뒤척이며 하암 하고 작게 하품 소리를 냈다.
‘휴마누스 나이스!’
생각을 뒤집는 건 손바닥 뒤집기만큼 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