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585)
공작님, 회개해주세요!-586화(586/1105)
586회
71. 공작님과 성검 (28)
“어째서 그런 표정을 짓고 계십니까?”
“제 표정이 왜요?”
“···아닙니다.”
성검펜스가 무어라 말하려는 듯했으나, 결국 아니라는 말로 둘러대며 입을 닫아버렸다.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듣고, ‘아무것도 아니었구나.’라고 생각할 정도로 나는 눈치 없지 않다. 표정 관리가 제대로 안 됐던 거겠지.
‘그리고 성검펜스도 눈치가 있는 사람이니까 자세히 파고들지 않은 걸 테고.’
방음 스크롤을 사용한 보람도 없게 마차 안에는 침묵만이 감돌았다. 하지만 아까운 건 고작 방음 스크롤 따위가 아니다.
이대로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불현듯 떠오른 질문을 고스란히 입에 올렸다.
“세르펜스는 이제 성검의 주인도 아닌데, 어째서 이렇게 저희를 열심히 도와주시는 겁니까?”
성검펜스가 나를 바라보며 말없이 눈을 깜박거렸다.
아무래도 내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다.
“휴마누스의 부탁 말입니다. 그냥 거절하면 그만이잖아요?”
그 부탁을 들었을 때. 성검펜스는 ‘빨리 쉬고 싶다.’라는 이유로, 곧장 이론 수업에 들어갔다.
정말 모든 걸 끝내고자 했다면, 더 좋은 방법이 있었음에도.
나는 성검펜스의 허리춤을 노려보았다. 그곳에는 성검이 걸려 있었다.
저것을 몸에서 떼어내면, 높은 확률로 성검펜스는 사라지게 될 거다. 정말 간단한 방법이다.
그런데도 성검펜스는 그것을 시도해 보는 대신, 휴마누스의 청을 들어주었다.
“세르펜스가 성검의 주인으로서 살아온 세상은 이제 사라졌습니다. 그러니 세르펜스는 더 이상 책임에 얽매이지 않아도 됩니다.”
“···알고 있습니다.”
혹시나 성검의 주인으로서 짊어져야 했던 책임감 때문일까 싶었다. 하지만 성검펜스는 알고 있노라 대답했다.
나는 더욱 의문에 빠졌다.
자신의 바람을 미뤄두고 도움을 줄 만큼. 성검펜스와 휴마누스 사이에 의리 같은 건 없었다.
황제누스에게는 있을 것도 같으나, 적어도 성검펜스에게는 없는 게 확실했다.
‘그러니 휴마누스의 부탁이라서 도와주기로 한 건 아닐 테고···.’
현재 세르펜스의 자리를 빼앗아 눌러앉을 생각으로, 제 안전을 위해 휴마누스를 강화시키는 것 또한 아니었다.
‘그랬다면 과외를 핑계로 시간을 질질 끌며, 우리가 자신에게 정을 붙이도록 유도했겠지.’
혹은 마왕을 쓰러뜨리려면 자신이 필요할 거라고 우리를 설득하거나. 이도 저도 아니면 그냥 성검을 들고 도망가버리는 수도 있다.
그러나 성검펜스는 그러지 않았다.
성실하게 휴마누스와 리에나를 가르치며, 최대한 빨리 성검을 넘겨주고자 했다.
그래서 더 모르겠다.
성검펜스가 무슨 생각으로 우리를 돕고 있는지.
“그런데···, 신의 사자께서는 어째서 곧 사라질 사람인 저에 관해 알고자 하시는 겁니까?”
아무래도 상대방에게 의문을 품은 건 나 하나뿐만이 아닌가 보다.
“제 과거를 궁금해하셨던 것은 현재의 저에게 끼칠 영향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고, 식사와 수면을 신경 쓰셨던 것은 이 육체의 건강을 염려해서라는 건 이해했습니다. 하나 그동안 챙겨주신 각종 간식과 방금의 그 질문은···. 잘 모르겠습니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저를 신경 쓰시는 겁니까?”
성검펜스가 자신의 생각과 의문을 쏟아냈다.
그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자니, 유지스처럼 ‘세르펜스는 하나도 모르고 있어요!’라고 외치고 싶어졌다.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걸 몰랐다면, 생각에서 그치지 않고 실천으로 옮겼을지도 모르겠다.
“제가 당신에 관해 궁금해하면 안 됩니까? 그러는 세르펜스도 곧···, 사라질 예정이면서. 지금 제 생각과 의도를 궁금해하고 있잖아요.”
“그···건···.”
말문이 막힌 성검펜스는 그 어떤 반박도 내놓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어째서 자신이 내게 이런 질문을 던졌는지, 성검펜스 자신도 모르고 있는 게 분명하다.
“당신이 곧 사라질 사람이란 건, 제가 당신에 관해 몰라야 할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당신에 관해 알고 싶습니다.”
성검펜스의 두 눈이 혼란으로 물들었다.
아무래도 내 말이 이해되지 않는 모양이다. 알고 보면 매우 쉬운 문제인데도 말이다.
“그래야 기억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추억할 수 있을 테니까. 제가 당신에 관해 많이 알아야, 더 구체적으로 떠올릴 수 있을 거 아닙니까? 그런데 당신은 제가 먼저 물어보지 않으면, 자신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 어쩌겠어요? 제가 알아서 물어볼 수밖에.”
“저를, 추억한다니···. 어째서 그런 짓을···?”
내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며 말한 것과 반대로. 성검펜스는 무거운 것에 짓눌리기라도 한 것처럼 몸을 웅크리며 질문했다.
그 모습이 가여운 한편.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요 며칠 함께 지내면서 서로에게 정이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저만 그런 겁니까?”
“저는···.”
성검펜스가 말끝을 흐리며 우물쭈물했다.
평소라면 녀석이 대답해 줄 때까지 기다렸을 테지만, 오늘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저는, 뭐요?
“···신의 사자께서 ‘현재의 저’와 따로 구분하여, 저를 ‘당신’이라 지칭하시는 게···. 배척의 의미를 담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예?! 그게 무슨 개···, 악!”
성검펜스의 말에 깜짝 놀라,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가, 마차 천장에 머리를 박고 말았다.
그래도 덕분에 ‘개 헛소리’라는 뒷말을 삼킬 수 있었으니.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머리를 매만지며 성검펜스의 처지에서 생각해 보았다.
그는 나와 마찬가지로 남의 몸을 빌려 쓰고 있었다.
성검펜스도 세르펜스지만, 그 육체의 주인은 어디까지나 ‘현재의 세르펜스’니까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를 이름이 아닌 대명사로 불렀으니···.’
성검펜스가 자신을 배척한다고 받아들일 만도 했다.
세르펜스는 자기가 마음을 연 상대에게 ‘당신’이라 칭했다. 그렇기에 그 호칭이 문제가 될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다.
‘그런데···, 나는 정말 그런 생각이 없었던 걸까?’
나는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배척까지는 아니어도, 그와 지나치게 가까워지지 않으려고 경계했던 건 사실이다.
그 증거로 성검펜스와 함께하는 요 며칠간. 나는 한 번도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지 못했다.
‘그런데도 이렇게 정이 들어버렸으니 결과적으로는 실패한 꼴이지만···.’
하지만 어쩌겠는가.
외면해 버리기에 성검펜스는 너무 외로워 보였다. 그리고 세르펜스의 얼굴을 가지고, 그와 비슷하게 행동했다.
“그렇게 느끼셨다면···.”
“죄송합니다.”
“예?”
막 성검펜스에게 사과를 하려는 찰나. 녀석이 내가 해야 할 말을 가로채 버렸다.
그 난데없는 사과에 나는 얼빠진 소리를 내며 성검펜스를 바라보았다.
“그저 구분을 위해 저를 그렇게 부른 거라고 설명하셨었는데···. 제 얕은 생각으로 신의 사자께서 하신 말씀을 곡해했습니다.”
“······.”
나는 두 가지 이유로 할 말을 잃어버렸다.
첫째는 어처구니가 없어서고, 둘째는···.
‘저기다 대고 어떻게 부정을 해?’
저 말을 부정한다는 건, 내가 녀석을 배척한 거라고 시인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짓을 해서 좋을 건 아무것도 없다.
“괜찮습니다. 그럴 수도 있죠.”
나는 신경 쓰지 말라는 의미로 녀석의 무릎을 툭툭 두드려주었다.
사실 어깨를 두드려주고 싶었는데, 그러기엔 내 팔이 너무 짧았다.
“갑자기 제 무릎은 왜···?”
“세르펜스가 잘못한 게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들릴 수도 있다는 걸 예상해야 했는데, 제가 조심성이 부족했습니다.”
이 말은 진심이자 진실이었다. 너무 부주의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시온’의 몸을 빌려 쓴다는 죄책감을 앓았던 내가. 성검펜스의 생각을 미처 파악하지 못했다는 게 미안했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성검펜스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제 무릎과 내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무언가 떠올랐는지 불쑥 입을 열었다.
“조금 전에···. 어째서 황태자 전하의 요구를 받아들였는지 물어보셨잖습니까?”
성검펜스의 입을 거치자, 휴마누스의 부탁은 요구로 둔갑해 있었다.
그 점을 지적할까 하다가 크게 중요한 건 아닌 듯하여 넘어가기로 했다.
“네. 그런데 세르펜스가 대답도 하지 않고 말을 돌려버렸죠. 이제 대답해 주시려고요?”
“···대답해 드리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내 질문에 대답해 주는 대신, 조건이 있다는 뜻이었다.
자기는 내게 궁금한 점을 물어봐 놓고 이렇게 나오다니. 치사하기 이를 데 없는 행동이나, 어른인 내가 참아주기로 했다.
“첫날 먹었던 ‘초코 퍼지 마시멜로 쿠키 샌드’를 드리면 됩니까?”
세르펜스 몫으로 남은 쿠키 샌드는 총 세 개다. 그중 하나 정도는 성검펜스에게 넘겨도 괜찮으리라.
그럼 세르펜스와 성검펜스가 사이 좋게 두 개씩 먹게 된 셈이니, 참으로 공평한 결말이 아닌가?
‘그런 생각으로 내 딴에는 비장하게 말한 거였는데···.’
성검펜스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래도 성검펜스는 세르펜스에 비해 단맛을 향한 열정이 부족한가 보다.
“그게 아니라면 뭘 원하시는데요?”
“당신의···.”
“저의, 뭐요?”
“······.”
성검펜스가 말을 제대로 끝맺기도 전에 입을 닫아버렸다. 그러고는 으음거리며 머뭇댔다.
짐작 가는 게 하나 있긴 했다. 아니, 사실을 말하자면 하나밖에 없었다.
‘역시 내 본명···이겠지?’
굳이 조건으로 붙이지 않아도 그냥 물어보면 얘기해 줄 텐데, 왜 저러나 싶다.
그러다가 문득 지난 일이 떠올랐다.
‘아차, 그러고 보니···!’
내가 본명을 슬쩍 알려주겠다고 제안했을 때. 성검펜스가 거절했던 일이 떠올랐다.
그 당시. 분함을 참지 못한 나는 성검펜스를 향해, 내게 매달리며 빌게 만들어 주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다.
그렇다는 것인즉. 성검펜스는 빌기 싫어서 이런 조건을 붙였다는 뜻이 된다.
‘성검펜스의 무릎은 세르펜스보다 비싸구나? 세르펜스라면 바로 무릎을 꿇고 빌었을 텐데.’
나는 일시적으로 비싸진 녀석의 무릎을 가볍게 토닥여 주었다.
이 행동을 재촉의 의미로 받아들인 것일까?
우물쭈물하던 성검펜스가 못다 한 말을 끝냈다.
“다, 당신의, 본명을···. 듣고 싶습니다.”
성검펜스가 민망하다는 표정으로 내 얼굴도 제대로 보지 않고 말했다.
예전에 딱 잘라서 알려주지 않아도 된다며 거절해놓고, 이제 와서 물어보는 게 부끄러웠나 보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피식하고 웃음이 새어 나왔다.
“······.”
성검펜스가 고개를 살짝 숙인 채로 눈을 살짝 치켜뜨며 나를 노려보았다. 삐죽 내민 입술은 덤이었다.
영락없이 토라진 모양새라, 하마터면 더 크게 웃을 뻔했다.
나는 웃음을 꾹 참고, 정식으로 자기소개를 했다.
“제 이름은 유선우입니다. 참고로 성이 ‘유’고, 이름이 ‘선우’죠.”
“유···, 선우···. 으음···.”
세르펜스가 수도 없이 입에 담아서 혀에 익었기 때문일까?
성검펜스는 다른 세상의 언어인 내 이름을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제대로 불렀다.
“덧붙여 ‘선우’는 제가 살던 곳의 언어로 ‘착하고 어진 벗’을 뜻합니다.”
“···잘 어울리는 이름입니다.”
성검펜스가 내 말을 곱씹기라도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진’이라는 부분에 태클을 걸어왔던 세르펜스와 사뭇 다른 반응이다. 그 사실이 기쁘다기보다는 살짝 씁쓸했다. 거리감이 느껴져서.
어찌 보면 이 거리감은 내가 원한 것이었음에도 말이다.
“그러고 보니, 제 세례명을 알고 계신다고 하셨던 것 같은데···. 맞습니까?”
“불러드려요?”
“······.”
성검펜스가 입을 또 다물어버렸다. 아주 그냥 상습범이다.
그래도 도망치지 않는 게 어디인가 싶다. 도망 상습범에 비하면 침묵 상습범은 그냥 귀여운 수준이다.
“아도르, 왜 또 조용해졌어요?”
너무 예고 없이 세례명을 불러댄 탓일까?
성검펜스가 ‘흡!’ 하고 헛숨까지 들이켜며 움찔 몸을 들썩였다.
“뭘 그렇게 놀라요, 아도르?”
“아···! 그, 그게···.”
“그게?”
“저조차 단 한 번도 말해본 적 없는 제 세례명이···, 타인의 입에서 나온다는 게 조금 낯설고 이상해서···.”
신을 제외하면 혼자만 알고 있던 소중한 비밀을 타인이 대뜸 세상에 내놓았으니.
녀석이 과민한 반응을 보이며 놀란 것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이해는 이해고 재미는 재미다.
“익숙해질 때까지 계속 불러드려요, 아도르?”
“됐습니다.”
성검펜스가 강하게 정색하며 말했다.
내가 자신을 놀리고 있다는 걸 눈치챘나 보다.